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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에 담긴 진실 : 영화 '레몬 트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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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에 담긴 진실 : 영화 '레몬 트리'

때때로 2008. 7. 24. 22:52

2008년은 이스라엘이 건국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수 천년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평화롭게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산지 60년이 되는 해죠.

시온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정당화시키는 두 가지 신화가 있죠.

첫 번째는 홀로코스트입니다. 물론 많은 유태인들이 나치 독일에 의해서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어야만 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고통 속에 독일의 패망을 기다려야만 했죠. 분명 그들의 희생을 우린 기억해야만 하고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고 해서 홀로코스트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 용서받을 순 없습니다. 더구나 아랍인들이 유태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주역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진실.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국한 시온주의자들은 그 기원서부터 유태인 차별에 앞장서 왔던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협력해왔을 뿐더러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일정정도 협력하기까지 했죠.

자신들의 고향, 시온 동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은 이미 수 천년동안 유럽 곳곳에서 뿌리내려 살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낯선 땅으로 가고싶어할리가 만무했죠. 그래서 시온주의자들은 유럽에서의 유태인 억압이 유태인들의 '귀향'을 도울 것이라는 생각에 유럽 지배자들의 차별 정책에 협조하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까지 이어집니다. 더구나 새로운 나라를 일궈야할 의무에 가득차있던 시온주의자들은 고국 건설에 필요한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필요할 뿐 늙고 힘이 없는, 무능력한 유태인은 필요없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기까지 했었죠.

두 번째는 팔레스타인 지역, 지금의 이스라엘 땅이 비어있는, 사람이 살지 않던 땅이었다는 신화입니다. 하지만 시온주의 운동 이전에도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미 많은 수의 유태인과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이 평화롭게 공존했었습니다. 물론 제국주의 침략에 의해 고통받았었지만 최소한 팔레스타인인과 유태인 사이의 갈등이 주된 것은 아니었다는 거죠. 시온주의자들은 무던히도 팔레스타인 땅이 버려진 황폐한 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했고 성공했죠. 하지만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의 올리브 나무를, 레몬 나무를 길러왔던 땅입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 '레몬 트리'는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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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여인 살마(히암 압바스)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레몬농장을 아버지의 오랜 친구분과 함께 가꾸며 홀로 살고 있습니다. 아들은 미국으로 돈 벌러 갔고 남편은 일찍 사별했죠. 무척 평범한, 이곳이 이태리이거나 미국이라고 해도 이해할 만한 일상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 일상은 신임 국방장관이 농장의 이웃으로 이사오면서 하나씩 깨져나갑니다.

에란 리클리스 감독은 영화의 첫 부분에선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건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보입니다. 살마의 농장은 평화롭고 그녀의 집은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입니다. 단 하나의 힌트라고 한다면 그건 낡은 TV겠죠. 하지만 그조차도 그리 팔레스타인인들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다곤 볼 수 없을 겁니다.

2002년 시작된 장벽 건설에 의해 물리적으로 가로막혀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해는 이토록 조심스럽게 시작합니다. 하지만 감독은 이런 삶을 하나하나씩 깨뜨려나갑니다. 국방장관이 이사오면서 신변상 안전의 이유로 전망대와 감시카메라가 설치되고, 살마의 농장을 가로질러 철조망이 설치됩니다. 살마는 철조망을 넘어 그의 나무들을 보살피러 농장에 들어가지만 그녀의 나무와 열매는 점점 시들어만 가죠. 농장 근처에서 일어난 테러를 이유로 그녀의 집에 난입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그녀의 몇 안되는 세간살이들을 깔끔하게 부숴놓습니다. 그때서야 감독은 그의 카메라로 살마의 집 주변을 비춥니다. 소박하지만 단정했던 그녀의 집은 곳곳이 부서진 모습을 하고 있죠. 살마가 제기한 소송에 참여하기 위해 합법적인 허가를 받고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음에도 이스라엘 군인들은 '통행금지' 됐다는 이유로 그녀의 예루살렘 진입을 허가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감독의 이러한 세심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알고있는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차분하게 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유태인으로서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직시하기란 정말 어렵겠죠. 하지만 감독은 차분하게 자신이 접근해간 진실을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냉소하지도 흥분하지도 않고 그야말로 차분히.

이 영화에선 잊을 수 없는 두 장면이 있습니다. 국방장관 관저에서 열릴 파티를 준비하던 중 '레몬'을 미쳐 준비하지 못한 국방장관은 살마의 농장에서 레몬을 가져오게 시킵니다. 그때 살마는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격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레몬을 지키기 위해 무장한 군인들에게 달려듭니다. 그곳에서 살마와 국방장관 부인 미라는 서로를 직시하고 살마는 떨리는 손으로 히잡을 쓰며 자신의 모습을 가다듬습니다. 살마를 연기한 히암 압바스의 연기는 여기서 가장 빛납니다.

두 번째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토록 원하던 콘크리트 장벽을 치고 레몬농장의 나무를 잘라버렸지만 국방장관 나본은 오히려 그 콘크리트 장벽에 갇혀있는 듯 그려집니다. 이건 한편 감독이 자신의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세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선 이스라엘 국가의 폭력성에 대해선 제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심지어 국방장관이란 사람조차 그저 '안보국' 핑계만 댈 뿐입니다. 21세기 가장 파시즘적 국가인 이스라엘의 모습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건 그저 약간 아쉽다고 할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단지 이웃간의 갈등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건 침략자와 침략받은 민족의 관계죠. 이 영화 '레몬 트리'는 레모네이드처럼 상쾌한 느낌의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약간은 씁쓸한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죠. 그렇기에 더 많은 분들이 '레몬 트리'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참고할 만한 책
잔인한 이스라엘  랄프 쇤만|이광조 옮김|미세기
팔레스타인  조 사코|함규진 옮김|글논그림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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