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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다

때때로 2012. 5. 25. 13:41


홉스봄, 역사와 정치|그레고리 엘리어트 지음|신기섭 옮김|그린비

'홉스봄, 역사와 정치'는 보통의 전기는 아닙니다. 그의 출생과 성장, 그가 부딛혔던 현실의 문제들이 언급되긴 하지만 그리 자세히 설명되진 않습니다. 저자인 그레고리 엘리어트는 제목 그대로 그의 역사 서술과 정치적 실천의 비판적 설명에 집중합니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의 시대 4부작이 홉스봄과 함께 비판의 도마에 오릅니다.

홉스봄은 매우 복잡하고 때론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기에 그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옮긴이는 그러한 홉스봄을 설명할 딱 한 단어를 꼽자면 '계몽주의'가 아닐까 싶다고 말합니다. 진보하는 역사와 이성의 힘을 믿는 그런 계몽주의 말입니다. 이는 어쩌면 나치의 극적인 성장을 눈 앞에서 본 유대인 소년의 당연한 반응일 수 있습니다. 무너지는 세계를 앞두고 제 자신을 온전히 보전하고자 한다면 끝내 역사의 진보를 가져올 이성의 힘, 공산주의적 대안을 선택하는 것 외에 어떤 대안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문명이냐 야만이냐는 선택 앞에 그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문명은 바로 공산주의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나치를 막아내기 위한 연합 전술은 지금도 그렇듯 당시에도 진보적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일 것입니다. 저자가 강조하 듯 홉스봄에게 '인민전선'은 그의 정치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30년대 프랑스는 물론 그 이후에도 성공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나치를 물리친 것은 소련ㆍ영국ㆍ미국의 군사적 연합 덕분이죠. 중국의 국공합작은 공산당과 노동조합 내 좌파를 학살한 끝에 성공한 것일 뿐입니다. 저자는 인민전선에 대해 실패한 역사로 매우 간단히 적고 있지만 사실 인민전선의 역사는 당 내 좌파의 피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켄 로치가 '랜드 앤 프리덤'에서 보여줬 듯이 말입니다. 게다가 인민전선을 전후로 한 시기 소련 공산당과 코민테른(국제 공산당)은 전술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서로 충돌하는 행동을 거의 동시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회파시즘'론은 파시스트 다음은 바로 공산당이라는 기대 하에 사회민주당을 파시스트보다 더 큰, 시급히 상대해야 할 적으로 삼기도 했죠. 군사적으로는 나치 독일과 불가침 협약을 맺고 오히려 영국과 서방세계를 적대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전술이 독일의 침공 이후 급격한 방향전환을 합니다. 우파 정당들과의 연합을 위해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을 자제하는 것으로까지 나가죠.

이러한 태도는 80년대에도 (아마 지금까지도) 계속됩니다. 홉스봄에 의하면 대처에 맞서기 위해 노동당은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선 안됩니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노동조합의 극렬한 투쟁이 오히려 대처의 성공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홉스봄의 그러한 입장에 대해, 그 결론이 겨우 블레어(사실 대처와 그리 다르지 않은)였다며 비웃음에 가까울 정도로 비판합니다. 홉스봄과 그의 공산당이 뒤늦게 (이미 해체했지만) '맑시즘 투데이'를 통해 제3의 길을 비판했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꼴이죠(사실 그 비판도 그리 충분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이름이 높지만 저자에 의하면 그조차도 의문입니다. 특히 '극단의 시대'는 마르크스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계급'이 빠졌다며 집중적으로 비판받습니다. 물론 그 뿐만은 아닙니다. 부르주아 혁명에 관한 설명도 지나치게 제멋대로라고 비판받죠. 저자는 홉스봄이 자서전 '흥미로운 시절'(Interesting Times, 국역 '미완의 시대')에서도 자신이 마르크스의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였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은 제가 읽은 것 중 가장 신랄하게 홉스봄을 비판합니다. 매우 얇은 책이지만 읽기 쉽지는 않습니다. 인민전선은 홉스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저자는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부르주아 혁명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약간의 기초지식이 있다면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러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있는 것이죠. 논쟁이 될만한 내용이 많지만 한국에서 그러한 논쟁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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