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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의 경제적 유산

때때로 2013. 12. 7. 13:32


한국일보 2013년 12월 7일 1면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이 5일 타계했다. 세계의 언론은 일제히 그의 임종을 보도했다. 세계적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7년간 감옥에 갇혔었던 양심수. 남아공 흑인의 자유를 위한 지치지 않는 투사. 어떤 한국인들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언제나 '선생님'이었듯 많은 이들은 그를 '마디바(Madibaㆍ'존경받는 어른'이라는 의미로 만델라를 뜻하는 단어로 쓰인다)'라고 부른다. 그런데 찜찜하다. 지난해 광산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 진압에서 드러났듯이 흑인 대통령 하에서도 흑인 노동계급에 대한 탄압과 착취는 중단되지 않았다. 남아공의 빈곤과 실업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대다수 흑인의 몫이다. 아파라트헤이트를 끝내고 법류적 인종 차별을 종결시킨 만델라의 유산은 분명 위대하다. 그렇다면 그가 남긴 만델라의 경제적 유산은 어떨까. 마이클 로버츠가 그가 남긴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제의 대차대조표를 간단히 살펴봤다.

※급히 옮기느라 오역이 많습니다.


만델라의 경제적 유산
via Machael Roberts Blog 'Mandela's economic legacy

넬슨 만델라의 죽음은 우리에게 남아프리카의 흑인 대중이 잔인하고 극악하며 퇴행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맞서 거둔 위대한 승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체제는 처음에는 영국 제국주의에 의해 조성됐고 다음에는 반동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매우 극 소수의 특권을 지키고자 한 백인 남아프리카 지배 계급에 의해 사용됐다. 만델라는 27년을 감옥에서 갇혀 지냈다. 그가 대표하는 사람들은 미국을 포함해 주요 제국주의 권력의 후원을 수십년 간 받아온 기괴한 이 체제에 맞서 오랜 기간 힘들게 싸웠다.

영국 보수당의, 특히 마가렛 대처와 전 세계 반동세력의 수장과 승자들, 다른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 체제는 결국 수백만 남아프리카 흑인들의 희생 앞에 무릎 꿇어야 했다. 탄광 노동자들, 학교의 학생들과 마을의 주민들, 이들 노동자와 인민은 전국 곳곳에서 보이콧, 파업, 정치적 캠페인에 연대했다. 이는 영국과 미국의 반동적 권력에게 거대한 패배였다.

그러나 또한 아파르트헤이트의 종말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지배계급과 주요 자본주의 국가 지배자들의 태도 변화에서 기인하기도 했다. 더 이상 만델라를 '테러리스트' 취급할 수 없다는 것과 흑인 대통령이 불가피하고 필요하기조차 하다는 인식은 냉정한 판단이었다. 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자본주의 경제는 허약했었다. 그것은 보이콧 때문 만은 아니었다. 광산과 공장에서 흑인 노동자의 생산력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산업 투자의 질과 외국인 투자의 유용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1980년대 초 세계적 불황 때
[2차 세계대전] 전후 수준으로 자본의 이윤율이 떨어진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게다가 다른 자본주의 경제와 달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노동력 착취의 방법을 전환할 어떤 방법도 찾지 못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윤율


지배계급은 전략을 바꿨다. 백인 지도자 F.W. 드 클레르크는 이전 수십년 간의 정책을 뒤집었고 만델라를 석방시켰다. 그는 노동규율을 복구하고 이윤율을 회복시킬 수 있는 흑인이 주도하는 정부에 찬성했다. [백인 권력을] 포기한 대가로 클레르크는 76세에 대통령이 된 만델라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첫 만델라 정부 하에서 이윤율은 정말로 극적으로 올라갔다. 노동자 착취율이 치솟은 것 만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착취율


기계화의 증가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자본의 이윤율 증가세도 2000년대 초반 한풀 꺾였다. 비록 착취율 상승은 더 급격했지만 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산업은 현재 어려움에 처해있다. 실업과 범죄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고 경제 성장은 좌초하고 있다.

만델라와 그의 후임자인 타보 음베키 아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주거와 전기, 교육, 보건 등에서 흑인 다수의 끔찍한 삶에 어떤 개선을 가져온 것처럼 보였다.
[사회]운동에 대한 잔인하고 독단적인 탄압과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불평등은 종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여전히 소득과 부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하고 백인 자본가들의 경제에 흑인 자본가들이 참여했지만 불평등은 이토록 높았던 적 없다. ANC(아프리카민족회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웠지만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공동소유로, 광산과 자원산업에서조차 전환하려 하지 않았다.

OECD는 신흥경제에서의 소득 불평등이라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여년 간 두 개의 나라(브라질과 인도네시아)에서 소득 불평등 감소를 위한 싸움이 진행되면서 생산 증가가 강력하게 나타났다. 이는 하나의 극단이다. 다른 하나의 극단은 네 나라(중국, 인도, 러시아 연방,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같은 기간 불평등 수준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그 경제들이 맹렬히 확대됐음에도 말이다."

아주 적은 수의 부유한 백인들 대개는 아파르트헤이트 지배가 끝났음에도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 OECD 보고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특히 이는[불평등의 증가는] 인종간 불평등이 지역적 분리를 가져온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심각한 도전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종말을 맞은 후 모든 집단에서 실질소득의 증가가 있었지만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있다.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아프리카인들은 백인보다는 물론 인도와 아시아에서 매우 가난한 유색인들보다 더 가난하다."[여기는 심각한 오역일 수 있음]

그리고 현재 산업을 지배하고 있고 집권당인 ANC의 흑인 지도력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흑인 부자들은 백인 부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ANC에는 다수의 흑인 노동계급과 성숙한 소수의 흑인 지배계급 사이의 급격한 분열이 표출되고 있다. 이 균열은 결정적 파국 없이 정기적으로 분출하고 있다(최근 흑인 정부는 광산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발포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종결은 만델라의 유산이다. 평등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은 그의 다음 세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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