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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13 철도파업

철도노조 파업 11일째,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다

때때로 2013. 12. 20. 11:49

12월 19일 서울광장에서 '민영화 저지를 위한 철도노조 파업 2차 결의대회'가 열렸다. '관건ㆍ부정선거 1년,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가 같은 장소에서 뒤를 이어 계속됐다. 2만여 명이 참여했고 참가자의 구성도 그 어느 때보다 다양했다. 경찰의 방해와 공격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올라온 1만여 명의 철도노조 조합원이 광장의 중심에 자리했다. 소울드레서ㆍ쌍코ㆍ화장발, 소위 '삼국카페'라고 불리는 커뮤니티에서는 핫팩과 초코파이, 성금을 철도노조에 기부했다. 19일 촛불시위에 대한 간단치 않은 소회를 남긴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 [사진 自由魂]

1-1 2008년 촛불이 무엇을 했느냐고 하지만 이른바 '삼국카페'라고 불리는 것은 남겨놓았다(당연히 이들만 얘기하는 건 아니다). 물론 이 커뮤니티가 '정치' 커뮤니티는 아니다. 대표되는 어떤 정치를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다. 대개는 민주당보다 약간 왼쪽의 경향이라고 해야겠다. 어찌됐든 이들 커뮤니티의 정치 '참여'는 좌파와 '상식적 시민'의 차이를 쉽게 넘나들곤 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들이 6월부터 계속되던 부정선거 규탄 촛불시위가 아니라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다시 광장에 나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확히 철도노조를 지지ㆍ지원하며 광장에 나섰다. 정봉주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저들을 친노 세력으로 치부하는 것은 큰 실수가 될 것이다.

1-2 여전히 남는 아쉬움은 좌파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가장 환호한 이 중 하나는 정봉주다. 이를 진중권 교수식으로 20세기 초반에 머물러 있는 좌파의 구태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주장이다. 정봉주가 대표하는 정서, 촛불시위가 대표하는 정서에는 '노찾사'처럼 지극히 1980년대스러운 분위기도 있다. 이날 2부로 진행된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에는 함세웅 신부와 정봉주씨가 연사로 나섰고 노찾사가 공연을 했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의 스타일이 90년대 초중반의 화려한 붓글씨가 아닌 80년대에 가까운 매직글씨에 닮은 것도 그런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2-1 민주노총은 여전히 머뭇거린다. 자신감 없음이다. 국토부의 수서발KTX 면허발급이 20일로 다가왔고 정부는 지도부 체포를 시도하며 여전히 강경하게 나오는 데 민주노총은 이 이상의 행동을 얘기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파업할 수 있는 곳은 파업하고 그렇지 못한 곳은 교육을 하겠다"고 한다. 이게 뭔가. 결국은 개별 노동조합들이 알아서 하라고 손놓고 있는 게 아닌가. 민주노총이 중앙집중적 조직이 아니라는 점은 대안을 제시하고 행동을 계획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걸 인정해버리면 애초 민주노총, 즉 전국의 노동자들이 공통된 이해(지금은 민영화)를 놓고 함께 싸우자고 만든 조직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2-2 더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이 결국 타협을 전제로 하는 노동조합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협상의 상대인 정부가 일체의 타협을 고려하지 않을 때 그들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수도 있다. 이게 핑계가 될 수도 없다. 노동조합 운동의 초창기 기업주와 정부가 타협하려 했는가? 결국은 힘으로 그들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고 굴복시켜 인정받고 요구를 쟁취해왔던 게 아닌가. 결국은 자신감 없음이다. 왜? 지금 누리고 있는 '국민적 지지'를 놓치기 싫은 게 아닌가 싶다. 즉 여기서 더 나간 행동을 하면, 이를테면 철도의 전면파업이나 민주노총 전체의 연대파업을 하면 국민적 지지를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2-3 그래서 민주노총이 내놓은 게 21일의 대자보 번개다. 이게 뭔가. 애초 대자보가 철도노조 투쟁을 지지하며 시작된 건 새카맣게 잊고 바로 그 대자보에 편승해 가겠단다. 위력적인 거리행진도, 더 확대된 파업도 내놓지 않는다. 그래 오늘까진 '국민적 지지'가 확대되는 국면에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21일 무엇을 내놓을지 기대해보겠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 [사진 自由魂]

3-1 사실 이런 것들을 민주노총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은 정치적 좌파가 제안하고 조직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정치적 과제들, 즉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행동해야할 지를 내놓아야 하는 것은 좌파다. 안타깝게도 통진당은 온통 이석기건에만 매몰돼 있다. 정의당은 여전히 선도하기보다 뒤따라가기 급급하다. 노동당은 당원이 시작한 '안녕들하십니까' 운동이 이토록 성장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소수 좌파가 전면 총파업 등 이 운동이 더 성장해 승리를 쟁취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안하고 있지만 이들은 너무 소수라 큰 영향력이 없다.

3-2 그래서 문제는 1-2로 돌아간다. 좌파는 대중을 어떻게 매혹할 것인가. 다시 반복하자면 스타일의 문제는 사소하다. 대중 스스로 과거 운동 스타일을 따라하곤 하는 걸 우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촛불을 되돌아보며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새롭게 급진화하며 스스로 조직해나가는 대중에 손놓고 있거나, 그들을 지도해야 할 대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운동을 스스로 조직하고 지도할 수 있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일부는 그들 스스로 쟁점을 선택하고 행동을 계획하며 실천에 옮긴다. 삼국 카페의 철도노조 지지활동에서와 같이 말이다. 쟁점이 커질 때마다 형성되곤 하는 '범국민운동본부' 같은 것들에 기존 좌파나 시민운동 단체들만 참여할 것이 아니라 이들 다양한 커뮤니티들도 참여시키자는 것이다. '안녕들하십니까'는 스스로 연락을 취하고 공동의 행동을 모색하며 모양새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과 어떻게 함께 행동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게 좌파에게 가장 시급할 것이다. 그리고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좌파가 자신의 주장을 후퇴시키거나 쓸데 없는 '당의정'으로 애매모호하게 제시해선 안되겠지만 대중과 함께하는, 무엇보다 그들과 함께 실패하는 경험 없이는 공감을 얻고 앞으로 나가는 일은 힘들 것이다. 함께 실패하고 함께 교훈을 도출해내는 경험이 승리보다 더 중요하다.


2013년 12월 19일 서울광장 [사진 自由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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