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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why so serious?

때때로 2008. 8. 25. 12:52

얼마전 개봉해서 흥행하고 있는 영화 '다크 나이트'의 가장 인상적인 대사입니다. 히스 레저가 분한 조커는 시종일관 'why so serious?'라고 묻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serious'한 사람은 조커입니다. 고담 시티의 어두운 반쪽을 지배하고 있는 갱들의 돈을 찾아준 조커는 자기 몫의 반을 불태우며 가장 순수한, 그래서 가장 잔혹할 수 밖에 없는 '폭력'에의 열망을 아낌없이 표출합니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사람은 serious-진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종일관 현실적 욕망에 타협하고 굴복하는 이들의 존재를 견뎌내지 못합니다. 오늘 제가 영화 '다크 나이트'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정치적 이상에 눈을 뜨고 레닌을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몇 년간 항상 칼날과 같은 정치적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이건 참으로 피곤하고 힘든 일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지극히 일상적인, 당연한 모든 것들에 대해 경계하고 의심하고 물음을 던지는 건 단순히 '의식'에 국한된 것만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국가간 축구 경기를 보고자 새벽에 일어나 TV를 켰던 자신을 억압하며 축구의 자본주의적 본질을 스스로에게 재인식 시키는 과정은 매우 피곤한 일이죠. 또한 제 친구들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드는 데도 일조한 듯 싶네요. 스포츠, 드라마, 영화, 만화, 소설…. 쉽게 여흥을 즐기기 위한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친구와 어떤 공통의 감정, 정서를 교류하기란 쉽지 않겠죠. 이 모든걸 그때는 즐겼었죠. 내 스스로를 이상에 맞춰가는 과정은 한편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이 있기도 합니다.

언젠가부터 이 모든게 너무 힘이 들더군요. 그러기 위해 제가 희생해야만 하는 것도 너무 많았고요. 아마도 제 첫 연인과 헤어진 것도 그런 연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녀와는 정치적 이상을 함께 했었죠. 지금도 만나면 가장 많은 걸 공감하고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인 관계'에서조차도 그런 정치적 제한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날카롭게 벼려진 두 칼날은 충돌에서 서로에게 상처입히기 쉽죠. 그래서 떠났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두루뭉술'한 삶도 그리 쉽지만은 않더군요. 10여 년 넘게 벼려온 칼날이 무뎌졌다 한들 칼이 어디가겠습니까. 그래요 사실은 10 몇일 간의 올림픽이 끝난 이제서야 그  숨막히던 민족주의적 제전의 갑갑함을 토로하는 것이죠. 단지 민족주의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핵심 이데올로기인 '경쟁'과 '노력에 대한 댓가' 이 모든게 가장 정밀하게 짜맞춰진 각본하에 선전되는 장인 올림픽을 그저 즐기기만 하기에는 너무 힘듭니다.

영화 '괴물'의 가족들은 왜 한강변 매점에서 생활해야만 했을까요?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대규모 판자촌과 달동네가 밀집해있던 상계동에 대한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죠. 갈곳 잃은 그들에게 그나마 주어진 건 바로 서울 안의 외딴 사막 한강 고수부지의 매점입니다. 중국에서도 빈민촌과 노점상에 대한 대규모 단속과 개발이 잇따랐죠. 티벳과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은 이루 말할 것도 없죠. 이건 단지 올림픽의 '이면'일 뿐일까요? 사실은 국가의 체제 '안전성'을 선전하는 최선의 장인 올림픽에서 그것이 '이면'에 불과할리는 없습니다. '본질'인 것이죠.

스포츠에서의 공정한 경쟁 이것도 참 웃긴 얘깁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심과 편파 판정 시비, 약물복용 의혹, 특정 국가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끔 바뀌어지는 '규칙'. 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흑인 민권운동을 지지하면서 시상대에서 블랙파워를 상징하는 붉끈 쥔 주먹을 들어올렸던 미국 흑인 선수들은 '올림픽 정신'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아직도 복권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선수 개개인들의 노력의 결과로 펼쳐지는 '드라마'는 감동적이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한 CF의 표현처럼 대다수의 관객에게, 선수에게 올림픽은 단지 그들의 노력을 표현하고 '즐기'는 자리만으로 남진 않습니다. 만약 그런 자리라면 굳이 '국가 대표'라는 것도 의미가 없겠죠. '쿨러닝' '우생순'의 감동은 거짓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감동'은 더 큰 '부조리'를 감춰주는 역할 이상을 하지 않습니다. 그 '감동'이 사람들에게 '정의'와 '공동선'에 대한 '공감'을 뜻하진 않습니다.

네 당연히 저도 야구를 보며 특정 팀을 응원하고 게임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를 즐깁니다. "why so serious?"란 질문은 이런 모순적인 제 자신에 대한 질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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