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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클라이먼의 하비 비판 2: 수익성에 대한 오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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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클라이먼의 하비 비판 2: 수익성에 대한 오해

때때로 2015. 8. 31. 15:48

※앤드루 클라이먼의 데이비드 하비 비판 2편을 아래 옮깁니다. 주석과 강조는 원문 그대로이며 대괄호[ ] 안은 옮긴이가 덧붙인 내용입니다. 잘못 옮긴 부분에 대한 지적을 기다립니다. 댓글로 달거나 메일(go24601@gmail.com)로 보내주십시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하비와 마르크스의 대결
2편: 수익성에 대한 오해

앤드루 클라이먼ㆍ2015년 3월 12일ㆍ링크
증거는 명확하다. 2차 세계대전 때부터 대침체 때까지 미국 기업들 전반의 이윤율은 떨어졌고 이러한 하락은 거의 전적으로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따라 설명된다.

이 논문 1편[링크]에선 자본주의적 생산의 확대와 함께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마르크스가 "가장 중요한 정치경제학 법칙"으로 인정한 법칙(LTFRP)에 대한 하비의 해석(하비 2014ㆍ링크)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하지만] LTFRP가 1980년대부터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하비의 믿음은 다루지 않았다.

LTFRP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하비의 유일한 '증거'는 노동인구 데이터에 관한 논의였다. 그는 이윤율(즉 투하자본의 규모에 대한 이윤량의 비율)에 관한 그 어떤 직접적인 증거도 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며 이윤율이 하락했음을 보여주는 나와 다른 이들이 내놓은 증거에 도전했다(그림 1을 보라).
[1]


그림 1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

하비는 이 증거들에 관해 "몇몇 심각한 의문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점에서 매우 옳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질문도 던진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의문을 들어보지도 고려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논지를 전개하는 게 문제다. 그 의문들은 실제로 오래된 상투적인 질문이다. 그러한 질문을 받아온 이들 중 한 명으로서 나는 데이터를 모으고 해석해오면서 그것들 모두를 다뤄왔다. 그러므로 그 질문들에 [모두] 답할 필요는 없다. 데이터에 대한 내 분석과 해석은 이미 그 의문들을 예상하며 다뤄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그 의문들이 어떻게 설명되는지 확인해주기만 하면 된다.[2]

그가 "대부분의 이윤율 저하 논문"에서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의문"이라며 제기한 "어떤 이유에서든 이윤율이 저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 다시 짚고 넘어가자면 그가 비판하는 핵심은 불분명하다. - 그러므로 "이윤율이 저하하는 것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마르크스가 보여주려 한 (노동절약형 기술변화의) 특별한 동학의 존재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정말 옳다. 그래서 내가 2차 세계대전 때부터 대침체 때까지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 궤적을 고려하며 "마르크스의 이윤율의 경향적인 하락이 분명하게 사실과 일치한다"(클라이먼 2012, 213쪽)고 결론 내린 이 결론이 단순히 기업들의 이윤율이 떨어진다는 사실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이는 여러 잠재적 하락 원인을 (분해해) 구분하는 '분해분석법(decomposition analysis)'과 각각의 요인들이 이윤율에 대해 갖는 효과의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원인을 연구하는 데 사용한 이윤율을 분석하는 표준적인 방식이 특별히 고유한 것은 아니지만 (하비가 강조했기 때문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다시] 분석해보겠다.

전통적으로 이윤율은 잉여가치율(또는 고용에 대비한 이윤의 비율)과 자본의 가치구성(또는 투하된 자본 중 고정자본과 가변자본의 가치 비율)의 함수로 분석된다. 어떤 맥락에서 이는 괜찮은 방법이지만 연구자들이 구성한 표준적인 가치구성은 마르크스가 가리킨 가치구성과는 다르다. 그것은 생산수단의 획득과 노동자의 고용에 투하된 상대적 가치량 뿐 아니라 상품의 실제 가치에 비해 오르는 상품의 가격 비율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두 개의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표준적 가치구성의 운동은 명백한, 모호하지 않은 경향을 갖지 못한다. 예를 들어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에서 표준적인 가치구성이 변화하지 않았을 때 생산수단 획득과 노동자 고용에 투하된
[자본의] 상대적 가치량 또한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리가 결론내릴 순 없다. 생산수단 획득에 더 많은 가치가 사용돼 가치구성이 상승하는 경향을 띠었지만 이 효과는 인플레이션에 의해 상쇄됐다고 가정할 수 있다.[3] 하비가 옳게 강조했듯이 이는 '중요한 문제'다.

나의 대안적 분석은 이 문제를 구별되는 두 요인으로 다룬다. 나는 이윤율의 전체 운동을 아래와 같이 분석한다.

① 상품의 실제 가격에 비해 오른 상품 가격 비율의 변화에 기인한 운동
② 고용된 노동에 대한 이윤율의 변화에 기인한 운동
③ '그밖에 모든 것'에 기인한 운동

나는 앞의 두 원인이 어느정도 짧은 기간에는 중요할 수 있지만 그 둘 모두 장기적으로 - 우리가 전후 기간 전체를 고려할 때 - 이윤율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 전체는 '그밖에 모든 것'에서의 변화에 기인한다

. 따라서 일단 ①과 ②를 제외한 다음 수학적으로 계산하자면 '그밖에 모든 것'은 바로 투자한 고정자산에 대한 노동시간으로 측정된
[노동력] 고용 비율이다.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의 거의 전부는 이 비율의 하락에 기인한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고용이 자본축적보다 항상 더 늦은 속도로 증가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것이 바로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 경향을 마르크스의 법칙이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런식으로 그 법칙은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 하락의 거의 전부를 설명한다.

고용에 대한 이윤의 비율은 이윤율에 약간의 영향만 미친다. 이윤율은 그 비율에 따라 아주 약간만 변동할 뿐이다. (전후 초기에만 아주 약간 그렇게 보일 뿐 1970년대부터 대침체 때까지는 상승이나 하락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이 비율이 오랜 기간 안정적이었다는 게 CEO들이나 기업의 고위 경영진들
[의 소득]을 이윤이 아니라 고용 부문으로 미국 정부가 분류한 것에 따른 통계적 착시는 아니라는 걸 주목하는 게 중요하다. 고위 경영진에게 지급된 것을 이윤으로 재분류한 내 최근 추정(클라이먼 2014b를 보라)에서도 아주 약간의 차이만 보인다. 물론 최근 수 십 년간 그들의 보수는 급격하게 상승했다. 그렇지만 통계에 영향을 미치기엔 고위 경영진의 수는 너무 적다. 내 계산에 따르면 1979년에서 2005년 사이 0.1% 또는 1%(소득 분배에서 상위 0.1% 또는 1% 부분)라고 불리는 경영진이 받은 생산 몫의 증가는 기업의 다른 부문인 고용 몫(employees' share)에 단지 0.4%포인트 또는 0.6%포인트의 하락을 불러왔을 뿐이다.

하비는 또 이윤율이 저하한다는 증거에 대해 "이윤(가치ㆍ원문 그대로)이 생산되는 곳과 그것이 실현되는 곳 사이엔 차이가 있다. … 자본과 수익이 흘러가는 … 양식은 … 뒤얽혀 있고 시스템의 한 부분에서 선택된 데이터가 그것의 전체 운동을 정확하게 대표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반론을 편다. 그의 지적은 다시 한 번 옳다. 앞서 논의한 국내 자본 투자의 수익률과 관련한 데이터 만으로 미국 기업들의 이윤율이 전반적으로, 국내 투자에 대한 것 만큼 해외 투자에 대한 이윤율 또한 하락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내 결론은 그 대신 해외와 국내 계정 모두를 고려해 내려진 것이다. 미국 기업의 해외 투자와 해외 투자로부터의 수익에 관한 정부 데이터는 1983년부터 이용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해외 투자에 대한 이윤율이 데이터의 시작점으로부터 대침체 때까지 대체로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그림 2)
[4]. 국내와 해외 이윤율을 측정하기 위한 분모는 약간 다르기 때문에 두 데이터 모음을 적절히 연결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 기업들 전체의 이윤율 하락 규모를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다. 그러나 해외와 국내 이윤율 모두 하락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전체 이윤율 또한 하락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림 2 미국 다국적 기업의 해외 이윤율
(해외 직접투자 누적액에 대한 해외 직접투자로부터의 세후 수입 비율)

또 하비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한 나라에서 생산된 이윤을 세금이 없거나 낮은 다른 나라의 자회사 계정으로 옮기는 '이전가격 조작'을 사용한다고 옳게 지적하고 있다. 그는 다국적 기업의 해외 수익과 투자 데이터가 그들의 자회사가 자리한 나라에 귀속된다는 사실을 덧붙일 수 있다. 생산이 이뤄지는 나라와 그 생산품이 판매되는 나라는 자주 다르기도 하다. 그 결과 다국적 기업의 이윤율이 어떤 특정한 나라에서 정확히 어찌 되는지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진 않지만 어렵다. 그러나 이는 전체적인 그림을 살펴볼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전가격 조작의 술수는 기업이 투자의 소유권과 이윤을 이리저리 옮길 수 있도록 하지만 이윤 또는 투자의 총량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하비는 이전가격 조작이 '숨겨진' 이윤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증거도 내놓진 않는다. 내가 알기론 그런 증거는 없다. 조세 당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이윤을 보호하는 것은 숨겨진 이윤과 같은 게 아니다.

앞서 논의한 증거는 오직 미국 기업들과만 관련된 것이다. 하비는 "그러한 데이터가 세계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일의 증거가 될 순 없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그 데이터들이 증거가 될 순 없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이 맥락에서 반대를 정당화 할 수 있을까? 그의 논문 주제는 경제 위기의 잠재적 원인으로서 이윤율의 하락이다. 그리고 그는 최근의 위기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감염을 통해" 세계로 확산되기 전 미국에서 시작됐음을 잘 알고 있다. 미국에서 위기가 시작돼 그 다음 다른 곳으로 확산됐다는 것은 금융적으로 간단히 설명된다. 따라서 세계가 아니라 미국에서 이윤율 하락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또 그것이 위기의 근본적 원인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작용한 것인지에 우리는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비는 최근 몇 년간 수익성이 상당히 회복됐다고 주장한다. 물론 침체 후 추세는 이전의 이윤율 하락이 대침체의 원인인지 아닌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의 지적은 이윤율 측정 방법이 침체 후 반등을 포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의문을 갖게 됐고 이전에 수익성 하락을 알려준 그 방법을 믿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이윤에 관한 거의 모든 정의를 이용해) 계산한 모든 이윤율은 침체 후 반등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것들 모두는 대침체 기간 동안 하락했다(바닥을 쳤을 땐
[호황의] 절정기였던 2006년 값보다 24%에서 38%까지 낮았다). 그러다 그 값들 모두는 반등해 2013년쯤엔 2006년 수준에 근접하거나 넘어섰다. 기업이 노동력을 늘리지 않고 생산하는 데 따른, 침체 이후 생산에서 노동자 몫의 급격한 감소가 수익성 회복의 주요 원인이다. 이는 '임금 억제' 때문이 아니다. 인플레이션 효과를 보정한 후에도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상승했다.

이전엔 옳았던 하비(마르크스의 '과소소비론'에 대해)

'충돌하는 힘들'과 '다양한 모순과 위기 경향들'이 있다는 것을 하비는 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일원인론인 LTFRP의 허수아비로 묘사되는 것일까? 우리는 이것들을 함께 다룰 때 이 둘이 암시하는 바를 주목해야 한다. 이는 법칙이 위기의 다른 원인들과 상쇄 요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만 옳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의 존재를 인지했을 때 법칙을 일단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1편에서 지적한 대로 다중원인론에 대한 주장들은 위기에 관한 하비의 부재원인론에 대한 갈망을 가리는 가면이라고 나는 의심한다. 그는 분명 '자본론' 3권에 나와 설명되고 완료된 위기에 관한 명확한 다중원인론에 만족하지 못한다. '자본론' 3권에는 LTFRP 이론이 온전하게 남아있고 금융 시스템과 같은 다른 결정 요인들이 이와 연결돼 그것이 드러나는 방법을 매개한다.

특히 하비는 과소소비 위기론, 즉 '유효수요' 부족을 LTFRP 그리고 기업의 투자 결정과 금융 동요와 같은 중간매개들이 작동한 간접적인 결과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연관되지 않은 대중의 제한된 소비가 만들어낸 현상으로 보는 이론을 마르크스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곧 그는 "만약 임금이 너무 낮다면 유효수요의 부족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관념을 마르크스의 것으로 돌린다. 증거로 그는 '자본론' 3권(그리고 2권의 비슷한 주석)에서 한 문장, "언제나 모든 현실적 공황의 궁극적인 원인은 … 대중의 궁핍과 제한된 소비에 있다"(자본론 3권, 597쪽)는 마르크스의 설명을 인용한다.

하비는 곳곳에서 이 문장을 등장하는 맥락을 제거하고 전통적인 과소소비론의 방식으로 다룬다. 맥락을 따져보면 그 문장은 저임금이 부족한 수요로 이어지는 시기와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대중의 제한된 소비를 위기의 '원인', 현대적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작용인'이라고 말한) '원인'이란 단어를 사용했을 때의 '원인'으로 보는 것 같지도 않다. 그것은 단지 위기가 가능한 조건(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형상인')일 뿐이고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5]

바로 몇 해 전, 하비는 언급된 그 문장과 구절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고 그 맥락에 따라 조심스레 분석했다. 잉여가치가 생산돼 화폐로 실현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추가 수요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물은 후 하비는 "마르크스의 대답은 놀라울 정도로 냉혹하게 솔직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두 계급으로 구성된 폐쇄된 사회에서 추가 수요는 오직 하나의 원천, 즉 자본으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을 뿐이고 따라서 착취받는 노동자는 그것의 원천이 되지 못한다"(하비 2012, p.25)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추가적인 생산수단을 위한 자본가들의 기업 수요-투자수요-와 판매될 잉여가치를 포함하는 생산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본가 가정의 소비재 수요다. 그에 따라 하비는 경제 위기를 특징지우는 수요의 부족이 위기 때든 위기가 아니든 언제나 소비를 제한받아온 '대중' 또는 '착취받는 노동자'의 제한된 소비 탓이 아님을 명확히 하기 위해 그 구절을 인용하고 많은 부분을 질문하는 식으로 요약한다. 따라서 위기를 대중의 제한된 소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행기 사고를 (사고가 났을 때든 그렇지 않을 때든 언제나 존재하는) 중력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대신 수요의 부족은 '자본으로부터' 나와야 할 추가 수요의 발생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현실이 원인이다. 핵심 문제는 하비가 '지속적인 자본축적'(하비 2012, p.26)이라고 부른 것, 즉 생산을 위한 추가적인 투자를 자본주의가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추가적인 생산적 투자의 규모가 필요한 것보다 적어졌을 때, 바로 그 때문에 수요 부족은 발생한다.

하비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적어도 그랬었다) 왜 갑자기 '제한된 소비' 문장을 맥락에서 떼내어 과소소비론적 '임금 억제' 위기 이론을 마르크스가 실제로
[의미했던] 수요 문제에 관한 '냉혹하게 솔직한' 설명과 연관짓는 데 이용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 '냉혹하게 솔직한' 설명이 우리를 이윤율의 저하로 곧장 되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우리가 수요 부족이 거의 항상 투자수요 부족의 문제임을 이해하게 되면 뒤를 이어 투자는 왜 부족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의문은 더 나가서 두 가지 질문으로 연결된다. 투자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만큼 넉넉한 양의 이윤(잉여가치)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오늘날 새로운 투자의 이윤율이 미래에 적절한 규모의 투자로 이어질 만큼 충분히 높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불충분한 수익성은 미국에서 생산적 고정자산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수요가 장기적으로 둔화해 온 주요 원인이다. 1948년에서 2007년 사이 기업들의 고정자산 축적률은 41%까지 떨어졌다. 축적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유일한 요인은 이윤 중 생산에 재투자된 부분이다. 그것은 실제로 아주 약간(3%) 올랐을 뿐이다. 그러므로 생산적 자본 축적률의 대체적인 감소는 이윤율 하락의 결과다(더 진전된 논의는 클라이먼ㆍ윌리엄스 2014를 보라).

생산적 투자의 미래 수익성이 불충분할 것이라는 예상은 오랫동안 중요한 문제로 간주됐고 여기에 대침체 후 회복이 그토록 약하고 오래 걸린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미약한 회복을 설명하기 위해 폴 크루그먼, 마틴 울프와 미국의 전 재무장관인 로렌스 서머스와 같은 주류 경제학자들과 경제지 필자들은 미국 경제가 침체 이전, (즉 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 때) 실질 단기 수익률이 -2% 또는 -3% 수준으로 터무니 없이 낮아서 충분한 수요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던 시기인 1980년대 중반쯤부터 꽤 오랫동안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계산했을 때 대출자들이 빌린 것보다 더 적게 갚는다는 걸 의미한다. 기업이 충분한 투자에 착수하도록 유도할 유일한 방법이 그들에게 되갚지 않아도 될 돈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투자의 예상되는 수익률은 정말로 지독하게 낮을 것이다!(더 진전된 논의는 클라이먼 2014a를 볼 것)

나는 하비가 말하 듯 "그것 모두가 어떤 숨어있는 이윤율 저하 경향의 결과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것이 틀린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중간매개의 모든 방식이 복합적 요인들과 작동한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대침체는 기업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약화시켰다.) 둘째로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은 '숨겨진' 게 아니다. 헤겔이 말했 듯이 본질은 현상으로 나타나고야 마는 것이다
[국역 '철학강요' 160쪽]. 나는 그렇게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앤드루 클라이먼은 '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마르크스 '자본론'의 복권: 모순이라는 신화에 대한 반박 Reclaiming Marx's 'Capital': A Refutation of the Myth of Inconsistency'(Lexington Books 2007)의 저자다. 페이스 대학(뉴욕)의 경제학 명예교수이며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스트 이니셔티브(the Marxist-Humanist Initiative)' 함께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Harvey, David. 2012. History versus Theory: A Commentary on Marx’s Method in Capital, Historical Materialism 20:2, 3-38.
_______. 2014. Crisis Theory and the Falling Rate of Profit.
Kliman, Andrew. 2012. The Failure of Capitalist Production: Underlying Causes of the Great Recession. London: Pluto Books.('자본주의 생산의 실패: 세계대침체의 원인', 정성진ㆍ하태규 옮김, 한울 2012)
_______. 2014a. Clarifying “Secular Stagnation” and the Great Recession, New Left Project. March 3.
_______. 2014b. Were Top Corporate Executives Really Hogging Workers’ Wages?, Truthdig. Sept. 18.
Kliman, Andrew and Shannon D. Williams. 2014. Why “Financialisation” Hasn’t Depressed US Productive Investment,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Print version forthcoming.
Marx, Karl. 1991a. Capital: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Vol. Ⅲ. London: Penguin.('자본론: 정치경제학 비판 제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8)

주석
[1] '그림 1'의 데이터는 미국경제분석국(BEA)의 분석을 이용했다. 국민소득과 생산 계정 표 1.14의 1ㆍ4ㆍ 7ㆍ9ㆍ10ㆍ12행. 고정자산 표 6.3의 2행. 고정자산 표 6.6의 2행. 순영업 잉여와 세후 순익은 이익에서 계산했다. 두 비율의 분모는 감가상각을 고려한 고정자산에 축적된 투자다. 감가상각은 역사적 비용으로 평가된다.
[2] 나는 이를 내 자신의 분석을 논의하는 데만 그칠 것이다. 다른 이들의 주장에 대해선 그 만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3] 하비의 주장에 따르면 - 마르크스가 명목상의 것보다 더 적게 참조한 - 자본의 '실질적인' 가치구성조차 순수한 노동절약형 기술 변화의 지표가 아니다. 이점에 있어 그것은 '기술적' 그리고 '유기적' 구성과 다르다. 그러나 내 추정은 미국 기업의 실질적 가치구성이 기술적ㆍ유기적 구성에 매우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47년부터 2007년까지 실질적 가치구성은 약 160%까지 증가했다. 심지어 이 기간의 거의 대부분 동안 다른 자본구성들 사이의 연관은 이 수치가 보여주는 것보다 더 강했다. 성장률에서의 차이는 대부분 예외적으로 빠르게 늘어나 실질적 가치구성을 일시적으로 압박했던 임금 때문이다.
[4] '그림 2'는 미국경제분석국(BEA)의 '국제수지와 직접투자대조표'에서 가져왔다. 이윤율의 분자는 '시가 보정 전 직접투자수입'이고 분모는 '역사적 비용에 기초한 미국의 해외직접투자'다. 데이터는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했다.
[5] 이 구절에 대한 더 진전된 분석은 클라이먼 2012 의 253~255쪽(국역본)을 보라. 과소소비 위기론의 약점에 대한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논의는 이 책의 8장을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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