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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의 살아남기 : 미쓰 홍당무

때때로 2008. 10. 20. 11:20

사회성이 좋다라는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근사근하고 눈치가 빠른 데다가 유머 감각이 풍부하고 배려심이 깊으니 자연히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죠. 이런 이들은 타인을 대함에 있어서 차별 없이 공정하게 대하고 항상 자신보다는 남을 우선시 하죠. 그와 반대로 사회성이 전혀 없다고 핀잔 듣기 일수인 사람들은 타인을 대하는 데 있어서 차별을 두고, 눈치가 없으며, 남보다는 자신을 우선시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처우를 받죠. '왕따'.

왕따의 문제는 따돌림을 받는 당사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도 왕따가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자신이 왕따가 돼지 않기 위해 타인을 왕따로 만드는 현실로 나타납니다. 어울려 살아가야만 하는 사회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왕따가 되죠.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공효진ㆍ서우ㆍ이종혁ㆍ황우슬혜ㆍ방은진 출연

이경미 감독 데뷔작인 '미쓰 홍당무'는 양미숙(공효진)과 같은 왕따들이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영화입니다.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소통'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왕따들은 남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양미숙에게 동료 러시아어 교사 이유리(황우슬혜)는 직장 내에서의 경쟁자이자 한 남자를 좋아하는 연적일 뿐입니다. 이유리의 집에 들어가 같이 산 목적 자체가 경쟁자이자 연적에 대한 감시와 견제였죠. 동거인으로서의 이해와 연민은 단 한푼도 보여주질 않죠. 그녀가 피부과 의사 '박찬욱'에게 진료과목과 상관 없는 개인적 사정들을 늘어놓는 것은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상대방에 대한 그 어떤 고려도 없이 자신만의 얘기를 늘어놓을 뿐이죠. 그녀의 '파트너'인 '찐따' 서종희도 자기애(愛)가 강한 사춘기 중학생이죠. 어찌보면 사춘기 학생에겐 당연한 고민일 수 있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고민, 우스꽝스런 축제 행사에 대한 거부가 극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이들 왕따들의 문제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뿐만 아니라 타인을 쉽사리 오해한다는 것이죠. 사제지간에서 이젠 동료가 된 서종철(이종혁)에 대한 양미숙의 오해가 그런 것이죠.

왕따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도 이 영화는 그 대안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저 공감할 뿐입니다. 이 영화가 무엇보다도 '여성'의 영화일 수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이겠죠. '오해'로 시작된 종희와 미숙의 연대는 보통의 이야기에선 진실을 알게 된 후에는 당연히 깨져야겠지만 이 영화에선 오히려 그 공감의 폭이 확대됩니다. 미숙은 영화의 시작에서 피부과를 홀로 찾지만 마지막엔 종희와 함께 피부과를 찾아가죠. 제작자인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떠올리게 하는 어학실 재판(?) 장면이 헤드폰을 쓰고 서로가 서로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은 이 오해와 소통 불능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모습입니다. 서로의 이야기는 목적지를 잃은 채 중구난방으로 흐르죠. 결국 모두 헤드폰을 벗어버려야만 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남자의 영화로서 어떠한 해결책, 복수와 응징을 결론으로 이끌었다면 이경미 감독의 어학실 장면은 어떠한 뚜렷한 해결책도 없이 그저 수다로서만 이 장면이 끝납니다. 영화의 끝까지 서종희와 양미숙이 찐따와 찐따의 애인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죠. 우여곡절 끝에 선 축제 무대,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도 결코 어떤 대안이 되진 못한 채 다수의 비난과 야유 속에 끝날 뿐이죠.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 할 이 끝없는 수다는 불완전하지만 어떤 공감을 얻어냅니다. 성은교(방은진)와 종철은 전신 깁스라는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듯 보이는 상황에서 만나 종희를 가졌 듯 더이상의 소통이 불가능해 보여 결국 이혼이란 방법을 택하기 직전, 모든 가능성이 단절된 듯 보이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서로를 이해합니다. 미숙과 종희는 축제 무대에 올라 함께 비난과 야유를 듣습니다. 미숙의 안면 홍조증 상담을 위해 함께 피부과를 찾기도 하죠. 그들은 비를 피하는 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길을 갑니다.

극단적 경쟁 사회에서 연대보다는 적대가 사람들 관계를 지배하죠. '사회성 좋은' 사람이란 것, 그건 어쩌면 현실에는 없는 모두에게 꿈만 같은 이상적 존재일 겁니다. 우리 모두가 배려심 넘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기울일 수 있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이럴 때 우리에겐 어떤 구체적 대안보다는 우선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는 게 먼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 서우의 발견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출연자 모두의 연기가 만족스러웠지만 그 중 서종희 역을 한 서우가 가장 놀라웠습니다. 압도적 카리스마의 방은진, 리얼리티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공효진의 연기 사이에서 서우는 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맘껏 발산했죠. 지나치게 어려 보이는 외모가 걱정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 연기라면 이후에도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서종희 역의 서우만 보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아깝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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