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기록/기억 (35)
자유롭지 못한…
의도치 않게 뜨는 해를 보게 됐다. 엇그제 본 조선일보의 한 사진 때문이다. 새벽에 잠이 깨자 무작정 달려 도착한 곳은 충청남도 서산 간월암이다. 맑은 날씨였지만 지평선 근처 구름이 몰려 있어 맑은 해의 모습을 보는 건 다음 기회로 미뤄야 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해는 주저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간월암과 육지를 잇는 길 사이에서 본 일출. [사진 自由魂] 간월암은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붙여진 이름. 해가 밝은 후에도 아쉬운 듯 한참 바다 위에서 머뭇거리던 달을 보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명이 아직 가시지 않은 하늘과 바다. [사진 自由魂] 일출은 금방이다. 고개를 내미는 듯 했는 데 어느새 중천에 뜨기 일쑤다. 여명이 아직 남아있다고 안심할 수 없다. 해와 간월암을 ..
Marina Ginestà 1919.01.29 - 2014.01.06 프랑코 쿠데타에 맞서 투쟁한 젊은 사회주의자였던 마리나 히네스타가 1월 6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36~39년의 스페인 내전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진의 주인공이었던 그녀는 당시 17세로 카탈루냐통합사회당(PSUC)의 투사였다. 이 사진은 1936년 7월 21일 PSUC의 본부로 사용되던 콜론 호텔 옥상에서 찍었다. 프랑코가 17일 쿠데타를 일으킨 지 5일째 되던 이날 반파시즘 의용군중앙위원회가 구성됐다. 혁명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담긴 사진. 히네스타는 1919년 프랑스 툴르즈에서 태어났다. 11살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바르셀로나로 이주한다. 전쟁이 일어나자 국제여단에 지원해 프라우다지 특파원 ..
조선의 천주교는 그 시작이 다른 나라와 많이 다르다. 외국인 신부에 의한 포교가 아닌 자생적인 학습을 통해 신자가 확대됐다. 물론 일단 천주교가 퍼지기 시작한 후에는 신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김대건이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최양업과 정규하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곳 강원도 횡성의 풍수원성당은 정규하 신부가 지은 성당이다. 이곳 성당은 1801년 신유박해로부터 유래한다. 박해를 피해 살 곳을 찾던 용인의 신자 40여 명이 이 마을에 터전을 잡은 것이다. 이후 정규하 신부가 이곳에 오면서 마을 신자들의 힘으로 성당이 지어진다. 조선에 지어진 네 번째 성당(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전북 완주 되재성당, 서울 명동성당)이자 조선인 신부가 만든 첫 번째 성당이다. 풍수원성당을 중심으로 십자..
여름 휴가가 아직 멀은 5월. 부처님오신날 연휴에 집에만 앉아있기엔 엉덩이가 쑤신다. 결국 거리로 나섰지만 나 같은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게다가 그러한 이들 다수가 수도권에 모여사는 사정을 고려한다면 교외로 나가는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겠거니 하게 된다. 결국 집에 있는 것보다 엉덩이가 더 쑤실 수밖에. 엉덩이면 다행이지만 차안에 몇 시간을 갖혀 있자니 허리, 무릎, 어깨 등 안아픈 곳이 없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하며 기어간 곳. 아침해를 보며 출발했건 만 어느새 해가 누엿누엿 지려 하고 있다. 동강과 서강이 휘감아 도는 영월 구석구석을 돌아보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된지는 오래였고 청령포에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영월 청령포는 세조에게 왕위를 뺐긴 단종이 유배생활을 했던..
강화도엔 많은 군 부대가 있다. 이 부대들은 북한을 향해 경계에 여념이 없다. 과거에도 강화엔 군대가 주둔하던, 그리고 격전을 치뤘던 많은 진지가 있었니다. 대개 이 진지는 외부를 향하기보다 우리나라의 내부를 향해 위치해 있다. 얕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김포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강화가 쫓겨난 왕조의 마지막 피난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강화도의 진지들은 외부의 침략 세력에 맞서 싸우는 가장 앞자리에 있으면서도 그 방향은 안쪽(내륙)을 향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광성보도 그런 여러 진지 중 하나. 신미양요 때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여러 돈대(오늘날의 포대) 중 용두돈대가 특히 매력적이다. 이 돈대는 이름 처럼 용머리 모양으로 바다로 툭 튀어나와 있다..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 옛길 대신 쭉 뻗은 고속도로가 깔리고, 미시령 터널이 뚫리면서 태백산맥 넘어 강원도 영동지방에 가는 게 많이 편해졌다. 도로 정체만 없다면 여유 있게 가도 세 시간이면 강릉이나 속초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게 쭉 뻗은 길로 내달려 달려간 동해는 예전 만한 감흥을 전해주지 않는다. 중앙선 열차를 타고 영주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태백을 거쳐 12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강릉이 진짜 강릉 같고, 한계령 구비구비를 아찔하게 지나쳐 발아래로 쫙 펼쳐진 동해를 보지 않으면 속초에 가도 속초에 간 것 같지 않다. 전날 강원도 산간 지방에 폭설이 내려 통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지만 굳이 한계령으로 올라간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마침 능숙한 운전자도 있어 큰 위험 없이 오를 수도 있었다. 올라갈 ..
인왕산자락 아래 수성동 계곡이 올 여름 복원을 마치고 일반에 공개됐죠. 전에는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던 자리입니다. 서울시는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고 하는 데 제가 '원형'을 본적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어쨌든 겸재가 남긴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부분과 비교해 보면 많이 닮은 듯 합니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부분. [그림=서울시] 7월 11일 복원돼 시민에게 공개된 수성동 계곡. [사진=自由魂]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걷다가 눈에 잘 안띄게 난 오솔길로 내려가니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죠. 공개된지 얼마 안돼선지 아직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저 바위 아래로는 바로 연립주택 단지가 이어집니다. 그곳에 사는 분들이 무척 부러워지더군요. 바위 사이..
많은 지구인의 양심을 받아 살기 좋은 세계라는 우스갯소리 소재가 되곤 하는 안드로메다. 안드로메다는 에티오피아의 왕 케페우스와 여왕 카시오페이아의 딸입니다. 여왕 카시오페이아는 자신의 딸 안드로메다가 바다의 요정 네레이스들보다 더 아름답다고 자랑하곤 했답니다. 네레이스들 중 하나인 암피트리테와 결혼한 포세이돈은 이에 분노해 홍수를 일으켜 에티오피아를 쓸어버리죠. 에티오피아의 왕 케페우스는 안드로메다를 희생양으로 바쳐 분노를 진정케 하려고 합니다. 마침 이때 지나가던 영웅(?) 페르세우스가 안드로메다를 구하고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이죠. 허영심으로 한 나라를 몰락의 위기에 처하게 하고 자신의 딸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에티오피아의 여왕 카시오페이아. 그녀는 포세이돈에 의해 하늘에 거꾸로 매달리는 형..
제주도 여행 이튿날엔 한라산을 올랐습니다. 여러 길이 있지만 백록담에 오를 수 있는 길은 두 곳입니다. 첫째는 성판악에서 오르는 길이고 둘째는 관음사 야영장에서 출발하는 것이죠. 성판악에서 시작한 길은 백록담까지 9.6㎞입니다. 해발 800m 지점에서 시작하는 길이지만 산이 높다보니 꽤 깁니다. 한라산국립공원 홈페이지(링크)에는 4시간30분이 걸린다고 적어놓았습니다. 백록담에 오르는 길은 관음사 야영장에서 출발하는 게 더 짧습니다. 8.7㎞죠. 하지만 등반 시간은 더 걸립니다. 5시간정도. 성판악 길보다 경사가 급해 오르기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산에 익숙하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더 짧은 시간에 백록담에 오를 수 있겠죠. 하지만 관절과 근육을 위해선 속도를 약간 줄이고 천천히 걸어올라가는 게 좋을 겁..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3박4일 동안 제주도를 여행했습니다. 갑작스레 잡힌 여행이라 딱히 계획이 없었죠. 그래서 별반 큰 추억을 남긴 것 같진 않습니다. 누군가는 여행의 감흥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프레임 없이 보기엔 세상이 너무 넓습니다. 그나마 카메라 렌즈를 거쳐 프레임 안에 들어온 세계는 약간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모든 걸 본다는 건 언제나 큰 욕심이겠죠. 작게나마 제 자신의 일부로 만들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합니다. 첫날엔 오후 늦게 제주에 도착해 딱히 여러 곳을 들르진 못하고 협재와 금능의 해변을 잠깐 걸었습니다. 대해의 막막함을 가려주는 비양도의 존재가 너무 고맙습니다. 생각해보면 유명한 해변의 앞에는 모두 섬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