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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직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자들은 흔히 알려진 대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로 나뉘어있던 상태였다. 1917년 당시 혁명의 과제에 대한 이들의 입장 차이는 현실에서 당시 정부와 갈등을 빚던 자유주의자들, 자본가들에 대한 입장 차이로 드러났다. 아래의 두 호소문은 이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멘셰비키가 관여하고 있던 전쟁산업위원회 산하 노동위원회는 1월 24일
[구력] 차르의 전제정과 부르주아지의 갈등이 노동계급에게도 유리한 상황을 전개할 것이라며 두마[의회]를 지지하는 행동에 나설 것을 노동자들에게 호소한다. 노동계급 대중의 지지가 없다면 아무런 힘도 없을 의회를 위해서 말이다.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페테르스부르크 위원회
[혁명 당시 러시아 수도의 지명은 '페트로그라드'였다. 원래 이에 맞춰 통일해 표기했으나, 볼셰비키가 원래의 지명을 고수한 것에 맞춰 '페테르스부르크 위원회'로 다시 수정한다. 멘셰비키의 성명서는 '페트로그라드'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에 맞서 부르주아지와 손잡아선 안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이들은 두마에서 쫓겨난 사회주의자 의원들을 상기시키며 일일파업을 호소한다. 물론 이들의 파업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실패한다. 가장 큰 이유는 파업을 벌이자고 한 날이 공휴일이라는 것이었다.

분명 파업과 혁명 초기 멘셰비키의 역할과 활약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가진 약점은 결국 3월 이후 부르주아지에게 혁명의 주도권을 제 손으로 넘겨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아래 글은 존 리델이 편집해 그의 블로그(링크)와 미국 '사회주의노동자(Socialist Workerㆍ링크)에 연재하는 '거리에서 본 1917:러시아혁명의 리플릿들' 시리즈 3편과 4편을 옮긴 것이다. 본문의 대괄호 안의 내용과 글 아래 붙인 주석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추가한 것이다.


+ + +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들에 대한 호소한다
전쟁산업위원회 노동위원회ㆍ거리에서 본 1917:러시아혁명의 리플릿들 3편ㆍ링크

전제정부가 나라를 숨막히게 만들고 있다. 제정의 정책은 이미 심각하기 그지없는 전쟁의 참화를 더 악화시켜,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계급에 자신들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전쟁의 희생자들이 수없이 많은 상황에 정부의 이기적 행동은 그 희생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몇 번이나 식량공급 위기를 불러온 정부는 이에 아랑곳 없이 줄곧 나라를 기아와 폐허로 몰아넣고 있다. 전시상황을 핑계로 노동계급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 공장에 묶인 노동자들은 공장의 노예나 마찬가지다. 이 지배 체제는 전쟁에서 제대로된 전략을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이를 러시아의 여러 인민에 대한 박해와 탄압을 더 강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인민 스스로가 아닌 현재의 전제 권력에 의해 전쟁이 끝난다면, 전쟁이 멈춘다 하더라도 지친 나라 전체가 갈구해온 평화는 인민을 재앙의 참화에서 구해낼 수 없을 것이다.

즉, 전제정은 전쟁을 끝내도 인민을 새로운 쇠사슬로 구속하려 할 것이다. 종전은 인민에게 해방 대신 새로운, 심지어 더 공포스러운 재난을 가져올 것이다. 정치적 권리 없이 손발이 묶인 인민, 특히 프롤레타리아트는
[정부의] 독단과 실업ㆍ기아에 빠지게 될 것이다. 높은 물가와 실업은 정부의 폭정과 함께 노동계급을 빈곤과 노예상태에 빠지게 할 것이다.

노동계급과 민주 세력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하루하루가 시급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히 제기되는 현재의 과제는 전제 정부를 단호히 제거하고 완전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계급과 민주 세력에게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것이 진행됨에 따라 부유한 부르주아 집단과 관료들 사이의 대립이 노동계급의 적극적 개입에 유리한 상태를 만든다는 게 분명해질 것이다. 인민의 운동은 전제정에 결정타를 날릴 날을 앞당기는데 두마(의회)와 정부의 대립을 이용할 수 있다.

우리 000의 노동자들은 결의한다. 지금 당장 우리의 힘을 하나의 조직으로 모아 단결해 공장위원회를 선출하자. 다른 작업장과 공장의 동지들과 뜻을 모으자. 곳곳의 집회에서 지금 이 순간이 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자. 그리고 우리의 결의를 다른 공장들에 알리자.

우리는 두마가 소집됐을 때 이를 조직된 대중적 힘이 전면적으로 이끌 수 있게끔 준비해야 한다.

두마 소집 전, 페트로그라드의 모든 공장과 모든 지역의 노동자들이 노동계급과 민주 세력의 주요 요구를 들고 (두마가 열리는) 타우리드궁으로 행진하자.

나라 전체와 병사들이 노동계급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투쟁을 통해 조직된 인민의 지지에 기댄 임시정부 만이 나라를 막다른 길과 치명적 붕괴로부터 구해내고, 정치적 자유를 강화하고, 러시아와 다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 + +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페테르스부르크 위원회ㆍ거리에서 본 1917:러시아혁명의 리플릿들 4편ㆍ링크

동지들! 지배계급은 유럽 인민의 목에 씌운 올가미를 더욱 옥죄고 있다. 수백 만 명이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젊은이들 중 제일 우수하고 건강한 이들이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었다. 수백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포로가 돼 고통받았다. 공장이 멈춰선 자리를 빈곤이 대신 채웠다.

학살의 2년 동안 모든 교전국들에서 1500만 명이나 되는 인민이 목숨을 잃은 이 세계의 권력자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어왔다. 이건 정말 예전에 볼 수 없던 범죄다! 인민 중 가장 건강한 일부를 대규모의 죽음으로 몰아간 이들은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닌 다른 이유로 피를 흘려온, 우리 노동자 전위와 탄압받는 민주세력은 위대하고 어려운 임무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범죄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무슨 일을 했는가?

인민을 억압하며 그 운명을 결정해온 지배계급으로부터 지난 2년 반 동안 작게라도 변명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제 곧 두마의 러시아 노동계급 대표들이 재판에 회부된지 2주년이 된다. 전쟁이 막 시작했을 때 두마는 회기 내내 러시아 경제가 번창할 것이라고 외쳐댔다. 물론 타우리데 궁의 벽 안의 두마는 늑대처럼 탐욕스러운 신사 지주양반들과 자본주의적 공장 소유자들과 은행가들의 자비에 경제를 맡겨놓음으로써 이를 파괴하고 있었다.

우리 대표들이 두마에서 쫓겨나 재판을 받고 멀고 추운 시베리아로 유배돼자 신사 지주양반들과 자본가들은 만족스럽게 악수를 나누며 두마에서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 후 2년간 두마에선 이들의 권리가 침해된 데 대해선 그 어떤 얘기도 없었다. 그들은
[우리] 대표들이 추방된지 2주년이 되는 지금도 이에 대해선 침묵만 지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 그들이 배척했던 노동계급 사이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굽실대며 공감할, '동료'가 될 만한 이들을 유인해내려고 한다.

그리해 그들은 두마 자유주의자들의 탐욕스러운 욕망을 노동자들에게 전파시킬, 전쟁의 폭풍 속에서 눈이 멀어버린 국수주의적 노동자들을 찾아냈다. 2월 14일 두마 소집을 앞둔 지금 노동자들 사이에 두마의 의도에 관한 온갖 풍문이 돌고 있다. 두마가 새로운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보기 쉽다. 그렇지만 들고 일어선 노동자들의 벽에 보호받는 동안 두마의 자유주의자들은
[차르 정부에]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두마를 응원해달라고, 심지어 타우리데 궁 앞에서 요구안을 내놓아 단호한 행동에 나서게끔 지지해달라는 호소가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들려온다. 이 호소는 불필요한 것일뿐 아니라 배신적인 것이기도 하다. 차르와 지배계급의 궁전으로 달려가 탄원하는 행동은 이 궁전의 주인들로부터 무언가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인민에게 결국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자유주의자들과 자유주의적 노동계급 정치인들은 자신이 충분한 화약을 갖고 있지 못했을 땐 기꺼이 인민의 대의명분을 위한 단호한 전사로서 이들 앞에 나선다. 그렇지만 그들의 진정한 의도는 감추게 마련이다. 동지들, 그들이 호소하는 도움은, 당신들을 결국 국가에 굴복하게, 더 나아가 군사적 약탈과 '최후까지' 끝없는 전쟁을 수행하는 데 종사하게 만드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를 직설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그들의 진정한 희망이다.

우리의 호소

자유주의자들이 현 정부에 불만을 표할 때조차 그들의 옳아보이는 말들이 뜻하는 바는 비밀스럽게 미래 정부의 자리들을
[자기들끼리] 나누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이 단결한 인민의 지지에 기대 권력 장악이나 '임시정부'에 대해 단호하게 말할 때조차, 그들은 전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직 강력한 민주적 힘 만이 인민의 고통과 시련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온 힘을 기울여 당신이 시작한 전쟁과 당신에 반대할 것이다. 군주제의 권능
[홀]은 당신의 탐욕과 뒷거래를 감춰준다. 바로 그 이유로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차르의 군주제에 우리는 반대한다. 우리는 차르 정부에도 반대한다. 당신은 자신도 그에 맞서 투쟁하길 바란다고 말하지만 당신은 정부의 패배를 두려워 한다. 오직 차르 정부 만이 당신이 인민을 희롱하는 것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민이 권력을 잡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한다. 우리는 노동자와 빈농의 임시혁명정부를 세울 것이다. 이 임시혁명정부는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투표로 선출된 제헌의회의 소집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 인민을 분열시켜 깊은 상처를 입힌 탐욕에 가득찬 자본가들의 국수주의적 범죄행위에 반대한다. 우리는 인민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줄 전 세계 노동자들의 연대를 건설할 것이다.

2월 10일은 우리의 대표자들이 차르의 법정에서 탄핵당한 날이다. 우리의 투쟁과 구호에 강력한 힘을 심어준 그들을 우리는 경애한다. 우리의 대표자들을 즉시 되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우리는 이 날을 일일파업으로 기념할 것이다. 이 파업은 우리의 쫓겨난 대표자들이 공개적으로 선포한 요구를 위한 투쟁에 우리의 목숨을 기꺼이 내걸 것임을 보여줄 것이다.

차르 군주제를 철폐하자! 전쟁에 맞선 전쟁을! 임시혁명정부 만세! 제헌의회 만세! 민주공화국 만세! 국제 사회주의 만세!

Posted by 때때로

"영국으로 말하면 런던 금융가의 자본가들은 현 체제의 수혜자들임이 분명한 반면 그 주변부의 산업자본가들은 스스로 피해자로 느끼고 있다. 이들이 현 국제체제를 타파하고자 이 국제체제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는 중·하층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 '브렉시트와 그 해법' 김승호ㆍ링크

영국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표가 다수인 것으로 드러나자 많은 지식인들이 충격을 받은 듯하다. 보통은 멍청한 인종주의자들의 불장난이라며 비난의 말을 쏟아낸다. 좀 더 점잖은 쪽도 위 글처럼 인종주의자 혹은 자본가의 한 분파에 '동원'됐다는 식이다. 전자든 후자든 교정 불가능한 엘리트주의로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이번 영국 국민투표는 바로 이 오만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란이기도 하다.

인민이 그 스스로 정답을 알고 있다는 식의 NL과 같은 대중추수주의에 동의하진 않는다. 하지만 인민의 정서라는 현실에 기반해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1920~30년대 독일에선 바로 여기서 좌파가 실패했다. 사민당도, 공산당도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 나치가 성장했다. 그러니까 우린 지금 영국에서 파시스트의 현실화 된 힘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21세기 첫 10여 년간 반자본주의 운동이 반세계화 운동으로 시작돼 성장할 때 극우파는 운동 곳곳에서 개입할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좌파는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운동 자체의 성패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극우파의 국수주의적 정서는 운동을 지배하지 못했다.

이것을 패배가 아니라 기회로 만들려면 현실에 대한 보다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그러한 판단은 좌파보다는 우파에게서 더 많이 보이곤 한다. 아래는 영국의 시사 주간지 스펙테이터(The Spectator)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스펙테이터의 정치는 보수에 가까울 것이다. 필자가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 가난한 이들, 노동계급을 계속 그들(they)로 표현할 정도다. 이들의 계급의식과 계급적 본능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 상당히 많은 오역이 포함돼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에 대해 지적해주시면 즉각 반영하겠습니다.
따라서 인용하시려면 아래 링크로 직접 찾아가 원문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브렉시트 지지자가 멍청이거나 인종주의자인 건 아니다, 단지 가난할 뿐
그들은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자신들을 경멸하던 엘리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Brendan O'Neill, 스펙테이터, 2016년 7월 2일ㆍ링크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가난하고 어리석은 이들이 일을 저질렀다. 공공주택에 살며 '선'을 읽는, GCSE[영국의 중등교육자격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이 시험은 주로 계급지표를 보여줄 뿐 어리석음을 말해주진 않는다) 이들 말이다. 이들이 들고 일어나 투표소를 짓밟으며 유럽연합 반대를 외쳤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쇠스랑만 안들었다 뿐이지 현대에 재현된 농민반란과 같다. 투표결과는 인상적이다. 잘 사는 이들은 잔류를, 곤궁한 이들은 탈퇴를 지지했다. 브렉시트 지지자와 잔류 지지자들
[The Brexiteer/Remainer]은 거의 완벽하게, 정말 기막히게 계급 구분선을 따라 나뉘었다. 생산직이 다수인 지역에서는 86%라는 엄청난 수가 탈퇴에 표를 던졌다. 생산직이 적은 영국의 다른 소수 지역에서는 42%가 그랬을 뿐이다. 주택가격이 평균 28만2000파운드가 안 되는 지역에서는 79%가 탈퇴를 지지했다. 주택가격이 그 이상인 지역에서는 단지 28% 만 그랬다. 교육수준이 낮은 (예를 들면 GCSE에서 성인 4분의 1 만이 'five A'에서 'Cs'까지의 등급을 획득한) 240개 지역에서는 83%가 탈퇴에 투표했다. 소득수준 기초조사 순위로도 마찬가지다. 다수가 적은 임금(2만3000파운드 이하)을 받는 지역의 77%가 탈퇴에 표를 던진데 비해 급여가 괜찮은 지역에선 35%가 그랬을 따름이다.

이 얼마나 극명한 차이인가. 당신이 육체노동을 하며 보통의 집에 살고 있고, 대학문이라곤 한 번도 넘어본 적 없다면 당신은 유럽연합에 '쥐어짜내지고 있다'고 말하는 걸 이웃한 여러 도시의 부유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보다 더 선호할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의 16개 지역은 생산직이 다수지만 탈퇴보다 잔류에 표를 던졌다. 그럼에도 계급은 투표에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는 정말 내게 놀라운 일이다. 사회등급이 D 또는 E(반숙련 또는 미숙련 노동자와 실업자)인 사람이 다수인 영국의 50개 지역 중 오직 세 지역 만이 잔류에 투표했다. 세 곳이다. 이는 기득권층이 그들에게 '예스'에 표를 던져야 한다고 고집했음에도 매우 가난한 47개 지역이 일제히 '노'를 외친 것이다.

이제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영국의 가난하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유럽연합과 영국의 그 지지자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줬다. 또 그들은 영국이 부자와 가난한 이들 사이의 오래된 이데올리기적 분열을 떨쳐내고 우리 모두가 사회의 '주주'로 간주되는제3의 길 또는 탈계급 사회에 들어섰다는 것과 같은 블레어주의 신화를 완전히 깨버렸다. 국민투표 후 우리는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여전히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것은 소유냐 소유하지 않았냐의 문제 만은 아니다. 이는 관점의 전쟁이다. 사회의 부유한 부류는
[국내] 정치가 외부의 국제기구들과 연관되는 것을 선호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그렇지 않다. 유복한 이들 중 소수 만이 사회에서 가난한 이들의 몫을 주장할 뿐 (무엇보다도 '주주 사회'라는 터무니 없는 말을 앞장서 홍보하는) 여론 주도층은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 농민 반란이 엘리트에게 준 충격으로 인류학자와 같은 이들이 이러한 미지의 집단을 조사하게 됐고 그들은 현재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정신 없이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두 가지 대답을 내놓았다. 하나는 분노고 더 나쁜 다른 하나는 연민이다. 분노한 이들은 서민들이 탈퇴표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전적으로 인종주이적이진 않지만 나이젤 파라지
[영국독립당의 창립자이자 대표, 7월 4일 대표직을 사임했다]와 같은 이들의 악질적인 외국인 혐오 선동에 속아넘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은 악질 선동가들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는 이런 생각은 1840년대 차티스트 운동이 들었던 것과 같은 알맹이 없는 설명이다. 가난한 이들은 "성숙한 지혜'를 지니지 못해 다른 어떤 계급보다도 더 잔혹한 극단주의자들로 바뀌기 쉽다"는 오만한 비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국제적 대도시의 시민들은 약자들을 다시 한 번 바로 그 자리에 세워 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반유럽연합 진영의 사람들이 외국인 혐오에 휘둘리고 있다는 주장은 일축된다. 투표 후 ComRes
[영국의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브렉시트를 지지한 이 중 단 34% 만이 그들이 표를 던진 주요 이유로 이민자를 언급(이민자 언급이 꼭 인종주의와 연관된 것은 아니기도 하다)하고 있다. 절반이 넘는 53%의 사람들은 영국이 스스로의 법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유럽연합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어리석게도 포그롬[집단 학살, 러시아에서의 유대인 학살에서 유래]의 편을 들어준 것이라며 모욕당한, 전국을 휩쓴 [반란자들의] 발자국은 실제론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다.

이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평에 대해 말해보자. 그들의 진단은 치료법의 하나다. 유복한 사람들 중 소수 만이 분노 충동에 시달린다. 무시당한다고 느낀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당연한 건 아니지만 채찍을 휘두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겉보기에 배려 넘치는 대중에 대한 오프라
[아마도 오프라 윈프리를 말하는 듯]식의 접근법에 넘어가선 안된다. 이 또한 그들의 민주적 선택을 정치적 선언보다는 본능적 비명 취급함으로써 비하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선 기득권층의 입장에 대한 의식적 반란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달라는 감상적 애원이 된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탈퇴표를 던진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그들은 정치계급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에 반대한 것이다. 그들은 엘리트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많이 간섭하는 걸 더 문제 삼는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비난받는 데 신물 나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을 낮잡아 보는 국가기구가 자신을 지배하는 것, 혹은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을 도덕적ㆍ사회적으로 교정될 필요가 크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내가 자랐던, 노동계급이 극소수인 런던 북서부 교외의 번트오크에서 탈퇴 투표자를 찾긴 어렵다. 바넷구 전체를 살펴도 그렇다. 이 곳에선 6만1000~10만 명의 사람들이 잔류에 표를 던졌다. 이들은 모두 비슷하게 말한다. "그들이 우리를 무릎 꿇렸다." 나와 대화했던 모두는
[탈퇴표에 투표한] 그들이 영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해서 바로 인종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 중 다수가 집시(번트오크에는 다수의 집시가 살고 있다)와 함께 일하며 어울려 산다는 것은 외국인에 대한 공격이 그들의 책임이 아님을 보여준다.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 가난한] 그들은 아랫사람 취급 받으며 모욕당하고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시당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계급 문화와 태도가 멸시받는다고 느낀다. 관료집단은 이들을 건강하지 못하며, 정치적으로 공정치 않고, 축구에 지나치게 몰입하며, 자식 낳는 데 너무 집착하고, 술독에 빠져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잉글랜드라는 사고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반란은 인종주나 유치한 분노의 발작이 원인이 아니다. 이를 숙고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을 경멸하던 엘리트의 콧대를 꺾을 기회를 알아채 공격에 나섰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발휘했고 그 과정에서, 맙소사. 세계를 변화시켰다.

Posted by 때때로


[사진 Revolution News]

급한 불은 끄게 된 것일까. 우크라이나에서 정부와 여야의 타협안 소식이 들려온다.

●[연합뉴스] 우크라 정부-야권 유혈사태 해법 담은 타협안 서명(종합2보)

요지는 조기 대선 실시와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헌법 개정이다. 현재 운동의 초점이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에 맞춰졌던 걸 고려하면 지금의 유혈사태를 진정시킬 어떤 돌파구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이 운동의 별명이 '유로마이단'이라는 걸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생디칼리스트인 키예프의 한 노동조합 활동가에 의하면 시위 초기 거리에 나선 우크라이나 인민에게 유럽은 "부패 없는 사회, 높은 임금, 사회적 안전, 법에 의한 지배, 정직한 정치인들, 미소 짓는 얼굴, 깨끗한 거리 등"을 뜻했다. 여기에는 단지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 정치적 지배구조의 문제만 포함돼 있지 않다. '높은 임금'이 상징하듯 여기엔 우크라이나 경제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지난해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을 추진했던 것도, 그리고 시위를 촉발시킨 그 협정의 중단도 모두 경제적인 배경에 놓여 있다(거기에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갈등으로 연결됐다).

실제로 마이단에서 목숨을 걸 각오를 서슴지 않고 말하던 한 사람, 아마도 파시스트일 가능성이 큰 무장 사수대 한 명은 "저는 10년 전 떠나 상선의 선원이 됐습니다. 저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되돌아와 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투쟁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연합뉴스에 보도된 합의안에는 바로 이 문제,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노동자와 농민, 청년들의 경제적 삶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이는 상대적으로 시위가 격화되면서 거리에서의 물리적 충돌 자체가 쟁점이 된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타협안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이 합의에는 스보보다(자유)도 포함돼 있다. 극우 파시스트인 이들은 합법정당이지만 불법적인 준군사 조직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18일 유혈 참극의 두 주범 중 하나다(다른 하나는 야누코비치 정부다). 거리에서 무장하고 일정 지역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던 이들 파시스트를 새로 구성된 정부에서 완전히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저들은 합법적으로 어떤 권력을 공유하게 되면 더 기고만장해져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마치 1930년대 독일 나치처럼 말이다.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로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이 자신들이 바랐던 것 이상으로 격화되는 데 놀랐던 듯싶다. 속보에 의하면 이번 타협에 이 둘 모두 참여했다고 한다. 그것은 중요한 석유와 가스 송유관이 지나고 흑해 북안의 중요 산업지대인 우크라이나가 내전으로 갈라지거나 파괴되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조지아에서처럼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도 과거 발칸 반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바로 옆 소치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을 핑계로 흑해에서 군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 당장 맞서는 것은 유럽연합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로서도 현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 러시아를 비교하는 것은 물론 중국과도 자신을 비교하며 상황을 재고 있는, 즉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세력의 규모나 역할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군사적 개입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더 큰 국내적ㆍ국외적 충돌을 준비할 여유 시간을 갖는 것, 아마도 이번 타협의 첫번째 가능성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도 파시스트의 활보와 권력 강화라는 끔찍한 것 뿐이다.

그러나 아직 다른 가능성이 남아있다. 키예프 시내에서의 격렬한 물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노동계급은 아직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지 않다. 생디칼리스트 활동가의 지적처럼 키예프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기업 활동이 아무런 방해 없이 평상시처럼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노동조합연맹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 임금과 관련된 소수 작업장에서의 저항도 "정치적 저항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사정이 거리에서의 충돌을 격화시키고 시위대에서 파시스트의 주도력을 강화시킨 원인이기도 했다. 결국 적은 가능성이지만 노동계급의 단결된, 그리고 유럽연합과 러시아 둘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파시스트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행동 만이 우크라이나를 구할 것이다. 이는 최근 혁명을 시작한 보스니아 인민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바다. 불과 20여년 전, 민족ㆍ종교 간 참혹한 내전을 치뤘던 보스니아 인민은 노동계급 투쟁을 통해 민족과 국가ㆍ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어 단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활동가들이 이로부터 보다 큰 영감을 얻어 과감한 행동에 나설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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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무엇보다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의 귀환을 뜻한다.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되찾는 것. 그것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노동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

보스니아 반란 ① 끝나지 않은 내전, 민영화
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보스니아 반란 부록 - 인민의 목소리, 당신은 얼마나 배고픈가?


한 남성이 한달 30유로인 자신의 연금 명세서를 보여주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은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을 무시해 왔던 지배자들과 세계를 향해서 말이다. 2월 7일 시위에 참여했던 니콜라 추파스는 반란에 나선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이번 일요일 쿠르셰바츠[세르비아에 있는 도시]는 잠잠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사람들은 아마 선거운동이 시작되길 기다릴 것입니다. 우리가 배운 것에 따르면 선거운동은 정치인들이 사람들에게 거짓말과 약속의 매우 큰 보따리를 팔러 다니는 것을 뜻합니다. 항상 이 약속들은 가능한한 사람들의 가장 폭넓은 이해관계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적자와 청구서, 가난, 실업에 시달리는 우리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나요?

2월 5일 수요일 350㎞ 떨어진 크루셰바츠에서 드리나강을 넘어 온 수 백명의 노동자와 투즐라 주민들은 투즐라 주청사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시위는 아마 다른 시위들처럼 정부당국이 과거의 비슷한 계획에 따라 다루면서 끝을 맺을 것입니다. 빠르게 해결책을 찾겠다고 약속하면서 말이죠. 정부당국이 그 어떤 준비도 하지 못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을 제외한다면 그렇습니다.

시위대는 많은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마치 자연의 역습처럼, 다른 노동자ㆍ실업자ㆍ학생들은 자신을 약탈하고 부당하게 대해 왔던 체제에 맞서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 정의를 위한 싸움을 선택했습니다. 뒤따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모든 사람들이 깨어났고 반란은 나라 전체로 확산됐죠.

스르프스카 공화국 당국은 국경 밖에서 시위를 반-세르비아 캠페인으로 전환시켜 이른바 민족적 단결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오직 이 지역에서 그들이 인민에 관해 얼마나 적은 관심만 쏟는지, 현재의 상황과 민족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유지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느끼는지 보여줄 뿐입니다. 이 투쟁은 어떤 민족ㆍ인종ㆍ종교 또는 국가적 관념도 초월해 있어요. 사람들은 배고픔 때문에 거리로 나섰죠. 배고픔 때문에 사람들은 정의를 위한 싸움에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계급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어떤 정의도 불가능합니다! 억압자와 피억압자, 착취자와 피착취자,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들과 굶주린 사람들이 있는 동안에 정의는 불가능하단 말입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권력자들은 확실히 배부른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을 아주 조금만 알고 있음을 그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분노와 그들로부터의 위협을 느낀 권력자들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거리에 경찰을 풀었다. 최루가스와 고무탄이 사용됐고 구타가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강도질과 도둑질을 해온 지배계급과 대결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함께 버텨냈죠. 최소한 지금까지는 말입니다. 그들은 투즐라 주청사를 점거했습니다. 비하치의 경찰은 훌륭하게도 시위대와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자신을 조종하는 체제에 고분고분 따르는 것을 그만두고 노동계급과 함께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지난 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건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지배자들은 노동 대중이 단결의 주먹을 치켜들었을 때 실제로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또한 지배 정치기구가 노동계급의 단결을 얼마나 많이 두려워하는지 보여줬죠. 저는 어떤 것도 에둘러 말하진 않겠습니다. 저는 빈곤ㆍ실업ㆍ괴로움ㆍ착취ㆍ부패ㆍ도둑질 등에 대해 늘어놓으며 떠들고 있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 하나의 질문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배고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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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보스니아 반란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권력이 필요하다. 성공했거나 성공에 가까웠던 모든 반란이 그랬듯이 말이다. 플리넘(Plenum)은 인민권력의 씨앗이 될 수 있을까.

보스니아 반란 ① 끝나지 않은 내전, 민영화
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보스니아 반란 부록 - 인민의 목소리, 당신은 얼마나 배고픈가?


민영화 정책 재검토 등 일곱 개의 요구안을 들고 있는 시위대.

투즐라와 제니차 주지사는 7일 시위가 격화된 후 사임했다. 몇몇 자치주들로 이 사임의 물결이 확산됐다. 정부가 조기총선 카드를 빼들었지만 노동자와 반란에 나선 인민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플리넘(Plenum)'이라고 부르는 인민 의회를 건설했다. 시작은 역시 투즐라였다. 9일 투즐라에서 첫 플리넘이 열린 후 전국의 모든 반란 도시에서 플리넘이 개최되기 시작했다. 다미르 아르세니이에비치는 플리넘을 이렇게 설명한다.

"투즐라주 시민 플리넘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우리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플리넘은 토론을 위한 공개적인 공간입니다. 플리넘은 어떤 지도자와 금기도 갖지 않습니다. 결정은 대중의 투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플리넘은 정당이나 NGO, 독단적인 협회가 아닙니다. 플리넘은 현실적이고 유일한 민주주의입니다. 플리넘은 국가의 모든 권력기구에 제출할 요구안을 자신의 선언으로 만들고 채택합니다. 선언은 우리 모두의 말이고 우리 모두의 요구이기에 모두가 선언에 함께합니다. 국가의 권력기구를 향한 모든 다른 행동들은 부패, 정당의 도둑질, 개인적 이익의 추구와 인민을 약탈해 부유하게 되는 것들을 향해 계속될 것입니다."

이는 2011년 미국 뉴욕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보다 한결 발전한 모습이다.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는 저항운동 내의 이러저러한 문제를 처리하는 기관ㆍ과정ㆍ절차에 불과했지 권력에 도전하는 기관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플리넘은 혁명의 실제적 요구들, 즉 권력에 대한 것을 다루기 시작했다. 12일 사라예보 첫 플리넘에서 결정된 플리넘의 기본원칙을 살펴보면 더 확실해진다.

플리넘이란 무엇인가: 플리넘은 참석한 이들 모두의 의회입니다. 이는 토론을 위한 공간입니다. 결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왜 플리넘인가: 그것은 모두에게 공개돼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투표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모두가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개인은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이 공간은 비폭력적인 모두에게 열린 곳입니다.

플리넘의 원칙, 모두는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갖습니다: 각 개인은 하나의 투표권을 갖습니다. 발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혹은 그녀의 이름 또는 성(family name)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집니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당신 동료 시민의 발언을 들으며 당신의 발언 기회를 기다립니다.
플리넘은 규칙과 의제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제안과 추가발의가 진행됩니다.
이는 투표 없이 발언된 순서에 의해 의제에 덧붙여집니다.

플리넘의 진행: 플리넘은 지도자 없이 단지 토론을 용이하게 하거나 발언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관리하는 사회자만 둡니다. 사회자는 발언자가 주제에서 벗어날 때 원래 의제로 되돌아오도록 지적할 권리를 갖습니다.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발언을 위해 손을 든 참가자를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한 사람은 플리넘 후 공개적으로 발표될 회의록을 기록합니다.

토론: 의제의 각 항목은 의제에 제기된 순서에 따라 토론합니다. 모든 논평은 그 항목에 연관된 것이어야 하며 질의는 바로 토론합니다.

투표: 논의되는 의제의 항목과 질의에 대한 토론을 시작한 후 최대 30분 내 투표를 시작합니다.

기본원칙이 플리넘을 다른 무엇보다 앞서 '토론을 위한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운영 규칙을 담은 아래의 항목은 무엇보다 '결정'을 위한 과정을 정하고 있다. 만장일치의 합의제로 토론을 위한 토론으로 그 역량을 소모시켜온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와 가장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서 채택된 첫 선언은 ①헌법에 기반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안전보장 ②새로 선임될 지방정부 책임자에 대한 헌법적 권리 인정 ③3월 1일까지 새로운 전문가 정부의 선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들은 아직 혼란스럽고 모순적이기까지 하지만 분명히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총선을 운운하며 시간 끌기에 나서려 했던 정부의 계획을 일축하고 인민의 힘에 의해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노동조합ㆍ방송 등 사회의 모든 것을 다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에미나 바보비치는 기업과 정부에 협조해왔던 '황색 노동조합'을 대체할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해선 말하지 않는가'라고 제게 묻습니다. 많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부끄러워하고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디타(Dita)에서 소위 '황색' 노동조합이라고 불리는 조합이 정부를 위해서 일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기업의 이익을 지켜 왔습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는 사람들을 '매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위가 시작됐을 때 스스로를 대중과 격리시켰습니다. 지금 그들은 의회와 협상하는 단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스메트 바히라모비치[노동조합 지도자 중 한 명인 듯싶다. 정확히 찾아보진 못했다.-옮긴이]가 저를 대표할 수 없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저를 팔아버린 카타 이베리히치가 저를 대표하도록 놓아둘 수는 없죠. 저는, 그리고 많은 수의 노동자들은 투즐라에서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황색' 노동조합은 [플리넘에-옮긴이] 참여할 권리가 없습니다. 또한 저는 침묵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용기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여 저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투지와 용기를 가졌고, 우리가 단결했음을 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미라 시지크는 기업이 자행하는 온갖 비리와 부패를 밝히기 위해 인민의 방송국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저는 우리가 TV 방송을, 최소한 공공 라디오 방송국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방송을 위해 기부금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송에서는 정치인들이 메인 뉴스로 나오지 않겠죠. 그 방송은 인민이 말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불평등을 직접 경험한 목소리, 이를테면 어떤 교수가 자신의 의견 때문에 상관으로부터 공격받거나 직장을 잃을 걱정 없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방송이 될 것입니다. 밝혀져야만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식대로 50달러를 주면서 250달러를 받았다고 서명하라는 회사도 있어요. 우리는 이러한 모든 회사들을 공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언론을 가져야만 합니다."

발전 도상에 있는 플리넘, 약점은 극복될까

'헌법'을 여전히 자신들이 행동하는 근거로 삼으며 기존 의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협력하려 하는 것, '전문가 정부'를 대안으로 요구하는 것은 분명 모순적으로 보인다. 이미 투즐라와 제니차 등 몇몇 주에서는 주지사 등 정부의 책임자들이 사임했고 주의회는 플리넘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발표했다. 즉 최소한 몇몇 지역에서는 실질적 권력이 거의 플리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존의 허울뿐인 헌법과 의회를 존중한다는 것은 의외의 모습이다. '전문가 정부'를 요구하는 것도 그렇다.

"금융 특혜와 사라예보 주 모든 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개정 사항, 2월 7일 시위에서 정부청사에 불이 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독립적인 보고서를 몇 주마다 보고하는 전문가들의 정부를 시민들은 원합니다."

사라예보 플리넘에서 아심 무이키치의 발언이다. 시민들에게 보고함으로써, 시민들의 통제를 받는 정부는 분명 발전된 전망이다. 그러나 이 전망이 노동계급 스스로의 정부와 같은 것은 아니다. 소위 전문가들이 겨우 '몇 주마다의 보고'만으로 시민의 통제에 온전히 순종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운동이 이제막 시작된, 7일의 불꽃으로부터 겨우 열흘 지난 상황에서 제기된 것들이란 걸 고려하면 '아직은' 결정적 약점이라고 보긴 어렵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통신원을 파견해 반란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레볼루션 뉴스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선출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기술관료'의 정부를 경험해 본 이들에겐 순진한 소리로 들릴 것"이라고 이를 지적한다. 그러나 플리넘이 요구한 '전문가 정부'는 "선거를 치를 때까지의 임시정부"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은] 수십 년 간 대중과 먼 세 '민족' 정파의 오만한 과두지배를 경험해 왔기에 '인민권력'의 형태로 제안한 공적 감독 요구가 분명 소위 '기술적' 정부 요구에 앞서 제기된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1968년의 세계적 반란 등 역사적 경험은 이것 말고도 다른 플리넘의 약점들을 눈에 띄게 한다. 그들 스스로 인지하고 있듯이 너무나 분명한 투쟁의 계급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플리넘이 '시민'의 의회로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간주되는 것이 첫째 약점이다. 지금까지는 오직 '개인'으로서만 플리넘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 약점을 극복하고 있지만 민족주의적 우파와 지배자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할 때 플리넘의 이 약점은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둘째 약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직까지 이 플리넘은 '무장'의 문제를 제가히자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란이 확산되면서 베니치의 경찰이 시위대와 참여했지만 무장한 정부의 힘은 만만한 게 아니다. 게다가 유럽연합과 국제사회는 이 반란이 '악화'되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보스니아 평화협정 이행 국제사회고위대표부(OHR)'의 발렌틴 인즈코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주둔군 병력을 늘릴 것입니다. 만약 상황이 확대되면 아마 나는 유럽연합 군대를 파병하는 것을 고려하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는 과거 1차 세계대전이 바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니 사라예보의 사건에서 촉발됐듯이 이번 반란이 주변국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옛 유고 연방이 영향을 받고 있다. 내전의 한 축이었던 이웃 나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연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베오그라드 경찰 노동조합은 반란이 국경을 넘어 확산돼도 진압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총리가 반란 직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날아와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호소한 것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반란의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내전을 치뤘던 옛 유고 연방의 독립국들은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내전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손을 잡거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아직 완전한 주권을 갖지 못한 상황을 이용해 NATO의 개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2011년 이후 PIGs라고 불리는 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 등 남부 유럽에서 반란의 불길이 터져나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이 불길은 터키ㆍ우크라이나로 이어졌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격변은 바로 아래 그리스 또는 옛 사회주의권 국가의 동료인 우크라이나의 반란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계를 흔들 격변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중해-흑해를 잇는 반란 벨트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보스니아에서의 저항은 2011년 이래 세계에서 일어난 반란 중 가장 발전된 형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대안적 형태의 권력을 '형성'한 단계에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여러모로 그 가능성을 매우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는 정말 다른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끝)

보스니아 반란, 더 볼 만한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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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nia Protest F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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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북동부 도시 투즐라는 유럽에서 유일한 염호로 유명하다. 터키어로 소금을 뜻하는 '투즈(Tuz)'에서 이름이 유래하기도 했다. 이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부터 유고슬라비아 시절까지 대표적인 산업지역이었다. 지금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세 번째로 큰 산업도시다. 1992~1995년 내전은 10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재앙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투즐라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역의 노동자들에게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재구축 과정에서의 민영화는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은 노동자들에게 남겨진 얼마 안되는 것들까지 약탈해 갔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다시 시작된 내전, 이번엔 계급전쟁인 내전에 대해 살펴보겠다.

보스니아 반란 ① 끝나지 않은 내전, 민영화
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보스니아 반란 부록 - 인민의 목소리, 당신은 얼마나 배고픈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카 공화국, 무슬림과 크로아티아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 두 개의 체제로 이뤄져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은 10개의 주로 나뉘어 있다. 민족과 종교에 근거행 지역과 인민을 분할한 지금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치체계는 1995년 내전을 종식시킨 데이턴 협정에서 비롯했다. [그래픽 自由魂]

"[내전이 진행되던] 그 때 저는 전쟁 때문에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고 난방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임금을 받지 못해 전기와 난방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19개월 째 임금을 받지 못한 무네베라 드루고바치가 AP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녀는 옛 유고시절 국영기업이었던 페로엘레크트로(Feroelektro)에서 1984년부터 일해왔다. 10년 전 재계의 거물 고란 스타니치가 이 회사의 지분 60%를 100만 유로에 사들이면서 그녀의 삶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민영화되자 마자 임금을 삭감했다. 스타니치는 회사의 가장 값어치 있는 건물을 담보로 은행에서 240만 유로를 빌려 자신의 개인적인 석회 공장을 건설했다. 회사가 은행 빚을 갚느라 허덕이면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중단됐다. 그녀는 19개월 째 일을 하고 있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제 남편은 전쟁 때 목숨을 잃었죠. 저는 평화로운 이 시기 고란 스타니치에 의해 목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드루고바치에게 닥친 참사는 투즐라의 디타(DITA) 노동자들에게도 비슷하게 다가왔다. 세제공장인 디타의 소유주는 2007년 회사를 사들인 후 막대한 은행 빚을 갚기 위해 노동자를 위한 연금과 건강보험료 지급을 중단했다. 노동자들은 1년 넘게 임금을 받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임금이 50개월이나 체불됐다고 말한다. 같은 지역의 Konjuh, Resod-Gumig, Polihem, Poliolchem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새 기업주들은 스타니치처럼 노동자들의 임금 떼먹고 기업의 자산을 팔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바빴다. 민영화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정부 기구도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은 기업주들이 자산을 팔고 회산의 파산을 신청하기 충분한 시간을 마련해줬다. 민영화는 노동자들과 인민의 공공자산 약탈을 부르는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파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2012년 12월부터 거리 시위를 시작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휩싼 반란의 불길이 투즐라에서 시작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옛 유고 연방 시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은 공장 굴뚝을 국장으로 사용할 만큼 산업화된 지역이었다. 민영화와 그에 뒤이은 기업주들의 공공자산의 약탈은 불이 붙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업률 28%, 20년간 쌓여온 분노의 폭발

"이 봉기는 10년, 아니 20년 전, 공장과 설비가 없어지기 시작했을 때, 노동자들이 살아갈 기회를 잃게 됐을 때 일어났어야 합니다. 시위대에게는 정부를 불태우는 것 말고 어떤 길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라예보의 한 은퇴 노동자의 말이다. 그렇지만 시위가 처음부터 격렬했던 것은 아니다. 2월 5일 평화롭게 시작된 노동자들의 시위에 학생들이 합류했다. 정부의 무능 때문에 유럽연합의 학생교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플러스(the European Erasmus+ program)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학생들은 분노했다. 이미 압도적으로 높은 청년실업률 때문에 화가 쌓일 만큼 쌓인 상태였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공식 실업률은 28.1%다 이는 그리스 23.2%, 스페인 25%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장기실업률은 더 심하다. 2012년 그리스와 스페인의 장기실업률이 각각 14.4%, 11.1%일 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장기실업률은 25.4%에 달했다. 청년실업률은 언론에 따라 57.5%에서 60%까지 추정한다. 투즐라 학생 하멜 세이라노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분노를 20년 간 쌓아왔습니다. 우리는 평화적으로 시위를 해왔지만 누구도 우리에게 귀기울이지 않았죠.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 단지 학생입니다. 하지만 부모와 친구들이 형편 없는 임금을 받는 동안 정치인들이 우리를 약탈하며 돈과 더운밥을 누리고 있는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위대가 (정부청사에 불을 질러) 악화시켰다고 말하지만 전 아닙니다. 정치인들이 이해하게끔 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5일 시위는 노동조합과 실업자 연맹이 조직했다. 노동자와 실업자ㆍ학생 들은 주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해 나온 경찰은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굴복하지 않은 시위대는 거리에서 항의를 계속했다. 사흘 째인 7일 시위대는 주청사로 진입해 집기를 들어내고 건물에 불을 붙였다. 건물 밖의 시위대는 경찰의 진입을 가로막았다. 1년 넘게 항의를 지속해왔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었다. 이 순간 전 세계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

반란은 곧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국으로 확산됐다. 1995년 내전을 종식시킨 데이턴 협정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국을 민족에 따른 두 개의 공화국으로 분할하고 다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을 10개의 주(Canton)로 나누었지만 이 강제된 경계는 노동자 투쟁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사라예보는 물론 크로아티아계가 다수인 모스타르, 세르비아계가 다수인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수도인 바냐루카에서도 노동자들의 연대와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초기 '보스니아인들의 반란'이라며 민족적 분열을 부추기는 지배계급의 꼼수는 아직까지 큰 효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반란의 불꽃이 민족의 경계를 넘어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데는 투즐라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국에서 가장 다민족적인 곳이라는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정치인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무슬림계 가족에게서 태어난 베리나 하미도비크의 죽음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병든 하미도비크는 치료를 위해 세르비아로 가야했다. 하지만 의회에서 정치인들의 민족적 갈등으로 통과되지 못한 시민권법 때문에 아이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민족으로 갈라진 의회가 새로운 시민권에 '종교족ㆍ민족적 정체성'을 포함하는 것을 두고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인들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기도 하다. 한달 평균 임금이 350유로를 넘지 않음에도 의원들은 한달에 3500유로를 받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이 자신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선 기존 정치인들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이들의 반란은 혁명으로 나아가야만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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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왕성'.

※아래 글에는 영화 '명왕성' '더 테러 라이브' '설국열차'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승열패(優勝劣敗)'는 우리 시대 유일한 도덕률이다. 그렇다고 말해진다. 보다 나은 능력과 자원을 지닌 자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사회가 나뉘어지는 것은 당연하게 치부된다. 승자독식은 우승열패 사회의 당연한 결과다. 믿을 것은 자신의 몸뚱이 뿐인 노동자는 "겁에 질려 주춤주춤" 자본가의 작업장으로 걸어들어간다. 탈출구는 교육이다. 물론 자신은 탈출하지 못한다. 자신의 자식만이라도 다른 삶을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교육은 상층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동아줄이 되어 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회의 동아줄은 많지 않았고 그럴 수록 동아줄을 잡기 위한 노동계급 자녀들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민주화 이전 사교육이 금지됐다. 하지만 이는 법의 단속을 피할 수 있고 금지로 인해 높아진 비용을 감당할 여지가 있는 상층 계급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화 이후 치열한 대입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대학 입학정원을 크게 늘렸으나 이는 치유책이 될 수 없었다. 이제 대학은 모두가 당연히 가야할 곳 취급 받았다. 국내의 명문대를 넘어 해외의 유명 대학ㆍ대학원으로 쌓아야할 스펙의 깊이는 더 깊어졌고 치뤄야 할 경쟁의 폭은 더 넓어졌다.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현실, 그리고 상층 계급으로의 이동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교육에서 경쟁을 제거하기 어렵게 만든다.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잡아먹어야만 했던 '설국열차'의 꼬리칸은 동료를 토끼사냥하는 영화 '명왕성'의 교실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최근 잇따라 개봉한 '명왕성' '더 테러 라이브' '설국열차'는 각자 다른 방향에서 이 '꼬리칸'의 문제를 다룬다. 물론 그 태도는 영화마다 다르다. 특정한 주제의식보다는 상황의 긴박함에서 오는 긴장감을 목적으로 소재가 다뤄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 글은 영화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될 수 없다. 단지 영화들에서 떠올릴 수 있는 우리 시대의 현실을 풀어 재구성해볼 뿐이다. 아래는 이 세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명왕성의 김준

영화 '명왕성'은 이러한 교육이 만들어내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서울 강북의 한 학교에서 꽤나 그럴듯한 성적을 올리던 한 학생은 명문고로 전학을 간다. 자신의 자그마한 세계에서 승자였을 그 학생, 김준은 자신이 원했던 더 높은 자리에서 자신의 위치가 이전과 다름을 알게 된다. 이미 한 번 더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한 그에게 계급 상승의 욕망은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은 것이다. 비밀에 쌓여있는 '오답노트'를 얻기 위한 욕망은 자신의 동료를 배신하게 만든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뛰어넘기 힘든 계급의 장벽이 존재함을 그는 뒤늦게 깨닫는다. 그는 1%의 학생들이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한 일회용 도구에 불과했다. 교육을 통한 계급 이동은 기만이었다. 상층 계급의 동료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자신과 그들을 폭력적으로 제거한다. 청소년 자살률이 계속해서 높아져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이기도 하다(2010년 기준 10~24세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는 9.4명으로 OECD 평균 6.5명을 큰 폭으로 상회한다). 영화 '명왕성'에서 이다윗이 열연한 김준의 이야기다.

김준이 만약 자폭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했다면 그의 세계는 아버지의 세계와 달라졌을까. 우리는 아주 높은 확률로 그가 경험할 사회가 학교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거대하게 가로막은 계급 장벽은 우리의 삶을 끊임 없이 좌절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김준이 자폭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일 수 있다. 이다윗이라는 배우가 두 영화 모두에서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역할로 나온 것은 우연하게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더 테러 라이브의 박노신

'더 테러 라이브'에서 박노규는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 밖에 모르는 인물이었다. 야근수당 2만5000원을 더 받기 위해 마포대교 난간에 메달렸던 그는 한강의 어두운 물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세계의 지배자들이 모이는 자리를 위해 강행된 공사였다. 그러나 박노규의 죽음은 세계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세계는 여전히 성공을 위한 아귀다툼으로 가득할 뿐. 그렇게 잊혀져 간다. 경제개발 시절 스러져간 무수히 많은 노동자를 떠올릴 수도 있다. 산업역군으로 칭송받지만 지금 60~70대일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비루한 삶 뿐이다. 아파트 경비 자리를 얻기 위해, 거리에서 폐휴지를 줍기 위해 자신의 또래들과 경쟁은 계속된다. 하지만 박노신의 아버지 박노규의 이야기는 또한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1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114명으로 하루 6명 꼴이다. 박노신이 아버지 박노규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산업 현장에서 스러져가는 노동자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산업재해의 문제는 이 체제가 노동자를 다루는 더 근본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상층 계급으로의 이동을 미끼로 경쟁을 옹호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국 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기계 부속품 이상이 되지 못한다. '명왕성'의 김준이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그의 삶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라는 거대한 기계의 일부분 이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가 보여주지 않는 테러범 박노신의 삶이 아마 그러햇을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한 폭탄을 만들 정도로 뛰어났을지라도, 대학 진학 후 더 높은 수준의 폭탄과 격발장치를 제작하고 경찰의 전화추적을 따돌릴 정도로 뛰어난 해킹 실력을 지니게 됐다고 할지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승-전-치킨집이라는 IT노동자와 엔지니어들의 자괴감 가득한 농담을 떠올려보라.

성공한 샐러리맨 윤영화

박노규의 아들 박노신과 성공한 샐러리맨의 상징 윤영화 앵커의 만남은 이러한 계급 장벽이 사회 곳곳을 치밀하게 둘러싸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정우가 연기한 윤영화는 성공의 사다리에서 아주 잠깐 삐끗한 것처럼 보인다. 몇몇 불운이 있었지만 박노신의 테러는 다시 성공 사다리에 올라탈 기회로 보였다. 그는 차대은 국장에게 9시 뉴스 메인 앵커 자리를, 박정민 테러대응팀장에게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고 그것은 마치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황을 주도한다는 윤영화의 생각이 잘못됐음은 바로 드러난다. 방송국과 차대은 국장은 오직 시청률에만 관심있었고 청와대와 경찰청은 테러범의 체포와 면책, 즉 정부의 유지에만 몰두했다. 이러한 체제에서 그의 명예와 생명은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윤영화가 박노신과 공명하는 것은 이 부분에서다. 이러한 공감은 윤영화가 박노신에게 이어받은 폭탄 스위치를 누르게 만든다. 테러는 모두 끝났다는 정부의 뻔뻔한 발표에 엿먹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기묘하게 이어지는 이 두 영화에서 주인공 모두는 경쟁사회에서 계급 상승을 위한 사다리에 메달리고자 노력했다. 현실의 우리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배 계급의 일회용 도구에 불과했다. 역시 우리 대부분이 그런것처럼. '명왕성'에서 김준은 스터디그룹 '토끼사냥'의 오답노트가 자신을 1%의 승리자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라디오로 밀려난 윤영화는 차대은 국장과 함께 다시 성공의 길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거짓된 희망마져 사라졌을 때 그들이 선택한 것은 스스로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기

이에 반해 영화 '설국열차'는 꽤나 희망찬 이야기를 전해준다. 체제-열차는 살아남은 인류를 관리해야 하는 기계의 일부분으로 다룬다. '명왕성'과 '더 테러 라이브'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이 열차-체제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지 오래고 그 현실은 더 노골적이다. 인간의 존재가 기계의 안녕을 위협할 땐 주저없이 제거된다. 하지만 체제-열차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그 인간이었다. 무한정한 시간 동안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영구기관은 없었다. 그것이 폭로된 순간 체제-열차는 폭파되고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새 인류가 대지를 밟는다. '명왕성'과 '더 테러 라이브'에서 거대한 폭발에도 불구하고 체제가 그대로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설국열차'의 희망에 가득찬 태도는 더 명확해진다. 아직 현실은 '명왕성'과 '더 테러 라이브'에 더 가깝다. 안타깝게도 '설국열차'는 판타지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 희망이 체제-열차의 안이 아닌 밖에 있음은 분명하다. 열차에서 내리려면 우리는 우선 이 기관차를 멈춰 세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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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가장자리'의 격월간지 '말과활'이 창간됐다. 가장 눈에 띈 것 중 하나는 홍세화 선생이 머리말에서 '민중'이란 말 대신 '인민'을 사용한 것이다. 이는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인민이란 말이 우리 언어 생활에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세화 선생은 왜 인민이란 말을 썼을까?

인민은 "국가를 구성하고 사회를 조직하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보통은 이와 함께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를 말할 때 사용된다. 비슷한 단어로 '민중'이 있다. 둘 다 특정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지만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은 민중에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ㆍ사회적 집단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인민이란 단어가 남북 분단 상황에서 금기시 된 때문이다. "늘 친하게 어울리거나 함께 노는 사람"을 뜻하는 '동무'란 단어가 분단 이후 잘 쓰이지 않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즉 분단 상황에서 내면화한 반공주의의 영향으로 인민 대신 민중이 쓰이게 된 것이다. 내가 보통 민중 대신 인민을 사용하는 첫 번째 이유는 특정한 정세가 내 언어생활을 제한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서다
(북한 정권에 동의하지 않고 북한 인민이 스스로 나서 지배자들을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홍세화 선생도 아마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홍 선생의 인민이란 단어의 사용이 반가운 것은 우선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민중 대신 인민을 사용하는 바로 그 이유와 연관된 다른 문제 때문에 홍 선생이 인민을 사용한 데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다. 인민은 피지배 계급 일반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노동자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들이 오직 노동계급의 조건 개선 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을 강조하는 것은 피지배 계급 일반의 조건,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지배와 피지배의 조건을 결정짓는 핵심 고리에 노동계급이 위치해서다. 따라서 마르크스를 따르는 사회주의자는 인민 일반의 해방을 목표로 하지만 그 해방에서 노동계급이 핵심적 역할임을 결코 잊지 않는다.

민중 담론은 그렇지 않다. 이는 한편 위에서 지적한 내면화한 반공주의의 연장선에서 비롯한 것이기는 하다. '노동자'라는 말을 '근로자'가 대체한 사정과 같다. 그렇지만 더 중요하게는 민중 담론이 노동계급의 핵심적 역할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자ㆍ농민ㆍ학생의 연대를 강조하는 민중 담론은 이들 세 사회적 집단을 수평적으로만 파악한다. 핵심은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다. 홍세화 선생이 사용한 인민이란 단어가 불길한 것은 그것이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머리말에서 안개에 싸여있던 인민의 의미는 뒤이은 지젝과 이진경의 글을 통해 보다 분명해진다.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의 역사적 상황은 프롤레타리아나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이란 개념을 포기할 수 없게끔 할 뿐만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마르크스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어서 그 개념을 실존적 차원으로까지 급진화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적 주체에 대한 더 급진적인 개념을 필요로 한다. 이 주체는 모든 실체적 내용을 제거한 데카르트의 코기토처럼 무상의 지점으로까지 환원되는 주체다. 이런 이유에서 새로운 해방의 정치는 더이상 특수한 사회적 행위자의 행위가 아니라 각기 다양한 행위자들의 폭발적인 결합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와 같은 단어를 쓰고 있으나 그 뜻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젝은 그것을 "마르크스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비유로 들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주장은 마르크스 이전으로 후퇴하는 주장일 뿐이다. 무정형의, 단지 지배받는 집단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로 말이다. 마르크스가 한 작업은 이 프롤레타리아라는 로마 시절로부터 비롯한 개념을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 원리에 입각한 개념으로 바꿔놓는 것이었다. 그것이 현대 사회의 노동자인 것이다. 노동계급은 여러 사회적 집단 중 억압받고 착취받는, 지배받는 유일한 사회적 집단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지배 사슬의 핵심적 고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주목한 것이다. 결국 지젝의 주장은 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진경에 의해 다시 반복된다. 이진경은 지젝보다는 덜 철학적인 언어로 노동계급으로부터의 후퇴를 분명히 한다.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하는 'M'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제가 혁명성을 말했던 것은 노동자계급이라기보다는 프롤레타리아트였다는 것을 일단 상기해주길 바랍니다. …… 역사적 조건에 따라 누가 무산자인가가 달라지는 거지요. 16세기에는 토지 잃고 부랑하던 농민들이 무산의 프롤레타리아트였다면, 19세기에는 끔찍한 조건에서 노동해야 했던 산업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였던 것이고, 당신(이진경)이 생각하듯이 안정적으로 노동하는 것조차 힘들게 되어버린 지금은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들이 새로이 무산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되는 거지요."

마르크스가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로 노동계급을 바라봤다는 것은 아마 틀림 없을 것이다. 그는 '공산당선언'에서 여러 번 "프롤레타리아트, 즉 현대의 노동계급(the proletariat, the modern working class)"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마르크스는 당대 자본주의의 발전, 아직은 세계의 극히 일부분에서 일어나던 변화를 추적해 노동계급이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진경의 주장 대로 노동계급이 현재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게 만드는 역사적 조건의 변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진경은 마르크스를 사칭할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역사적 조건의 변화를 추적할 능력은 없는 듯하다. 그가 기껏 내세우는 것은 인상주의적 비평에 불과하다.


"지금은 정규직이란 단어와 함께 유사하게 사용되는 '노동자계급'……은 바로 옆에서 똑같은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자신을 분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게 차단하고, 그들이 옆에서 투쟁할 때 연대는커녕 방해하지 않으면 다행인 경우가 통상적인 게 되었죠."

정규직 노동조합 이기주의에 관한 비난에 불과한 것으로 마르크스의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대체할 수는 없다. 설사 그것이 대중의 상식에 부합하는 듯 보여도 말이다. 불길하게도 홍세화 선생은 이진경에게 동의하는 것 같다. 다시 들춰본 머리말에서 홍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인민도 이제 하나의 인민이 아니고, 노동자도 이미 하나의 노동자가 아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과의 대화에서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주식투자를 하고, 부동산가치가 상승하기를 바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 가입조차 안 되는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노동자가 마르크스가 말한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인가, 더구나 이들이 자본주의와 다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인가에 대해선 지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홍세화 선생은 이진경과 공명한다. 물론 우리는 홍 선생 외에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런 주장을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새로운 것인가?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경향인가? 우리는 마르크스 시절부터 이미 인민이 하나의 인민이 아니었음을, 노동자가 하나의 노동자는 아니었음을 떠올려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다. 영국의 노동자와 그 식민지 아일랜드의 노동자는 달랐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계급 남성이 어떻게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으려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계급 내 분열에 대한 인상주의적 비평이 아니다. 그 분열의 물질적 조건을 살피고 단결의 단초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고려하게 된 조건, 그리고 그것을 벗어날 계기에 대한 탐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홍세화 선생과 이진경은 분열만 얘기할 뿐 그 역사적 조건에 대한 탐구는 인상주의적 비평으로 어물쩍 넘어간다.

현대 자본주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곳에서 노동계급을 대규모로 만들고 재생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족과 여성, 지역 공동체가 담당하던 많은 역할이 점점 더 자본주의적 경제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과거가 좋았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적 위계제는 마르크스가 설명한 방식 그대로 사회에 더 많은 위계와 복잡한 지배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파악을 도외시한 채 현실을 지양하는 새로운 공산주의 운동이 가능할까. 최근 잇따라 창간된 여러 진보 잡지들(월간 좌파, 진보신당-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말과활)이 현재 세계를 휩쓰는 반란의 물결에 침묵하는 것과 함께 2008년 이래 6년째 계속되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을 피하는 것은 불길한 조짐이다.

p.s.'말과활' 창간호에 실린 이진경의 글쓰기 방식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마르크스는 신성한 이름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역사적 한계를 강조했던 사람이다. 즉 역사적 조건이 달라지면 그의 주장은 틀린 게 될 수 있다. 마르크스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그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의 주장에서 변형되어야 할 부분과 이어받아야 할 부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런점에서 이진경이 마르크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 자체를 뭐라 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후예를 자처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마르크스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마르크스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름 뒤에 숨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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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온 신광영 교수의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후마니타스)'는 제목 그대로 우리나라의 불평등 현실을 실증적 연구로 보여준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20대와 그 기성세대의 불평등에 대한 말은 많았지만 이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피상적인 파악만으로 한국 사회 불평등 개선 방향을 모색할 수는 없다. 신 교수의 책은 우리가 불평등의 해결을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숙고하게 해준다. 배움이 모자라 많은 것을 얻을 순 없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계급을 고민해야 함을 되새기게 됐다.

매우 즐겁게 읽은 책이지만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미뤄왔던 것은 '실증' 연구에 바탕한 책으로서 꽤나 심각해 보이는 결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결론을 바꿀 정도의 결정적인 결함은 아니지만 '실증'을 바탕으로 한 책으로는 꽤 많은 곳에서 데이터의 오류가 보인다. 이는 아마 글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에서의 오류일 것이다. 출판 과정에서의 실수가 연구의 성과를 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발견한 오기를 페이스북과 이메일을 통해 출판사에 알렸고 이에 대한 대답이 어제(5월 20일) 올라왔다. 책에 대한 더 진지한 소개는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이 책에 관심있을 사람들을 위해 출판사 홈페이지의 정오표와 내가 출판사에 제기했던 오기 사항을 아래 옮겨놓는다. 내가 지적했던 것 중 일부가 아직 확인되지 않아서다.

●출판사가 공지한 정오 사항(링크)




●내가 발견한 오기

1장 29쪽 "한국과 같이 외환 위기를 계기로 노동시장 유연화와 금융시장 개방과 같은 거시적인 변화가 이루어졌고, 기업의 고용정책이 크게 바뀌면서 기존 취업자나 대학 졸업자들이 큰 영향을 받았다."
=> "한국과 같이 …… 영향을 받았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앞 문장에 없다. 앞 문장은 일반적으로 노동시장 정책과 노사관계 제도, 세계화는 정치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을 담고 있고 바로 이어지는 해당 문장은 한국의 외환위기 이후 변화가 이를 보여준다는 것으로 앞 문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같이"를 "한국의 경우"로 바꾸는 게 조금 더 부드럽게 문장을 이어준다.

2장 55쪽 "미국의 경우, 정부 복지 재정 지출이 선진국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2003년 16.23%에 달해 한국에 비해서 거의 두 배 정도 높았다."
=> 54쪽 [표 2-3]에서 2003년 미국의 복지 재정 지출은 16.59%.

3장 67~68쪽 [표 3-1]과 [표 3-2]
=> 67쪽 [표 3-1]의 2000년 한국의 지니계수와 68쪽 [표 3-2]의 2004년 지니계수가 0.352로 같다. 같을 수 있지만 4년 사이에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는 것이 의문. 확인 필요.
※확인해주지 않음

3장 69쪽 "또 [표 3-2]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2004년 한국의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비율은 7.44로 미국의 5.45보다 더 커서…"
=> 68쪽 [표 3-2] 한국의 2004년 P90/P10은 5.93으로 나와다. 이것도 확인 필요.

3장 74쪽 [표 3-3]
=> 여기는 잘못됐다기보다 오해를 불러올 수 있게 표가 만들어져 있다. 우선 둘째 항목인 "5천만 원 초과"에는 그 아래 세부 항목으로 "5천만 원 초과 1억 원 이하" "1억 원 초과"를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표에는 병렬적으로 표기돼 있어 마치 독립적인 데이터인 것처럼 보인다. 맨 아래 "5억 원 초과"도 마찬가지로 "1억 원 초과"에 포함된 세부 항목으로 구분되게 표를 만드는 게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언급 없음

4장 102쪽 [표 4-1]과 [그림 4-1]
=> 3차산업 월평균 임금이 106만900원이라고 적고 있는데 101쪽 [표 4-1]에는 155만8900원으로 나와있음. [표 4-1]과 [그림 4-1>] 건설업ㆍ사업서비스ㆍ유통서비스ㆍ개인서비스업 월평균임금이 다름.

5장 145쪽 [그림 5-1]
=> [그림 5-1]의 '1998소득' 범례가 '16998소득'이라고 오기돼 있음.

5장 146쪽 [표 5-2]
=> 본문에 표시된 2007년 세대별 상위 20% 비율과 147쪽의 [표 5-2]의 수치(합산)가 다름. 20대 본문 5.3% 표 5.0%, 30대 본문 23.8% 표 23.5%, 40대 본문 29.7% 표 28.0%, 50대 24.8% 표 22.6%, 60대 본문 7.3% 표 7.1%.

5장 147쪽 "[표 5-2]에서 30~39세의 상위 소득 40%에 속하는 비율은 55%로…"
=> [표 5-2]에서는 연령 세대 구분이 31~40세로 돼 있고 상위 40%에 속하는 비율도 56.1%임.


5장 149쪽 "세대 내 불평등에서는 40~49세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 [표 5-1]에서 3까지 세대 구분에 의하면 41~50세임.

5장 153쪽 "2007년 30~39세 비정규직 비율은 10%로"
=> [표 5-5]에는 세대 구분 31~40세의 비정규직 비율이 10%.

※ 147쪽과 149쪽, 153쪽의 세대 표시의 문제는 1998년으로부터 9년 후를 상정할 때 본문의 표기가 맞다. 그러나 이는 표와 다른 데이터. 예를 들어 별도로 30~39세의 상위 40% 비율의 별도 데이터가 있고 그걸 합산한 결과가 55%라면 그 자료를 각주로 알려줬어야 한다.

6장 180쪽 "[표 6-8]에서 남성과 여성 간의…"
=> 6장에는 [표 6-7]이 182쪽에서 183쪽 사이에 마지막으로 나올 뿐 [표 6-8]은 없음.

7장 189쪽 "그러나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50%를 상회하는 사회에서 부인들의 경제활동은 가족 간 소득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된다."
=> "되고"가 잘못 들어가 있다.

8장 229쪽 "그러므로 장년기 소득 획득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기퇴직이나 명예퇴직으로 인해 40대 중후반부터 자영업자가 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 마지막 "~는 점이다"가 어색하다. "그러므로 ~ 수 있도록 ~ 한다"로 끝내던가 "~는 점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고치는 게 좀 더 자연스럽다.

Posted by 때때로

워크 WORK: 열심히 일하면 어디까지 올라갈까
CrimethInc. 지음|박준호 옮김|마티

자본주의적 혁신은 어제까지 최신이었던 기술을 오늘 낡은 과거의 기술로 만들어버립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격찬했던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역할은 오늘날까지도 그 기세가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빨라졌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생산과 생활에 필요한 각종 기술의 개발과 보급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 세탁기ㆍ청소기ㆍ전자레인지ㆍ식기세척기 등 주방의 혁명적 변화를 이끈 전자제품들은 여성을 가사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기대됐습니다. 현실은 그 기대와 다릅니다. 새롭게 쏟아지는 주방기기를 작동시켜야 하고, 사용법을 익혀야 합니다. 과거의 주방에서 필요치 않았던 활동이 최신식 가전기기로 무장한 주방에서 요구됩니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현대 여성은 매일 쏟아져나오는 신제품 주방기기를 구입하기 위해 직장에 나가 돈을 벌 것을 요구받기까지 합니다.

물론 붉은 마르크스 박사는 이러한 경향을 자본주의적 경제법칙 자체로부터 추측했습니다. 노동생산성의 향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이 아닌 노동강도의 강화, 노동시간의 연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죠. 그리고 그 주장은 현실에서 사실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워크 WORK(CrimethInc. 지음|박준호 옮김|마티)'는 마르크스 박사의 주장을 따르진 않지만 바로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입니다. 우리는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심지어 집에서조차 내일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기계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미래를 더 풍족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땀방울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흘릴 것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요? 최근 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처럼 '긍정의 배신'만을 되풀이해 맛볼 뿐입니다.

끊임없는 배신을 맛보면서도 우리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하는 노동이 바로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노동을 중단하면 자본주의는 더이상 지탱될 수 없다는 것이죠. 물론 그것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의 노동이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사회를 바꾸는 방법에 관한 힌트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워크 WORK'는 우리에게 노동을 통해 계급을 환기시켜줍니다. 세계의 수평적 분할(너희 나라와 우리나라, 여성과 남성, 흑인과 백인 …)이 아닌 수직적 분할, 즉 계급적 갈등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옳게 강조합니다. 따라서 좌파들을 오랫동안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던 '정체성 정치'와 같은 것들에 비판적이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치인, 예를 들면 오바마와 같은 이들을 지지하는 것과 같은 활동도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워크 WORK'는 더 나아가 권력은 결코 자본주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치와 조직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에서 이 책이 아나키즘의 전통을 따름이 드러납니다.

분명히 개인적 일탈에 불과한 개별행동보다는 집단적 저항을 강조하고 있는 이 책이 여전히 개인적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어쩔 수 없이' 일터에 나가는 이들, 못미덥지만 '현실적'으로 보이는 개혁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들, 자기 집단의 이익에만 철저해보이는 노동조합에 자신의 월급줄을 거는 이들을 이해하지 않고 집단적 저항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이 책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혼자서 일을 중단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단 하루를 하더라도 함께 해야지 잠시라도 자본주의를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편견과 합리화의 숲을 헤치고 사람들을 모아내야 합니다. 단순히 "네 대안은 근본적이지 않고 적절하지도 않아"라고 부정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죠. 그러한 내용을 담은 책은 피라미드를 쌓고도 남을 것입니다.

물론 '워크 WORK'는 우리가 무시해버리기 쉬운 저항을 재발견해 그것을 집단적 행동의 기초로 삼고자 합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기 일쑤인 절도에 저항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시도는 대표적입니다. 그렇다고 절도를 우리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 이러한 사려깊음이 노동조합과 정당, 집단적 저항의 오래된 전통에 대해서는 발휘되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 책은 CrimethInc.(링크)라는 아나키스트 노동자 공동체의 공동 활동 산물입니다. 이 책을 쓴 이들은 카페의 비정규직 바리스타이기도 하고 피자 배달부이기도 합니다. 또는 회사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업무를 담당하던 화이트칼라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과 활동을 고백한 저항의 연애편지가 바로 '워크 WORK'입니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