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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evolution News]

급한 불은 끄게 된 것일까. 우크라이나에서 정부와 여야의 타협안 소식이 들려온다.

●[연합뉴스] 우크라 정부-야권 유혈사태 해법 담은 타협안 서명(종합2보)

요지는 조기 대선 실시와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헌법 개정이다. 현재 운동의 초점이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에 맞춰졌던 걸 고려하면 지금의 유혈사태를 진정시킬 어떤 돌파구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이 운동의 별명이 '유로마이단'이라는 걸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생디칼리스트인 키예프의 한 노동조합 활동가에 의하면 시위 초기 거리에 나선 우크라이나 인민에게 유럽은 "부패 없는 사회, 높은 임금, 사회적 안전, 법에 의한 지배, 정직한 정치인들, 미소 짓는 얼굴, 깨끗한 거리 등"을 뜻했다. 여기에는 단지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 정치적 지배구조의 문제만 포함돼 있지 않다. '높은 임금'이 상징하듯 여기엔 우크라이나 경제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지난해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을 추진했던 것도, 그리고 시위를 촉발시킨 그 협정의 중단도 모두 경제적인 배경에 놓여 있다(거기에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갈등으로 연결됐다).

실제로 마이단에서 목숨을 걸 각오를 서슴지 않고 말하던 한 사람, 아마도 파시스트일 가능성이 큰 무장 사수대 한 명은 "저는 10년 전 떠나 상선의 선원이 됐습니다. 저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되돌아와 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투쟁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연합뉴스에 보도된 합의안에는 바로 이 문제,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노동자와 농민, 청년들의 경제적 삶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이는 상대적으로 시위가 격화되면서 거리에서의 물리적 충돌 자체가 쟁점이 된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타협안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이 합의에는 스보보다(자유)도 포함돼 있다. 극우 파시스트인 이들은 합법정당이지만 불법적인 준군사 조직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18일 유혈 참극의 두 주범 중 하나다(다른 하나는 야누코비치 정부다). 거리에서 무장하고 일정 지역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던 이들 파시스트를 새로 구성된 정부에서 완전히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저들은 합법적으로 어떤 권력을 공유하게 되면 더 기고만장해져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마치 1930년대 독일 나치처럼 말이다.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로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갈등이 자신들이 바랐던 것 이상으로 격화되는 데 놀랐던 듯싶다. 속보에 의하면 이번 타협에 이 둘 모두 참여했다고 한다. 그것은 중요한 석유와 가스 송유관이 지나고 흑해 북안의 중요 산업지대인 우크라이나가 내전으로 갈라지거나 파괴되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유럽연합과 러시아 정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조지아에서처럼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도 과거 발칸 반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바로 옆 소치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을 핑계로 흑해에서 군사 시위를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 당장 맞서는 것은 유럽연합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로서도 현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 러시아를 비교하는 것은 물론 중국과도 자신을 비교하며 상황을 재고 있는, 즉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세력의 규모나 역할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군사적 개입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더 큰 국내적ㆍ국외적 충돌을 준비할 여유 시간을 갖는 것, 아마도 이번 타협의 첫번째 가능성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도 파시스트의 활보와 권력 강화라는 끔찍한 것 뿐이다.

그러나 아직 다른 가능성이 남아있다. 키예프 시내에서의 격렬한 물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노동계급은 아직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지 않다. 생디칼리스트 활동가의 지적처럼 키예프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기업 활동이 아무런 방해 없이 평상시처럼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노동조합연맹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 임금과 관련된 소수 작업장에서의 저항도 "정치적 저항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사정이 거리에서의 충돌을 격화시키고 시위대에서 파시스트의 주도력을 강화시킨 원인이기도 했다. 결국 적은 가능성이지만 노동계급의 단결된, 그리고 유럽연합과 러시아 둘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파시스트와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행동 만이 우크라이나를 구할 것이다. 이는 최근 혁명을 시작한 보스니아 인민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바다. 불과 20여년 전, 민족ㆍ종교 간 참혹한 내전을 치뤘던 보스니아 인민은 노동계급 투쟁을 통해 민족과 국가ㆍ종교의 경계를 뛰어넘어 단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활동가들이 이로부터 보다 큰 영감을 얻어 과감한 행동에 나설 수 있길 바란다.

Posted by 때때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새로운' 반란? 세계 곳곳의 반란에서 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은 고전적인 바리케이트와 무장한 시위대-경찰의 충돌이다. 사진은 6월 26일 칠레 산티아고의 시위 모습. [사진 europeans against the political system 페이스북]

'역사의 종말'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최근의 반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2011년 튀니지ㆍ이집트 혁명부터 올해 터키ㆍ브라질 반란까지 모두 '중산층 혁명'이라고 주장한다[월스트리트저널 6월 28일ㆍ링크]. 후쿠야마의 기고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이후 우리 언론에서도 '중산층 혁명'에 대한 기사가 잇따랐다. 특히 경향신문은 7월 3일자 1면과 8면 두 개 면을 사용해 가장 크게 '중산층의 반란'을 다뤘다. 이 글에서는 후쿠야마의 월스트리트 기고를 중심으로 '중산층 혁명'에 대해 따져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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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7월 3일자 지면에는 '지구촌 휩쓰는 중산층의 반란'이란 표제의 기사가 실렸다.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의 물결을 분석하고 있다. 이번 시위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은 군부독재에 맞서는 정치세력도, 세계화의 그늘 속에 좌절한 젊은이들도 아닌 '글로벌 중산층'"이라는 게 요지다[경향신문 7월 3일자 1ㆍ8면ㆍ링크].

최근 저항에 대한 경향신문의 '중산층의 반란'이라는 규정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중산층 혁명(The Middle-Class Revolution)'에 크게 기대고 있다. 그는 사무엘 헌팅턴이 말한 '격차(the gap)'를 이번 시위의 공통점으로 꼽고 있다. 후쿠야마에 의하면 세계적인 자본주의 성장은 거대한 규모로 중산층을 만들어 냈다. 이들은 이전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자산을 소유하게 됐다고 말한다. 당연히 이들은 정부와 정치 엘리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됐지만 정치가 이 증대된 기대감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직면한 실패가 최근 시위들이 공유하고 있는 배경이라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이렇게 말한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처럼 터키와 브라질에서도 정치적 저항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닌 평균 이상의 교육 수준과 소득을 지닌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기술 친화적인 그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해 시위를 조직하고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위를 조직하고 연대를 건설하는 모습은 우리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반란과 혁명에 대한 틀에 잡힌 관념이 많이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못배운, 억압받는 이들이 들고 일어난 시위는 마치 옛 이야기처럼만 여겨진다. '중산층 혁명'이라는 주장은 현재의 시위를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중산층의 성장? 세계는 평평해졌는가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우선 세계적으로 봤을 때 '중산층'의 성장은 한정된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후쿠야마 스스로도 중산층의 증가 현상이 중국ㆍ인도에 집중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0년대 세계경제의 불안정성과 연관된 것이기도 하다. 1997년 동아시아 국가를 강태한 경제위기와 2000년대 초 미국의 IT버블 붕괴를 거친 후 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 네 개 나라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새롭게 제시됐다. 브릭스(BRICs)는 이 네 나라의 이름에서 비롯한 단어로 세계적 금융자본인 골드만삭스가 2003년 처음 사용했다. 즉 애초 브릭스에 대한 관심은 자본주의 선진 국가들의 경제적 위기에 대한 금융자본의 반응이었다. 세계경제의 성장과 중산층의 부흥은 결코 전 세계적으로 고르게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불평등은 여전히 심각하다. 후쿠야마가 주목하고 있는 터키와 브라질에서 지니계수(세계은행, 100 기준)는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AKP)과 룰라의 노동자당(PT)이 집권한 2003년 각 43.42와 58.78에서 2010년 터키 40.03, 2009년 브라질 54.69으로 줄어들었다. 2010년 멕시코의 지니계수가 47.16임을 감안하면 브라질의 불평등이 여전히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터키는 2008년 38.95까지 떨어졌던 지니계수가 2010년 다시 증가한 것이다. 후쿠야마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불평등도 마찬가지로 심각하다. 중국은 1981년 이후 꾸준히 지니계수가 상승해 2009년에는 42.06에 다다른다
[구글 Public Dataㆍ링크]. 지난해 12월 또다른 보도에 의하면 중국가정금융조사연구센터(쓰촨성 청두 시난차이징대와 인민은행 금융연구소가 함께 설립한 연구소)의 조사결과 2010년 중국 지니계수는 0.61에 달해 '폭동을 부를 수준'이다[동아일보 2012년 12월 11일자 21면ㆍ링크].

터키와 브라질에서 빈곤층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브라질의 빈곤층(국가 빈곤선 기준 빈곤층 인원수, 국제 빈곤선 기준 이하 인구 포함) 인구는 2004년 33.7%에서 2009년 21.4%로, 터키는 2004년 25.6%에서 2009년 18.1%로 줄었다. 그러나 실업률은 정체 수준이며, 터키의 경우 장기실업률은 2003년 23.4%에서 2011년 26.5%로 오히려 증가했다
[구글 Public Dataㆍ링크]. 후쿠야마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도 "평균 이상의 소득을 지닌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도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서울경제는 무르시를 실각시킨 이집트 제2혁명의 원인을 "치솟는 청년 실업률ㆍ경제난"이라고 지적한다. 민간연구소들의 조사에 의하면 30세 이하의 청년 실업률은 60%에 달한다는 것이다. 튀니지는 말할 것도 없다. 아랍의 봄의 도환선이었던 튀니지 혁명은 한 대졸 노점상의 분신으로 시작됐다. 대학을 졸업했으나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과일 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경찰의 단속으로 노점을 계속할 수 없었던 그가 분신하면서 높은 실업률과 물가에 고통받던 튀니지 인민들이 반란에 나선 것이다[프레시안 2011년 1월 16일ㆍ링크].

경향신문이 '중산층의 반란'이라고 부른 최근의 보스니아 시위의 배경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 스스로 지적하듯이 "보스니아는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이 유럽연합 평균의 29% 수준에 머무는 유럽 내 가장 가난한 국가"이고 "실업률이 44.6%에 달하면서 정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졌다
[경향신문 7월 3일자 8면ㆍ링크]. 부패한 정치인의 공직 임명에 반발해 시작된 불가리아 반란도 다르지 않다. 이 반란이 시작되기 세 달 전 불가리아 인민은 전기요금의 급등에 반발해 거리로 나섰었다. 불가리아 정부는 분노한 시민을 달래기 위해 조기총선을 실시했지만 사태의 수습은 아직 멀어 보인다.

결국 이 모든 반란의 배경에는 고전적인 테마가 자리잡고 있다. 즉 극심해진 빈부격차, 열악해지는 삶의 질이 그 공통된 배경인 것이다. '중산층의 성장'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좀 더 평등해진 세계의 이미지는 현실이 아니다. 경제성장은 몇몇 나라의 소수에게만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했을 뿐이다.

푸틸로프 공장 노동자가 없었다면 레닌도 없다

경향신문은 이 중산층을 부르킹스 연구소의 기준을 빌어와 10~100달러의 소득수준을 지닌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2009년 '글로벌 중산층'은 18억명에 이른다. 이 추세는 계속 이어져 2030년에는 세계인구 80억명의 절반을 넘는 48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이 기준이 적절한지 따지기 이전에 앞에서 살펴본 세계경제의 현실은 경제적 기준의 중산층 성장이라는 주장이 현실과 다를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래서였을까. 후쿠야마는 중산층을 경제적 기준 만으로 다루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그는 중산층을 "교육과 직업, 자산의 소유에 의해 정의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의가 '중산층'의 정치적 태도를 예측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자산을 소유하고 세금을 많이 내는 중산층은 정치에 더 민감할 것이라는 것이다. 기술 친화적인 이들은 다른 나라의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더 밀접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공동의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수준이다. 더 높은 교육수준은 진보와 민주주의에 더 친화적이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이 이들의 높아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의 혁명들까지 끌고 온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프랑스 혁명, 볼셰비키 혁명, 중국 혁명 모두 불만을 품은 중산층이 주도했다. 그들의 궁극적인 행동 방침이 소작농과 노동자, 빈민층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1848년 '인민의 봄'은 사실상 유럽 대륙 전체에서 분출한 혁명이 직접적으로 앞선 수십여 년 동안의 유럽 중산층 성장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부분적으로 진실이다.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혁명가들을 보자.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ㆍ생쥐스트, 1848년 혁명의 마르크스ㆍ엥겔스와 루이 블랑, 1871년 (비록 결정적 순간에 감옥에 갖혀있었지만) 파리 코뮌의 블랑키, 1917년의 레닌 …. 이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들 대표적 혁명가들은 몰락한 귀족 또는 교육 받은 지식인 출신이다. 심지어 엥겔스는 자본가다.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는 또 어떤가.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의사다. 우리는 이러한 목록을 끝없이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이들 혁명의 대표자들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배후에 더 거대한 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1789년부터 1794년 사이 상퀼로트의 행동이 없었다면 로베스피에르의 위명 또는 악명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상퀴로트의 핵심 지도자들을 숙청했을 때 그는 더 이상 자신을 혁명의 적으로부터 보호해줄 대중을 발견할 수 없었고 바로 그 때 그를 몰락시킨 테르미도르 반동이 닥쳐왔다. 마르크스에게 '붉은 박사'라는 악명을 안겨줬지만 1848년 혁명은 그의 '의지'에 따라 일어난 게 아니며 파리 프롤레타리아트는 1871년 블랑키 없이 코뮌을 80일간 운영했다. 1917년 레닌에게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가 없었다면 볼셰비키의 10월 봉기는 실패했을 것이다. 푸틸로프 공장의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레닌도 없다.

동맹, 혁명의 필요조건

물론 후쿠야마가 '개인'으로서 혁명을 주도하는 중산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과거의 혁명을 얘기할 때 '개인'으로서 혁명가의 출신성분을 따지지만 현재의 혁명을 얘기할 때는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따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혁명에서 이 중산층 '집단'의 다른 계급 또는 계층과의 동맹은 매우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시위와 봉기, 때때로 혁명은 일반적으로 새롭게 성장한 중산층이 주도하지만 마지막에 장기적인 정치적 변화를 끌어내는 것에는 드물 게만 성공한다. 그것은 중산층이 발전된 국가에서 사회의 소수 이상을 대표하지 못하고 그들 내부가 스스로 분열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회의 다른 부분과 동맹을 맺지 못하는 한 그들의 운동은 지속적인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후쿠야마는 동맹을 맺는 것 자체가 중요한 듯 말하지만 사회를 뒤흔드는 중요한 투쟁은 거의 언제나 여러 계급ㆍ계층이 동시에 행동하며 벌어진다. 다시 한 번 그 목록을 늘어놓자면 1789년 프랑스 혁명 1848년 혁명, 1817년 파리 코뮌, 1917년 러시아 혁명, 1968년 혁명 모두가 그랬다. 보통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계급의 미발전(또는 충분히 분화되지 못한 현실)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하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대부분의 혁명은 하나의 계급 또는 계층에 의해 주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도 노동계급은 소수였으며 레닌과 볼셰비키는 농민의 협력을 얻기 위해 여러 타협을 해야만 했다.

현재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터키에서 젊은 활동가들의 투쟁은 노동조합의 파업과 쿠르드족의 연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칠레에서는 무상교육과 공교육 강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투쟁에 교사ㆍ부두ㆍ광산ㆍ의료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연대에 나섰다
[참세상 2013년 6월 27일ㆍ링크].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은 오클랜드 항만 노동자와의 연대, 시카고 교사 파업, 월마트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거대한 투쟁들이 자동적으로 노동자 반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집트의 두 번째 혁명에는 무르시 정권에 반대하는 거의 모든 세력이 함께 참여했다.

계급 화해의 정치, 모호한 미래

이미 동맹은 현실에서 이뤄져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동맹이냐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중요한 동맹의 사례 하나를 제시한다. 1849년 2월의 쁘띠부르주아와 노동자의 연합이 바로 그것이다. 1848년 파리 노동자의 6월 봉기가 무참히 진압된 뒤 쁘띠부르주아는 "물질적 이해관계가 위협받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물질적 이해관계의 실현을 보장해 주는 제반 민주주의적 보장책들이 반혁명으로 인해 의문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쁘띠부르주아는 노동자들에게 한층 가까이 접근했다". 6월 봉기의 실패로 실의에 빠져있던 노동자는 이들의 제안에 동의해 공동강령을 마련하고 연합선거위원회를 발족해 공동후보를 추천했다.

"플로레타리아의 사회적 요구로부터 혁명적 요소가 사라지고 민주주의적 요소가 대신하게 되었다. 쁘띠부르주아의 민주주의적 주장에서 순수하게 정치적인 형태가 없어지고 사회주의적 요소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 사회-민주주의이다. …… 사회-민주주의의 독특한 성격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요약된다. 곧, 민주공화주의 제도가 자본과 노동이라는 양 극단을 폐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양자 사이의 적개심을 무디게 하고 조화롭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 53쪽, 최형익 옮김, 비르투

동맹의 결과 1849년 5월 28일 입법국민의회가 열렸을 때 마르크스가 사회-민주주의라고 말한 산악당은 750석 중 200석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두 왕당파와 보나파르트파 중 하나와는 맞먹을 수 있는 수였다. 특히 파리에서 선출된 의원의 다수가 산악당이라는 점에서 이 동맹은 성공적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6월 13일 산악당은 2주 만에 질서당(두 왕당파와 보나파르트파의 연합)에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후퇴한다. 그 지도자인 르드뤼롤랭은 영국으로 망명해 1870년 보나파르트의 몰락 이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마르크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민주파[산악당]는 과도적 계급, 즉 그 안에 두 계급의 이해관계가 동시에 서로 뭉뚱그러져 있는 쁘띠부르주아지의 대표였기 때문에 자신들이 계급 적대 일반을 초월했다고 상상한다. 민주파들은 자신들이 특권계급과는 대립하고 있으나, 나머지 국민과 함께 인민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대변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며 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인민의 이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법에 근거하여 투쟁의 시간이 임박해 올 때조차 그들은 여타 계급의 이해관계와 입장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원을 그다지 심각하게 평가할 필요조차도 없다. 단지 신호만 보내주면 인민은 자신들의 고갈될 줄 모르는 힘으로 압제자들을 공격할 것이다." - 58쪽, 최형익 옮김, 비르투

1848년 6월 봉기의 패배로부터 쁘띠부르주아에 대한 의심이 가시지 않은 노동자에게 사회-민주주의의 모호한 정치는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비치지 않았을 것이다.

브라질, 계급타협 정치의 종언

적대적인 계급의 이해관계를 화해키려는 모호한 정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브라질에서의 반란은 이러한 정치의 종말을 보여준다.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의 지도자인 페드로 스테딜레는 "신자유주의 15년, 그에 이어 계급타협 정부의 지난 10년은 정치를 자본의 인질로 전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룰라 시절에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한 개혁 정치의 당근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세계경제위기로 지우마 호세프에겐 룰라와 같은 좋은 조건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참세상 2013년 7월 2일ㆍ링크, 레디앙 2013년 6월 27일ㆍ링크]. 그럼에도 후쿠야마는 "많은 것은 리더십에 달렸다"며 반란을 적절한 개혁에 대한 타협으로 이끌 수 있길 바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중산층 중) 기업가적 소수는 정치인들에게 부패의 책임을 지우고 수혜자 중심의 정치를 가능케 하도록 원칙을 바꾸는, 브라질의 정치 체제 전체를 재구성하기 위한 중산층 동맹의 기초를 지원할 수 있다. 이것은 광범위한 중산층이 동원돼 19세기적 정실주의를 끝장내고 공적 서비스를 개혁하는 것에 대한 지지를 성공적으로 이끈 미국의 진보 시대(1890~1920년)에 일어난 일이다. …… 호세프 대통령에게 봉기는 좀 더 야심찬 체제 개혁을 시작할 계기다."

실제로 그녀는 시위대에 대해 다른 나라의 지배자들보다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녀와 달리 브라질 경찰은 터키의 경찰, 이집트의 군대와 다를 바 없는 잔인한 폭력으로 시위대를 대하고 있다. 시위대 또한 정부의 유화적 태도에도 결코 물러설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후쿠야마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진보 시대가 1차 세계대전과 세계적 혁명의 물결 속에 막을 내렸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터키와 이집트, 그 밖에 많은 나라의 반란에서 보여주는 것은 지배자들이 실제로 양보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에서 정치인들은 트로이카(유럽연합ㆍ유럽중앙은행ㆍ국제통화기금)의 압력하에 긴축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대중의 계속된 반란과 위협에도 말이다. 올해 초 대중의 저항에 직면해 조기총선을 치뤘던 불가리아에서는 제1당이 정부 구성 권리를 포기했다. 이집트에서는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뿌리 내린 지난 수 십년의 활동을 기반으로 무슬림형제단이 1차 혁명의 성과를 차지했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안돼 그들도 대안이 아님이 입증됐다. 무슬림형제단은 국제통화기금의 식료품과 공공요금 보조금 삭감 압력에 굴복했다. 실업은 해결되지 못하고 더 심각해졌다. 노동자들의 권리는 억압당했다.

반란을 겪고 있는 많은 나라들에서 권위주의의 강화, 경찰의 잔인한 시위대 탄압이 분노의 도화선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양보할 게 없는, 타협할 여지가 없는 정부는 주먹에 의지하기 쉽다. 계급타협 정치는 좌파가 아니라 우파와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먼저 종언을 고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좌파의 기회

그럼에도 계급타협 정치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반란에서 계급 간 대결이 순수한 형태로 드러나진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중간계급의 지위를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만들고 사회 전체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양대 계급의 대결로 몰아간다는 사정 자체가 갈등을 복잡하게 한다.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한 중간계급이 소부르주아적 습속을 버리긴 어려우며 프롤레타리아는 피지배 계급이라는 현실 때문에 부르주아적 의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후쿠야마가 말하는 중산층,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중간계급이 (이 둘이 완전히 일치하진 않더라도) 혁명의 대열에 끝까지 참여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무르시를 쫓아낸 2차 혁명에서 이집트 자유주의자들은 군부의 폭력에 기대고 있다. 이들은 무슬림형제단과 마찬가지로 반란의 배경이었던 국제통화기금의 긴축 압력에 맞서지 않고 있다.

노동계급도 분열돼 있다. 민족적ㆍ인종적ㆍ종교적ㆍ성적 차이에 기반한 전통적인 분열의 위세는 여전히 강력하다. 단결에 대한 열망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계급 간 타협에 대한 미련도 그렇다. 이번 반란들도 분열된 노동계급의 현실 때문에 단일한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인민' 또는 '민중'의 반란이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는 없다. 패배든 승리든 반란은 현실의 역사에 흔적을 남길 것이고 그 흔적은 어느 계급이 혁명의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결론을 내려보자. 최근의 반란으로 사회 전체가 흔들리며 여러 계급ㆍ계층이 동시에 진출하고 있다. 때로는 반란에 적대적인 세력까지도 집단적 행동으로 역사의 키를 쥐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산층의 혁명'은 지나치게 협소한 규정이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동맹은 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고 갈등할 것이다. 중산층 중심의 계급타협 동맹은 우파와 지배계급에 의해 부정당하고 있다. 따라서 동맹에서 어떤 정치에 의한, 어느 계급에 기반한 정치세력이 주도권을 잡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여러 투쟁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계급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칠레의 학생 반란에는 교사와 광부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스에서 노동조합은 중요한 투쟁들을 조직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노동계급은 2011년 아랍의 봄을 준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마르크스주의 좌파가 허약해 보이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몇몇 짧은 장들을 예외로 한다면, 1848년에서 1849년까지의 혁명 연보는 중요한 부분마다 "혁명의 패배!"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그러나 이 패배 때문에 사라진 것은 혁명이 아니었다. 사라진 것은 혁명 이전의 전통의 잔재, 다시 말해 아직 날카로운 계급 대립으로까지는 고양되지 않았던 사회적 관계의 결과물들이었다. 그것은 2월 혁명 이전의 혁명적 당파들이 벗어날 수 없었던 인물ㆍ환상ㆍ관념ㆍ계획들이었는데 혁명적 당파들은 2월의 승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련의 패배를 통해서만 그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혁명적 진보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진보의 직접적이고 희비극적인 성과물들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결속력 있고도 막강한 반혁명이라는 하나의 적을 만들어냈기 때문인데, 이 적과의 싸움을 통해서야 비로소 혁명적 당파들은 진정으로 혁명적인 당으로 성숙해 갔다.
-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 '프랑스 혁명사 3부작' 39쪽, 임지현 외 옮김, 소나무

마르크스는 1848년 혁명의 당파는 패배를 통해서만 과거의 습속과 환상, 현실의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현대의 우리도 이어진 투쟁의 굴곡 속에 몇몇, 때로는 심각한 패배를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열었고, 그들이 멈췄던 곳으로부터 보다 수월하게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의 2011년과 2013년. 아랍의 봄으로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쫓아낸 지 2년 만에 다시 광장으로 돌아온 이집트 인민들. 다시 출발한 이들이 도착할 곳은 어디일까. [사진 ROARMAG.org 페이스북]

6월 30일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 이집트의 주요 도시 거리에 수 백만 명이 쏟아져나왔다. 이들은 이미 2011년 독재자 무바라크를 쫓아낸 경험이 있다. 그러나 무바라크가 떠난 자리에 오른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종교의 탈을 쓴 또 다른 독재자였을 뿐이다. 이집트의 동지들은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물론 일시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다시 일어섰다. 이 점이 중요하다. 애초 2011년 이후 미국의 점령하라 운동, 스페인의 분노하라 운동, 2012년 터키와 브라질 반란에 영감을 전해줬던 이집트 동지들이 다시 터키와 브라질 반란으로부터 고무받아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다시 시작된 이집트의 운동은 전과는 다를 것이다. 전에 멈춘 곳에서 출발하게 된 운동은 그 결과가 인민의 승리든 패배든 더 격렬하게 지배자들과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30일 시위 전날인 29일 로어매그(ROARMAG.org)에 실린 이집트 활동가들의 편지는 그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스로를 '카이로의 동지들'이라고 칭한 이들은 단지 "권리나 시민권 개혁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합법성에 대한 강조"가 체제의 진정한 핵심을 가리고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이번 행동이 보다 근본적인 것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이들 스스로 지적하고 있듯이 이러한 목표가 거리로 나온 시위대 모두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어제의 시위는 이들의 주장이 허언 만은 아닐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이집트 활동가들의 공개 편지를 아래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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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가스 속 탁심과 리우의 동지들에게
Roarmag.org 6월 29일ㆍ링크

우리와 함께 투쟁하는 당신에게,

우리에게 6월 30일은 2011년 1월 25일과 28일 시작된 반란의 새로운 단계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에 우리는 경제적 착취와 경찰 폭력, 고문과 살해의 더 심한 판본일 뿐인 무슬림형제단의 통치에 맞서 일어선다.

'민주주의'의 도입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적절한 생계수단과 존엄의 [향상을 나타내는] 어떤 지표를 지닌 괜찮은 삶을 누릴 가능성과는 그 어떤 연관성도 없다. 선거 과정에서의 합법성에 대한 강조는 이집트에서 우리가 투쟁을 계속해야 만 하는 이유, 즉 얼굴만 바뀌었을 뿐 탄압과 긴축, 경찰 폭력의 원리는 그대로인 억압적 체제의 영구화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든다. 정권은 여전히 공중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고 고위직은 개인의 권력과 부를 획득할 기회로만 이해된다.

6월 30일 다시 시작될 혁명의 외침은 이거다: "인민은 체제의 폐지를 원한다". 우리는 비겁한 권위주의나 무슬림형제단의 식민주의적 자본주의, 여전히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삶의 목을 죄는 군부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무바라크 시대의 구체제로 돌아가지 않는 미래를 찾고 있다. 6월 30일 거리로 쏟아져나올 시위대 구성원들은 아직 이 요구로 하나가 되진 않았지만, 피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우리 [활동가] 네트워크는 여전히 약하지만 최근의 봉기, 특히 터키와 브라질의 봉기로부터 희망과 영감을 받고 있다. 그것들은 각자 다른 정치적ㆍ경제적 현실에서 비롯했지만 우리 모두는 인민에게 도움이 될 것은 생각도 안하는 체제를 영구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최상층의 지배를 받아왔다. 우리는 2003년 브라질 바히아의 무상교통운동의 수평적 조직과 터키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민중의회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은 지역화된 신자유주의 원리가 인민의 삶을 짓밟는 과정에 오직 종교적 허식만을 추가했을 뿐이다. 민간 부분을 공격적으로 성장시킨 터키의 전략은 반대자들과 진보적 계획에 대한 시도를 억압하는 주요 무기로서 경찰의 폭력적 지배와 같은 원리의 권위주의적 지배로 변화했다. 브라질에서 혁명적 전통에 뿌리를 둔 정부는 그들의 과거가 인민과 자연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적 지배에 협력하는 자신을 가리는 가면일 뿐임을 입증했다.

최근의 이러한 투쟁들은 보다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쿠르드족과 라틴 아메리카 토착민 투쟁의 영향을 받았다. 지난 10여 년간 터키와 브라질 정부는 생존을 위한 이 운동을 진압하려고 시도해왔지만 실패했다. 정부 탄압에 맞선 그들의 저항은 터키와 브라질 전역에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저항 물결의 선구자다. 우리는 각자의 투쟁이 중대함을 인식하는 것의 절실함을 알고, 새로운 공간과 주민, 공동체로 확산되는 반란의 양식을 찾아냈다.

우리의 투쟁은 국가들로 구성된 세계 체제에 맞설 수 있는 잠재력을 공유하고 있다. 무바라크와 군부, 무슬림형제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집트에서는 위세를 떨치고 있는 위기 때 국가가 권력을 사용해 저들의 부와 특혜를 보호하고 확산하기 위해 [인민의] 재산을 빼앗고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투쟁하는 우리는 고립돼 있지 않다. 우리는 바레인, 브라질, 보스니아, 칠레, 팔레스타인, 시리아, 터키, 쿠르디스탄, 튀니지, 수단, 사하라 서부 지역과 이집트에서 공통의 적에 맞서고 있다. 이 목록은 계속 이어진다. 모든 곳에서 그들은 우리를 폭력배, 파괴자, 약탈자,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 우리는 경제적 착취, 적나라한 경찰 폭력, 부조리한 법질서에 이상의 것에 맞서 싸우고 있다. 권리나 시민권 개혁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지역 지배자들이 우리의 삶을 착취할 수 있게 하거나 세계적 권력이 우리 매일의 삶에 대한 통치권을 유지시킬 수 있게 하는 중앙집권적 억압기구로서 국가에 반대한다. 총탄과 방송,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모든 것이 동시에 작동한다. 우리는 우리의 다양한 투쟁을 [억지로] 통일하려 하거나 동일시 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투쟁들의 배경에는 우리가 싸우고 해체해 쓰러뜨리려 하는 지배와 권력의 동일한 구조가 있다. 함께하면 우리의 투쟁은 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는 체제를 쓰러뜨리길 바란다.

카이로의 동지가.

※ 위 편지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제가 임의로 옮긴 것임으로 인용하거나 퍼가시려면 꼭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잘못 옮겼거나 틀리게 이해한 데 대한 지적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2008년 11월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시민들이 경제난에 거리로 나서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레이캬비크=신화/뉴시스]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지자 워싱톤은 대규모의 구제금융을 준비했습니다. 인쇄기에서 찍어낸 막대한 달러가 주요 은행과 기업들에 뿌려졌습니다. 공화당은 이를 공산주의라고 비난했죠.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는 부시가 대통령이었지만 막상 구제금융이 본격화되던 때는 오바마 정부였으니 공화당으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맘껏 레드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악선전을 퍼부을 수 있었겠죠. 이 악선전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티파티라는 극우 운동은 공화당에서 꽤나 큰 지분을 차지하기까지 했습니다.

구제금융을 공산주의라고 비난한 공화당의 악선전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젝은 이를 비꼬아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라고 불렀습니다. 정부에게 막대한 재정부담을 안긴 금융위기에도 대다수의 부자는 자신의 재산과 지위를 지킬 수 있었죠. 막강한 달러의 힘 때문에 지금 당장엔 인쇄기를 돌리는 것 빼고 큰 부담이 없을 수 있지만 결국 미래 노동자들이 세금으로 메꿔야 할 빚이 엄청나게 쌓인 것이죠.

다른 나라들에선 이와 같이 위기를 넘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약한 경제를 지닌 나라들은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긴축을 시도하고 있죠. 부자들 스스로 저지른 잘못으로 인한 손해를 가난한 이들에게 메꾸라는 것입니다. IMF와 국제금융기관들은 구제금융의 대가로 긴축정책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내정간섭이라고 할정도의 협박도 서슴지 않고 말입니다.

해외 채권자를 안심시키고자 하는 정부는 굴욕적인 조건이라도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자신의 국민보다는 국내외의 소수 자본이 중요하다는 듯한 태도는 얼핏 이해 안가지만 자본주의적 세계에서 거의 모든 나라 정부의 공통된 입장이죠. 스페인과 그리스 등 남부유럽을 휩쓸고 있는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가 강력한 경찰력을 동원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국민을 피흘리게 해서라도 IMF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자본가들을 안심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 방법 밖에 없을까요? 아이슬란드의 사례는 다른 길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남유럽에서 저항이 폭발한 최근 트위터에서 아이슬란드가 다시 한 번 관심을 끈 이유일 것입니다.

2008년 위기가 터졌을 때 아이슬란드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있었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2008년 2/4분기 아이슬란드의 대외채무는 GDP의 7.3배 규모인 1205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당시 외환보유액은 9월 말 기준 36억7000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29쪽). 아이슬란드 정부는 여러 나라에 손을 벌려야만 했고 결국 그해 11월 IMF로부터 21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습니다.

모든 은행을 포함한 공기업 민영화. 금융시장 개방과 규제완화. 법인세 감세. 신자유주의 정책을 모범적으로 따르던 아이슬란드는 한 때 선망의 대상이었죠. 인구 32만 명의 화산섬 나라가 1인당 GDP 6만 달러의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떠올랐으니까요. 한 때 우리나라에서 추진하던 '동북아 금융허브'의 모델로 두바이와 함께 언급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곳이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나라로 급락한 것입니다.

금융위기를 다룬 기사와 책은 아이슬란드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언론에서 아이슬란드의 위기와 관련된 이야기는 사라졌습니다. 2010년 봄 화산폭발로 잠시 관심을 받긴 했지만 위기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었죠. 여러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이슬란드 뉴스가 없다고? 왜지? 우리가 지난번 들었던 것은 인민이 봉기하고 은행가들을 쓸어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TV와 신문에선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신문과 TV는 은행가들이 어떻게 [봉기를]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또다른 반란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는지 왜 말해주지 않는 것일까?"

답은 놀라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 그들은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인민이 승리한 것이다."(보도되지 않는 아이슬란드의 놀라운 혁명ㆍCrazyemailsandbackstories)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돌멩이를 든 채 총리실과 의회로 향하던 시위대의 소식은 얼핏 기억나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이 질문을 담아온 블로거는 흔치 않은 아이슬란드에 관한 소식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에서 혁명이, 평화적인 변혁이 진행됐다고 전합니다. 아래는 여러 기사들로부터 간략한 사실들만 추린 것입니다.

- 2008년 주요 은행이 국유화
- 2010년 350억 유로를 5.5%의 이자로 향후 15년간 영국과 네덜란드에 갚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해 시민들이 봉기
- 대통령은 시민의 저항에 굴복해 이 계획안 승인을 국민투표에 부침
- 2010년 3월 국민투표에서 93%의 유권자가 부채상환 반대에 표를 던짐
- IMF는 즉시 구제금융을 동결
- 중단하지 않은 시민들의 투쟁으로 금융위기 책임자들에 대한 민사ㆍ형사소추 시작
- 가장 큰 은행의 경영진을 포함한 90명 가량의 기소 추진
- 집값의 110%를 넘는 가계부채를 탕감키로 결정
- 대법원은 2010년 6월 외환채무는 무효라고 판결
- 2011년 외환부채의 함정을 피하기 위한 새 헌법을 제정키로 함
- 18세 이상 성인 중 30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522명의 후보 중제헌의회 의원 25명 선출
- 온라인을 활용한 시민들의 참여로 헌법초안 작성

그야말로 놀라운 얘기들입니다. 특히 사실상 국유화에 가까운 막대한 재정을 민간기업에 투입하고도 경영권에 대한 그 어떤 관여도 하지 않는 미국과 비교하면 더 믿기 어렵죠. 게다가 미국에선 버나드 메이도프와 같은 사기꾼을 제외한다면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으로 그 어떤 금융가와 기업가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dailykos의 필자는 아이슬란드의 교훈을 우리 모두가 꼼꼼히 되새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의 인민은 공공 부문의 민영화 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들어왔고 이탈리아ㆍ스페인ㆍ포르투갈도 같은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그리스ㆍ이탈리아ㆍ스페인ㆍ포르투갈 등 위기에 직면한 나라의] 그들은 아이슬란드를 봐야 한다. 외국 [금융세력의] 이익에 굴복하는 것을 거절하고, 작은 나라는 인민에게 권력이 있음을 분명하게 선언해야 한다."(Daily Kos)

아직 외부로부터의 위기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우리 서민은 더 길어진 노동시간, 더 강해진 노동, 더 적은 고용, 더 많은 실업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분담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아이슬란드 인민의 투쟁과 승리는 우리에게 누구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할지 묻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국내외의 한줌 부자들을 위한 것인지.

● 참고한 기사와 글
[Crazyemailsandbackstories]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아이슬란드의 놀라운 혁명
[Daily Kos] 아이슬란드의 계속되는 혁명
[Bloomberg] 분노한 아이슬란드인, 부채를 탕감시키다
[한겨레] 아이슬란드, 민주적 참여로 67년 만에 헌법 개정

● 함께 읽어볼 만한 글
[자유롭지 못한] 뜨거운 10월 … 긴축에 맞선 인민의 저항이 폭발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3개월. 실망하기에 이른 시간일 수도 있지만 프랑스 인민도 긴축정책에 대한 저항에 나서고 있다. 9월 30일 프랑스 좌파전선의 긴축정책 항의 시위. [페이스북]

9월 25일 스페인 시민 6000명이 의회봉쇄를 시도했을 때 사태가 이토록 커지리라고는 예상 못했었습니다. 긴축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맞서 경찰은 상상 이상의 폭력을 휘둘렀고 많은 이들이 다쳤습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평온하던 스페인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하나의 시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미 지난해부터 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도스 los indignados)의 항의가 나라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광부들이 영웅적인 투쟁으로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마드리드에 입성했었죠.


벼랑 끝에 선 마드리드: S25→S29
9월 25일부터 29일까지 스페인에서의 저항과 경찰 폭력을 담은 다큐멘터리. [globaluprising.org]

29일까지 이어진 항의 시위는 스페인을 넘어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의 나라에까지 확산됐습니다. 이토록 손쉽게 저항이 유럽 전역을 흔들며 세계화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인민이 겪고 있는 문제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긴축'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 나라의 정부들은 자국의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죠. 이는 결국 정부재정의 부실로 이어졌습니다. '복지' 때문에 정부재정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죠. 정부부채 규모가 2007년을 전후해서 급등했다는 게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합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heesang님은 지난해 블로그에 적은 짧은 글에서 이를 지적했었죠.

"지금 (내 생각에는) 극복되고 있는 이 위기는 채권자들의 위기이다. 이 위기를 넘어서면 시민들의 위기가 시작된다. 미국 정치인들은 재정지출은 줄이되 세금은 늘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탈리아는 연대세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부유세를 신설했는데, 그런 점에서 유럽의 사정은 더 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감세와 민영화와 정부지출 축소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전위이고, 긴축의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 계급의 몫일 것이다. 자본이 낳은 위기를 국가가 떠안았으며, 다시 이제 자본은 이를 본격적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떠넘기려한다. 그런 점에서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 시민의 투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긴축의 시대와 채권자의 승리ㆍ링크)

민간 부문의 부실을 떠안은 정부는 대규모 긴축으로 손실을 만회하려 하고 있죠. 유럽에서 EU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는 구제금융 무기로 각 나라에 긴축정책을 강요하고 있죠. 그리스에서 저 세 개의 기구가 트로이카로 불리며 분노의 촛점이 되는 이유입니다. 불안하게도 이러한 구도는 외국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며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부추기고 있기도 합니다. 아직은 다행스럽게도 좌파 운동의 강력한 성장이 이를 저지하고 있습니다.

선거에서의 노골적인 개입도 주저하지 않았던 트로이카의 협박에도 그리스 인민은 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 몇 차례 반복된 총선에서도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지지는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지난달 말 스페인에서 긴축에 맞선 투쟁이 분출했을 때 그리스에서도 어김없이 저항이 폭발했습니다.

그리스 인민은 9월 26일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섰습니다. 전력 노동자들은 투쟁을 더 강력하게 확대할 것을 요구하며 48시간 파업 반복을 선언했습니다. 재무부 노동자는 이틀 더 파업을 벌였죠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선 노동자들ㆍ레프트21). 10월 4일 조선소 노동자는 국방부로 쳐들어갔고 농부 수백 명은 트렉터로 공항 봉쇄를 시도했습니다. 이들 모두의 요구는 긴축정책의 중단이었습니다(스페인 수십만 긴축 반대ㆍ참세상).

지난달 말 투쟁을 앞장섰던 스페인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6일에도 시위를 벌였습니다. 분노한 인민의 항의에도 스페인 정부는 9월 27일 390억 유로 규모의 긴축을 결정하는 등 노동자 계급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정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스페인 노동조합 연맹들은 11월 14일 파업을 준비하고 있죠
(스페인 수십만 긴축 반대ㆍ참세상).

유럽 뿐 아니라 남미와 북미에서 저항은 확산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퀘벡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승리 이후에도 무상교육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칠레에서도 무상교육을 위한 학생들의 투쟁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시 점화된 칠레 학생시위 "교육은 권리다"ㆍ참세상). 올 초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도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InterOccpy.net을 만들어 세계적 운동을 연결하고 협력하며 조직하는 것(Connect, Collaborate, Organize)을 모토로 다양한 연대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 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가들이 10월 13일 전 세계 공동 냄비시위, 매월 22일 공동행동 등을 제안하고 준비하고 있죠(OccupyWallst.org, interoccupy.net).

더해가는 경제 위기, 정확히는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지배자들의 태도가 더 노골적으로 되면서 이에 맞선 저항도 더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한국은 경제와 정치적 상황 모두에서 다른 나라들과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 때문에 우리도 결국 저들과 다르지 않은 문제를 겪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겨레에 따르면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복지 지출 비중이 2005년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복지시대 역주행ㆍ한겨레). 워낙에 부족한 복지이기에 실상 그리 큰 영향이 없어 보이죠.

기업들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게 문제입니다.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부문별로 희망퇴직과 정리해고의 칼바람 조짐도 있습니다. 가장 불안한 곳은 건설업계죠. 정말 거의 마지막 한올까지 끊어버린 듯한 부동산 규제에도 주택시장은 요지부동입니다. 문제는 상업시설과 사무실입니다. 과잉공급으로 서울시내 중심가의 최신 건물에도 빈 사무실을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용산 재개발은 난항을 겪고 있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와 종로1가 등 대규모 개발지들이 기대 만큼의 수익을 만들어낼 지는 의문입니다.

위기가 어떻게 진행될 지 예측하는 것은 부질없을 겁니다. 2008년 촛불시위와 같은 갑작스러운 저항이 터져나올 수도 있죠. 지난해 희망버스의 놀라운 성공처럼 말입니다. 이에 대비할 때 만이 좌파는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시대를 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참고한 기사와 글
[참세상] 스페인 56개 도시 수십만 긴축 반대
[참세상] 다시 점화된 칠레 학생시위 "교육은 권리다"
[레프트21] 다시 총파업 공세에 나선 그리스 노동자들
[한겨레] 복지시대 역주행 … 내년 예산안 복지비중 첫 감소
[SocialandMaterial.net] 긴축의 시대와 채권자의 승리

워크 WORK: 열심히 일하면 어디까지 올라갈까
CrimethInc. 지음|박준호 옮김|마티

자본주의적 혁신은 어제까지 최신이었던 기술을 오늘 낡은 과거의 기술로 만들어버립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격찬했던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역할은 오늘날까지도 그 기세가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빨라졌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생산과 생활에 필요한 각종 기술의 개발과 보급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 세탁기ㆍ청소기ㆍ전자레인지ㆍ식기세척기 등 주방의 혁명적 변화를 이끈 전자제품들은 여성을 가사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기대됐습니다. 현실은 그 기대와 다릅니다. 새롭게 쏟아지는 주방기기를 작동시켜야 하고, 사용법을 익혀야 합니다. 과거의 주방에서 필요치 않았던 활동이 최신식 가전기기로 무장한 주방에서 요구됩니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현대 여성은 매일 쏟아져나오는 신제품 주방기기를 구입하기 위해 직장에 나가 돈을 벌 것을 요구받기까지 합니다.

물론 붉은 마르크스 박사는 이러한 경향을 자본주의적 경제법칙 자체로부터 추측했습니다. 노동생산성의 향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이 아닌 노동강도의 강화, 노동시간의 연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죠. 그리고 그 주장은 현실에서 사실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워크 WORK(CrimethInc. 지음|박준호 옮김|마티)'는 마르크스 박사의 주장을 따르진 않지만 바로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입니다. 우리는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심지어 집에서조차 내일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기계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미래를 더 풍족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땀방울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흘릴 것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요? 최근 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처럼 '긍정의 배신'만을 되풀이해 맛볼 뿐입니다.

끊임없는 배신을 맛보면서도 우리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하는 노동이 바로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노동을 중단하면 자본주의는 더이상 지탱될 수 없다는 것이죠. 물론 그것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의 노동이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사회를 바꾸는 방법에 관한 힌트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워크 WORK'는 우리에게 노동을 통해 계급을 환기시켜줍니다. 세계의 수평적 분할(너희 나라와 우리나라, 여성과 남성, 흑인과 백인 …)이 아닌 수직적 분할, 즉 계급적 갈등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옳게 강조합니다. 따라서 좌파들을 오랫동안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던 '정체성 정치'와 같은 것들에 비판적이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치인, 예를 들면 오바마와 같은 이들을 지지하는 것과 같은 활동도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워크 WORK'는 더 나아가 권력은 결코 자본주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치와 조직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에서 이 책이 아나키즘의 전통을 따름이 드러납니다.

분명히 개인적 일탈에 불과한 개별행동보다는 집단적 저항을 강조하고 있는 이 책이 여전히 개인적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어쩔 수 없이' 일터에 나가는 이들, 못미덥지만 '현실적'으로 보이는 개혁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들, 자기 집단의 이익에만 철저해보이는 노동조합에 자신의 월급줄을 거는 이들을 이해하지 않고 집단적 저항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이 책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혼자서 일을 중단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단 하루를 하더라도 함께 해야지 잠시라도 자본주의를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편견과 합리화의 숲을 헤치고 사람들을 모아내야 합니다. 단순히 "네 대안은 근본적이지 않고 적절하지도 않아"라고 부정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죠. 그러한 내용을 담은 책은 피라미드를 쌓고도 남을 것입니다.

물론 '워크 WORK'는 우리가 무시해버리기 쉬운 저항을 재발견해 그것을 집단적 행동의 기초로 삼고자 합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기 일쑤인 절도에 저항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시도는 대표적입니다. 그렇다고 절도를 우리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 이러한 사려깊음이 노동조합과 정당, 집단적 저항의 오래된 전통에 대해서는 발휘되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 책은 CrimethInc.(링크)라는 아나키스트 노동자 공동체의 공동 활동 산물입니다. 이 책을 쓴 이들은 카페의 비정규직 바리스타이기도 하고 피자 배달부이기도 합니다. 또는 회사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업무를 담당하던 화이트칼라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과 활동을 고백한 저항의 연애편지가 바로 '워크 WORK'입니다.

신대륙의 흔한 시위 코스 |2월 시작된 퀘벡의 학생파업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채 4개월여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학생파업을 분쇄하기 위해 학생 시위 봉쇄 비상입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퀘벡 학생시위대가 행진하겠다고 경찰에 신고한 코스가 '신대륙의 흔한 시위 코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서 소개되고 있다.

2008년의 경제위기가 4년 만에 더 큰 파도로 세계를 덮치고 있습니다. 민간 은행과 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은 위기의 근원을 치료하지 못한 채 경제위기를 공공부문으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뻔뻔한 은행가들과 사장들은 자신들의 실패는 잊어버리고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 특히 복지예산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EU와 ECB(유럽중앙은행), IMF는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끝을 알 수 없는 긴축을 요구했죠. 그리스 국민들은 일자리와 연금을 잃고, 교육과 각종 복지의 축소로 삶의 질이 후퇴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스만이 아니죠. 스페인도 예산 삭감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스페인 정부는 GDP의 8.9%인 재정적자를 5.3%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교육 예산을 30억유로(약 4조4600억원)로 삭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학 등록금은 기존 평균 1000유로(약 150만원)에서 1500유로(약 220만원)로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25세 이하 청년실업률이 52%에 달하는 상황은 스페인 청년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듭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주목받고 있는 인디그나도스(Indignados:분노한 시민들)의 저항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교육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교사ㆍ학생ㆍ학부모가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5월 22일 열렸습니다. 이날 시위는 5개 교직원 노동조합이 함께 준비했고 스페인의 17개 자치주 중 14개 주에서 80%의 교사가 파업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노조에 의하면 마드리드에는 10만명, 바르셀로나에서는 15만명이 시위에 나섰다고 합니다.

● [경향신문] 스페인 교육 예산 삭감에 교사 파업, 수십만명 시위(링크)

대서양 건너 캐나다에서도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시위가 전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퀘벡 주정부는 현 2519달러(280여만 원) 수준의 등록금을 올 하반기부터 5년간 단계적으로 인상해 4144달러(470여만 원)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학생들은 2월부터 가두시위와 파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학생파업이 주목받는 것은 경제위기 시기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시위와 파업이 계속되자 퀘벡 주정부는 학생들의 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듭니다. 우리 나라의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떠오르게 하는 법이죠. 5월 18일 주의회에서 통과된 비상입법안에서는 25명 이상이 참여하는 시위는 경찰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수업 방해, 등교 저지 시위에 참여한 개인에게는 1000~5000달러(110만~570만원)의 벌금, 시위 주동자에게는 7000~3만5000달러(800만~398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연합뉴스] 캐나다 퀘벡주, 학생 시위 봉쇄 비상입법(링크)

정부의 강경 조치에도 저항은 중단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들도 시위에 동참해 5월 30일 1차 야간 냄비시위(the Casseroles Night in Canada), 6월 6일 2차 야간 냄비시위가 진행됐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퀘벡 학생과 연대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OWS 홈페이지는 6월 6일 전 세계 130개 도시에서 연대시위가 열렸다고 알렸습니다.

특히 미국에서의 학생운동은 등록금 인상 반대투쟁과 이주민 운동이 결합되며 더 큰 힘을 받고 있는 듯 싶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서부의 이주노동자 운동의 활력으로 재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960~7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민권 운동이 미국의 급진적 사회운동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을 상키시키기도 합니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출발해 워싱턴D.C.까지 3000마일(4800여㎞)을 행진하고 있는 이주민 청년들의 핵심 구호는 '추방이 아니라 교육이다(Education Not Deportation)'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드림액트(
DREAM Act:주로 히스패닉계인 미등록 이주민 자녀 학비지원 등을 포함한 이민법 개정안. 오바마의 2008년 대선 공약 중 하나. 링크 1, 링크 2)의 의회 통과를 요구하는 행진이죠. 이와 함께 이 법이 통과됐을 때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추방을 금지하는 대통령령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행진의 참여자들은 5일 콜로라도 덴버의 오바마 선거운동 본부를 점거하기도 했습니다. 두 명은 단식투쟁을 진행하고 있죠.

● [OWS] 학생ㆍ미등록 이주 청년이 국제적 교육운동 이끈다(링크)

6월 5일 치러진 위스콘신 주지사 소환선거에서의 패배는 점령하라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입니다(링크). 미국의 우파들은 이 소식을 올 연말 대선에서의 승리를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도 의기소침해지는 소식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기소침할 수록 경제위기는 우리의 삶을 더욱 갉아먹을 것입니다.

경제위기는 언제나 양방향으로 정치를 발전시킵니다. 이른바 '양극화'죠.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의 올랑드가 당선됐지만, 극우파 장 마리 르펜의 선전은 좌파들에게 경악할 소식이었습니다. 그리스 극우파 황금새벽당의 대변인은 TV 생방송 토론에서 상대 토론자에게 폭력을 행사에 해외토픽에 실렸죠. 이 황금새벽당 또한 지난 5월 총선에서 급진좌파정당 시리자(SYRIZA)와 함께 약진했습니다.

분명히 경제위기는 현재의 세계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방향은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인민을 위한 체제로 변할 수도 있고, 자본과 권력자들에게만 더 유리한 체제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퀘벡에서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극우 정치인들 뿐 아니라 현재 세계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 때는 반민주주의적 행동에도 거침없이 나설 것입니다. 우리 99% 인민의 정치가 투표장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 위에 링크한 OWS 홈페이지의 '학생ㆍ미등록 이주 청년이 국제적 교육운동 이끈다' 글을 제멋대로 아래 옮겨놓습니다. 제 영어실력이 요즘 초등생보다 못해 상당한 오역이 있으니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세요. 원문 링크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시카고에서 열린 퀘벡 연대 행진.

학생ㆍ미등록 이주 청년이 국제적 교육운동 이끈다

캐나다에서 두 번째 냄비시위(the Casseroles Night in Canada)가 진행되는 동안 전 세계 130개 도시에서 저항이 표출됐다. 시위대는 냄비와 후라이팬을 두드려 퀘벡 학생운동과 캐나다 역사상 가장 장기간 진행되며 긴축시대에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재정립하는 학생파업에 연대했다. 무기한 총파업은 정치가들과 언론에 계속 충격을 주고 있다. 그것(학생파업)을 불법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운동을 파괴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단지 캐나다에서 광범위한 시민불복종을 만들 뿐이고 전 세계적로 반란의 불꽃이 퍼지는 것을 도울 뿐이다.

전 세계적인 학생, 점령자들, 분노한 사람들, 사회운동은 거리를 점령하고 단지 퀘벡의 우리 동료들 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무상의 해방된 교육제도에 대한 지지를 보여줬다. 우리는 빚에 기반한 사회와 착취 경제에 저항하기 위해 봉기했다. 점점 더 우리의 다양한 지역 운동들은 거대한 국제연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막 시작했다.

이주민 청년들, 오바마 선거캠프 점령

'드림액트(DREAM Act)'를 요구하며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서 출발해 워싱턴D.C.까지 3000마일을 도보행진 중인 이주민 학생의 모임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캠페인(The Campaign for an American Dream)'이 콜로라도 덴버 서쪽 77번 도로 9번가의 오바마 선거운동(the Obama for America) 본부를 점령하기 위해 덴버에서 멈췄다. 시위대는 6월 5일 오후 5시30분쯤 선거운동본부에 들어가 경찰과 대치하는 대신 선거운동원과 함께 밤을 보냈다. 몇몇 청년들은 체포됐을 때 추방당할 위험이 있었다. 적어도 두 명의 시위대는 드림액트가 시행됐을 때 보호받을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들의 추방을 중단시키는 대통령령에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할 것을 요구하는 단식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오큐파이 덴버의 수백명의 사람들은 사무실 밖에서 시위를 했다. 이 시위는 사무실을 고립시키려는 작전을 막았다.

오레곤 학생들, 등록금 인상 반대 연좌시위

'빌어먹게도 비싼 등록금 동맹(the Tuition is Too Damn High Coalition)'은 최근 오레곤 대학의 등록금 6.1% 인상안 승인에 대한 대응으로 로버트 버달 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예산 삭감 반대, 등록금 반대, 무상교육 실시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존슨홀에서 행진했다. 버달 총장은 오늘(6월 7일) 학생 수십 명이 참여하는 비공개 면담을 승낙했다.

시카고ㆍ뉴욕 점령자들, 퀘벡 연대행진

시카고를 점령하라는 퀘벡의 무기한 총파업을 지지하는 소란스러운, 하지만 완벽하게 비폭력적인 행진을 진행했다. 엄청난 수의 경찰이 시위대를 뒤쫓아 마치 고양이 쥐 게임처럼 도시 곳곳을 누볐다. 경찰은 전에 미시건과 오하이오에서 시위대를 야만스럽게 공격한 것 처럼 학생들을 길가로 밀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시카고를 점령하라 활동가에 의하면 여성들이 길 위로 질질 끌려갔고 그 외에 많은 사람들도 경찰의 곤봉에 맞았다. 목표물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12명의 핵심 조직자들은 체포됐다.

퀘벡 외에 가장 큰 시위 중 하나는 2000여 명이 행진한 토론토 시위다. 그 밖에도 지난밤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샌프란시스코, 피닉스, 밴쿠버, 자그레브, 시애틀에서 있었다. 뉴욕에서는 10여 명이 체포됐다.

5월 30일 수요일 캐나다에서 첫번째 냄비시위(the Casseroles Night in Canada)가 열렸을 때에는 뉴욕, 토론토, 밴쿠버, 브뤼셀, 부에노스아이레스, 베를린, 런던 등지에서 연대시위가 열렸다. 미국에서는 워싱턴, 워싱턴D.C., 아틀란타, 오클랜드, 덴버, 리틀록에서 연대 행진이 있었다.

지난 주 뉴욕 경찰의 주코티 공원 해산은 끓는 물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습니다. 10월 말 오클랜드에서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 11월 2일 도시 총파업을 불러일이켰 듯, 뉴욕 경찰의 점거운동 해산은 17일 거대한 항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 3만명 이상의 사람이(뉴욕경찰에 의하면 3만2500명) 행진했습니다. 이들은 노동자, 학생 등 다양한 99%의 사람들입니다.
- 미국과 전 세계의 30 곳 이상의 도시에서 이날 저항 행동에 동참했습니다.
- 99% 운동 탄생 두 달을 기념해(11월 17일은 9월 17일 첫 점령이 있은 지 두달이 되는 날입니다) 브루클린 다리에서 축제를 열었습니다.
-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수백명의 사람들이 뉴욕 증권 거래소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했습니다.
- 사회적 정의를 위한 강력하고 다양한 운동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아래 OccupyWallst.org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November 17: Historic Day of Action for the 99%(링크)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17일의 저항 행동 사진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플리커 'occupy'로 검색한 사진(링크)

19일 일어난 UC 데이비스에서의 경찰 강제진압은 또다른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OccupyWallst.org는 이러한 폭력적인 사건이 유색인종, 성소수자, 성노동자 등 소외받는 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일상의 현실이었다고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OccupyWallst.org는 이들의 폭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물으며, 경찰들에게 1%의 부자들을 위한 행동을 중단하라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경찰이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 계급, 동성애자, 유색인종, 그밖에 소외받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강금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악하고 부정의한 체제를 위해 일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요청합니다. 자랑스럽게도 99%와 연대한 경찰 지구대장 레이몬드 루이스와 다른 이들처럼 경찰관들이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말기를 호소합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링크)

점령하라 운동은 현재 미국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찰의 점령하라 운동에 대한 공격은 경찰 개개인의 자의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전국적으로 계획되고 준비된 정부와 1%의 반격이라는 것이죠. 이에 대항하기 위한 또 하나의 행동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 주인공은 바로 오클랜드입니다. 오클랜드의 점령하라 운동은 미국 서해안 전역의 항구를 폐쇄하는 행동을 12월 12일 함께하자는 호소를 발표했습니다. 이 호소는 오클랜드 점령하라 운동의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미 항구와 (골드만삭스가 소유한) SSA 터미널을 봉쇄하기 위한 행동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이날 (12월 12일) 행동은 EGT의 공격에 맞서 투쟁중인 워싱턴주 롱뷰 부두노동자에게 연대를 하긱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EGT는 Bunge사가 이끄는 국제적인 곡물 수출기업이라고 합니다. 오클랜드 점령하라 운동은 EGT가 롱뷰의 부두노동자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Occupy Oakland Calls for TOTAL WEST COAST PORT SHUTDOWN ON 12/12(링크)

이들 점령하라 운동에게 자신감과 영감을 불어넣어준 아랍 또한 여전히 그 불만들이 가라안지 않고 있습니다.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군부의 지배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군대의 공격으로 최소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OccupyWallst.org에서도 이 알자이지라 홈페이지를 링크해 이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집트軍-시위대 충돌 '사상자 속출'(링크)

어쩌면 우리는 지금 1968년 이후 새로운 세계적 운동의 서막을 목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한국의 좌파 활동가들이 '목격자'로만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분발해야 할 겁니다. 언론에서는 '유시민의 딸'이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이 된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녀가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대학생 지지모임 회원인 것에는 관심이 없죠. 언론 인터뷰에 의하면 그녀는 지난해 서울대 법인화 반대 점거투쟁(Occupy!)의 과정을 거치며 정치적으로 급진화됐다고 합니다. 이는 매우 의미있는 소식입니다. 비록 '보이스카웃' 같아 보이고 유아적인 '동호회 활동'으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학생운동에서 '사회주의'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단체의 학생회원이 단과대 학생회장을 맡은 것은 무척 오랜만인 반가운 일입니다. 그녀 개인이 이후 어떤 길을 가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보다 많은 학생이, 청년들이 그녀와 같은 길을 모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0월 15일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기업의 탐욕과 부패에 맞서 세계 1500여개 도시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함께 점령(Occupy Together)"했다. 한국에서도 서울 여의도ㆍ서울역ㆍ덕수궁 앞에서 행동이 이어졌다. 이날 Occupy Seoul에는 외국인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사진=自由魂]


토요일(15일)은 타흐리르 광장에서부터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까지 1%에 맞선 99%의 행동이 세계를 흔든 하루였습니다. 1500개 이상의 도시에서 노동자ㆍ학생ㆍ농민이 거리로 쏟아져나왔습니다. 대체적으로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죠.

서울에서도 Occupy Seoul 시위가 열렸습니다. 낮부터 거센 비가 이어져 걱정했지만 집회를 시작한 6시 이후는 대체로 비가 안와 큰 무리 없이 국제 행동의 날 행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행동은 서울 대한문 앞에서 진행됐습니다. 3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여느 집회와 다르지 않게 열렸죠. 세계적인 저항이라 그런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습니다.

토요일의 시위는 한국에서도 동참했다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미국ㆍ유럽의 운동과 한국은 역시 다르더군요. 조선일보가 이미 그 약점을 눈치 채고 '시위꾼들 만의 집회'로 조롱하듯이 한국에서의 활동가들은 이 시위를 계기로 대중적인 활동을 만들려는 의지도 고민도 부족해보였습니다. 참가자의 숫자가 운동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보진 않습니다.소수일지라도 집회의 참가자들을 이후 더 큰 운동을 이끌어낼 적극적인 소수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사불란한 피켓라인, 방송차량과 연단, 거기에 미리 준비된 공연 등 토요일 서울의 시위는 참가자를 수동적인 소수로 만드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 모습이었습니다. 세계적 운동이 계속되고 있기에 한국에서의 운동도 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좌파들이 이런식으로 준비해서는 한국에서 유의미한 운동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보입니다.


10월 15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를 가득 메운 시위대. [사진=OccupyWallst.org]


런던의 시위대. [사진=OccupyWallst.org]


이탈리아 로마. [영상=OccupyWallst.org]


스페인 마드리드. [영상=OccupyWallst.org]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하나의 전환점을 돈 지금, 그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몇 가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1.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은 단순히 경제위기 때문에 시작된 운동이 아닙니다. 지금의 위기는 2008년 위기와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3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자본과 대기업에 맞선 행동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2008년 위기의 즉각적인 대응은 '티파티'라는 우익 운동이었습니다. 위기에 직면하자 정부가 나서서 기업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메인스트리트로 불리는 노동자, 중산층이 자신의 모기지와 의료보험을 잃고 거리로 내쫓길 때 정부는 기업들 살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기업은 성과급 잔치를 벌였고요. 스티글리츠가 '기업복지'라고 부르고 지젝이 '기업 사회주의'라고 부른 것에 대한 반발이 극우파의 성장으로 나타난 것이죠.

그렇게 3년이 지났지만 나아진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잠시 위기를 극복한 듯 싶었지만 국가로 전이된 기업의 부실은 재정적자 위기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특히 남유럽과 남미에서) 정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감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감축은 일자리의 축소, 임금ㆍ연금 삭감, 교육의 부실화, 의료보험 등 일반적 복지의 축소를 통해 이뤄집니다. 이러한 정책은 빈민층보다 중산층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힙니다(일반적으로 복지제도의 최대 수혜층은 빈민층보다 그 위의 중산층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이에 대한 저항이 거의 모든 계층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칠레에서는 교육, 스페인에서는 청년실업이 최대 이슈가 되고 있죠. 미국에서는 이 모든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성과급 파티를 이어가고 있는 월스트리트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경제위기 자체보다는 경제위기를 이 체제의 엘리트들이 처리하는 방식, 즉 1%의 부자들과 금융기업들에 대한 혜택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에 대한 반감이 99%의 사람들의 생활수준 위축과 결합되면서 분노가 터진 것으로 보입니다.

2. 경제위기와 정치위기라는 외부적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던 소수의 행동이 15일의 거대한 행동을 이끌어냈습니다. 일반적인 언론에서의 보도와 달리 미국의 시위도 (그들 표현대로 하자면) '전문 시위꾼'들이 조직하고 만들어낸 시위입니다. 그들은 스페인의 광장 점거 시위와 이집트 혁명을 경험한 소수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체제에 의문을 던지며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해왔던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시위를 준비하면서 일반적인, 시위와 집회 등 운동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원칙을 세우고 했습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General Assembly'입니다. 물론 커다란 규모의 저항에는 항상 이와 같은 것들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문제는 이 총회를 통해 참가자들의 '적극성'을 어떻게 끌어내느냐입니다. 첫째로 그들은 연단을 없앴습니다. 높은 연단은 운동에 처음 참가한 이들이 발언 신청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연단을 없애 누구라도 쉽게 발언할 수 있게 했습니다(물론 그럼에도 보다 적극적인 소수가 발언을 하겠지만). 둘째로 마이크와 앰프를 없앴습니다. 그들은 'Mic Check(소리통)'라는 방법으로 참여자들의 육성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게끔 했습니다. 이는 발언을 듣는 청중도 발언을 전달하는데 참가시킴으로써 수동성을 최소화시키는 효과를 냅니다. 일체감을 더욱 높이는 것이죠. 이러한 방법은 또한 참여 단위를 보다 적은 수로 쪼개 개인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끼리도 둘러서서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현지에서의 집시법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경찰과의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에서 보이 듯 그것은 '합법'이라는 틀을 유지하기보다는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시위전술의 일종으로 해석하는게 맞는 듯 싶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2008년에 한국의 촛불시위 초기에 보인 모습과 거의 비슷합니다. 이를 통해 운동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죠. 물론 이러한 것들을 한다고 해서 꼭 이 운동이 성공할 것이라는 건 아닙니다. 정형화 되고 일상화 된 노동조합 행사와 같은 집회는 개인의 적극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 좌파 조직의 개입과 준비가 불필요하다는 건 아닙니다. 운동에 처음 참여하는 개인들을 보다 적극적인 집단의 중추로 만들기 위한, 그래서 운동을 더욱 확산시키는 불꽃의 하나로 만들기 위한 사려깊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General Assembly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은 (거의 언제나 외국의 시위에서 볼 수 있지만) 개인이 만들어온 팻말입니다. 미리 준비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폐박스와 매직 등 팻말을 만들 재료를 준비해뒀죠. 이 역시 2008년 촛불시위 초창기에 한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었죠. 듀게에서도 7번국도님이 말을 쓸 부분을 비워놓은 팻말을 준비해와 듀게 참가자들이 직접 자신들만의 구호를 적을 수 있게끔 하기도 했었습니다. 기존 좌파조직의 일사불란한 피켓라인은 사진발이 잘 받긴 해도 개인적인 참가자들이 운동의 대열에 함께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이와 함께 자신이 왜 99%인지를 직접 적어 인증샷을 올리는 페이지를 운영한 것도 유용한, 우리가 배울 만한 방법입니다.


15일의 한국 시위가 실망스럽긴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1500개 도시에서 함께 일어났던 이들의 경험을 올바르게 배울 수 있다면 한국에서는 보다 거대한 운동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미FTA라는 시급한 쟁점, 비정규직ㆍ청년실업의 문제, 과중한 등록금 등 교육문제 등 일반적으로 제기도는 쟁점과 함께 저축은행 사태와 중소 음식업자들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둘러싼 저항을 주목해야 합니다.

저축은행은 부자들이 세금을 피하고 쉽게 이자소득을 얻기 위한 통로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많은 이들이 지나치게 낮은 은행 저축이자 때문에 위험을 무릎쓰고(사실 대부분의 가난한 이들은 이 '위험'을 알지 못하죠. '은행'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실상은 은행이 아니죠) 고이율의 저축은행에 자신의 재산을 맡겼죠. 금융규제 완화로 등장한 유사 은행의 사기에 가까운 영업 문제입니다. 이를 통해서 부자들은 이익을 보고 가난한 이들은 생활수단을 잃고 있습니다.

음식업자들의 항의는 더욱 주목할 문제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썩고 있던 중소자영업자의 위기가 이를 기폭제로 폭발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중소 자영업자들의 불만은 은행ㆍ카드 등 금융기업의 탐욕(높은 예ㆍ대금리 차와 수수료가 대표적이죠)에 직접 연결된 문제입니다. 게다가 이들 중소 음식업자들은 대부분 안정된 일자리에서 배제된, 언제 하층민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이미 전락해있는 상황일 수도 있는) 하층민을 대표합니다. 한국에서 '하층민'인 중소자영업자는 정규직 노동자의 '안전판' 역할을 합니다. 나이에 따라서 재취업의 기회가 제한돼 있고 퇴직 후 실업수당 등의 복지제도가 미비한 한국에서 중소 자영업은 일자리를 갖고 있는 노동자에게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들 중소 자영업자들이 몰락은 노동자 계급의 몰락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불만, 그에 반해 지배 엘리트들이 통치능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좌파들은 그들의 역량 이상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좌파들은 기존의 노동조합 사업과 같은 방식의 일상적 행동에서 벗어나 보다 급진적인 방식을 시도할 때입니다.


"사람들 이익보다 더중요해요"라는 한글 문구가 인상적이다. 아마도 구글 번역기를 사용한 듯하다. [포스터=Alexa Lindh]


General Strike 홈페이지에는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만들어진 'General Strike(총 파업)' 포스터가 올려져 있다. 한국어로 '총 파업'이라고 적힌 포스터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대통령이 '쥐'로 비유되고 있는 상황에서 총파업 포스터의 주인공이 고양이인 것이 인상적이다.


Occupy Together의 포스터 모음 페이지
Adbusters의 포스터 모음 페이지
General Strike 홈페이지의 포스터 모음

2011.10.07 10:53

OWS, 노동자들과 조우 쟁점/11 OccupyWS2011.10.07 10:53

10월 5일 미국 뉴욕의 폴리 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대. 이날 시위에는 산업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자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사진=Occupy Wall Street]

9월 17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가 시작된 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와 행진이 어제(미국 시간 10월 5일)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이 참여한 시위는 폴리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참여한 이날 행진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 참여자들에게 큰 자신감을 줬습니다. 그들은 "노동자들은 의료보험과 안락한 주거, 충분한 음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이 운동이 단지 직업을 얻지 못한 학생들 만의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이 운동이 1%의 부자들이 파괴한 세계를 우리 99%를 위한 세계로 되돌려 놓기 위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불안정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 악화되는 노동ㆍ생활 조건으로부터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전미교사노조의 1839 지부의 이반 S. 스타인버그 지부장과 윌리엄 칼라테스 부지부장은 공개적으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했습니다. "우리 99%는 매일매일 더 크고 더 넓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졌습니다. 노동자들은 의료보험과 안락한 주거, 충분한 음식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은 직업을 얻지 못해 하루하루 빚에 의지해 연명해야 한다고, 그래서 파산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1%의 부자들은 그들의 탐욕으로 이 나라와 그 가치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1%의 부자들은 이 세계를 훔쳤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이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폴리 광장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훨씬 넘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지지자들로 가득 찾습니다. 그들은 세계에 만연한 경제ㆍ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우리 99%는 매일매일 더 크고 더 넓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노동조합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폴리 광장을 접수하다
(Occupy Wall Street 홈페이지 링크)


이날 뉴욕의 시위에는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 뿐 아니라 노동자, 노인, 젊은 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더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사진=Occupy Wall Str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