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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는 진흙탕에서 뒹굴줄 알아야 하는 법

때때로 2011. 1. 25. 15:23

최근 정치학 분야 출판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박상훈 대표가 새 책을 내놨습니다.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가 그 책입니다.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폴리테이아



이 책은 박상훈 대표가 지난해 진행한 한 강의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심상정씨가 원장으로 있는 '정치바로 아카데미'에서 마련한 강의입니다. 강의의 대상이 됐던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주로 '진보'라고 불리는 진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일차적인 대상이 '진보파'임을 밝히고 서술을 시작합니다. 그렇기에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더 뼈아픈 비판이 곳곳에 자리합니다.

저자는 작정하고 진보파에 대한 고언을 준비한 듯 싶습니다. 이를 위해 그가 첫 교재로 택한 책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입니다. 80년대 막스 베버 책을 들고 다니다가 '막스'와 '맑스'를 구분 못한 경찰 때문에 연행됐다는 선배의 우스갯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가벼운 농담거리로 채워진 책은 아닙니다. 저자가 '맑스(마르크스)'가 아닌 '막스'를 택한 것은 진보의 이상주의적 정치관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죠. 현실에서 정치는 권력을 다뤄야만 합니다. 진보가 채질적으로 두려움 혹은 거리감을 가진 경찰, 군대, 관료ㆍ공무원 등의 조직을 움직여 목표로 한 무언가를 강제해야 만 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런 것들이 더럽다고 해서 외면하면 현대 국가의 강권력은 보수파와 기득권 세력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치인은 다뤄야만 하는 폭력, 권력, 권위 등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겸허히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에 관련된 모든 윤리적 문제의 특수성은, 인간이 만든 조직에 내재해 있는 정당한 폭력이라는 수단 그 자체에 의해 규정된다. … 정치가란 모든 폭력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기꺼이 관계를 맺기로 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정치가는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외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외면하면 안된다는 것이겠죠. 수단과 과정에서의 절대적 윤리가 결과의 실패를 옹호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윤리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정치가에게는 거꾸로 '너는 악에 대한 폭력으로 저항해야 한다. 안 그러면 너는 악의 만연에 책임이 있다'라는 계율이 더 타당하다."

한마디로 정치가는 진흙탕에서 뒹굴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듯 이 책은 진보에서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순수한 이념에 일침을 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비판하고, 리더십ㆍ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대한 터부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거리에서의 시위에 대한 순수한 신념이 그 목적과 달리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를 저해한다는 주장도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저자는 공산주의, 혁명의 신봉자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웁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아마도 그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할 기회가 있을 듯 싶습니다.

베버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은 차례대로 사울 D.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E. E.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 셰리 버만의 '정치가 우선한다'를 교재로 정치가의 윤리, 정치의 실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진보파의 실패한 과거를 짚어나갑니다. 저자는 '정치학 교과서'의 불가능함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지만 이 책은 지금 시기에 진보진영에게 훌륭한 '정치학 교과서'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2008년 촛불이 꺼진 후 무언가 답답함을 느끼며 어떠한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하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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