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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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M의 성생활, 카트린 밀레

때때로 2008. 7. 7. 12:48

TV와 영화 속에는 다양한 성적 상징과 판타지가 넘쳐나고 성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도 상당히 자유로워졌다고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섹스, 성생활은 연인(그것이 이성애 커플이든 동성애 커플이든) 사이의 가장 은밀한 공간에 갇혀있다.

여기 이 글을  쓴 미술 평론가인 카트린 밀레가 '성행위'가 아닌 '성생활'이라는 제목을 쓴 것은 의도적이다. 그에게 있어서 섹스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하나의 '생활' 양식일 뿐이다. 우리가 공동체 내에서 관계의 유지를 위해 적절한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저녁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나들이나 여행을 가듯 그녀는 섹스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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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M의 성생활  카트린 밀레 글|이세욱 옮김|열린책들
※ 이 표지는 초판의 표지다. 2003년에 한 번 더 재판되면서 다른 표지로 바뀌었다.

그녀는 네 가지 키워드-수, 공간, 내밀한 공간, 세부 묘사-로 자신의 성생활을 정리한다. 아무래도 한국-이건 외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의 보통 독자에게 그녀의 성생활은 납득하기 어려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대표적인 게 '파르투즈'다. 한국식으로 번역하자면 '집단 난교파티'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녀의 글에서 그러한 난잡함이나 천박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성생활을 개인사적 정체성의 일부로서 '탐구'하려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서 비롯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녀에게 섹스는 '생활'이다. 그것은 몇몇 좌파 혹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성해방'을 목표로 조직원들 및 지지자들에게 '자유로운 성생활'을 장려하는 것과 다르다. 그녀는 가르치려 하거나 권하지 않는다. 사실 이게 권한다고 해서 모두 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책은 저자의 '미술 평론가'라는 직업적 특성이 반영되어서인지 굉장히 시각적이고 내밀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고상한 언어'로 쓰여있는 포르노 소설, 아니 포르노 수필 정도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고상한' '뭔가 있는 척 하는' 책은 아니다. 굳이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읽는 독자에 따라서는 이 책이 대개의 포르노가 그렇듯 섹스와, 섹스파트너(특히 여성)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솔직한 서술, 하지만 깊이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이다. 어찌보면 저자의 다양한 섹스 경험으로부터 독자 자신의 섹스에 대한 그동안의 잘못된 편견이나 오해, 혹은 자신의 취향, 혹은 독특한 습관의 뿌리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관음증적 시선으로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인류의 가장 은밀한 활동에 대한 공개적이고 솔직한 토로와 탐구, 통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많은 성인 독자들이 읽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이 책에서 실명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사람은 사진 작가이자 소설가인 자크 앙릭이다. 그는 그녀의 남편이다. 그녀의 남편이 쓴 '카트린M의 전설'도 열린책들에서 2003년에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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