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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모음] 전력 위기, 국민 탓일까

때때로 2012. 8. 9. 12:29


서울 삼성동 전력거래소의 모습. [강윤중 기자/경향신문]


1994년에 비견되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냉방용 전력 사용이 크게 늘면서 대규모 정전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죠. 입추가 지나면서 더위도 기세가 꺾였습니다. 일단 정전사태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전력 공급 부족 문제가 큰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력 위기를 핑계로 8월 6일 고리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고리 1호기는 수명이 다하고 고장이 잇따라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지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8월 7일자 사설에서 나란히 고리원전 1호기 재가동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 [한겨레 8월 7일자] 고리 1호기, 전력난 구실로 재가동 안 된다(링크)
● [경향 8월 7일자] 고리 1호기 재가동, 국민 신뢰 확보가 먼저다(링크)

두 신문 모두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고리 1호기의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전력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도한 전력 사용량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설 모두 정부의 '전력난 구실'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은 없습니다.

한겨레는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전력 과소비국"임을 지적하며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하는지는 불투명합니다. 전력 과소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애매하게 처리되죠. 문구 그대로 보자면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인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경향의 태도는 안타깝습니다. 경향은 전력 위기가 정점이던 8월 6일자에 '전력 수요 억제 위해 요금 현실화 불가피하다'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 [경향8월 6일자] 전력 수요 억제 위해 요금 현실화 불가피하다(링크)

경향은 이 사설에서 한겨레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보다 분명하게 표현된 정책 방향은 제목에서처럼 '요금 현실화'가 핵심입니다.

"일반 국민 중에서도 요금 인상을 반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과 기업의 부담 증가에도 불구하고 현재 원가의 87%가량에 불과한 전기요금은 단계적으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 전력 수요 증가세를 그대로 반영해 공급을 늘릴 것이 아니라 수요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전력 낭비와 과소비를 막기 위한 최우선 대책은 요금 현실화다."
- 경향신문 8월 6일자 27면

물론 이런 입장은 중앙일보의 뜬금 없는 '공동체 의식' 운운보다는 낫습니다(8월 7일자 중앙일보 사설 '전력위기 공동체의식으로 극복하자'ㆍ링크). 하지만 경향의 입장은 (한겨레도 마찬가지지만)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전력 낭비의 책임을 국민 모두에게 지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 현실화' 요구는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반발만 살 대안입니다.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현실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는 것은 끓는 물에 기름을 붓는 격이죠.

전력 과소비의 현실은 어떨까요?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가 전력 과소비국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 보입니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은 8092㎾h입니다. 이는 일본 6739㎾h, 독일 5844㎾h, 프랑스 7020㎾h 등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한겨레신문ㆍ경향신문ㆍ중앙일보가 함께 입을 모으듯 국민 모두가 책임지고 전력 소비를 줄이거나, 전기요금을 올려야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많이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8월 8일자 사설에 의하면 1인당 가정용 연간 전력소비량은 1088㎾h로 일본 2189㎾h, 프랑스 2326㎾h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한국의 전력소비량 가운데 산업용은 55%지만 주택용은 18%밖에 안 됩니다.

조선일보는 8월 8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절전 보조금은 기업들의 방만한 전기 소비 탓에 발생한 전력난을 해결하려고 국민 세금으로 기업들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와 기업은 이 상황을 국민이 언제까지 납득해줄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 조선일보 8월 8일자 35면

위에 제가 인용한 수치들은 모두 이 사설(8월 8일자 조선일보 사설 '기업들이 電氣 더 아끼지 않으면 '전력 위기' 계속된다'ㆍ링크)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조선의 사설은 전력 소비구조와 함께 비정상적인 전기요금 체계의 문제도 짚습니다.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97원입니다. 이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전기생산 원가의 87.5% 수준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산업용 전기요금은 누진제 적용도 받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주택용은 ㎾h당 128원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이라는 가중 누진제를 적용"받고 있습니다. 이는 경향이 생산 원가의 87%라고 애매하게 지적한 낮은 전기요금의 혜택을 국민 모두가 동일하게 받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기업이라고 다 같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3300V 이상 고압 전기를 공급받는 대기업은 ㎾h당 96.6원의 전기요금을 내지만, 저압을 사용하는 중소기업은 ㎾h당 112.9원을 부담하더군요. 즉 대기업은 가장 많은 전기를 쓰면서도 가장 적은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너지 과소비의 겉으로 드러난 '현실'만 지적하며 요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경향, 모두 함께 아끼며 살자는 중앙보다 조선의 분석이 훨씬 구체적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전기 부족을 이유로 고리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고, 추가적인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정부에 대응할 때도 설득력 있는 반대 근거로 제시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업들의 이익에 도전하지 못하는 중앙일보야 그렇다 칩니다. 하지만 한겨레와 경향의 사설 수준은 많이 아쉽습니다. 그들이 특히 특권과 부당한 권력 행사에 분노하는 시민들 편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신문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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