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못한…

핵무장, 남한 지배계급의 오래됐지만 새로운 열망 본문

언론스크랩

핵무장, 남한 지배계급의 오래됐지만 새로운 열망

때때로 2013. 5. 9. 16:04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한 장면. 영화에서 핵무기는 '억제수단'으로서 머물지 못하고 결국 사용된다.


북한 핵무장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총대를 멘 것은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다. 그는 조선일보 4월 15일자 31면에 실린 특별기고에서 "동서 냉전의 교훈은 핵무기는 핵무기로만 억제된다는 것"이었다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조선일보 4월 15일 31면ㆍ링크).

정몽준은 "국민의 3분의 2가 전술 핵이나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으로 자신의 주장이 혼자 만의 돌출발언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한국 국민들의 핵무장 열망은 꽤 오래됐고 그 깊이와 폭도 넓다. 1993년 출간된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핵무기에 대한 한국의 열망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대표적 소설이다. 이 책은 1년 만에 600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이러한 열망이 소수의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2000년 초반 원자력연구소의 우라늄 농축 실험은 국제사회의 우려 속에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까지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핵무장과의 연관성을 부정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입장은 아니었다. 영국 비비시방송은 "레이저를 활용해 무기급 우라늄을 추출해내는 기술은 민간용으로 활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한국이 밝힌 농축 우라늄 양은 0.2g으로 극미량이지만, 순도는 80% 가까이에 이른다"며 "이렇게 고농축된 우라늄은 핵무기 제조용을 빼고는 달리 활용할 방도를 찾기 어렵다"고 한국 정부의 해명을 비판했다
(한겨레 2004년 9월ㆍ링크).

당시 우라늄 농축 실험이 핵무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은 핵무장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011년 "한국도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이내에 기폭장치와 투발수단을 갖춘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000년 우라늄 농축 실험에 사용된 레이저 기술은 "세계가 괄목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고 유사시에 단기간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재정적ㆍ기술적 역량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과학자가 '핵무장'을 운운하는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의 전공과 소속을 고려할 때 완전한 허언은 아닐 것이다
(국민일보 2013년 2월 15일 3면ㆍ링크).

그렇다면 왜 정몽준이 핵무장 총대를 멘 것일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는 가만히만 있어도 언론에 보도되는 7선의 여당 중진 의원이자 세계 1위의 조선 기업인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 아닌가. 김의겸 한겨레 논설위원은 그 이유를 "정몽준이 군수업자라는 사실"에서 찾는다. 현대중공업이 "우리나라 방위산업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것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전에도 뛰어든 것을 근거로 든다. 한편 "요즘 한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면서 아파치 헬기 1조8000억원어치를 팔아먹고, 12조원 이상의 차세대전투기를 들이대는 미국 군사산업체의 판매전략이 그의 사업가적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내놓는다. 김의겸 논설위원의 주장은 군산복합체의 수장이 기업의 이윤을 위해 '핵무장'이라는 불놀이를 벌이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겨레 4월 26일 31면ㆍ링크).

정몽준의 제안이 '무기상'의 장삿속에 불과하다는 김의겸 논설위원의 분석은 지나치게 안이해 보인다. 그의 정치에 동의하거나 지지를 보내진 않지만 그는 대권에 도전해온 여당의 7선 의원이다. 그가 국회의원 자리를 어떻게 유지했느냐와 별개로 정치경력만 봐도 그를 단지 개별 자본의 이해에만 매여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자본가들이 모든 행동이 이윤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회는 오직 추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정몽준의 아버지 정주영의 소떼 방북 퍼포먼스를 오직 장삿속 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정주영이 가장 아꼈다고 알려졌고 그래서 현대그룹을 물려받은 [사실 알짜인 현대자동차는 정몽구가, 현대중공업은 정몽준이 챙겨 속빈 강정에 불과했지만] 정몽헌과 그의 아내 현정은도 '돈 안되는' 금강산 관광사업에 '명분' 때문에 매달리고 있지 않는가.

아니나 다를까 정몽준은 바로 한겨레에 반론을 보내왔다.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늘어놓는 부분은 역겹지만 "미국 같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나라에서는 군수산업이 그야말로 산업으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도 있다"는 그의 주장은 옳다
(한겨레 5월 7일 29면ㆍ링크). 세계 자본가 계급 내 그의 위치로 볼 때 정몽준이 AK-47소총, RPG-7과 같은 소형 무기만 팔아먹는 데 만족할 '로드 오브 워'의 유리 오로프와 같은 소매상을 꿈꾸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전 세계를 상대로 무기를 팔아먹는 미국 수준의 군산복합체는 아직 어불성설이다.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정부의 지원과 협력의 일환으로 군수산업이 기업의 기술발전에 도움이 됐겠지만 현재의 한국 대기업들은 정부 지원 없이도 충분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군산복합체'가 원인이 아니라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군산복합체가 성장한 데는 세계질서에서 제국주의 수장국이라는 배경이 중요하다. 미국에게 요구되는 군사적 역할 때문에 무기의 개발과 생산이 집중되고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자신을 낳아준 정부를 압박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측면에서 '군산복합체'에 대한 비판이 유의미하긴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잠시 이야기를 돌아가자. 1980년대 이후 '핵무장'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확산되지만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져 오는 보수 우파들은 공개적인 핵무장 주장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보수적 지배계급은 세계질서에서 한국의 지위를 소심하게만 파악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미국의 힘에 의해서 '대한민국'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전시작전권'에 대한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전작권의 환수는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홀로서기라는 보수우파에게 두려운 미래의 현실화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시절의 대양해군 전략이 이명박 정권에서 폐기됐던 것도 마찬가지다. 보수우파에겐 오직 북한 만이 상대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와 달리 개혁적 우파들은 한국의 성장에 고무됐고 자신감도 있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시절 군 현대화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군 전략이 바뀐 것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권시절인 2005년 마련된 '국방개혁2020' 계획에 따라 재래식 무기지만 첨단무기들이 도입된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간 무기수입은 세계 3위에 달한다
(2011년 12월 8일 8면ㆍ링크). 그리고 그 무기는 북한 만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 과정은 이명박 정권시절 들어 중단된다. 국방개혁2020 계획은 재검토되고 2009년과 2010년 무기수입은 그 전의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정몽준은 7선의 중진의원이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보수 지배세력에 속하진 않았다
[그는 상당 기간 무소속이었다]. 세계적 기업을 운영하는 자본가로서 언제나 미국에 주눅들어 있고 북한에만 방방 뛰던 보수우파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지닌 한국이 군사와 외교에서도 그 만한 역할을 하기를 바랄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은 그러한 열망에 충실히 따랐었다. 이는 미국의 바람이기도 하다. 중앙선데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방미 기간 오바마의 관심사는 "시리아ㆍ이란 등 중동 문제에 대한 한국의 협조"라고 보도했다(중앙선데이 5월 5일 3면ㆍ링크). 이미 한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등지에서 미국과 협력해왔다.

재래식 무기에 이어 핵무장까지 욕심내게 된 데는 미국의 힘이 예전만 못해보인다는 것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은 조선일보 특별기고에서 "
[재래식 무기를 사용한 미국의] 무력 시위는 북한이 핵무기를 쓰는 것을 진정시킬지는 몰라도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우방'이 보수우파의 바람 만큼 영원히 한국의 바람막이가 돼줄지도 의심스럽다. "아무리 긴밀한 동맹이라 해도 국가 이익이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과 정치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이스라엘이 핵무장을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조선일보 4월 15일 31면ㆍ링크). 이는 구체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에 대한 불안이기도 하다. 그는 특별기고에 이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계를 이혼할 수도 있는 결혼한 남녀에 비유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과 함께 "현 상태를 인정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더 만들지만 말라고 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에게는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숫자는 큰 위협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조선일보 4월 22일 29면ㆍ링크).

정리해보자. 정몽준의 핵무장 발언은 일개 정치인의 돌출발언은 아니다. 단순히 '무기상'으로서의 이득을 바라는 것일 수도 없다. 이는 경제성장에서 비롯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상층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새로운 지배계급의 열망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물밑에서 흐르던 핵무장 욕심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점으로 고개를 내민 것이다.

한국 사회 좌파가 제국주의를 다시 검토해야 하는 지점은 이 부분으로 보인다. 이미 2000년대 초반 파병반대 운동 때부터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더 이상 제국주의 피해자인 약소국가로만 한국을 바라볼 수는 없다. 한국군의 해외파병도 미국의 강제에 의한 것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한국군 해외파병은 베트남전 이후 한동안 중단됐다가 1991년 1차 걸프전을 계기로 다시 시작돼 2000년대는 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펼쳐졌다. 2012년 11월 현재는 15개 나라에 1440명이 파병돼 있다
(문화일보 2012년 11월 2일 3면ㆍ링크). 핵무장을 포함해 한국 군사력이 미국으로부터 홀로서는 것은 앞으로도 부침이 많을 것이다. 주변에 강대국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장애물 중 하나다. 그러나 정몽준과 과거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듯이 새로운 지배계급은 이전 지배계급보다 확연히 대외 지향적인 제국주의 노선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평화'라는 말로 포장할지라도 말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