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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에 답함

때때로 2013. 11. 22. 13:30



'응답하라 1994'가 시작할 때만 해도 전작인 '1997'을 넘어설까 싶었다. 그런데 어느새 전작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그 만큼 더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들은 '운동권'의 시각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이다. 황진미와 김낙호의 글이 그렇다.

사실 이 드라마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 '연애' 드라마다. 둘은 당대의 시대상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낸다. 김낙호는 "소품으로 향수를 자아내는 것을 넘어, 특정한 시대상을 꿰뚫어 나를 감동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응답하라 1994는 퓨전사극이다… 훌륭한 소품 너머 부족한 2%ㆍㅍㅍㅅㅅㆍ링크). 황진미는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것은 상실"이라며 "그때는 아직 명문대에 지방 학생들이 많이 진학했고, 대학에 공동체문화와 연대감이 있었으며, 계급 격차보다 문화 격차가 더 큰 화두였고,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음을 동경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94학번들이 졸업 직전에 외환위기를 맞아 청년실업에 내몰리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응사'가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ㆍ한겨레ㆍ링크).

다른 드라마들에선 문제시되지 않았을 것들이 이 드라마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제목에서부터 한 시절을 호출하기 때문일 것이다. 타리크 알리가 쓴 '1968: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은 1968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진보를 향한 투쟁의 풍경을 꼼꼼히 담고 있고 플로리안 일리스의 '1913년 세기의 여름'은 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주요 장면들을 그려낸다. 우리는 '응답하라 1994'에서 이러한 것들을 바라는 것일까?

김낙호와 황진미가 놓치지 않고 지적했던 1990년대 중반의 복잡한 상황이 우리를 더 그러한 회고로 이끄는 듯 싶다. 강남 압구정동과 홍익대학교 앞 거리에 오렌지족이 출몰하고 과 종강파티를 '락카페'에서 열기도 하던 시절. 한편 GATT가 WTO로 전환하면서 쌀 개방에 반대하는 투쟁이 서울까지 이어졌었던 때. 전라도 지역의 학생들은 열차를 멈춰 세워 타고 서울로 올라와 최루탄 속에서 파이프를 휘둘렀었고 서울에선 전지협 노동자들이 경희대 뒷산을 넘어 경찰에 쫓겼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던 89~90학번은 '운동의 시대'는 갔다며 동아리방과 과방에서 바둑과 음주에 빠져있었다. 한총련이 1993년 출범했지만 아직은 전대협 진군가가 더 익숙했었고 운동권 대자보의 화려함은 그 이전과 이후를 통털어 절정을 이뤘던 때였다.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면 더 그렇다. 황진미의 지적과 달리 '문화 격차'는 '계급 격차'를 상기시키며 대학 '공동체'는 분열되기 시작한 때다. 이미 당시에도 명문대 진학생의 절대 다수는 서울 강남 출신이었다. 지방 출신 학생은 강남 출신 학생들과 격차를 느끼며 분열됐다. 지금도 여전한 지역차별 때문인지 경상도 출신 학생들의 사투리는 과방과 동아리방을 가득 채웠지만 전라도 출신 학생들의 사투리는 듣기 어려웠다. 여학생의 사투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1994년을 '호출'하려고 할 때 당시 고등학교 졸업생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대와 산업대 방송대를 포함한 대학 진학률이 기껏 45%였던 시대다. 연세대와 같은 명문대를 가는 학생은 더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응답하라 1994'든 이 드라마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든 놓치고 있는 것은 1994년을 호출할 때 '대학'은 당시 젊은 층이 살던 세계의 '절반'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반 안에서도 이미 낭만적 공동체는 해체되고 있었고 계급 격차가 대학 내 문화를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좌파는 '대학생'을 단일한 집단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있는 데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실이 아니었다).

1980년대가 1990년대부터 작가들에 의해 회고되기 시작했던걸 고려하면 1990년대에 대한 회고는 많이 늦었다. 아니 앞으로도 1980년대 만큼의 회고가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잊혀질 수 없는 이 시절을 언젠가 누군가는 기록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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