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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기소개'의 본질

때때로 2008. 8. 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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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권여선 장편소설|문학동네

몇일 전 모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서로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온라인 카페죠. 이 카페엔 '자기소개'란이 있습니다. 참 오랜만에 '자기소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던 생활이 지겨웠던 전 대학에 입학 하자마자 남들 앞에 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가장 첫 관문이었던 '자기소개'. 과, 동아리, MT, 미팅 … 수십 번의 경험에도 끝내 익숙해지기는 어렵더군요. 그건 아마 '자기소개'의 본질이 "소극적인 자들이 도태되고 적극적이고 용감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세계로의 입사식"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푸르른 틈새|23p.
'자기소개'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암시했다. 다들 자연스럽게 나를 알고 있으려니 하는 유년의 수동성을 넘어 당당히 내가 바로 아무개라고 자기를 주장해야 하는 세계, 서로의 존재를 매번 정겨운 방식으로 일깨우는 공동체가 아니라 각지고 독립된 개체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사회, 그런 어른들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우리는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자기소개라는 절차는 일종의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소개자는 자기 이름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명료히 발음해야 했고, 듣는 청중은 소개자가 임의로 요약한 그 혹은 그녀의 존재성을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다. 자기소개는 소극적인 자들이 도태되고 적극적이고 용감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세계로의 입사식이었다. 불리기를 기다려서는 안 되고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부르심을 유도하는 방식,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한시바삐 소비하도록 이름을 세일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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