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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와 손 잡은 '뉴레프트' 주대환?

때때로 2008. 9. 2. 13:22

민주노동당의 전 정책위 의장이었던 주대환씨가 뉴라이트 재단이 발행하는 계간지 '시대정신'에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라는 글을 실었다. 발빠른 조선일보는 류근일 칼럼 '어느 좌파 지식인의 '커밍아웃''(조선일보 9월 2일, A34면)에서 주대환씨의 글을 칭찬하고 나섰다.

한국의 좌파가 진정으로 유의미(有意味)한 진보로서 동시대인들의 행복추구에 기여하려면 그들은 그런 이중성에서 벗어나 주대환씨 등이 던진 안팎의 비판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주대환씨가 남한 좌파 내에서 노골적인 우파 사민주의 정책을 주장해 온 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다. 그는 남한의 보수 우파에 대한 비판보다 NL의 민족주의ㆍ친북경향에 대한 비판에 더 큰 힘을 쏟아왔다. NL에 대한 공격만큼 급진적 좌파에 대한 공격도 빼놓지 않고 계속해왔다. 류근일 칼럼에 인용된 구절들로 봤을 때 새로운 얘기랄 것 없는 내용들이라 딱히 뉴라이트 재단의 '시대정신'을 구입해 주대환의 글을 읽을 생각은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이제 좌파는 뉴레프트 운동으로 업그레이드되고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을 '시대정신'이라는 우파 잡지에서 한 것이다.

그가 그간 겪은 자신의 고뇌의 결과를 좌파 매체 아닌 우파 매체를 통해 커밍아웃시켰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무슨 말을 했느냐"는 내용 이전에 잔잔한 충격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주장이 어떤 매체를 통해 실리느냐는 호소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좌파 매체에서 실렸던 주대환의 주장은 좌파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우파의 기관지에 실린 주대환의 이번 글은 우파, 뉴라이트를 향한 것일게다. 그렇다면 주대환의 주장은 다시 읽어야 한다.

이제 좌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 시절부터의 광범한 합의를 할 수 있는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평등한 사회경제적 토대 위에 건국된 위대한 나라다. 결코 세계에서 뒤떨어졌다고 볼 수 없는 보통선거권을 실시한 현대 민주주의 국가였다.
-주대환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
(류근일 칼럼 '어느 좌파 지식인의 '커밍아웃''에서 재인용)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이 주장 뜬금없지 않은가? 뜬금없지 않다. 최근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우파들은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함께 지난 '좌파'들의 '자학주의 사관'을 고쳐 '승리주의 사관'에 입각한 현대사를 새로 써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를 '긍정'적으로 볼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물론 지난 60년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만큼의 경제적 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낸 민중들의 힘엔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아니 더 크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반공주의와, 군사주의, 독재와 반인권적 노동 탄압에 대한 역사를 우린 또한 잊을 수 없다. 더구나 지난 100여일의 촛불시위로 많은 사람들이 소수만을 위했던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대환은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주대환이 모를리 없겠지만 뉴라이트가 '대한민국의 긍정'을 얘기하는 것은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을 잇는 독재 세력들의 민주주의 파괴행위와 인권 탄압,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의 역사를 지워버리기 위함이다. 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에 고통받고 있고 미래를 만들어갈 청소년들이 오직 '경쟁'과 '승리'만이 진리인 '미친 교육'을 받고 있다. 친일파와 그 협조자들에 의한 독재와 착취, 억압의 과거는 우리에게 아직 현실이다. 우리의 과거를 잊는 것은 주대환이 제아무리 '사회민주주의'적 미래의 청사진을 그린다 할지라도 삶의 더 큰 고통만을 현실에서 안겨줄 것이다.

지난 10 몇 년간 경계에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여줬던 주대환은 결국 균형을 잃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레디앙 이광호 기자의 글귀를 인용하면서 마친다.

사실 주 전 의장의 말은 그가 평소에 해오던 주장들이다. 진보정당 내부에서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가 주장해온 내용이다. 그 얘기를 다른 곳, 소위 '뉴라이트'의 기관지에 게재한 것은 같은 내용이라도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곳은 이제 과거의 동지들이 아니라, 새로 사귀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이며,  그곳은 유럽식 사민주의를 고민하는 곳이 아니라, 친북 빨갱이 독재 등의 표현을 동원해서 좌파에 대한 '역사적 구타'를 해오던 곳이다.
주 전 의장은 자신이 사회주의와 이별하고, 진보정당과 결별했다는 ‘전향 소식’을 공개적으로 확실하게 하기 위해 지난 총선 당시 ‘무소속’ 출마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주 전 의장의 글 제목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가 '시대정신'에 게재되고 '조선일보'에 인용된 것을 보면서, 그 제목이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주대환의 진로’와 겹쳐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 레디앙 '조선일보 류근일, 주대환 칭찬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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