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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의 대표적 공산주의자, 박헌영

때때로 2009. 10. 18. 23:13

식민지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주역이었던 박헌영의 평전이 지난 8월에 출간됐습니다. '경성 트로이카' '이현상 평전' 등을 통해 한반도 공산주의 운동 역사 되살리기에 힘써온 안재성이 쓴 책입니다.

박헌영 평전|안재성|실천문학사

박헌영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그는 소련과 북한, 남한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위치에서 서술하려고 애씁니다. 공산주의에 호의적인 저자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력은 대체적으로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소련의 조선공산당에 대한 호의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들 체제의 잘못에 대해 눈감지 않으려 애쓰죠.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의 불행한 처지와 달리,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주의를 이식시키려는 소련군의 지원에 따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가 있었다. 소련이 동유럽과 북한에 사회주의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 민족을 침략했던 자본제국의 야욕과는 분명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세계의 피지배계급을 해방시키겠다는, 순순한 이념적 목표를 위한 지원이란 점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스탈린주의의 결함을 그대로 이식시킴으로써 커다란 폐해를 가져오게 되지만, 자본제국의 침략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심 없는 지원이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279쪽

그러나 인용된 부분에서 보이듯 이러한 노력은 자주 실패하게 됩니다. 이는 무엇보다 박헌영이 철저한 친소파였다는 점 때문입니다. 저자는 박헌영의 실패 중 많은 것을 소련에게, 그리고 당시 세계 정세에 책임지우려 합니다. 이는 '역사의 조연들'이란 장에서 정점을 이루죠. 물론 당시 냉전이 시작되던 곳으로서의 한반도의 특수성을 생각할 때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 비판적으로 지적하듯 이미 스탈린 체제의 폐해가 드러날 대로 드러났고(이건 후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 전까진 약간 애매하긴 하죠. 하지만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스탈린의 대숙청을 몰랐던 상황은 아니죠), 박헌영 자신은 몰랐다 하더라도 자신의 첫 부인과 절친한 동지가 이미 그 체제에 희생이 된 상황에서 끝까지 소련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했던 태도는 해방 후 재건된 조선공산당, 이어서 남로당이 패배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가장 큰 건 '찬탁/반탁' 논란에서의 실패입니다. 당시 조선공산당이 탁치에 찬성한 것이 아닌 모스크바 3상회의에 찬성한 것이라고 변명하는 건 많이 부족해보입니다. 반탁운동 초기에 앞장선 것은 공산당이었습니다. 이후 소련의 입장으로 돌아선 박헌영과 공산당 지도부의 잘못된 입장으로 인해 공산당 내 혼란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우익에게 부활의 기회를 부여해줬죠. 이 책에서도 저자는 소련의 입장을 옹호하는 위치에서 설명합니다. 미국이 워낙 강경하게 탁치를 주장해서 스탈린이 어쩔 수 없이 그럼 5년만 탁치를 하자고 동의를 해줬다는 식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박헌영이라는 걸출한 혁명가의 생애를 훌륭하게 추적합니다. 특히 집중하는 건 그를 '미제의 스파이'로 모는 혐의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모함이죠. 그럼에도 여전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칭 좌익에도 있다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이 필요하기도 하겠죠.


p.s.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걸리는 부분이 몇몇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겠군요.

"박헌영이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낸 북베트남은 동서 냉전이 낳은 또 다른 분단국가였다. 박헌영과 국제레닌학교 동기동창인 호치민이 이끄는 북베트남 공산당은 대규모 숙청 사건 같은 것은 일으키지 않고, 치밀한 전략으로 남베트남 및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해 장차 통일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558쪽

이건 완전히 잘못된 설명입니다. 호치민은 베트남 내 트로츠키주의자를 학살했죠. 분명 그가 미제국주의와 맞서 싸워 이긴 점은 칭송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잘못을 역사에서 지우면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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