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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11 아랍혁명

이집트 저항, 도약하는가

때때로 2011. 2. 10. 13:06


2월 8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와엘 고님(왼쪽)이 시위대에 둘러싸여 연설하고 있다. 구글의 중동ㆍ북아프리카 마케팅 책임자인 고님은 지난달 27일 시위 중 경찰에 붙잡혔다가 7일 석방된 뒤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8일 타흐리르 광장의 연단에 선 고님은 "나는 영웅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영웅"이라고 말하고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모두 한마음으로 이집트를 위해 싸우자"고 외쳤다. [중앙일보 카이로 로이터=뉴시스]

뉴욕타임스 "2주 만에 가장 많은 인파"

소강 상태로 접어들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8일과 9일 연이어 최대 규모의 시위가 이집트를 뒤흔들었습니다. AP 추산 25만명, 뉴욕타임스는 "2주 만에 가장 많은 인파", BBC는 "시위가 시작된 지난달 25일 이후 가장 큰 규모"라고 보도했습니다.

시위의 규모만 커진 것은 아닙니다. 9일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서 농성과 집회에 참여하던 일부 시위대는 의회로 행진을 시도했습니다. 의원들의 자진 사퇴와 의회 해산을 요구했죠.

이집트의 저항이 사그라들줄 모르자 이런저런 양보안을 내놓았던 술레이만이 시위대를 협박하고 나섰습니다. 9일 언론사 대표들을 만난 술레이만 부통령은 "경찰력을 동원해 문제를 풀길 원치 않지만, 시위사태의 장기화를 더는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정권이 뒤집히거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당장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대화로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남은 선택은 거대한 혼란과 쿠데타뿐"이라고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저항의 날로 급진화 하면서 그의 협박은 힘을 잃는 듯 합니다. 술레이만의 든든한 지원자로 보였던 미국조차도 '긴급조치 해제' '언론인ㆍ시민운동가에 대한 구타ㆍ폭력ㆍ체포 즉각 금지 및 집회와 표현의 자유 보장' '야권과의 대화' '정권이양 로드맵과 일정개발에 야권 인사 참여'를 촉구하고 나섰으니까요.

[조선일보] 수십만 시위대 재집결… 정부 "더이상 못 참아" 링크
[조선일보] 이집트 시위대 의회 앞 진출 … 해산 요구 링크


노동자의 시위ㆍ파업, 독립노동조합의 건설

특히 노동자들의 시위 진출이 이집트 저항의 중요 변수로 급부상 하고 있습니다.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시위에 당연히 노동자들도 포함돼 있었겠죠.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텔레콤 이집트 노동자 300여 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인 수에즈 운하에서도 노동자의 집단적 저항이 시작됐습니다. 수에즈운하당국 소속 5개의 서비스회사 소속 6000여 명의 노동자가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8일부터 연좌시위에 들어갔습니다. 2000여 명의 섬유노동자도 노동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하네요. 수도인 카이로에서는 공공부문 청소노동자 1500명 이상이 정부 중앙청사 앞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건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달 30일 독립노동조합연맹이 건설됐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1987년 6월의 대중시위 이후 노동자의 집단적 저항까지 한달이 걸렸죠. 그리고 노동자 대투쟁 이후 10년 가까이 흐르고서야 민주노총이 만들어졌다는 것과도 비교해보세요. 이집트의 상황은 무척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참세상] 이집트 봉기, 도약하는가 링크


이집트 저항의 새 아이콘 '구글'?

특별한 지도자 없이 진행되던 이집트 저항에서 30살의 청년이 시위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구글의 중동ㆍ북아프리카 마케팅 매니저인 와엘 고님(Wael Ghonim)입니다.

지난달 27일 시위 중 체포됐었던 고님은 11일만인 8일 풀려나 타흐리르 광장의 군중 앞에 섰습니다. 그는 "나는 영웅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영웅"이라고 말하고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모두 한마음으로 이집트를 위해 싸우자"고 외쳤습니다.

[중앙일보] 'SNS 영웅' 고님, 시위 다시 불붙이다 링크
[조선일보] '구글 청년' 고님이 떴다 … "시위 새 목소리를 얻다" 링크


이슬람 세계에 돌파구를 내다

중동의 정치지형을 지배해온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지배(사우디아라비아)와 테러(알 카에다), 시아파-수니파의 종파간 대립, 기독교ㆍ유대교와의 대결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서구 지배자들에게는 물론 좌파들에게까지도 이슬람 세계의 종교족 완고함이라는 이미지를 떨치기 어렵게 했죠. 일부 좌파도 중동지역 인민의 '민주주의적 자질'을 의심할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강력한 탄압으로 인해 세속주의적 대안이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집트의 저항은 이슬람 세계를 둘러싼 세계의 이러한 인식은 물론 무슬림 스스로의 인식에도 큰 균열을 나았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처음으로 종파간 대립을 뛰어넘는 '대중적' 저항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이집트는 알 카에다의 2인자인 알 자와히리의 모국이지만 2주가 넘어가는 이번 저항에서 알 카에다는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란의 최고 종교 지도자인 하메네이조차도 지난 2월 4일 이번 이집트 혁명의 '세속적' 성격을 인정하면서 "30여년 전에 발생한 위대한 이슬람 혁명이 이집트나 튀니지, 기타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하다"라고 말했다."
- '종교 뛰어넘는 단결, 새로운 저항운동', 문이얼(아이비스에너지전략연구소), 레디앙

이집트의 저항이 초기와 같은 열기를 계속 지닌채 전진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대중의 열기를 담을 용기(실린더), 즉 조직의 부재 때문입니다. 물론 대중적 기반을 지닌 무슬림형제단이 좀더 세속주의적으로 움직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내부의 근본주의적 세력의 압력 또한 무시할 순 없습니다. 혁명의 전진이 꺾였을 때 퇴행적인 종교 근본주의적 압력은 다시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이집트 혁명은 실제적인 결과를 낳고 있기도 합니다. 대중의 폭발적 저항에 놀란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밀려 위로부터의 변화를 꾀하는 듯 합니다. 심지어 그 완고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조차 말이죠. 알-파이잘 사이디 왕자는 지난주 5명의 국민을 불러 얼마전 발생한 홍수 사태의 수습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습니다. 겨우 5명이라고는 하지만 그 중에는 정부를 비판해 2년간 감옥에 갇혔었던 반정부 블로거도 포함돼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레디앙] 이집트 중간결산 … 권력자 퇴진선언 이어져, 중동이 바뀐다 링크


굳은 벽에 균열을 내고 전진하기 시작한 이집트 인민에게 승리가 함께하길 바라며 오늘의 이집트 소식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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