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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지 못한…
영화 '명왕성'. ※아래 글에는 영화 '명왕성' '더 테러 라이브' '설국열차'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승열패(優勝劣敗)'는 우리 시대 유일한 도덕률이다. 그렇다고 말해진다. 보다 나은 능력과 자원을 지닌 자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사회가 나뉘어지는 것은 당연하게 치부된다. 승자독식은 우승열패 사회의 당연한 결과다. 믿을 것은 자신의 몸뚱이 뿐인 노동자는 "겁에 질려 주춤주춤" 자본가의 작업장으로 걸어들어간다. 탈출구는 교육이다. 물론 자신은 탈출하지 못한다. 자신의 자식만이라도 다른 삶을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교육은 상층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동아줄이 되어 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회의 동아줄은 많지 않았고 그럴 수록 동아줄을 잡기 위한 노동계급 자녀들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평..
왼쪽부터 계몽주의 개혁가 요한 스트루엔시, 덴마크 절대왕정의 군주 크리스티앙 7세, 영국에서 온 왕비 캐롤라인 마틸다. 경향신문은 '레 미제라블'의 흥행돌풍을 다룬 특집 기사에서 '비슷한 영화'로 로얄 어페어'를 소개한다. 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로얄 어페어'를 추천한다. 정치는 그 시대 민중의 수준이라는 결론이 쉽게 와닿는다." - 경향신문 1월 14일자 8면(링크) 경향신문의 이런 주장은 박근혜가 당선됐으니 경상도 사람들은 민영화에 피해를 입어도 싸다는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 정책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가난한 사람들이 왜 그녀에게 투표했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멍청해서"라는 답변이 달린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 '로얄 어페어'는 당..
영화 '방가? 방가!'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적한 농촌과 산골의 간이역은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간이역이 많이 사라졌죠. 기차가 멈추지 않은 건 오래됐고요. 그 간이역은 금의환향의 꿈을 안고 서울로 향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꿈이 첫걸음을 떼던 곳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꿈은 결코 이뤄지지 않았죠. 작은 가게라도 하나 마련해보겠다고, 사장님 소리 한 번 들어보겠다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도 아득바득 돈을 모아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간신히 가게 하나 차려봤자 하루에 하나씩, 골목길을 꺾을 때마다 새로 생기는 노래방, 치킨집, 대여점, 세탁소, 구멍가게들. 가난한 이들 사이의 피튀기는 경쟁에 마을의 정겨운 '이웃사촌'은 옛말이 되가는거죠. 그래서 더이상 우리는 '금의환향..
사회성이 좋다라는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근사근하고 눈치가 빠른 데다가 유머 감각이 풍부하고 배려심이 깊으니 자연히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죠. 이런 이들은 타인을 대함에 있어서 차별 없이 공정하게 대하고 항상 자신보다는 남을 우선시 하죠. 그와 반대로 사회성이 전혀 없다고 핀잔 듣기 일수인 사람들은 타인을 대하는 데 있어서 차별을 두고, 눈치가 없으며, 남보다는 자신을 우선시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처우를 받죠. '왕따'. 왕따의 문제는 따돌림을 받는 당사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도 왕따가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자신이 왕따가 돼지 않기 위해 타인을 왕따로 만드는 현실로 나타납니다. 어울려 ..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농촌 인구가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인구의 50%를 넘던 농촌 인구는 현재 한국의 경우 20%를 밑돌고 있습니다. 농업에 있어서 산업적 생산의 발전과 국제적 농산물 무역으로 농업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수는 앞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농업이 아닐지라도 시골에서 자연에 기대 삶을 살아오던 생활 양식의 변화는 길게 봐도 400여 년이고 한국과 같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엔 몇 십년에 불과하죠. 그래서 그럴까요. 40대 이하의 대부분이 도시에서 낳아 자랐음에도 시골 생활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죠. 그건 아마도 도시 생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한 '판타지'일 듯도 싶습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마을에 부는 산..
2008년은 이스라엘이 건국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수 천년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평화롭게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산지 60년이 되는 해죠. 시온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정당화시키는 두 가지 신화가 있죠. 첫 번째는 홀로코스트입니다. 물론 많은 유태인들이 나치 독일에 의해서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어야만 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고통 속에 독일의 패망을 기다려야만 했죠. 분명 그들의 희생을 우린 기억해야만 하고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고 해서 홀로코스트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 용서받을 순 없습니다. 더구나 아랍인들이 유태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주역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