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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동북부 토브룩시의 한 광장에서 22일(현지시간) 시위대와 군인들이 함께 무아마르 카다피를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현재 토브룩을 비롯한 리비아 동부 지역은 반정부 시위대와 카다피에게 등을 돌린 군인들에 의해 대부분 장악됐다. [중앙일보, 토브룩 로이터=뉴시스]


카다피는 유엔에서 제일 길게 연설한 기록(4시간29분)을 갖고 있죠.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올라있습니다. 그런 그가 어제(22일) 리비아 인민들에게 독기와 분노로 가득찬 협박을 75분간 TV를 통해 쏟아냈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이 스러질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전의를 다지는 그는 연설 내내 저항하는 인민을 "환각 유발 약물을 복용한 자들" "더러운 쥐들" "수염난 남자들(이슬람 근본주의자를 뜻하는 말)" "바퀴벌레"라고 비난했습니다. 말뿐인 욕설은 아닌 듯 합니다. 연설에서 그는 얼마나 남았는지 모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행동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군에는 석유 관련 시설을 파괴하라는 명령도 내렸다고 합니다. 한겨레는 카다피의 이러한 모습이 "로마를 불태운 네로 황제"를 떠올리게 한다고 꼬집었죠.

"과대망상 독재자" 겉모습 … "치밀한 카리스마" 분석도, 한겨레(링크)
75분간의 원맨쇼 - 카다피, 국영TV 나와 격한 몸짓으로 연설, 조선일보(링크)

시위 열흘이 가까워지면서 리비아의 상황은 더욱 예측불허가 되고 있습니다. 해외 언론의 취재가 봉쇄된 탓에 '혼란'과 '학살'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 불투명하지만 PKO 파병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던 군사적 개입이 리비아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1990년대 발칸반도와 아프리카 분쟁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더 큰 혼란과 참극만 빚었죠. 게다가 미국의 개입으로 정치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카다피의 과거를 돌이켜볼 때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개입은 카다피에게 구명줄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1980년대 경제정책의 실패로 카다피는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때 마침 미국은 다른 이유로 트리폴리와 벵가지를 폭격했습니다. 미국의 공격은 '반제투사'로서 카다피의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해 정치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줬죠. 1990년대에도 비슷한 일이 하나 더 있었죠. 카다피는 1987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와의 협력으로 개방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정책으로 큰 손해를 본 농민과 노동자의 카다피에 대한 분노는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이는 현재 저항의 깊은 뿌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1992년 유엔은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했습니다. 앞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외부적 제재는 다시 한 번 카다피의 정치적 목숨을 연장시켜 줬습니다. 이번에도 국제사회의 개입-군사적 개입 혹은 경제제재-는 '반제투사'라는 실제와 다른 카다피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해 그의 정치적 권위를 높여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유엔의 개입 방식을 봤을 때 카다피를 실각시키더라도 기존의 권력, 즉 부족에게 힘을 몰아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거리의 저항에서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권력을 고사시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리비아는 왜 격렬한가?, 문이얼, 레디앙(링크)

물론 매일 같이 신문 국제면을 가득 채운 학살과 참극의 소식은 우리에게 무언가 행동을 요구합니다. 아마도 가능한,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국제사회의 개입 수단은 '비행금지 구역 설정'과 이집트ㆍ튀니지ㆍ알제리 등 주변 국가의 국경 개방 및 난민 수용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카다피의 공군을 이용한 학살을 당장 저지할 유효한 수단임과 동시에 탄압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수단으로 보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집트 군대는 리비아-이집트 국경을 24시간 개방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거리에서 저항을 지속하고 있는 리비아 인민에 대한 신뢰가 필요한 듯 합니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전직 육군 소장인 하니 사드 마르자는 "동부의 모든 지역이 카다피의 통제에서 벗어났으며 시민과 군인이 손을 맞잡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CNN은 "봉기를 지휘하는 단일하고 통일된 지도부는 없는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부 지역 일부에선 시위 지도부가 질서 회복을 위해 자체적으로 '인민위원회'들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한국에서 광주는 폭도들이 점령한 무정부 구역으로 보도됐습니다. 해외에서는 전두환의 무자비한 학살 희생자로서만 보도됐습니다.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는 또한 새로운 인민의 권력이 싹트고 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지금 리비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위 둘 중 하나는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42년간의 독재 체제를 깨뜨리고 분출하기 시작한 리비아 인민의 저력을 믿어볼 때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튀니지에서 시작한 아랍혁명은 단 몇 주만에 혁명의 다양한 단계를 급속도로 뛰어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튀니지에선 거리에서의 시위, 이집트와 바레인에선 노동자의 총파업, 그리고 리비아에선 전면적인 무장항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위대 서부 일부 도시도 장악, 한겨레(링크)

저항의 물결은 아랍 세계뿐 아닙니다. 그리스에서 다시 노동자들이 긴축재정에 반발해 총파업을 벌였습니다. 미국 위스콘신에서도 주지사의 완강함에도 불구하고 공공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를 위한 저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848년 유럽의 혁명은 실패로 끝났음에도 혁명 이후의 유럽은 이전의 유럽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리비아 인민의 승리를 응원합니다.

그리스 노동계 긴축재정 반발 총파업, 조선일보(링크)
미 위스콘신 '반 공무원 노조법' 전선 확대, 한겨레(링크)

Posted by 때때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연풍청년 2013.02.20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나 했는데.. 때때로님도 외세를 끌어들인 리비아 반란군을 인민으로 보시는군요. 그러면 지금 리비아 인민들을 수탈하는 외세 자본주의는 리비아 인민들의 해방을 도왔으니 당연히 보상을 얻어 가는건가요?

    '리비아 인민'들은 헌법을 부정하고 반란을 통해 정권을 찬탈 하였습니다. 게다가 외세를 끌여들여 석유자원은 물론이고 재건사업(NATO만 아니었으면 재건 따위는 필요도 없었음) 한답시고 엄청난 기업이 들어갔고 가고 있습니다. 리비아 반란 덕분에 유럽 제국주의 경제위기는 많이 극복되고 있지요.

    우리나라도 전개과정 등 다른 부분이 있지만, 헌법을 부정하고 반란을 통해 정권을 잡은 집단이 있었지요. 육군소장 전두환 등이 세계 최장기간 쿠데타를 통해, 광주에서 양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 했습니다. '리비아 인민'이라면 5공정권에게는 한국 인민이라... 표현이 어색하네요.

    • 때때로 2013.02.22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국가와 체제의 시작은 '헌법을 부정'하는 '반란'이었지요. 전두환과 박정희의 쿠데타는 노동자와 인민을 억압하는 '소수'에 의한 반란이라고 한다면 현재 아랍을 휩쓸고 있는 반란은 착취받고 억압받는 노동자 인민 '다수'에 의한 반란이지요. 모든 '반란'을 합법성의 견지에서만 바라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리비아 반란의 시작은 분명 다수 노동자 인민의 행동이었습니다(이 글은 리비아 반란의 초기에 쓴 것이고요).

      물론 현재 리비아 상황은 안타깝게 됐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리비아반란의 주도권을 카다피 치하에서 그에게 복종하던 이들에게 빼앗겨서지요. 프랑스로 망명신청한 법무부 장관서부터 무수히 많은 카다피 협력자들이 반란이 '대세'가 되는 듯 하자 배를 갈아타고 마치 해방과 자유의 투사인냥 자처했죠. 지금 자료를 찾지 못했는 데, 그래서 당시 폭격 전에 리비아 아나키스트들이 외세의 개입과 당시 반란의 주도권을 잡아가던 지배계급 내 일분파들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었죠.

  2. 연풍청년 2013.02.20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력 반란을 보는 관점은 경향신문의 논조와 같으신데.. 비판도 하시면.. 관계가 껄끄러우시겠네요.

    • 때때로 2013.02.22 1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개 독자인데 관계가 껄끄러울 게 뭐 있겠습니까.

      딱히 어떤 신문을 지지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그때그때 쓸만한 주장과 자료가 있으면 챙겨놓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