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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 폭발하고 있죠. 이탈리아는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이탈리아 통계청이 7일 발표한 2012년 2분기 경제 성장률은 -0.7%입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의 구제금융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로존 내 세 번째 크기의 경제규모를 가진 이탈리아의 위기는 그리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의 파국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페인은 10년짜리 국채 금리가 7.6%까지 치솟았습니다. 미국의 2분기 성장률도 1.5%로 내려앉았습니다. 중국도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이 6분기 연속 떨어졌습니다. 2분기에는 3년 만에 8% 아래로 내려갔죠.

● [연합뉴스] 기준금리 동결 배경은 '7월 인하 효과 지켜본다'(링크)
● [한겨레] "중국에 국가위기 없는 건 민중에 부채를 떠넘기기 때문"(링크)

2008년 금융위기로부터 비롯한 이번 위기의 여파가 참으로 깊고도 끈질깁니다. 금융권에 대한 막대한 구제금융은 정부의 재정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미국 정부야 버티지만 그러한 힘이 없을 뿐 아니라 통화정책도 펼칠 수 없는 유로존 국가들은 그야말로 함정에 빠진 격입니다. 금융권으로 유입된 돈은 곡물에 대한 투기로 이어져 세계 곡물가의 급격한 상승을 불러왔고 이는 2011년 '아랍의 봄'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2008년 위기가 발생하자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금융산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죠. 폰지사기와 같은 관행이 만연하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버나드 메이도프가 대표적이죠. 지나친 규제 완화와 금융화로 금융상품을 만들어 팔고 사는 이들조차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도 폭로됐습니다.

1997년 위기 때 부정ㆍ부패가 만연한 '정실 자본주의'가 위기의 근원으로 지목됐던 것처럼, 이번에는 혼란을 키운 활극의 주인공으로 금융산업에 비판의 촛점이 맞춰졌습니다. 당연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국가간 금융거래의 장벽도 높여야 하고 말입니다.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는 다른 분석과 대안을 내놓고 있습니다(물론 마르크스주의 내에도 다양한 경향이 경합하고 있죠). 오늘 살펴볼 책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책갈피, 이하 '21세기 대공황')는 마르크스주의 내에서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 이하 TRPF)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입장을 담고 있습니다(저자 중 짐 킨케이드는 비판적 입장에서 저자 중 한 명인 크리스 하먼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이하에서 그의 주장은 제외합니다).

TRPF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원재료ㆍ원료ㆍ생산시설 등에 대한 투자가 노동력에 대한 투자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전자를 불변자본이라 부르고 후자를 가변자본이라고 부르죠. 마르크스에 의하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의 노동입니다. 따라서 자본가에게 중요한 이윤이 되는 잉여가치도 인간의 노동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죠. 결국 완성된 상품에 기존의 가치를 이전만 시키는 불변자본이 급격히 증가하면 이윤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르크스는 다양한 상쇄경향이 있어서 항상 저하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21세기 대공황'의 저자들은 마르크스의 바로 이 TRPF가 현재 경제위기의 가장 큰 배경이라고 주장합니다. 1960년대 최고 수준에 다다렀던 이윤율은 1970년대 위기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있다고 합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잠시 성장하지만 결코 1960년대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죠.

"최근의 금융위기는 1970년대부터 세계 자본주의를 괴롭혀 왔던 바로 그 질병, 즉 이윤율 하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착취율 증가 덕분에 이윤율 하락세가 잠시 멈췄고 심지어 약간 회복되기도 했지만, 거듭되는 침체를 막기에 충분할 정도의 기업 투자를 독려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신용경색부터 세계 경제위기의 공포까지', 크리스 하먼, '21세기 대공황' 139쪽(이하 모두 같은 책).

"이번 위기는 직접적으로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양산한 호황에서 비롯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 측면에서 이번 위기는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을 반영한 자본주의의 장기 불황 국면에서 발생했다."
-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세계 경제의 위기', 장시복 250쪽.

"이번 위기의 배경은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 세계 체제 전반에 걸쳐 시작된 이윤율의 장기 저하와 그 결과인 장기 불황이다."
- '21세기 세계 대공황', 정성진 257쪽.

이러한 이윤율의 장기적 저하는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가 근거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구체적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1970년대 급락한 이윤율은 1980년대 이후 조금씩 회복되지만 결코 과거의 수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거의 정체하고 있다는 것이죠. 신경제라 불리며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경제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찬양받던 1990년대 중반부터 2001년까지의 미국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2001년 위기에서 회복된 후 2007년 다시 붕괴하기까지의 성장도 그렇습니다.

"모슬리의 수치들은 장기 호황기(1947~1968년)에 이윤율이 18~22퍼센트를 맴돌았음을 보여준다. 그 후 이윤율은 1970년대 내내 11~22퍼센트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1980년대 말에는 약 14~15퍼센트까지 올라갔고, 1990년대 중반에는 16~18퍼센트를 기록했다. 다시 2000년대 초에 14~15퍼센트까지 떨어졌다가, 2004년에 19퍼센트까지 올라갔다. 다시 말해, 지난 25년 동안 단지 한 해(2004년)에만 장기 호황기 당시의 최저 수치에 근접했던 것이다. 미국 주요 기업들이 발표한 대차대조표도 2005~2006년에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 '이윤율은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크리스 하먼 168~169쪽.

이렇게 장기적으로 저하한 이윤율이 경제위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요? 이것을 살피기 위해 저자들은 우선 1970년대의 추락으로부터 나온 지배계급의 대응, 신자유주의를 언급합니다.


신자유주의의 부흥: 착취율의 증가와 금융화

실질임금의 하락, 노동시간의 증가로 나타나는 착취율의 상승이 1980년대 이윤율 회복을 위한 주요 신자유주의적 전략으로 등장합니다. 미국의 실질임금은 "1970년보다 1995년에 더 낮았"고 연간 노동시간은 "1980년 1883시간에서 1997년 1966시간으로 늘었"습니다(크리스 하먼 40쪽, 73쪽). 장시복은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이윤율 상승에서도 착취율 증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시기 "상층 노동계급의 실질임금도 정체하고 하층 노동계급의 실질임금은 가장 낮은 수준에 다다랐"습니다. "노동생산성은 증가했지만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정체됨으로써 이윤율이 상승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장시복 219~220쪽).

신자유주의 전략의 다른 한 축, 금융화는 1970년대의 위기를 지연시키고 연이은 두 거품(1990년대 IT 거품, 2000년대 부동산시장 거품과 소비 붐)으로 일시적 호황이 가능케 한 힘입니다.

자본이득에서 소득 최상위 20% 계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1989년 75.2%에서 2000년에는 82.9%로 증가했습니다. 자산을 기초로 한 부의 증가(그것이 실현됐든 미래에 실현될 것이든)는 상층 계급의 소비증가로 이어졌죠. 마찬가지로 최상위 20% 계층의 가처분소득 대비 소비는 1992년 95.1%에서 2000년 104.4%로 증가합니다
(장시복 223쪽).

비금융 기업의 이윤율 하락은 이러한 금융화를 재촉하기도 합니다. 크리스 하먼은 미국의 회계법인 PwC 최고경영자 새뮤얼 디피아자를 인용합니다. 2000년대 많은 기업들이 자산담보증권(ABS)과 주택저당증권(MBS)에 투자하는 등의 방법으로 하락한 이윤을 금융에 의존해 보충하려 했다는 겁니다. 결국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외견상 높아 보였던 것은 그들의 금융자산과 부동산 자산 가치가 금융 거품으로 실제 가치보다 부풀려졌기 때문"인 것이죠
(크리스 하먼138쪽).

또한 이러한 금융화는 정부가 주도해 이뤄집니다. 로버트 브레너는 정성진과의 대담에서 "미국을 비롯한 몇몇 정부들이 실물경제에서 이윤율이 떨어지는 데 대처하기 위해, 금융 부문의 규제를 완화해서 금융으로 전환하는 것을 부추"겼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실물경제가 계속 나빠졌기 때문에, 규제 완화로 금융 부문의 경쟁은 더 심해졌고 이윤 창출은 더 어렵게 됐으며 더 큰 투기와 위험 감수가 조장"됐습니다
(로버트 브레너-정성진 대담 286쪽).

2000년대 초중반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를 추진한 것도 이런 와중이었습니다. 당시 '야인'으로 있던 이명박은 직접 금융시장에 뛰어들기도 했죠. 경쟁의 격화로 이윤 창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지금 봐서는 매우 바보스럽지만) 김경준이라는 사기꾼과 손을 잡는 것도 거리끼지 않았죠. 2008년의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파생금융상품 거래량은 3년째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8억1900만건이 거래됐고 이는 전 세계 거래량의 27%에 이르는 물량입니다
(조선일보ㆍ링크). 파생금융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겠다는 세재개편안에 경제지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2008년의 붕괴는 2000년대의 매우 특이한 경제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자산 가격 케인스주의(asset price Keynesianism)'가 전통적 케인스주의를 대신했습니다. 지난 10여 년 이상 세계 경제는 매우 특이하게도 자본축적이 그야말로 사상 유례없는 투기 파동에 의존해서 지속되는 체제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의 주식시장 거품과 2000년대 초 주택과 신용 시장 거품이 바로 그것입니다."
- '세계 대공황의 전망과 대안', 로버트 브레너와 정성진의 대담 중 브레너 답변, 283쪽.


신자유주의의 몰락: 자본주의의 한계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전략은 무한정 계속될 수 없습니다. 미국과 한국 등의 나라에서 이미 엄청난 수준으로 증가한 착취율은 더 이상 높아질 수 없습니다. 노동시간의 증가와 저임금을 견뎌내기 위해선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수준입니다.

상대적으로 착취율이 낮은 유럽에서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정년을 연장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독일에서는 직접적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려 하고 있고, 직접적 임금과 함께 사회적 임금으로서 각종 복지와 연금을 축소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협약은 바로 유럽 노동자계급의 강력한 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즉 유럽 지배계급이 기존의 사회협약을 파기하고 착취율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콧대를 먼저 눌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유럽 자본가들은 과거에 '사회 평화'를 위해 노동자들에게 양보했던 것들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는 공세를 펼칠 것이다. 이런 시도는 유럽에서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한 거대한 규모의 계급투쟁을 촉발할 수 있다."
- '스냅사진으로 보는 자본주의의 오늘과 내일', 크리스 하먼 79쪽.

2010년 프랑스, 2011년부터 지금까지 그리스와 스페인 등지에서 우리는 그러한 투쟁을 이미 목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지배계급의 공격에 맞선 투쟁이 성장하고 있죠. 2011년 위스콘신에서는 공무원 노동권에 대한 공격에 맞선 장기간의 노동자ㆍ시민의 점거투쟁이 진행됐습니다. 2008년 위기로 드러난 금융기업들의 부패에 분노한 청년들은 뉴욕 주코티 공원에 모여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고 선동하고 있죠.

착취율 증대에 의한 이윤율 회복이 불충분하기도 했지만 더이상의 착취율 증가를 노동계급이 받아들일 가능성조차 적어지고 있는 것입니다(물론 이후 노동계급이 1980년대 초 영국 광산노동자와 미국 항공관제사 노동자와 같은 결정적 패배를 당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2000년대 성장한 금융 부문도 2008년 위기로 드러난 사기와 협잡에 대한 대중적 혐오가 너무 커서 더 이상 성장이 지속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결정적으로 실물부분에서의 이윤율 하락을 금융에서의 거품으로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장벽 없는 세계시장에서의 금융화는 위기의 여파를 더 빠른 속도로 세계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외환 거래를 포함한 금융 거래세의 도입이 힘을 얻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금융 규제의 강화, 복지의 확대, 정부의 적자재정 정책과 같은 것들은 이번 위기의 대안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위기가 무엇보다 이윤율 하락에서 비롯한 1970년대부터의 장기적인 하강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의 위기 때 케인스주의가 실패한 이후 신자유주의적 대응이 등장합니다. 이는 약간의 성공을 보여주는 듯 했지만 결국 자본주의 자체의 한계 때문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케인스주의가 다시 각광받고 있지만 이는 이미 실패한 대안일 뿐이라는 겁니다. 2008년 위기를 막을 수 없었던 신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크리스 하먼은 1990년대 일본의 장기 불황 또한 이 케인즈주의적 대안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 정책과 마찬가지로, 사적 자본을 대대적으로 침탈하지 않는 국가 개입은 기껏해야 완전한 붕괴만 막을 수 있을 뿐이지, 그 자체로 이윤율 저하에서 비롯한 근본적 불균형을 치유하고 경제의 활력을 소생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일본의 경험은 시사하는 듯하다."
- '1930년대 대공황과 오늘날의 위기', 크리스 하먼 209쪽.

1930년대 대공황 때와 달리 정부 지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이 이미 매우 큽니다. 미국의 경우 국내총생산에서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몫이 1929년 2.5%에서 2007년 약 20%로 커졌죠. 경제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정부가 지출해야 할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습니다(크리스 하먼 199~200쪽).

게다가 개별 기업의 크기도 매우 커졌습니다. 따라서 위기에 빠진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치뤄야 할 대가도 함께 늘었습니다. 결국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매우 큰 제한이 있습니다
(크리스 하먼 201~202쪽).


자본주의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대안

현재 진행 중인 위기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나타난 총체적 위기"라는 게 저자들의 공통된 진단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일시적인 금융 위기나 실물 위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며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계기를 형성할 것"입니다(장시복 251쪽).

정성진은 진보 진영에게 이렇게 요청합니다.

"진보 진영은 이제 공황을 막기 위한 이런저런 정책 대안들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공황이라는 파괴와 낭비를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적ㆍ적대적 성격을 고발하고, 공황기에 노골화되는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비판해야 한다. 동시에, 반자본주의ㆍ탈자본주의 대안을 구체화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데 주력해야한다."
- '21세기 세계 대공황', 정성진 277~278쪽.

크리스 하먼이 지적했고 현실에서 드러났듯이 대중운동은 좌파의 개입과 독립적으로, 자본주의적 압력 그 자체에 의해 발생하고 성장합니다. 각 나라의 정치적 전통과 지형에 따라 좌파가 큰 역할을 하는 곳(스페인ㆍ그리스)도 있고 좌파의 존재가 미미한 곳(미국)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이 호소하는 좌파의 과제는 나라별로 매우 상이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랍의 봄'에서 위스콘신의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뉴욕의 청년들이 영감을 얻었듯이 세계화된 경제 만큼 저항 또한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결코 단시간에 끝나지 않을 경제 위기를 맞이한 좌파는 그 만큼 장기간의 안목으로 현재의 행동을 계획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나 지배자들의 양보는 노동계급의 강력한 투쟁에 의해서만 이뤄졌습니다. 브레너는 "루스벨트 정부는 거대한 대중 파업 물결이 일자 압력을 받아 그제서야 와그너법[노동조합의 권리를 정한 법]과 사회보장을 비롯한 주요 진보적 뉴딜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지적하며 "오바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로버트 브레너 290쪽).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안철수건, 문재인이건, 심상정이건 실재 세계를 쟁취할 힘은 노동계급 자신에게만 있습니다. 대중 스스로의 행동을 고무하고, 그 안에서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 좌파의 행동지침이 돼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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