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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동아대 교수가 경향신문에 '자본(자본론)' 해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오늘 '자본'을 읽다'는 제목으로 8월 25일 시작했습니다. 연재 기사는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 실립니다. 9월 1일에는 두 번째 연재로 '혁명에 사로잡힌 물음 - '자본'의 출생과 변증법'이란 기사가 23면에 실렸습니다.

●[경향신문] 9월 1일 23면|'변증법'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 발전시키는 게 혁명(링크)

최근 마르크스의 생애, 그의 사상, 자본론(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와 관련된 출판도 늘고 있습니다. 신문에까지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을 소개하는 연재기사가 실린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신문의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지만 책보다는 읽는 사람이 많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글까지 읽고 나니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더 커집니다. 마르크스 스스로 말년에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고 한 만큼 마르크스주의는 논란에서 자유로운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일반 독자 입장에서 보기에도 강신준 교수의 두 번째 연재기사는 너무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대중을 위한 신문에서 학문적 엄밀함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학문적 방법을 사상한 게 문제가 아닌 것이죠. 문제는 일반적인 사실의 왜곡에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명색이 '자본 강독'이라고 시작한 연재라면 자신의 생각과 마르크스의 생각(글)을 구분해야 하는 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강신준 교수가 모르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강신준 교수의 경향신문 연재기사를 보고 마르크스를 처음 접할 분들에겐 상당히 큰 오해를 심어줄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전공자도 아니지만 간단히 제가 아는 한도에서 9월 1일 두 번째 연재기사에서 문제가 될 듯한 부분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에서 틀린 부분이 있다면 주저 말고 지적해주세요. 아래에서 파란색으로 표시된 것은 강신준 교수의 글입니다.


1_ "오늘날 사회변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혁명이란 용어는 원래 프랑스혁명에서 나온 것입니다. 근대 혁명의 효시가 프랑스혁명이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완전히 틀린 설명입니다. 혁명(revolution)은 라틴어 'revolutio'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혁명이 급진적, 혹은 근본적 변화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을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이 단어가 '사회구조의 근본적이고 돌연한 변화'를 뜻하는 정치적 의미로 쓰인 것은 1688년 영국에서 제임스 2세가 물러나고 윌리엄 3세가 즉위한 사건을 '명예혁명(The Glorius Revolution)'으로 부르면서부터입니다. 이에 대해선 위키피디아 'revolution' 항목을 참조하시면 됩니다(링크).


2_ "1848년 혁명도 바로 이 [1789년] 프랑스혁명을 본받은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다수에 의한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혁명의 다수는 부르주아가 아니라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인민의 다수를 자신의 편으로 호명하고 싶어하는 혁명가, 변혁가의 꿈은 과거와 현재 모두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9월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의 점령자들은 자신을 99%라고 표현하며 결코 소수가 아닌 다수임을 강조했죠. 원래 '다수파'라는 뜻을 지닌 볼셰비키, 하지만 레닌의 볼셰비키는 그 분열 초기에는 멘셰비키보다 소수였습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시이예스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도 어찌보면 현재의 '우리는 99%다'라는 주장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시이예스는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은 후에 스스로 "모든 것이다"고 답하죠. 그러므로 "제3신분은 국민에 속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있고 "제3신분이 아닌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이 국민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는 주장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사', 알베르 소불, 두레, 29쪽).

마르크스주의자 또한 과거의 혁명들을 '노동자 혁명'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열망은 매우 강할 것입니다. 열망은 현실과 다르죠. 그렇기에 마르크스와 마르크스를 따르는 혁명가들은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마르크스는 1848년 프랑스 혁명에서 노동자의 역할을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그는 나폴레옹의 조카가 일으킨 쿠데타를 다루는 책(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파리의 프롤레타리아가 그들 앞에 전개되어 있는 원대한 전망에 대한 상상에 젖어 사회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에 몰두해 있었던 반면, 사회의 구세력들은 집단을 형성하고 회합을 개최했으며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과 쁘띠부르주아에게서 예상치 않던 지지를 발견했다."
-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최형익 옮김, 비르투, 21쪽.

마르크스는 분명하게도 1848년 혁명 당시 농민이 다수였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동자(프롤레타리아)는 당시 프랑스에서 소수였고 그나마 파리에만 의미 있는 수를 형성하고 있었죠. 그렇기에 파리의 노동자들은 6월 봉기 때 "모든 계급과 정파"의 적으로 공격 대상이 됩니다. 결국 "[파리의] 프롤레타리아는 위대한 세계사적 투쟁이라는 영예를 안고 쓰러"집니다(앞의 책 23쪽). 1848년 혁명의 다수가 노동자였다는 강신준 교수의 설명은 마르크스의 설명과도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다른 저자의 설명도 강신준 교수의 주장과는 다릅니다. 노명식 교수는 1830년 7월 혁명과 비교하며 이렇게 씁니다.

"[1830년] 7월혁명의 결정적 승자는 부르주아지였으나 2월혁명의 승자는 노동자계급과 중소 부르주아지의 연합이었다. 1830년 혁명과 1848년 혁명의 본질적 차이가 여기 있었다. 따라서 1848년에는 부르주아지가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노명식, 책과함께, 343쪽.

분명히 1789년보다, 1830년보다 1848년 혁명에서 노동자 계급의 역할이 더 커지고 중요해졌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역할의 중요함은 프랑스 전역의 혁명에서 파리가 지닌 역할과 비견할 만한 것이죠(서로 연관된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1848년 혁명 당시 노동자가 '다수'였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혁명 패배의 교훈과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3_ "자본주의 이전에 교환은 극히 제한된 형태로만 있었고 경제의 대부분은 자급자족하는 구조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마을을 이루어 모여 살았고 마을에서 생산된 것만을 소비했습니다.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경제구조에서는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동일하기 때문에 생산을 열심히 한 사람은 소비도 풍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이전에 '교환'이 제한적이었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생산과 소비가 일치"한다고 설명할 수는 없죠.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이전 생산양식의 귀족과 노예 소유주를 위한 생산, 즉 착취를 (자본주의적 착취와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강신준 교수가 깜빡하고 잊은 듯합니다.


4_ "[1848년 혁명의 패배를 지켜본 다음] 1849년 마르크스는 독일 정부의 압력에 의해 다시 유럽대륙에서 추방당해 마지막 망명지인 영국으로 향합니다. 영국으로 가는 뱃전에서 마르크스는 두 가지 의문을 품습니다. 하나는 그 엄청난 혁명의 동력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런 혁명이 왜 실패한 것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한 마르크스는 곧바로 당시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었던 대영박물관 도서실에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틀어박혀 연구를 거듭한 끝에 1867년 드디어 '자본[자본론]' 제1권을 출판했습니다."

이 문구만 읽어서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계기, 즉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적 연구를 시작한 계기가 마치 1848년 혁명 때문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가장 체계적으로, 그 기초적 모습을 드러낸 '공산당 선언'이 1848년 2월 혁명 전야에 나왔다는 사실과 배치됩니다.

이뿐 아니죠. 마르크스는 1843년 쓴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이미 경제적 탐구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는 악명 자자한 문장 다음에 나오는 말입니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폐기는 바로 인민의 현실적 행복에 대한 요청이다. 인민의 상황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는 요청은 이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포기하라는 요청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그 기원에서 본다면, 종교를 자신의 후광으로 삼고 있는 간난의 삶에 대한 비판이다."
- '헤겔 법철학 비판', 강유원 옮김, 8쪽.

마르크스가 현실의 경제적 삶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슷한 시기 '라인신문'에서 일하면서입니다. 마르크스는 훗날 "'라이니셰 차이퉁[라인신문]' 편집장으로서 이른바 물질적 이해관계에 대한 논의에 참여해야 할 때 나는 처음으로 당혹감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마르크스가 이 미지의 영역[물질적 이해관계: 경제]에 처음 도전해본 것은 개인 소유 삼림에서 나무를 훔치는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법을 길게 비판하게 되었을 때였다. … [이 문제를 다루면서]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계급, 개인 소유, 국가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 '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정영목 옮김, 푸른숲, 69쪽.

'라인신문'이 폐간되고 쫓겨난 마르크스는 당대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이 음울한 학문, 경제학에 대한 탐구에 몰두합니다. 당시의 공부 결과는 현재 '경제학-철학 수고'라는 책으로 나와 있습니다. 1844년 쓰여서 '1844년 수고', 또는 파리에서 작성됐다고 해서 '파리 수고'라고도 불립니다.


5_ "한나라당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가 '잃어버린 10년'인데요. 이 말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10년 동안 이루어진 정치적 성과를 모두 없애고 10년 전의 상태로 돌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사물의 운동법칙[변증법]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1은 성숙해지면서 2가 되는데 이 2는 기존의 1에 1을 더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2=1+1). 만일 기존의 1을 없애버리면 새롭게 추가하는 1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사회는 보다 나은 상태로 발전하지 못하고 도로아미타불의 제자리걸음을 하게 됩니다."

강신준 교수는 변증법을 설명하면서 '1+1=2'라는 공식을 내세웁니다.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설명이긴 합니다. 보통은 정-반-합의 과정을 설명하죠. 강신준 교수의 설명만 보면 사물의 운동은 발전만 있고 퇴보는 없는 듯합니다. 게다가 기존의 사물은 새로운 사물 내부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유지한다는 것으로 비춰집니다. 새롭기는 하지만 완전히 잘못된 설명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가 설명하는 사물의 변증법적 운동이 발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첫 부분에서 마르크스는 헤겔을 인용하며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하지만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으로 끝난다"는 주장을 합니다
(최형익 옮김, 비르투, 10쪽). 마르크스의 설명이 강신준 교수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고전정치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바로 그 한계 때문에 그들의 후예들이 과학적 입장에서 더 후퇴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사물의 운동법칙은 1+1=2처럼 단순히 계단 올라가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물들의 대립과 통일이라는 기존 설명도 지나치게 단순화된 설명이어서 많은 오해를 불러왔지만, 강신준 교수의 설명은 그보다 더 큰 오해를 줄 수 있습니다.


6_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개혁은? 당연히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해야만 이루어집니다. 자본주의 개혁은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그 위에 건설된다는 말입니다."

강신준 교수의 '변증법' 해설의 더 큰 문제는 마르크스가 마치 자본주의를 '존속'시킨 채 그것의 개혁을 위한 방법을 발견한 사람처럼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재기사가 '강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최소한 마르크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구분할 수 있게끔 써줬어야 합니다.

19세기 후반 보통선거의 도입과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민주적인 길의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합니다. 당시 아직 봉건적 생산양식이 지배적이던 러시아를 살피면서는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는 공산주의로의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존속'과 '개혁'을 주장했다는 근거는 찾기 힘듭니다. 마르크스는 말년에 쓴 '고타 강령 비판'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적 태도를 유지했죠.

"[1875년 라쌀레 추종자들과의 통합을 통해 만들어진 독일사회주의노동당(1890년 할레 대회에서 독일사회민주당으로 개칭)의 강령에 대해] 마르크스는 즉각 베를린에 있는 리프크네히트에게 격렬한 비난이 담긴 서한을 급송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엥겔스에게도 리프크네히트에게 그 정도로 강력한 서한을 보내라는 지시를 내렀다. … 마르크스가 보기에 고타 강령에는 너무나 많은 타협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었다. 고타 강령은 사회주의와 그 최대의 적인 국가가 영원히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고타 강령은 특히 그러했다. 또한 고타 강령의 밑바탕에는 프루동 주의자들과 생시몽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여러 모순에 대한 치유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들, 이를테면 국가와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촉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든가 상속법의 폐지 같은 사소한 목적들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환기시킴으로써 사회 정의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안규남 옮김, 미다스북스, 383쪽.

게다가 강신준 교수 스스로 인용했듯이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방법은 그것이 어떤 사물이든 영원한 것으로 파악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운동 상태에 있으며 유동적이고, 따라서 언제나 일시적으로만 파악됩니다. 강신준 교수가 인용한 부분을 좀 더 길게 다시 인용해보겠습니다.

"변증법은 그 신비로운 형태로 독일에서 유행했다. 왜냐하면, 변증법이 현존하는 것을 찬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증법은 그 합리적인 형태에서는 부르주아지와 그 이론적 대변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줄 뿐이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 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ㆍ운동상태에 있다고 간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ㆍ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 '자본론' 1권, 김수행 옮김, 비봉, 19쪽.

'긍정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개인의 바람에 따라 왜곡해서 살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르크스가 한 때 속하기도 했던 청년헤겔파에 대한 비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들은 헤겔과 달리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바랐지만 사물은 언제나 인간의 의식의 문제로만 파악했습니다.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 서문에서 청년헤겔파를 '무게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에 비유해 조롱하기도 했죠(박재희 옮김, 청년사, 34쪽). 그렇기에 마르크스는 "헤겔에게는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다"며 "신비한 껍질 속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알맹이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김수행 옮김, 19쪽).

아나키즘과 마르크스 이전에 유행했던 공상적 사회주의(생시몽과 푸리에 등) 비판이라는 맥락도 살펴야 합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현실적 상태에 대한 탐구가 아닌 이상적 설계도를 제시하는 것으로 변혁의 과학을 대치하려 했습니다(물론 그들의 '이상'은 마르크스와 그 후예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현재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은 자본주의라는 것이 언제까지나 영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의 혁명적 변화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변화할 지는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연구로부터 끄집어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신준 교수도 이러한 사정을 모를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프랑스 혁명을 얘기하며 실컷 '혁명' 운운하다가 이 부분에 와서는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의도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강신준 교수의 이와 같은 설명은 완전히 잘못된 제목으로 나타납니다. "'변증법'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 발전시키는 게 혁명"이라니요. 강신준 교수는 그나마 '개혁'이란 단어로 기사의 후반부에 대치시켰지만 경향신문의 편집기자는 그 차이를 이해 못하고 '혁명'이란 단어를 제목에 써버립니다. 하긴 이윤에 목매는 자본가들은 생산방식에 혁명적 방법을 도입해가며 자본주의 사회를 발전시켜왔으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네요. 다만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을 꿈꿨던 마르크스의 생각은 아니죠. 제목 아래 크게 자리잡은 마르크스의 얼굴이 안쓰러울 뿐입니다.


p.s. 강신준 교수는 '개혁'이란 단어를 쓰기 전 '자본론'의 프랑스어판 서문을 인용하며 '혁명'이 마치 길고 긴 개혁의 과정인 것처럼 설명합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쓰고 있죠.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학문의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자본론' 1권, 김수행 옮김, 비봉, 21쪽.

그런데 이 문구는 프랑스어판 편집자의 '자본론'을 시리즈로 분책해서 내자는 제안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 책(자본론)이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읽어야만 한다는 충고죠. 강신준 교수의 해석은 과도한 것입니다. 맥락에서 떼어내 문구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학문과 실천 모두에서 해롭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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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enai 2012.09.02 09: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잉여노동이 직접적 생산자인 노동자에게서 강탈되는 그 형태"가 "경제적 사회구성체들의 차이"를 가름한다고 자본론 1권 제9장에서도 나오죠. '착취'라는 게 바로 자본주의가 취하는 강탈의 형태라고 했지요 아마... "생산과 소비가 일치"한다니 내가 아는 노예제와 봉건제는 어디로 갔는가...;;

    저같이 뭘 몰라서 헤매는 초보는 머릿속 혼란만 가중될 것 같아서 이제부턴 저 연재물 안 읽으렵니다. 때때로님이 이렇게 설명해주신 거나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역사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안 하니까 아마 안 될 거야...)

    • 때때로 2012.09.02 1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착취를 자본주의에서 취하는 강탈의 형태로 이해하는 게 맞겠네요.

      읽다 보니 너무하더라고요. 아무리 경향신문 독자가 없어도, 최소한 몇 만명은 읽을 텐데 상황이 너무 안타깝게 돌아갑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 싶어 매우 조심스럽긴 하지만 아는 한에서는 교정을 해놔야 할 것 같아요.

    • 잉여 2012.10.01 2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생산과 소비의 일치라는게 자본주의 이전에는 자신이 생산한 것이 눈에 보여서 생산한 것만큼 소비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교환이라는 매게가 등장함으로써 생산을 어느정도 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고,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생산을 증대시키려는 행위들 때문에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용..

    • 때때로 2012.10.02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잉여// "자본주의 이전에는 자신이 생산한 것이 눈에 보여서 생산한 것만큼 소비가 가능했지만"이라는 전제가 틀렸죠.

      아마 봉건제에서 수탈이 부역일, 영주 몫의 농지 등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생산한 것 만큼 소비가 가능하진 않았죠. 말 그대로 '수탈'에 의해 자신의 것을 빼앗겼으니까요.

      게다가 노예제에서 노예는 아예 노예주의 생산수단이었을 뿐입니다. 그들 눈에 자신이 생산한 것들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할 지라도 그것은 노예주의 것일 뿐 자신의 것이 아니었죠.

      이러한 사정을 도외시하고 생산과 소비의 일치 운운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학자로서 그 소양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2. okcom 2012.09.04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신준 교수가 여기저기의 환대에 취해 자폭을 하는 걸까요. 특히 6번은 많이 위험해 보이네요. 한편으론 앞으로도 흥미진진할 것 같으니 계속 정리해 주십쇼 ^^;;

  3. 윤희형 2012.09.11 0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맙습니다. 그냥 기사가 전부라 생각고 넘어갔다면 큰일날뻔했네요.
    가장 큰 문제는 저자의 생각과 마르크스의 생각과 이론을 혼용해서 막써버린다는게 아닌가 싶네요.

    • 때때로 2012.09.11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설서를 쓰면서 저자의 생각과 원저자의 생각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테죠. 그럼에도 좀 심한 것 같더라고요. 참세상에 박찬식씨가 기고한 글도 함께 읽어보세요.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7517

  4. 윤희형 2012.09.12 2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심한거 같더군요 ㅎ 씨네21이었나? 거기서 선생님 글에 박찬식님 글 링크되있는거 보고 이미 읽어 봤었습니다.
    경향신문에 9월들어 진중권 교수의 현대미술읽기랑 강신준 교수의 오늘 '자본'을 읽다. 상당히 기대했는데,
    기대에 못미치네요.
    앞으로도 경향신문에 강신준 교수의 연재가 계속 될텐데, 가감없이 촌철살인 리뷰 부탁드립니다 ㅎ

    • 때때로 2012.09.13 1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어떤 곳인지 알겠네요. 저도 보통의 노동자라서 연재 때마다 좇아가긴 힘들 것 같네요.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본문 들어가면 제 지식이 일천해 제대로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5. 잉여 2012.10.01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개혁은? 당연히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해야만 이루어집니다. 자본주의 개혁은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그 위에 건설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기 보다는,,, 제가 예전에 강의를 들었을 때 자본주의의 개혁은 자본주의 모순이 공황의 형태로 나타나고 그 공황을 규제하기 위한 각종 정책들은 점차 자본주의를 다른 생산양식으로 이행하게 한다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공황의 형태로 나타나고 그에 따른 규제와 처방들이 자본주의를 다른 양식으로 바꾸게 한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 때때로 2012.10.02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규제와 처방'으로 자본주의가 다른 생산양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민주의 정치의 핵심이긴 하죠.

      여기서 강 교수의 문제는 여러가지인데, 우선 그 경제결정론적 서술이 문제가 되고, 다음은 변증법에 대한 몰이해가 문제가 됩니다.

      전자의 문제에서 '충분한 성숙'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따르지 않는 것은 그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후자에서는 보통의 마르크스주의 학자라면 자본주의가 발전시킨 합리적 핵심-놀라운 생산력, 불충분 하지만 자유와 개인 개념의 발달,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발견, 민주주의적 의식과 실천의 발전 등, 하지만 자본주의에선 결코 그 이상을 달성할 수 없는 것들-을 보존하고 더 발전시키는 것이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강 교수는 '그대로' '존속'한다고 말하고 있죠. 이는 좋게 봐줘도 학자로서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에 대한 숙고를 도외시 한 게으른 표현일 뿐입니다.

  6. 잉여 2012.10.02 1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수행 교수의 책에도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노동자의 혁명과 투쟁보다는 자본주의 자체 내의 모순에서 존재하며 그것이 결국 자본주의를 바뀌게 한다라라는 내용을 본적이 있습니다. 강교수의 의견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맑스의 자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으나, 강신준교수님의 제자로 수업을 듣고 맑스에 대한 시각이 바뀐 저로써는 님의 비판이 그저 안타깝게만 생각됩니다. 물론 다양한 해석에 대한 비판을 수용해야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죵

    • 때때로 2012.10.03 0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한 것과 후대의 마르크스의 해석은 구분되어야만 하는 것이죠.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온갖 비난을 받은 베른슈타인은 적어도 자신의 주장을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이끌어냈죠. 하지만 강신준 교수의 글은 이러한 양심적 태도조차 버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노동자의 혁명과 투쟁보다는 자본주의 자체 내의 모순에서 존재하며 그것이 자본주의를 바뀌게 한다"는 님의 주장만 놓고 보자면 마르크스가 때론 그런 식으로 서술한 부분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저작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그 무엇보다 '계급투쟁'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자본론의 핵심 중 하나는 '자본주의 자체 내의 모순'을 계급투쟁의 역학으로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마르크스가 영국에서의 공장법 제정과 자본의 시초축적 과정, 공장제의 도입 과정을 그토록 길게 서술한 것은 단지 '예시'가 아니라 그 자체가 그의 이론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인간의 현실적 행동, 실천에서 동떨어진 관념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p.s. 단지 혁명 또는 개혁에 대한 정치적 입장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후 진행된 그의 경향신문 연재분을 보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핵심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환가치, 사용가치, 가치에 대한 오해는 지금껏 본 그 어떤 경제학 교과서보다 더 심각한 오류를 보여줍니다.

  7. 연풍청년 2013.02.20 1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가 들으려 들어왔다가 좋은 말글장(blog)을 보게 된거 같네요.. 경향신문은 그냥 찌라시입니다. 헌법을 부정한 무력 반란을 시민혁명으로 포장해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호도 한 언론.
    제가 작년에 진보당 창준위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인터뷰 했던 적이 있었는데.. 대놓고 짜깁기 해서 소설을 썼습니다. 다른 언론들은 그 경향신문의 기사를 인용해서 보도를 솓아냈고 저는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8. 브루스 2013.03.27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판을 잘 읽었습니다. 우선 저는 자본을 읽다를 매우 유용하게 읽고 있는 사람중에 한 사람입니다. 옅은 맑스주의자라서 그런가 봅니다. 근데 일반인에게 이런 대중매체를 통해 맑스에 대해 알리는 작업이 매우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귀하의 비판적인 블로그 글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베른슈타인에 대해서는 소련 붕괴 후 새로운 조명이 있어왔고 당시 그가 수정주의에 대한 언급을 하게 된 건 독일의 사민당의 이론 중심의 흐름을 깨고자 수정주의에 대한 입장을 표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현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돌아봐야 함에도 이론의 옳고 그름에 너무 치중하여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지적 말이죠. 몇몇의 맑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전술적인 부분보다는 경구나 해석의 잘못에 너무 치중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그 해석이 행동의 바탕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맑스주의를 알게 한다는 것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와 같은 맑스주의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각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맑스주의자들만의 울타리에서 멤도는 이런 비판이라면 그것이 과연 사회를 변혁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까요? 이건 여담입니다만 일부 맑스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베네수엘라를 추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베네수엘라에 가서 살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대중에게 새로운 깨달음의 불씨를 주는 것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 때때로 2013.03.28 0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르크스주의를 떠나 고전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의 뜻과 주장', '현재의 의의'을 밝히는 건 지난하고 어려운 일임에 틀림 없죠. 그럼에도 우선해야 할 것은 '자신의 해석'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상의 뿌리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배제하고 해석의 다양함만 주장한다면 고전은 그 의미를 모두 잃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제 글에서 주장하는 것은 '해석'의 문제가 아닙니다. 강신준 교수가 매우 기초적인 사실들조차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잘못된 사실에 기반한 마르크스의 설명이 마르크스주의의 성장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여담으로 말씀하신 베네수엘라 얘기는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