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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교수는 경향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오늘 '자본'을 읽다' 9월 22일자 연재분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강의를 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교환가치와 가치를 구별하는 데 애를 먹는 것을 자주 봅니다."(강신준 9월 22일)

지금까지 강 교수가 연재한 글 중 바로 위 문장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애를 먹는' 사람에는 강 교수도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교환가치와 가치만이 아니죠. 사용가치ㆍ가치ㆍ교환가치 전체를 잘못 설명하고 있습니다.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방법에 대한 그릇된 이해도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설명할 기회를 갖기로 하고 오늘은 자본론 1장에 집중해 강 교수의 연재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자본론의 모든 인용은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비봉판으로 대체했습니다. 강신준 교수로부터의 인용은 모두 연보라색 굵은 글자로 표시했습니다.


1. 상품의 이중성 … 사용가치ㆍ가치

"상품은 사용가치임과 동시에 가치인 것이다"(1권 77쪽)

마르크스는 상품의 이중적 측면을 위와 같은 말로 정의합니다. 1장 1절의 제목도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입니다.

설명은 사용가치부터 시작합니다. "한 물건의 유용성은 그 물건으로 하여금 사용가치가 되게" 합니다. 여기서 유용성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연적 필연성에 한정하면 우리에게 유용한 물건으로서 상품은 최소한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용가치로서 상품은 그것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질적ㆍ양적으로 구별됩니다.

상품은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됩니다. 일정한 비율로 말이죠. 여기서 상품이 교환되는 양적 비율, 또는 관계가 교환가치입니다. 상품이 교환가치라는 것은 서로 다른 상품들 속에 공통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서로 다른 상품이 일정한 비율로 교환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품의 자연적 속성은 공통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상품의 유용성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사용가치와 연관된 것이 될테니까요. 하지만 교환에 있어서 사용가치는 서로 다른 것이기만 하다면 문제가 안됩니다. 결국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거기에 남는 유일한 것은 '노동생산물'이라는 속성 뿐입니다.

"이들 노동은 더 이상 서로 구별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종류의 노동, 즉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환원된다. 이제 노동생산물들은 유령 같은 형상[즉, 동질적인 인간노동이 응고되어 있는 형상]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물들은 인간노동력이 그 지출형태와는 관계없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그들의 생산에 인간의 노동력이 지출되었다는 것, 인간노동이 그들 속에 체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생산물은 그들에게 공통적인 이러한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로서 가치, 상품가치이다."(1권 47쪽)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상품은 우선 유용한 물건으로서 사용가치입니다. 이 상품은 서로 일정한 비율로 교환됩니다. 즉 교환가치입니다. 이 교환가치는 상품이 공통된 무엇인가를 지니는 것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설명 못합니다. 그 공통된 것은 바로 추상적 인간노동이고, 이것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이 바로 가치입니다.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 강의'에서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이를 도식화 합니다.


하비 53쪽

강신준 교수는 이와 달리 교환가치를 사용가치의 '발전한 형태'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사용가치가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인 교환가치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사용가치가 첫 번째 계단이고 교환가치가 두 번째 계단인 셈이지요."(강신준 9월 15일)

하지만 이는 마르크스의 설명과 완전히 다른 것이죠. 상품이 교환가치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용가치여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유용하지 않은 물건(또는 서비스)을 교환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용가치가 발전해 교환가치가 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교환을 위해서도 상품의 사용가치적 측면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강 교수는 마르크스가 '두 요소'라는 제목으로 상품의 이중적 성격을 설명한 것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죠. 이 설명이 불분명하다면 아래의 데이비드 하비의 설명을 읽어보시죠. 재밌게도 이 책은 강신준 교수가 번역한 것입니다.

"맑스의 변증법적 방법은 여기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혹시 여러분은 가치가 교환가치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것도 아니면 사용가치가……? 그러나 맑스의 분석은 인과론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 그것도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것이다. 사용가치에 대해 말하지 않고 우리가 교환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용가치에 대해 말하지 않고 우리가 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바꿔 말해 우리는 다른 개념을 말하지 않고는 이들 개념 가운데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 이 개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 있고 어떤 하나의 전체(totality) 속에 내재하는 관계들인 것이다."(하비, 55쪽; 오역이 있어 수정했습니다)

하비는 강 교수와 같은 설명을 '인과론'적인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마르크스가 사용가치ㆍ가치ㆍ교환가치를 설명하는 자본론 1권 1장이 어려운 것은 그것이 '인과론'적인 관계가 아니라 변증법적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변증법에 대해선 차후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아래의 그림을 앞의 하비의 도식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강신준 9월 15일

따라서 강 교수의 아래와 같은 설명은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교환가치를 비교해주는 양적 단위는 바로 가치이고 그것은 인간의 노동입니다"(강신준9월 15일)

가치가 강 교수의 설명처럼 '양적 단위'에 불과하다면 그것의 질적 측면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강 교수의 생각은 사실 주류 경제학에 일반적인 것이기도 하죠. 애시당초 그것이 '양적 단위'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교환되는 비율 그 자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강 교수는 다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과 달리 '교환가치'를 매우 강조하죠. 주류 경제학에서 이러한 상품들 사이의 교환비율(교환가치)의 강조는 그들의 선배,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세웠던 노동가치론을 버리고 한계효용 혁명으로 나가는 길을 닦았습니다. 강 교수가 어딘가 인터뷰에서 칭찬했던 책인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에서 폴 스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식적인 관점에서 보면 양적 가치이론은 상품들이 서로 교환되는 상대적인 비율을 규율하는 법칙을 발견하는 것과만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주류의 이론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다룬다. 따라서 주류의 이론에서는 그것이 교환가치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마르크스에게 교환가치란 가치를 배후에 숨기고 있는 '현상적 형태'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단지 교환가치의 결정에 한정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양적 가치의 문제란 무엇인가? 위에서 서술한 분석이 한 가지 답변을 해준다. 상품이 가치라는 사실은 상품은 물질화된 추상적 노동이라는 의미이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상품은 사회의 총 부창출활동 가운데 일부를 흡수한다는 의미다. 이제 우리가 추상적 노동은 시간의 단위로 측정할 수 있음을 상기한다면, 교환가치와 구분되는 양적 범주로서의 가치가 어떤 의미인지가 분명해진다."(스위지 58쪽)


2. 노동의 이중성 … 구체적 유용노동과 추상적 인간노동

상품의 이중성은 노동의 이중성으로 나타납니다. 사용가치로서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유용노동이 필요합니다. 의자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 목재를 만들고, 목재를 재단하고, 재단된 목재를 짜맞춰야 하는 것 같은 노동을 말합니다. 이것이 꼭 육체노동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치로서 상품을 만드는 노동은 노동의 구체적 과정이 사장된 말 그대로의 인간노동을 말합니다. 이것은 '추상'적이긴 하지만 객관적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루카치의 "자본주의의 본질을 반영하는 추상"이라는 주장을 인용한 폴 스위지는 "자본주의 사회는 이전의 그 어떤 사회형태에서 지배적이었던 노동의 이동성보다 훨씬 더 높은 이동성을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며 마르크스의 추상노동 개념의 현실성을 설명합니다
(스위지 55쪽).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에 대한 수요의 방향이 변함에 따라 사회적 노동의 일정한 부분이 번갈아 가면서 재봉의 형태로 또는 직포의 형태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노동형태의 이와 같은 변화가 마찰 없이 일어난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어쨌든 일어날 수밖에 없다."(1권 55쪽)

기업이 창의적 노동에 대한 무수한 찬양을 늘어놓으면서도 실제 업무에서 노동과정의 표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 이러한 경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죠. 추상적 인간노동은 구체적 유용노동과 구분되는 현실성을 지니며 자본주의적 현실에서 노동의 이중성을 구성합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이 중 어느 하나의 측면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강신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용가치를 만든 노동은 시장의 교환과정에서 사회적 노동으로 바뀝니다. … 배추라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에는 항상 농민의 힘든 노동이 들어갑니다. … 내가 생산한 배추의 교환가치는 시장에서 다른 농민들이 생산한 배추와 비교되는 것은 물론 배추를 구매할 소비자의 사정도 고려되어야만 비로소 결정됩니다. 요컨대 나 혼자만의 사정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사정이 교환가치를 결정하는 것이지요"(강신준 9월 22일)

우리가 마르크스를 잊은 채 읽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강 교수가 좋아하는 '개미와 베짱이' 비유로 들어가면서 완전한 파탄을 드러냅니다.

"개미가 수행하는 노동은 사용가치를 만드는 노동일 뿐, 교환가치를 결정하는 노동은 아닌 것이지요."(강신준 9월 22일)

굳이 이중성이라고 부른 것은 그것이 동시에 갖는 성질이라는 것입니다. 즉 개미(노동자)가 수행하는 노동은 사용가치를 만드는 구체적 유용노동일 뿐 아니라 가치를 만드는 추상적 인간노동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노동자가 교환가치, 정확하게는 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자본가(베짱이)는 어떻게 잉여가치를 획득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여기에선 강 교수의 연재가 기대되기도 하네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아래의 마르크스 설명과 비교하면 강 교수의 설명이 얼마나 마르크스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노동은 생리학적 의미에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이 동등한 또는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상품의 가치를 형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노동은 특수한 합목적적 형태로 인간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며, 이러한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사용가치를 생산한다."(1권 58쪽)


3.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강신준 교수는 이 부분에서 자본론 1권 1장 3절 부분을 거의 통째로 건너뜁니다. 물론 여전한 헛소리로 분량을 채우고 있긴 합니다. 마르크스가 이 부분에서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가치형태를 설명하는 것은 화폐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부분은 이어지는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기원'절과 함께 일반적 가치형태, 즉 화폐형태가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은폐하는 지 그 기원을 폭로해줍니다. 가치의 현상형태인 교환가치가 취하는 여러 형태를 사려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이면의 힘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데이비드 하비는 이 절의 핵심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상품과 화폐 사이의 관계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이중성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첫째,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은 하나의 사회적 관계이기 때문에, 그것이 곧바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규제하는 요소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화폐형태라는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또한 화폐형태의 등장은 가치가 자본주의 경제를 작동시킬 중심원리로서 응결되기 시작하도록 만들어준다. 그리고 항상 기억해두어야 할 점이기도 하지만 가치는 물적 존재가 아니면서도 객관적 대상이다."(하비 76쪽)

강 교수는 여기서 뜬금없이 화폐가 "'나'를 버리고 '우리'가 되는 것이 사회적 관계의 발전방향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강신준 9월 29일)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건 뜬금없는 정도가 아니라 마르크스나 그의 해설자들의 주장과 완전히 반대인 것이죠. 하비의 인용문에서도 보이듯 화폐형태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사회적 관계를 은폐하고 대신해 현실로 나타납니다.

이런식의 왜곡은 프루동과 크메르 루즈를 언급하며 화폐형태를 "역사의 필연적인 자연법칙"으로까지 격상시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프루동과 오웬에 대한 마르크스의 입장 차이를 살펴보면 강신준 교수의 주장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우선 마르크스는 프루동을 이렇게 비판합니다.

"프루동은 처음에 정의ㆍ영원한 정의라는 자기의 이상을 상품생산에 대응하는 법적 관계로부터 끌어내고 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상품생산이 정의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형태라는 것을 증명하여 모든 선량한 소시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그 다음에 그는 거꾸로 현실의 상품생산이나 그에 대응하는 현실의 법을 이 이상에 따라 개조하려고 한다."(1권 109쪽 각주2)

프루동에 대한 비판만 놓고 보면 강 교수의 주장이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정의로부터 비롯한 이상을 따르는 운동은 참혹한 결말을 맞곤 했죠. 하지만 오웬에 대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약간 다르게 들립니다. "상품생산사회에서 '노동화폐'라는 천박한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에 대해 나는 다른 곳에서 상세하게 검토했다"며 노동화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밝힌 마르크스는 오웬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입장을 이어서 설명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 지적해 두고자 하는 것은, 예컨대 오웬의 '노동화폐'가 '화폐'가 아닌 것은 극장의 입장권이 화폐가 아닌 것과 같다는 점"이라며 그 이유로 "오웬은 직접적으로 사회화된 노동[즉 상품생산과는 정반대인 생산형태]을 전제하고 있다"고 밝힙니다(1권 121쪽 각주1).

마르크스는 상품생산을 전제로 한, 즉 자본주의의 핵심적 원리를 그대로 둔채 그 현상형태인 화폐형태만 고치자는 주장에는 가차없이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하지만 근본적인 변혁을 전제로 한 주장에는 호의적인 뜻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종합해보면 강 교수의 입장이 마르크스와 같다고 말하긴 힘들 것입니다. 강 교수는 프루동에서 더 나가 화폐형태 자체가 "필연적인 자연법칙"이라며 자본주의의 성숙을 통한 변화를 주장하고 있죠. 이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적 몽상일 뿐이며 이러한 몽상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자본주의 법칙을 마치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주장으로 격하시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4. 결론을 대신하며 … 중요하지만 빼먹은 것들

아직 연재가 계속되고 있으니 강신준 교수에 대한 비판의 결론을 여기서 내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자본론 1권 1장을 마치고 7회차까지 연재를 보면 강 교수의 자본론 해설이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변증법적 방법에 대한 강 교수의 오해는 계속해서 잘못된 주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다른 분량 중 가장 거슬렸던 것은 15일자 연재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얘기처럼 내 이익을 남에게 나누어주지 않으려는 현실 자본가들의 노력은 경쟁을 빚고 경쟁의 결과가 사회적 평균을 만들어내거든요. 사회적 평균을 거스르려는 노력이 사회적 평균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가치가 빚어내는 변증법의 요술이지요."(강신준 9월 15일)

가치량을 결정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1권 49쪽)이 이런식으로 왜곡되는 걸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간단히만 지적하자면 우선 강 교수는 '사회적 평균'을 경쟁의 강제법칙으로부터 연역해 무차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데, 이는 마르크스가 1권에서 '경쟁'을 아직 본격적으로 도입하지 않았다는 것, 즉 제한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강 교수의 '사회적 평균'은 마치 보다 평등한 사회의 형성을 암시하는 것처럼 읽힙니다. 하지만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론 전체에 걸쳐서 자본가의 잉여가치 획득과 더 가난해지는 노동자의 현실이 자본주의적 법칙의 현실적 결과임을 설명하는 것과 반대되는 주장이죠. 또 강 교수는 '사회적 평균'을 형성하는 '경쟁' 운운하는 데, 마르크스는 경쟁의 강제법칙을 자본가가 개인이 아닌 자본의 인격화한 범주로서 행동할 수밖에 없는 핵심 원리로 설명합니다. 즉 '자본가들의 노력'이 '경쟁을 빚'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법칙이 자본가의 자본으로서의 노력을 강제하는 것이고 이는 노동자들에게 더 비참한 생활을 강요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강 교수는 원인과 결과를 뒤바꿨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 결과조차도 자신의 희망대로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9월 22일자 연재에서 "모든 사용가치는 인간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집니다"는 단언도 문제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노동은 그것에 의해 생산되는 사용가치[즉, 물적 부]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다. 윌리엄 페티가 말한 바와 같이, 노동은 물적 부의 아버지고, 토지는 그 어머니다."(1권 54쪽)

이 설명은 이후 자연과의 신진대사라는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이 개념은 마르크스주의적 생태주의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죠. 강 교수의 단언은 마르크스가 이루진 못했지만 그의 후예들이 이로부터 영감을 얻어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이론과 실천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이번 주에도 어김 없이 강신준 교수의 '오늘 '자본'을 읽다'가 경향신문에 실렸습니다. 이 연재가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힘 닿는대로 비판적 검토를 계속할 것입니다. 이는 강 교수에게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르크스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를 만들어나가기 위함입니다. 격동을 앞둔 지금 마르크스의 유산을 제대로 살피는 일은 더 중요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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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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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etas 2012.10.08 1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동안 강 사마의 글을 안 읽었었는데, 요새 쓰는 글이 계속 저런 식인가 보군요. 명색이 마르크스를 연구하는 학자인데 (정말로 마르크스 경제학을 연구하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용가치", "교환가치", "가치"를 혼동하는 대목에서는 (부정적 의미에서)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강 사마께서는 아무래도 난독증이 심하신 모양입니다.

    • 때때로 2012.10.08 14: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문제가 이해의 부족인지 의도적인 왜곡인지 여전히 헷갈립니다. 최근 발표한 다른 책과 예전에 썼던 '자본의 이해'가 다시 읽고 싶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지만, 이런 것 때문에 그 책들까지 보기엔 시간이 너무 없네요.

  2. EM 2012.10.16 2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때때로 님께서 임자를 만나셨군요. ㅎㅎ
    잉여 님, 잠시 링크해주신 홈피에 들어가보니, 부산에 계신 모양이군요.
    아쉽습니다. 수도권이시라면 저희 자본 읽기모임에 초대하는 건데.. ㅎㅎ
    암튼 계속해서 생각 공유해주세요. 저같은 객도 구경하는 재미가 좋습니다 ^_^

    • 때때로 2012.10.17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러 사람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또 그러다 제 얕은 밑천이 모두 드러나느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고 합니다. 그래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니 다행이에요^^

    • 때때로 2012.11.22 1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잉여// EM님이 주도하는 모임은 말 그대로 함께 읽고 있습니다. 올해 3월쯤 시작해 지금까지 매주 하고 있는데 한번 할 때 2~3시간 정도 읽습니다. EM님 처럼 다른 참가자들을 지도하고 관련된 지식들을 전해줄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좋지요.

    • 잉여 2012.11.26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산에서도 자본읽기 모임을 하고싶고, 주도해서 자본을 읽고싶어 하는사람들을 모우고싶은데,,어떤방법으로 해야할지 잘몰라서요..
      혹시 노하우나 어떤식으로 모임을 하고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3. 잉여 2012.11.26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다 말았는데, 님이 문장의 이해를 잘 못하신 듯 한데여~
    이 부분에 대한 거요.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사용가치가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인 교환가치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사용가치가 첫 번째 계단이고 교환가치가 두 번째 계단인 셈이지요."
    강교수님의 이부분의 대한 설명은 님이 이해한것처럼 사용가치가 발전해서 교환가치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품의 사실상 가치는 사용가치이고, 사용가치가 100원이라면 그 출발점인 100원에서 시장에서 수요공급원리에 의해 조정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님이 이해하고있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며, 상품의 이중성에 대한 설명도 수업시간에 해준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집에가서 책을 봐야할듯^^

    • 때때로 2012.10.12 1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이 설명하신 것과 같은 강 교수의 사용가치 설명이 틀렸다는 겁니다. 사용가치가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에 조정돼 교환가치가 되는 게 아닙니다. 사용가치는 사용가치일 뿐 교환가치로 변하지 않습니다.

  4. 잉여 2012.11.26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배우기에 사용가치는 그 상품안에 가변자본 + 불변자본과 그리고 노동력투입(가본자본)으로 인한 잉여가치가 포함된 게 사용가치이고, 교환가치는 그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는 상품이 시장에 나왔을때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가격이 조정되게 되는데 그것이 교환가치로 알고있습니다. 이것이 상품의 이중성으로 기억이 되는데, 상품속에 가치가 사용가치(구체적노동)와 교환가치(추상노동) 둘로 나뉘는것. 아 기억이 났네요.
    아무튼 님이 쓴 글을 읽어보니 강교수님의 사용가치, 교환가치, 가치에 대한 이해와 님의 이해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판단됩니다.

    • 때때로 2012.10.12 1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용가치에 잉여가치가 포함돼 있다니요. 이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를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군요. 자본론 읽기 전에 정치경제학 입문용 책 몇권이라도 읽어어보시길 권합니다.

  5. 잉여 2012.11.26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사용가치가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인 교환가치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사용가치가 첫 번째 계단이고 교환가치가 두 번째 계단인 셈이지요."

    제가 판단했을때 강교수님이 저렇게 쓴 이유는, 보통의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곡선을 그리면서 '가격' 이라는 것이 교환가치만을 말하고있지않습니까? 사실상 교환가치의 본질이자 상품이 처음 가지고 있는 가치의 본질은 생산가치인데, 주류경제학은 그것을 간과하고 있고 이세상에서 태어나는 모든 상품의 가격이 사실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측면에서 책정된 것이아니라 사용가치를 기반으로 하고있다 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함축적으로 쓴 글로 판단됩니다~^^

    • 때때로 2012.10.12 1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격 또는 교환가치는 '사용가치'를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수요와 공급으로 인한 변동을 무시했을 때 교환가치는 상품을 만드는데 들어간 추상적 인간노동에 의해 결정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굳이 두꺼운 자본론(또는 자본) 읽으려 애쓰지 마시고 얇은 입문서들을 먼저 읽어보세요.

  6. 잉여 2012.11.26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체적으로 님의 글은, 강교수의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왜곡해석 하는 경향이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 때때로 2012.10.12 1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잉여님이 쓰신 리플로 봐서는 제가 왜곡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강신준 교수가 매우 왜곡된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으 전달하고 있다는 확신이 드네요.

      교환가치와 가치 자체는 혼동하는 경우가 많으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이러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다른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도, 그가 개량주의자라 할지라도 그와 같은 방식(사용가치가 시장에서 수요공급의 조정을 거쳐 교환가치가 된다는 식의, 또는 사용가치에 가변자본과 불변자본, 잉여가치가 포함돼 있다는 식의)의 주장은 하지 않습니다. 그야 말로 어처구니 없는 주장입니다.

  7. 잉여 2012.11.26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문서는 읽어봤어요 ^^;

    • 때때로 2012.10.12 14: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약간 무례했던 제 발언을 먼저 사과드리며 추가로 약간 설명드리겠습니다.

      사과라는 상품으로 설명하자면 사과는 신맛에 약간의 단맛이 포함된 식물성 섬유질의 먹는 것입니다. 사과가 사용가치라는 것안 바로 이러한 물리적 소재적 특성 때문입니다.

      사과는 의자와 교환될 수 있습니다. 사과와 의자가 교환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통적인 것'이 있어야 겠죠. 사용가치는 이 '공통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상품의 물리적 소재적 특성이 같다면 교환될 이유가 없죠. 교환된다는 것은 이미 상품의 물리적 소재적 특성이 다르다는 것으 전제하는 것입니다. 즉 사용가치는 교환가치가 나태나는 상품의 어떤 공통된 속성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환가치가 나타내는 상품의 공통된 속성이란 것은 결국 그것이 추상적 인간노동의 산물이란 것입니다. 사과든 의자든 인간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졌죠(물론 그 과정에는 자연의 기여도 있습니다). 구체적 유용노동은 사용가치를 만들기 때문에 교환가치의 공통된 속성일 수 없습니다. 사과를 키우는 노동과 의자를 만드는 노동은 다르죠.

      결국 사과와 의자는 어떠한 구체적인 과정의 노동을 거쳤다는 게 아닌 오직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이 공통적인 것입니다. 추상적 인간노동의 지출이 응고된 것, 그것이 바로 '가치'입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마르크스의 사용가치, 교환가치, 가치에 대한 설명입니다. 1장에서도 몇 페이지 안 되는 부분이니 다시 차분하게 읽어보시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8. 잉여 2012.11.26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위에 말한 사용가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나봅니다. 제가 오해를 하고있었군요~
    제가 이해한 부분에 대한 질문을 드리니 교수님께서 답변을 해주셨는데,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상품가치와 교환가치가 아니더군요........ 제가 배우고있는사람이라 이해가 부족했나봅니다.

    답변을 요약하자면, 사용가치는 그냥 효용만 갖는 것이어서 양적 표현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이런 사용가치 두개가 서로 만나면 양으로 비교하게 되고 그때 비교되는 양이 교환가치이며, 상품은 교환가치로 표현되고 상품이 가지고 있는 교환가치의 구성요소가 불변자본+가변자본+ 잉여가치이다.이런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이 시장에 나와서 거래될 때 시장의 수요공급 요인에 의해 원래의 가치대로 판매되지 못하고 변동하게 되는데 이 변동되는 것이 시장가격이다.

    제가 시장가격을 교환가치로 교환가치를 사용가치로 오해하고있었네요^^;;

    • 때때로 2012.10.13 0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강신준 교수의 답변을 제가 직접 듣지 않아 오해의 소지가 있겠지만 잉여님이 쓰신 부분 만 보면 잘못 설명된 부분이 또 있군요.

      "사용가치는 … 양적 표현을 가지고 있지 않고" =>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사용가치도 양적 표현을 가집니다. 물리적 소재가 양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포만감을 주는 '사과'라는 상품 자체로 (그 어떤 교환도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한) 한 개, 두 개 또는 1kg, 2kg이라는 양을 가집니다. 교환가치라는 것은 이것과는 별개의 상품 사이 관계의 양적 표현인 것이죠.

      "상품은 교환가치로 표현되고" => 가치의 현상형태가 교환가치인 겁니다.

      "교환가치의 구성요소가 불변자본+가변자본+잉여가치이다." => 가치로서 상품은 추상적 잉여노동의 응고물입니다. 위와 같은 내용은 8장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이라는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며 지금의 논의에서 추가적인 과정을 거쳐야 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설명하자면 그것은 상품이 오직 단 한 명의 노동자에 의해 단 한 번에 완성되는 것 만은 아니라는 사정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의자를 만들기 위해선 먼저 톱과 망치, 못, 목재, 작업장과 같은 것이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이 것들 또한 현재의 생산과정 이전의 생산물인 것이죠. 그것 또한 추상적 인간노동의 지출로 이뤄진 것이었지만 현재의 생산과정에서는 죽은 노동으로 투입되어 새로운 생산물로 그 가치가 이전됩니다. 이 과정이 노동인 것이죠. 결국 불변자본이란 것은 현재의 생산에 필요한 상품(과거 생산의 결과물)을 구입하기 위해 투하한 자본이고 가변자본은 마찬가지로 노동력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투하된 자본입니다. 잉여가치는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가치증식과정인 노동과정에서 추가적으로 만들어진 가치입니다. 교환가치가 표현하는 본질은 가치일 뿐입니다. 노동 생산물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교환가치로 나타나는 것은 맡지만 그 교환가치를 "불변자본+가변자본+잉여가치"로 설명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9. 잉여 2012.11.26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다른참가자들을 지도하고 지식을 전해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지만. ... 부산에서도 자본읽기 모임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공부가 될 것 같아서.....ㅎㅎ...

    • 때때로 2012.11.23 1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능하면 지도해주는 분이 있는 게 좋기는 하지만, 딱히 그럴 만한 분이 없어도 여럿이 함께 모여 읽는 것도 좋더군요. Socialandmaterial.net에 가면 heesang님이 연재하는 '자본론 읽기' 게시물도 도움이 될 겁니다. 부산에서도 꼭 읽기 모임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