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못한…

부메랑이 된 긴축정책 본문

쟁점/12 OccupyWorld

부메랑이 된 긴축정책

때때로 2012. 11. 7. 15:06

6일부터 48시간 파업에 들어간 그리스 노동자들. [중앙일보/연합뉴스/AP]

그리스, 운명의 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오늘(7일), 또 하나의 중요한 표결이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됩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긴축안에 대한 표결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럽연합ㆍ유럽중앙은행(ECB)ㆍ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이하 트로이카)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추가 긴축안의 핵심은 정부 지출을 135억 유로(약 18조9000억원) 삭감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4.5%에 달하는 규모죠. 트로이카는 이 긴축안이 통과되어야만 지급이 중단됐던 315억 유로(약 44조1000억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긴축이 통과될 경우 연금은 5~25% 삭감될 것입니다. 정년도 65세에서 67세로 연장됩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월급과 해고자에 대한 보상금도 삭감됩니다. 아동지원비 지금 대상도 연 1800유로(약 2500만원) 미만 소득 가정으로 축소될 계획입니다.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는 "긴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이달 15일 이후 조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와 청년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6일부터 48시간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사ㆍ간호사ㆍ공무원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이 줄을 잇고 있고 항공 관제사의 파업으로 항공기 운항도 일부 마비됐습니다.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연립정부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연정에 참여한 세 개 정당 중 16개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좌파당은 반대표를 던지기로 결정했습니다. 민주좌파당을 빼도 연정의 의석수는 과반인 151석을 넘는 158석이긴 합니다. 하지만 또다른 연정 참여 정당인 사회당 의원도 긴축 반대를 선언 했습니다. 이로 인해 긴축안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원내 제2 당으로 부상한 시리자(Syriza)는 4일 긴축 반대 입장을 다시 확인하며 총선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앙일보] 구제금융 vs 국가부도 … 그리스 운명의 날(링크)
●[참세상] 그리스 긴축 표결 앞두고 48시간 총파업(링크)


지난 3월 유로존의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를 비롯한 유로존 지도자들은 스페인 위기설에 대해 "그리스와는 다르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재정위기는 계속되고 있고 그에 따른 긴축정책 등 모든 면에서 그리스를 닮아가고 있다. 물론 스페인 만은 아니다. 남부 유럽 전체가 그렇다. 왼쪽의 9월 말 스페인 시위 당시 부상당한 시민의 모습과 오른쪽의 4월 그리스에서 경찰 폭력에 의해 다친 시민의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프랑스, 되돌아온 긴축

프랑스에서도 긴축은 최대의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IMF는 프랑스도 "스페인ㆍ이탈리아와 같은 정도의 노동ㆍ서비스 시장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경제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5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경고했습니다.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장인 루이 갈루아는 소득세 삭감과 노동 유연성 강화를 핵심 내용으로 담은 산업경쟁력 강화방안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회장을 지낸 갈루아 위원장은 "쇠락하는 기업 경쟁력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충격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 그의 보고서가 '기업 살리기'에 방점이 찍혀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갈루아 보고서는 5월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취해왔던 정책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올랑드는 취임 직후인 6월 최저임금 2% 인상, 연 100만 유로(약 14억원) 이상 고소득자 최고세율을 75%로 인상한 바 있습니다. 부가가치세 인상도 중단시켰었죠.

친기업적인 갈루아 보고서가 정부에 의해 채택되는 것은 아마 예정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올랑드 대통령은 재정적자를 GDP의 4.5%에서 3%로 줄이기 위해 올해보다 300억 유로(약 42조원) 축소된 규모의 긴축 예산을 이미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그는 9월 9일 "이는 신념에 의한 행동"이라는 점을 밝혀 울며 겨자 먹기식 결정이 아님을 분명히 했죠.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감세와 재정지출 감축은 정부의 노동자ㆍ서민에 대한 지원이 축소되고 반대로 세금 부담은 늘어날 것임을 뜻합니다. 200억 유로(약 28조원) 규모의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은 부가가치세의 인상으로 메울 예정입니다. 중앙일보는 정부가 받아들인 갈루아 보고서가 전임 우파 대통령인 니콜라 사르코지의 개혁안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며 "올랑드 '사르코지 스타일'로 경제 살리기"라며 조롱하고 있죠.

●[조선일보] IMF "스페인처럼 안되려면 佛도 노동개혁하라"(링크)
●[중앙일보] 올랑드 '사르코지 스타일'로 경제 살리기(링크)
●[이코노미인사이트] 올랑드의 긴축, 그 잔혹한 배반의 결말은?(링크)


11월 14일 유럽 총파업 포스터. 'huelga' 'grève' 'strike' 등 '파업'을 뜻하는 각 나라의 단어로 유럽 지도를 그렸다. [European Strike 페이스북]

부메랑, 유럽 총파업

긴축에 반대한 행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남부 유럽의 네 개 나라, 스페인ㆍ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의 좌파와 노동조합이 주축이 돼 11월 14일 유럽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죠.

9월 말 스페인에서 의회를 둘러싸려던 6000명 규모의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시위가 있었죠. 이 시위는 경찰의 잔혹한 탄압으로 스페인 시민의 공분을 샀고 곧이어 이에 대한 항의는 스페인 전역은 물론 유럽 전체로 확산 됐습니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또 이탈리아에서 다르지 않았던 경찰의 폭력은 단지 결과였을 뿐입니다. 인민의 뜻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긴축안을 강행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경찰 폭력 외에 정부가 기댈 곳이 없지요.

14일 총파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이 총파업을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다함께가 속해 있는 국제사회주의 경향(IST)은 5일 발표한 성명에서 "14일 파업이 그 자체로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며 이번 파업이 "부문별 파업, 점거, 봉쇄와 전투적 시위와 같은 앞으로의 투쟁을 위한 도약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총파업이 유럽을 당장 어떤 다른 세계로 변화시키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 그랬듯이 점점 더 다른 세계, 다른 삶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상상력이 커져가고 있음은 틀림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민주화'가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쟁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주요한 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있죠. 우리는 이들의 공약에 부자와 기업에 대한 증세, 복지의 확대, 경제정책에 대한 민주적 참여가 포함돼 있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행동이 중요합니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의 행보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비록 우리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어느새 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 마련입니다. 한국에서도 좌파가 지금까지의 지리멸렬을 이겨내고 다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참세상] 11월 14일 유럽 공동 총파업 분위기 활활(링크)
●[레프트21] 유럽 공동총파업은 투쟁의 도약대가 돼야 한다(링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