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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때때로 2014. 2. 18. 04:44

혁명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보스니아 반란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권력이 필요하다. 성공했거나 성공에 가까웠던 모든 반란이 그랬듯이 말이다. 플리넘(Plenum)은 인민권력의 씨앗이 될 수 있을까.

보스니아 반란 ① 끝나지 않은 내전, 민영화
보스니아 반란 ② 플리넘, 인민권력이 싹트다
보스니아 반란 부록 - 인민의 목소리, 당신은 얼마나 배고픈가?


민영화 정책 재검토 등 일곱 개의 요구안을 들고 있는 시위대.

투즐라와 제니차 주지사는 7일 시위가 격화된 후 사임했다. 몇몇 자치주들로 이 사임의 물결이 확산됐다. 정부가 조기총선 카드를 빼들었지만 노동자와 반란에 나선 인민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플리넘(Plenum)'이라고 부르는 인민 의회를 건설했다. 시작은 역시 투즐라였다. 9일 투즐라에서 첫 플리넘이 열린 후 전국의 모든 반란 도시에서 플리넘이 개최되기 시작했다. 다미르 아르세니이에비치는 플리넘을 이렇게 설명한다.

"투즐라주 시민 플리넘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우리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플리넘은 토론을 위한 공개적인 공간입니다. 플리넘은 어떤 지도자와 금기도 갖지 않습니다. 결정은 대중의 투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플리넘은 정당이나 NGO, 독단적인 협회가 아닙니다. 플리넘은 현실적이고 유일한 민주주의입니다. 플리넘은 국가의 모든 권력기구에 제출할 요구안을 자신의 선언으로 만들고 채택합니다. 선언은 우리 모두의 말이고 우리 모두의 요구이기에 모두가 선언에 함께합니다. 국가의 권력기구를 향한 모든 다른 행동들은 부패, 정당의 도둑질, 개인적 이익의 추구와 인민을 약탈해 부유하게 되는 것들을 향해 계속될 것입니다."

이는 2011년 미국 뉴욕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보다 한결 발전한 모습이다.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는 저항운동 내의 이러저러한 문제를 처리하는 기관ㆍ과정ㆍ절차에 불과했지 권력에 도전하는 기관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플리넘은 혁명의 실제적 요구들, 즉 권력에 대한 것을 다루기 시작했다. 12일 사라예보 첫 플리넘에서 결정된 플리넘의 기본원칙을 살펴보면 더 확실해진다.

플리넘이란 무엇인가: 플리넘은 참석한 이들 모두의 의회입니다. 이는 토론을 위한 공간입니다. 결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왜 플리넘인가: 그것은 모두에게 공개돼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투표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모두가 참여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개인은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이 공간은 비폭력적인 모두에게 열린 곳입니다.

플리넘의 원칙, 모두는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갖습니다: 각 개인은 하나의 투표권을 갖습니다. 발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혹은 그녀의 이름 또는 성(family name)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집니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당신 동료 시민의 발언을 들으며 당신의 발언 기회를 기다립니다.
플리넘은 규칙과 의제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제안과 추가발의가 진행됩니다.
이는 투표 없이 발언된 순서에 의해 의제에 덧붙여집니다.

플리넘의 진행: 플리넘은 지도자 없이 단지 토론을 용이하게 하거나 발언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관리하는 사회자만 둡니다. 사회자는 발언자가 주제에서 벗어날 때 원래 의제로 되돌아오도록 지적할 권리를 갖습니다.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발언을 위해 손을 든 참가자를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한 사람은 플리넘 후 공개적으로 발표될 회의록을 기록합니다.

토론: 의제의 각 항목은 의제에 제기된 순서에 따라 토론합니다. 모든 논평은 그 항목에 연관된 것이어야 하며 질의는 바로 토론합니다.

투표: 논의되는 의제의 항목과 질의에 대한 토론을 시작한 후 최대 30분 내 투표를 시작합니다.

기본원칙이 플리넘을 다른 무엇보다 앞서 '토론을 위한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운영 규칙을 담은 아래의 항목은 무엇보다 '결정'을 위한 과정을 정하고 있다. 만장일치의 합의제로 토론을 위한 토론으로 그 역량을 소모시켜온 오큐파이 운동의 제너럴 어셈블리와 가장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서 채택된 첫 선언은 ①헌법에 기반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안전보장 ②새로 선임될 지방정부 책임자에 대한 헌법적 권리 인정 ③3월 1일까지 새로운 전문가 정부의 선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들은 아직 혼란스럽고 모순적이기까지 하지만 분명히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총선을 운운하며 시간 끌기에 나서려 했던 정부의 계획을 일축하고 인민의 힘에 의해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노동조합ㆍ방송 등 사회의 모든 것을 다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에미나 바보비치는 기업과 정부에 협조해왔던 '황색 노동조합'을 대체할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해선 말하지 않는가'라고 제게 묻습니다. 많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부끄러워하고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디타(Dita)에서 소위 '황색' 노동조합이라고 불리는 조합이 정부를 위해서 일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기업의 이익을 지켜 왔습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는 사람들을 '매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위가 시작됐을 때 스스로를 대중과 격리시켰습니다. 지금 그들은 의회와 협상하는 단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스메트 바히라모비치[노동조합 지도자 중 한 명인 듯싶다. 정확히 찾아보진 못했다.-옮긴이]가 저를 대표할 수 없기에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저를 팔아버린 카타 이베리히치가 저를 대표하도록 놓아둘 수는 없죠. 저는, 그리고 많은 수의 노동자들은 투즐라에서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황색' 노동조합은 [플리넘에-옮긴이] 참여할 권리가 없습니다. 또한 저는 침묵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용기를 가지고 목소리를 높여 저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투지와 용기를 가졌고, 우리가 단결했음을 저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미라 시지크는 기업이 자행하는 온갖 비리와 부패를 밝히기 위해 인민의 방송국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저는 우리가 TV 방송을, 최소한 공공 라디오 방송국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방송을 위해 기부금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송에서는 정치인들이 메인 뉴스로 나오지 않겠죠. 그 방송은 인민이 말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불평등을 직접 경험한 목소리, 이를테면 어떤 교수가 자신의 의견 때문에 상관으로부터 공격받거나 직장을 잃을 걱정 없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방송이 될 것입니다. 밝혀져야만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식대로 50달러를 주면서 250달러를 받았다고 서명하라는 회사도 있어요. 우리는 이러한 모든 회사들을 공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언론을 가져야만 합니다."

발전 도상에 있는 플리넘, 약점은 극복될까

'헌법'을 여전히 자신들이 행동하는 근거로 삼으며 기존 의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협력하려 하는 것, '전문가 정부'를 대안으로 요구하는 것은 분명 모순적으로 보인다. 이미 투즐라와 제니차 등 몇몇 주에서는 주지사 등 정부의 책임자들이 사임했고 주의회는 플리넘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발표했다. 즉 최소한 몇몇 지역에서는 실질적 권력이 거의 플리넘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존의 허울뿐인 헌법과 의회를 존중한다는 것은 의외의 모습이다. '전문가 정부'를 요구하는 것도 그렇다.

"금융 특혜와 사라예보 주 모든 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개정 사항, 2월 7일 시위에서 정부청사에 불이 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독립적인 보고서를 몇 주마다 보고하는 전문가들의 정부를 시민들은 원합니다."

사라예보 플리넘에서 아심 무이키치의 발언이다. 시민들에게 보고함으로써, 시민들의 통제를 받는 정부는 분명 발전된 전망이다. 그러나 이 전망이 노동계급 스스로의 정부와 같은 것은 아니다. 소위 전문가들이 겨우 '몇 주마다의 보고'만으로 시민의 통제에 온전히 순종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운동이 이제막 시작된, 7일의 불꽃으로부터 겨우 열흘 지난 상황에서 제기된 것들이란 걸 고려하면 '아직은' 결정적 약점이라고 보긴 어렵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통신원을 파견해 반란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레볼루션 뉴스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선출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 '기술관료'의 정부를 경험해 본 이들에겐 순진한 소리로 들릴 것"이라고 이를 지적한다. 그러나 플리넘이 요구한 '전문가 정부'는 "선거를 치를 때까지의 임시정부"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인민은] 수십 년 간 대중과 먼 세 '민족' 정파의 오만한 과두지배를 경험해 왔기에 '인민권력'의 형태로 제안한 공적 감독 요구가 분명 소위 '기술적' 정부 요구에 앞서 제기된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1968년의 세계적 반란 등 역사적 경험은 이것 말고도 다른 플리넘의 약점들을 눈에 띄게 한다. 그들 스스로 인지하고 있듯이 너무나 분명한 투쟁의 계급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플리넘이 '시민'의 의회로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간주되는 것이 첫째 약점이다. 지금까지는 오직 '개인'으로서만 플리넘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 약점을 극복하고 있지만 민족주의적 우파와 지배자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할 때 플리넘의 이 약점은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둘째 약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직까지 이 플리넘은 '무장'의 문제를 제가히자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란이 확산되면서 베니치의 경찰이 시위대와 참여했지만 무장한 정부의 힘은 만만한 게 아니다. 게다가 유럽연합과 국제사회는 이 반란이 '악화'되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보스니아 평화협정 이행 국제사회고위대표부(OHR)'의 발렌틴 인즈코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주둔군 병력을 늘릴 것입니다. 만약 상황이 확대되면 아마 나는 유럽연합 군대를 파병하는 것을 고려하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는 과거 1차 세계대전이 바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니 사라예보의 사건에서 촉발됐듯이 이번 반란이 주변국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옛 유고 연방이 영향을 받고 있다. 내전의 한 축이었던 이웃 나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연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베오그라드 경찰 노동조합은 반란이 국경을 넘어 확산돼도 진압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총리가 반란 직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날아와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호소한 것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반란의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내전을 치뤘던 옛 유고 연방의 독립국들은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내전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손을 잡거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아직 완전한 주권을 갖지 못한 상황을 이용해 NATO의 개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2011년 이후 PIGs라고 불리는 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 등 남부 유럽에서 반란의 불길이 터져나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이 불길은 터키ㆍ우크라이나로 이어졌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격변은 바로 아래 그리스 또는 옛 사회주의권 국가의 동료인 우크라이나의 반란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계를 흔들 격변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중해-흑해를 잇는 반란 벨트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보스니아에서의 저항은 2011년 이래 세계에서 일어난 반란 중 가장 발전된 형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대안적 형태의 권력을 '형성'한 단계에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여러모로 그 가능성을 매우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는 정말 다른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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