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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0 17:36

간월암과 공세리성당 기록/기억2015.01.10 17:36

의도치 않게 뜨는 해를 보게 됐다. 엇그제 본 조선일보의 한 사진 때문이다. 새벽에 잠이 깨자 무작정 달려 도착한 곳은 충청남도 서산 간월암이다. 맑은 날씨였지만 지평선 근처 구름이 몰려 있어 맑은 해의 모습을 보는 건 다음 기회로 미뤄야 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해는 주저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간월암과 육지를 잇는 길 사이에서 본 일출. [사진 自由魂]

간월암은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붙여진 이름. 해가 밝은 후에도 아쉬운 듯 한참 바다 위에서 머뭇거리던 달을 보니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명이 아직 가시지 않은 하늘과 바다. [사진 自由魂]

일출은 금방이다. 고개를 내미는 듯 했는 데 어느새 중천에 뜨기 일쑤다. 여명이 아직 남아있다고 안심할 수 없다. 해와 간월암을 함께 바라보기 위해 간월항의 방파제로 내달렸다. 홍성쪽 능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간월암을 함께 사진으로 담던 몇몇 사진가들은 벌써 철수한다. 늦었지만 그래도 담아본다.


황금 빛으로 태양은 푸른 어둠을 몰아낸다. [사진 自由魂]


간월암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다. [사진 自由魂]

해가 뜨고, 물이 물러나자 간월암은 육지가 된다. 따로 산문이 있긴 하지만 바다 자체가 산문이다. 사람의 의지와 달리 밀물이 들어차 간월암으로 가는 길을 사라진다. 간월암과 육지를 잇는 바닷길에는 커다란 바위가 네 개 놓여있다. 모양새가 꼭 사천왕이다. 옛 사진에는 안보이던 것. 사천왕을 대신해 가져다 놓았나보다.


완전히 열린 간월암. [사진 自由魂]


간월암과 주변의 모습들. [사진 自由魂]

해가 뜨자 방문객이 찾는다. 꽤 이른 시간 가족들은 함께 사천왕 사이를 지나 간월암에 들어간다. 수행자의 모습은 따로 보이지 않는다. 공양을 받는 이가 자리를 지키고 밥 짓는 연기가 난다. 바위가 사천왕을 대신한 것도 이채롭지만 장승이 산문을 장식한 것도 그에 못지 않게 낯설다. 밀물을 기다려보고 싶었지만 연 가게도 없고 있을 곳도 없어 차를 돌렸다.


간월암을 떠나 향한 곳은 공세리성당. 32명의 순교자를 모신 성당으로 1895년 설립됐다. 영조 때까지 충남 지방의 세곡을 모은 창고가 있던 자리에 연 교회다. 옛 공세창의 흔적은 마을과 성당 곳곳에 남아있다. 지금의 성당 건물은 1956년 신축한 건물이다.


한반도에서 근대에 세워진 성당의 전형적 모습이다. [사진 自由魂]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히는 공세리성당은 외관 만으로는 다른 근대 성당 건물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전주의 전동성당, 횡성의 풍수원성당이 얼핏 떠오른다. 규모는 그 중간 정도. 전동성당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더 정숙한 느낌이다. 그것은 아마도 성당 근처를 호위하듯 지키고 서 있는 여러 고목들 때문일 것이다.


수령 350년의 보호수 건너로 본 성모 마리아상. [사진 自由魂]

본당 건물 뒷편으로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조용히 산책하기 딱인 분위기나 실제로 그리 조용하진 않다. 가까이에 큰 도로가 있어 쉴새 없이 자동차 소음이 들린다. 이 소음만 없었어도 한참을 앉아 쉬다 돌아왔을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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