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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와 노동계급, 엘리트주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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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와 노동계급, 엘리트주의

때때로 2016. 7. 6. 00:41

"영국으로 말하면 런던 금융가의 자본가들은 현 체제의 수혜자들임이 분명한 반면 그 주변부의 산업자본가들은 스스로 피해자로 느끼고 있다. 이들이 현 국제체제를 타파하고자 이 국제체제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는 중·하층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 '브렉시트와 그 해법' 김승호ㆍ링크

영국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표가 다수인 것으로 드러나자 많은 지식인들이 충격을 받은 듯하다. 보통은 멍청한 인종주의자들의 불장난이라며 비난의 말을 쏟아낸다. 좀 더 점잖은 쪽도 위 글처럼 인종주의자 혹은 자본가의 한 분파에 '동원'됐다는 식이다. 전자든 후자든 교정 불가능한 엘리트주의로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이번 영국 국민투표는 바로 이 오만한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란이기도 하다.

인민이 그 스스로 정답을 알고 있다는 식의 NL과 같은 대중추수주의에 동의하진 않는다. 하지만 인민의 정서라는 현실에 기반해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1920~30년대 독일에선 바로 여기서 좌파가 실패했다. 사민당도, 공산당도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 나치가 성장했다. 그러니까 우린 지금 영국에서 파시스트의 현실화 된 힘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21세기 첫 10여 년간 반자본주의 운동이 반세계화 운동으로 시작돼 성장할 때 극우파는 운동 곳곳에서 개입할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좌파는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운동 자체의 성패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극우파의 국수주의적 정서는 운동을 지배하지 못했다.

이것을 패배가 아니라 기회로 만들려면 현실에 대한 보다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그러한 판단은 좌파보다는 우파에게서 더 많이 보이곤 한다. 아래는 영국의 시사 주간지 스펙테이터(The Spectator)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스펙테이터의 정치는 보수에 가까울 것이다. 필자가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 가난한 이들, 노동계급을 계속 그들(they)로 표현할 정도다. 이들의 계급의식과 계급적 본능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 상당히 많은 오역이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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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지지자가 멍청이거나 인종주의자인 건 아니다, 단지 가난할 뿐
그들은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자신들을 경멸하던 엘리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Brendan O'Neill, 스펙테이터, 2016년 7월 2일ㆍ링크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다음과 같은 말들이다: 가난하고 어리석은 이들이 일을 저질렀다. 공공주택에 살며 '선'을 읽는, GCSE[영국의 중등교육자격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이 시험은 주로 계급지표를 보여줄 뿐 어리석음을 말해주진 않는다) 이들 말이다. 이들이 들고 일어나 투표소를 짓밟으며 유럽연합 반대를 외쳤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는 쇠스랑만 안들었다 뿐이지 현대에 재현된 농민반란과 같다. 투표결과는 인상적이다. 잘 사는 이들은 잔류를, 곤궁한 이들은 탈퇴를 지지했다. 브렉시트 지지자와 잔류 지지자들
[The Brexiteer/Remainer]은 거의 완벽하게, 정말 기막히게 계급 구분선을 따라 나뉘었다. 생산직이 다수인 지역에서는 86%라는 엄청난 수가 탈퇴에 표를 던졌다. 생산직이 적은 영국의 다른 소수 지역에서는 42%가 그랬을 뿐이다. 주택가격이 평균 28만2000파운드가 안 되는 지역에서는 79%가 탈퇴를 지지했다. 주택가격이 그 이상인 지역에서는 단지 28% 만 그랬다. 교육수준이 낮은 (예를 들면 GCSE에서 성인 4분의 1 만이 'five A'에서 'Cs'까지의 등급을 획득한) 240개 지역에서는 83%가 탈퇴에 투표했다. 소득수준 기초조사 순위로도 마찬가지다. 다수가 적은 임금(2만3000파운드 이하)을 받는 지역의 77%가 탈퇴에 표를 던진데 비해 급여가 괜찮은 지역에선 35%가 그랬을 따름이다.

이 얼마나 극명한 차이인가. 당신이 육체노동을 하며 보통의 집에 살고 있고, 대학문이라곤 한 번도 넘어본 적 없다면 당신은 유럽연합에 '쥐어짜내지고 있다'고 말하는 걸 이웃한 여러 도시의 부유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보다 더 선호할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의 16개 지역은 생산직이 다수지만 탈퇴보다 잔류에 표를 던졌다. 그럼에도 계급은 투표에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는 정말 내게 놀라운 일이다. 사회등급이 D 또는 E(반숙련 또는 미숙련 노동자와 실업자)인 사람이 다수인 영국의 50개 지역 중 오직 세 지역 만이 잔류에 투표했다. 세 곳이다. 이는 기득권층이 그들에게 '예스'에 표를 던져야 한다고 고집했음에도 매우 가난한 47개 지역이 일제히 '노'를 외친 것이다.

이제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영국의 가난하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유럽연합과 영국의 그 지지자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줬다. 또 그들은 영국이 부자와 가난한 이들 사이의 오래된 이데올리기적 분열을 떨쳐내고 우리 모두가 사회의 '주주'로 간주되는제3의 길 또는 탈계급 사회에 들어섰다는 것과 같은 블레어주의 신화를 완전히 깨버렸다. 국민투표 후 우리는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여전히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것은 소유냐 소유하지 않았냐의 문제 만은 아니다. 이는 관점의 전쟁이다. 사회의 부유한 부류는
[국내] 정치가 외부의 국제기구들과 연관되는 것을 선호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그렇지 않다. 유복한 이들 중 소수 만이 사회에서 가난한 이들의 몫을 주장할 뿐 (무엇보다도 '주주 사회'라는 터무니 없는 말을 앞장서 홍보하는) 여론 주도층은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 농민 반란이 엘리트에게 준 충격으로 인류학자와 같은 이들이 이러한 미지의 집단을 조사하게 됐고 그들은 현재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정신 없이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두 가지 대답을 내놓았다. 하나는 분노고 더 나쁜 다른 하나는 연민이다. 분노한 이들은 서민들이 탈퇴표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전적으로 인종주이적이진 않지만 나이젤 파라지
[영국독립당의 창립자이자 대표, 7월 4일 대표직을 사임했다]와 같은 이들의 악질적인 외국인 혐오 선동에 속아넘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은 악질 선동가들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는 이런 생각은 1840년대 차티스트 운동이 들었던 것과 같은 알맹이 없는 설명이다. 가난한 이들은 "성숙한 지혜'를 지니지 못해 다른 어떤 계급보다도 더 잔혹한 극단주의자들로 바뀌기 쉽다"는 오만한 비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국제적 대도시의 시민들은 약자들을 다시 한 번 바로 그 자리에 세워 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반유럽연합 진영의 사람들이 외국인 혐오에 휘둘리고 있다는 주장은 일축된다. 투표 후 ComRes
[영국의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브렉시트를 지지한 이 중 단 34% 만이 그들이 표를 던진 주요 이유로 이민자를 언급(이민자 언급이 꼭 인종주의와 연관된 것은 아니기도 하다)하고 있다. 절반이 넘는 53%의 사람들은 영국이 스스로의 법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유럽연합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어리석게도 포그롬[집단 학살, 러시아에서의 유대인 학살에서 유래]의 편을 들어준 것이라며 모욕당한, 전국을 휩쓴 [반란자들의] 발자국은 실제론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다.

이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평에 대해 말해보자. 그들의 진단은 치료법의 하나다. 유복한 사람들 중 소수 만이 분노 충동에 시달린다. 무시당한다고 느낀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당연한 건 아니지만 채찍을 휘두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겉보기에 배려 넘치는 대중에 대한 오프라
[아마도 오프라 윈프리를 말하는 듯]식의 접근법에 넘어가선 안된다. 이 또한 그들의 민주적 선택을 정치적 선언보다는 본능적 비명 취급함으로써 비하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선 기득권층의 입장에 대한 의식적 반란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달라는 감상적 애원이 된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탈퇴표를 던진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그들은 정치계급에게 무시당한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에 반대한 것이다. 그들은 엘리트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많이 간섭하는 걸 더 문제 삼는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비난받는 데 신물 나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을 낮잡아 보는 국가기구가 자신을 지배하는 것, 혹은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을 도덕적ㆍ사회적으로 교정될 필요가 크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내가 자랐던, 노동계급이 극소수인 런던 북서부 교외의 번트오크에서 탈퇴 투표자를 찾긴 어렵다. 바넷구 전체를 살펴도 그렇다. 이 곳에선 6만1000~10만 명의 사람들이 잔류에 표를 던졌다. 이들은 모두 비슷하게 말한다. "그들이 우리를 무릎 꿇렸다." 나와 대화했던 모두는
[탈퇴표에 투표한] 그들이 영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해서 바로 인종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 중 다수가 집시(번트오크에는 다수의 집시가 살고 있다)와 함께 일하며 어울려 산다는 것은 외국인에 대한 공격이 그들의 책임이 아님을 보여준다.

[브렉시트에 표를 던진 가난한] 그들은 아랫사람 취급 받으며 모욕당하고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시당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계급 문화와 태도가 멸시받는다고 느낀다. 관료집단은 이들을 건강하지 못하며, 정치적으로 공정치 않고, 축구에 지나치게 몰입하며, 자식 낳는 데 너무 집착하고, 술독에 빠져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잉글랜드라는 사고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반란은 인종주나 유치한 분노의 발작이 원인이 아니다. 이를 숙고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을 경멸하던 엘리트의 콧대를 꺾을 기회를 알아채 공격에 나섰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발휘했고 그 과정에서, 맙소사. 세계를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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