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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랫포 CEO의 세계정세 분석이 빠뜨린 것

때때로 2020. 2. 28. 16:40

민간 정보기관 '스트랫포'는 주로 동유럽과 아랍 지역의 정치와 외교 정보를 분석해 기업들에 제공해왔다. 미국 내에서는 오큐파이 운동 참가자들 정보를 무단 수집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은 동유럽 시민사회에 개입해 정권교체를 도모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그들이 제공하는 분석과 정보가 별 것 아니라는 평가도 있지만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려는 의도, 혹은 그러한 일에 일부 역할을 했음은 분명한 듯하다.

그 스트랫포의 대표 조지 프리드먼의 책 '다가오는 유럽의 위기와 지정학'(Flash Points)이 최근 주류 언론을 중심으로 관심받고 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한 제국주의 세계체제의 유지에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의 지정학적 세계분석을 보여주기에 꼭 읽어봐야할 책이다. 대략 5년여 전 출간된 책이라 아주 최근의 상황은 담지 않았지만 지난 10여년간 가장 중요했던 사건들, 2008년 금융위기와 뒤이은 아랍의 봄, 우크라이나 사태, 동유럽의 불안, 브렉시트의 단초를 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유럽연합에 대한 이상론에 해독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 대한 군사적 견제와 유럽 경제재건을 위해 시작된 계획이었지만 크게는 남부와 북부, 동부와 서부 유럽 국가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유럽연합이 놓인 지반은 불안정하기 그지 없다. 수출중심 경제를 지닌 독일로서는 안정적인 수출시장 확보가 관건이기에 통화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실업문제가 큰 프랑스와 남부 유럽은 재정을 이용해서라도 일자리 확보가 우선시 한다. 가장 극단적 사례는 키프로스다. 결국은 중산층에게 피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은행의 빚을 갚는 게 우선시됐고 터키와 그리스 사이 불안정한 균형을 유지하며 '제2의 스위스'를 꿈꾸던 키프로스는 몰락했다. 그리스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유럽 곳곳엔 '화약고(Flash points)'가 묻혀있다.

기분 나쁜 것은 저자의 위선적 태도다. 동유럽 출신인 자신의 가족사로부터 얘기를 시작하는식으로 제3자가 아닌 당사자적 서술임을 위장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미국을 예찬하고, 지난 100여년간 전쟁과 갈등에서 미국은 '어쩔수 없이' 끌려들어갔고 그들의 '장점'으로 인해 과도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강변한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동유럽 출신 정체성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미국인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2008년 금융위기에 타격받은 유럽을 서술하면서도 그 진원지가 미국이었음은 애써 가볍게 넘어간다. 되레 미국의 위기 극복 방식을 칭찬하기까지 한다. 미국이 타국엔 쉽게 용인하지 않던 재정완화 정책을 말이다.

그의 '현실주의적' 태도는 인정할 만하다. 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은 아닐지라도 전쟁은 불가피하고, 평화와 번영의 시기로 보였던 때조차 전쟁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맞다. 그래서 다들 놓치기 쉬운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갈등, 프랑스의 말리 공습까지 면밀하게 훑는다.

하지만 그의 현실주의적 태도는 본질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이다. 이 책에서 민족주의적 갈등, 국가 간 전쟁은 불가피한, 마치 인간 본성에서 기인한 것처럼 그려진다. 이 책에서 주요 행위자는 국가이고 민족이다. 그리고 그들의 추동력은 종교다. 얼핏 내비치는 계몽주의에 대한 적대감도 놓쳐서는 안될 포인트다.

그러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아랍의 봄에 뒤이은 내전들, 우크라이나 내전, 동유럽 정치에서 극우의 부상들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을 놓치면 이 책에 홀리기 쉽다. 그 핵심은 계급정치의 실패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레닌의 슬로건을 잊어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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