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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에서 온 편지,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원을 직시하자

때때로 2023. 10. 22. 23:35

10월 7일 가자의 반격 이후 보름여가 지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2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주민에게 긴급 경고한다. 가자지구 북부에서 와디 가자 이남으로 떠나지 않기로 한 사람은 누구든 테러리스트 조직의 공범으로 간주할 것이다"는 이스라엘군이 배포한 것으로 보이는 전단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와디 가자'는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가르며 지중해로 흘러가는 건천(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강)이다. 이스라엘과 그 후원자인 미국이 '하마스'가 문제라고 하던 것이 위선이라는 걸 얼핏 드러내 보인다. 그들에겐 가자의 거주자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고 이스라엘은 이들을 '청소'하려는 것이다. 애초 하마스는 핑계, 그것도 성의 없는 핑계일 뿐이다. 물론 모든 사건이 2023년 10월 7일 시작됐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그게 '진실'일 수 있겠다. 하지만 사건은 그렇게 최근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20여년 전 하마스가 만들어진 이후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마스가 없던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결정적으로는 1948년 '나크바(대재앙)'으로부터 비롯했다. 여기 가자에서 보내온 편지가 있다. 39살의 언론인이자 평화활동가, 또 라믈라 출신의 팔레스타인 난민인 아메드 아부 아르테마가 팔레스타인, 혹은 이스라엘 문제의 뿌리를 직시하자고 호소한다.

※Deepl.com을 이용해 초역한 후 다듬은 글입니다.

2023년 10월 14일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은 가자지구 남부 거리에서 한 팔레스타인인이 아이를 안고 달리고 있다. AFP=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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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된 감옥 가자에서 바깥 세상에 보낸 편지
아메드 아부 아르테마|TRUTHOUT|2023년 10월 15일|링크

나는 지난 몇년간 백인 온건파에 매우 크게 실망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백인시민위원회(the White Citizens Councillor)'나 'KKK(the Ku Klux Klan)단'이 아닌 백인 온건파가 흑인의 자유를 향한 행보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들은 정의보다 질서를, 정의로운 적극적 평화보다 갈등이 없는 소극적 평화를 따르고 있습니다. 백인 온건파는 계속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나는 당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동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직접행동이라는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온정주의적인 태도로 자유를 향한 다른 이들의 행보를 좌지우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또 이들은 근거없는 여유를 부리며 흑인들에게 '좋은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충고를 반복합니다.
-마틴 루터 킹|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1964년

나는 미국과 유럽의 온건파에게 팔레스타인 문제의 뿌리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려 한다. 안타깝게도 지난 수십년간 세계는 팔레스타인인이 받아온 고통, 대량학살 위협, 억압을 외면해 왔다. 그러던 세계가 이스라엘이 비명을 지르자마자 깨어나, 사건이 10월 7일 시작 것인양 말하고 있다.

책을 마지막 장부터 읽을 수는 없다. 당연하게도 책은 첫번째 장부터 읽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의를 추구한다면 문제의 배경부터, 또 근원부터 살펴봐야 한다.

베냐민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말한 것과 달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을 적이라고 여기지 않다. 그들의 말은 완전히 틀렸다. 유대인들은 1948년 이전 아랍 국가에서 평화롭게 살아왔다.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은 몇몇 아랍 국가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식민지 치하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1948년 팔레스타인에 온 시온주의 운동은 학살을 저질렀다. 그들은 원주민을 인종청소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팔레스타인이 "사람이 살지 않던 빈 땅"이라고 말해왔다.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요아프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에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갈란트의 이 말은 무장정파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우리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네타냐후 또한 단지 무장세력뿐 아니라 대부분이 여성과 아이들인 230만명에 달하는 가자지구 주민 전체에게 즉시 떠나라고 말했다. 이게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로 대량학살이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게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1948년 이래 미국과 서방 정부의 후원하에 이스라엘이 자행해왔던 광범위한 대량학살을 목도하고 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강제추방을 추진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문제시 삼는 것은 단지 하만스만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사람, 바로 그 존재 자체가 문제다. 우리가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고, 바로 이러한 주장에 기반해 만들어진 식민지 국가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첫째 이스라엘은 현재 하마스를 악마화하며 전 세계에 그들이 겪는 문제가 하마스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그들은 하마스와 나치가 비슷하다고, 때론 하마스가 ISIS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마스는 1987년 설립됐다. 1987년 전엔 하마스가 없었다. 그렇지만 1987년 이전에도 난민은 존재했다. 점령당하고 구금당하고 학살당했다. 불법 정착촌이 들어서고 인권을 침해당했다. 이스라엘 문제는 하마스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둘째 현재 서안지구에는 하마스의 영향력이 거의 없다. 바로 그 서안지구에도 불법 정착촌이 있다. 2023년 초 23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서안지구에서 살해됐다. 하마스가 없음에도 식민국가 이스라엘은 억압적 정책을 펼쳤다. 따라서 우리는 굴하지 말고 문제의 근원을 직시해야만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십년간 겪어온 억압이 바로 문제의 뿌리다. 이들은 식민지 치하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에서 살아왔다. 앰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이스라엘 인권단체인 '베첼렘(B'Tselem)'도 보고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단체들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말한다.

결과에만 초점을 맞춰 문제의 배경과 뿌리를 무시하는 것은 정당치 못한 일이다. 문제는 10월 7일 시작된 것이 아니다. 10월 7일 이전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가자는 매우 비좁고 비참한 지역이다. 가자 주민의 3분의 2는 난민이다. 10월 7일 뚫린 철조망 너머의 동네와 마을에서 내쫓겼던 이들이다. 그들은 철조망 너머에 살았다. 나 또한 라믈라에서 왔다. 내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추방당했다. 그곳은 이스라엘 땅이 됐고 할아버지는 가자로 쫓겨났다. 이스라엘은 2007년부터 16년간 가자지구를 완전히 봉쇄해 왔다.

가자지구 주민 수십 만 명이 봉쇄로 목숨을 잃었다. 예루살렘과 서안지구 또는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도시의 병원에 가 치료받는 것을 이스라엘 당국이 막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달 동안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위험하게도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통과해 가자를 탈출했다. 그들의 기본적 욕구와 권리를 찾아서 말이다. 하지만 많은 이는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스라엘의 봉쇄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 봉쇄된 곳엔 그 어떤 직업도 없다. 다음 세대가 어떤 미래도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살아가면서 잡을 만한 기회도, 젊은 이들의 기본적 욕구를 채워줄 그 어떤 수단도 없다.

그렇게 가자 주민은 죽어가고 있다. 지금은 미사일이 우리의 목숨을 빼앗고 있고, 10월 7일 이전엔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기 위해 이스라엘이 가한 제약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자유를 향한 몸짓은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39살이다. 그렇지만 알아크사 모스크에 방문할 수 없다. 자동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인데도 말이다. 왜 못 가느냐고? 이스라엘이 내가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이유로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보다 더 가혹한 것이 있다. 그들이 우리를 추방하고 학살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자 주민에게 그 어떤 희망도, 그 어떤 미래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봉쇄와 악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인에게 품위를 지키라고,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세계는 어찌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이 문닫힌 방에 있다고 상상해보라. 음식과 약과 운동할 자유 등 모든 것을 빼앗겼다고 가정해보라. 또 몇 번이고 반복해서 폭행과 모욕을 당한다고 떠올려보라. 당신이 외부 세계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문을 부순다면 저들은 말할 것이다. 여기 테러리스트, 야만인,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이 있다고. 이것이 바로 미국의 후원 하에 이스라엘이 자행하고 있는 일이다. 그들은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처우하고 모욕하며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자유와 존엄을 박탈했다. 마침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분노하자 이스라엘은 세계를 향해 말했다. "보라, 유대인을 적대시하는 저들을. 저들은 테러리스트다. 우리는 반유대주의자들을 죽이려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테러리스트의 패배를 바랄 뿐이다." 이보다 더한 위선은 없다.

2018년 나는 '귀향을 위한 대행진(the Great March of Return)'을 조직하며 개인적으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행진은 완전히 평화적인, 비폭력 저항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제법의 준수를 요구하며 저항했다. 우리는 난민으로서 고향에 돌아갈 우리의 권리를 지켜달라고 간청했다. 우리는 요구를 외치며 비폭력 행진을 이어갔다. 결과는 어찌 됐을까. 비무장 시위대는 이스라엘의 계획적인 총격으로 최소 270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다.

이게 무엇을 뜻할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에게는 평화적인 투쟁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폭력성만 보여줄 뿐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든 것을 박탈하고 평화적인 호소에는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응답한 그들에겐 "우리 여기 있다"고 세계에 외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이번 사건에선 거리에서의 투쟁과 저항이 보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항이 무엇인가다. 저항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세계에 '여기 있는 우리'를 보여주려는, 다시 말해 "우리가 있다"고 말하려는 시도다. 그런데 식민국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따라서 전 세계 누구든 평화와 정의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그 기원을, 모든 것이 시작된 지점을 직시해야 한다. 반작용만 바라봐선 안 된다. 문제의 근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수감된 팔레스타인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5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있다. 그들 중 일부는 40년, 혹은 그 이상 갇혀있다. 수천명의 수감자들은 소위 행정적 구류 상태에 있다. 즉 정당한 기소와 재판 절차 없이 수감돼 있다. 그중 여성과 아이도 수백명이다. 많은 이들이 부모와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다. 수감자들은 얼굴도 못 본 채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우리는 물어야만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 학살을 위한 명분을 얻기 위해 이용하는 10월 7일에, 그날 일어난 사건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물어야만 한다. 문제의 뿌리를 확인해야만 우리는 진실된 정의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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