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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전쟁, 두 가지 시나리오

때때로 2023. 11. 3. 02:16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피해가 보도되며 전 세계의 공분도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죽음에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 이에 따른 향후 전쟁은 어디로 갈 것인가. 무자비한 군사력 앞에 팔레스타인 인민의 목숨은 바람 앞 촛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미국이 그 어떤 제어도 없이 여의봉을 휘두를 수 있는 건 아니다. 질베르 아슈카르 SOAS 교수가 가자지구 전쟁의 향후에 대한 두 가지 전망을 내놓는다.

※Deepl.com을 이용해 초역한 후 다듬은 글입니다. ()는 글쓴이의 보충 설명, []은 번역자가 이해를 위해 덧붙인 말입니다.

유엔 총회에서 '대이스라엘'이 그려진 '새로운 중동 지도'를 들고 연설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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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전쟁, 두 가지 시나리오 : 대이스라엘과 오슬로
임박한 지상 침공, 정치적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질베르 아슈카르|2023년 10월 23일|New Lines Magazine|링크

며칠 전 가자지구 북부 주민 100만명이 남쪽으로 피난할 시간이 24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스라엘 군의 지상 공격이 임박했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지상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정부와 군 지휘부는 다르게 해석되길 바라겠지만 이는 그들이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 이후 즉각 시행할 수 있는 가자 침공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이스라엘군은 18년 전 철수했던 가자지구를 다시 점령해야 할 것이라고는 거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06년, 2008~2009년, 2012년, 2014년, 2021년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살펴보면 이스라엘군은 폭격에 의존한 제한적 작전만 펼쳤을 뿐이다. 지상 공격을 감행한 2009년과 2014년에도 이스라엘군은 제한적 작전에 머물렀다. 하지만 10월 7일 반격의 엄청난 규모와 충격 때문에 이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하마스를 완전히 소탕해 가자지구를 '진압'하겠다는 목표를 고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인구밀집 지역에 대한 공격은 군에 매우 위협적인 시가전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전쟁 후 점령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는
[대규모 지상 공격] 엄청난 도전이다. 두말 할 것 없이 이것은 군사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문제다. 지금 상황에선 더더욱 정치적ㆍ군사적 고려사항이 긴밀하게 상호 연관돼 있다. 이스라엘이 선언한 목표를 달성하려는 과정에서 용인한 폭력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며 이는 전쟁 그 자체의 진행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스라엘이 자국의 병사를 잃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 요소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2011년 가자지구에서 포로로 잡힌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릿을 돌려받기 위해 1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구금자를 풀어줬다. 이는 이스라엘군이 막대한 병력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지상 공격을 개시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정규군과 준군사 조직 바그너그룹을 동원한 것이나 1980~1988년 이란이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펼친 '인해전술' 같은 것을 그들은 내켜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집트 시나이 사막이나 시리아 골란고원처럼 건물이 드물고 원거리 화력 투사가 힘을 발휘하는 지형에서 이스라엘 군사력의 우위는 극대화된다. 반대로 1982년 8월 초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던 아리엘 샤론은 포위한 베이루트에 병력을 투입하라고 명령했지만 다음 날 곧바로 공격을 중단시켰다. 이스라엘군은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전투원들이 철수한 9월 중순에야 베이루트 시내로 진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바논인들이 도심에서 이스라엘군을 표적으로 삼은 저항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자 그들은 그달 말에 철수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처럼 인구가 밀집해 있는 큰 도시를 침공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지상 작전을 펼치기 전 집중폭격으로 점령하려는 지역을 평탄화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10월 7일 직후 시작한 공습은 2006년 레바논에서 시작해 가자지구로 이어진 전쟁에서 이뤄진 공습보다 더 큰 규모로 더 강하게 진행되고 있고 더 큰 피해를 불러오고 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군은 예전 어떤 전쟁에서도 밭을 갈아엎 듯이 도시 전체를 평탄화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당연히 화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정치적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1982년 베이루트를 포위했을 때를 명확히 경험했다. 포위는 국제적 항의를 불러일으켰고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정치적 위기가 촉발돼 메나헴 베긴과 아리엘 샤론의 리쿠드당 정권에 맞선 반대파가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지난 가자지구와의 전쟁에서도 이스라엘군은 지역 내 일부분조차도 점령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선 전례없이 많은 수의 이스라엘 시민과 군인이 살해된 충격으로 이스라엘 국민과 이스라엘의 국제적 후원자들은 명식적 혹은 암묵적으로 가자지구 전체에 대한 재점령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마스나 이슬람국가와 같은 단체를 박멸하겠다는 것은 가자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수색과 소탕 작전 펼치겠다는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최근 군사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파이낸셜타임즈는 이렇게 보도했다.

소위 '필승 교리'에 따르는 이스라엘군은 공군을 이용해 핵심 구역의 사전 검증한 목표물을 신속하게 파괴할 것이다. 이미 전투기들은 가자지구의 전역에서 집중 폭격하고 있다. 폭격은 전투기들이 재급유받을 때만 중단된다. 재급유조차도 착륙없이 공중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작전은 하마스가 전열을 가다듬을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으로, 2020 교리[앞의 '필승 교리']를 이끌어낸 논의에 익숙한 한 사람에 따르면 "국제 사회가 자제하라고 정치적 압력을 가하기 전 최대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현재 전개되고 있는 군사적 시나리오다. 이제 정치적 차원을 살펴보자. 하마스의 소탕을 위한 가자지구의 재점령이 실제 군사적 목표라면 이어질 질문은 이거다. 얼마나 오랫동안 점령할 것인가? 하마스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객관적인 고려사항과 보유한 군사적 수단에 제한돼 선택지가 적은 군사적 전략보다 이 두 가지 정치적 전략에 관한 질문은 의견충돌을 불러올 여지가 더 크다. 양 극단에서 맞서고 있는 두 정치적 입장은 우리가 '대이스라엘(the Greater Israel) 시나리오'와 '오슬로[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인정한 오슬로 협정] 시나리오'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이스라엘 시나리오'는 베냐민 네타냐후와 극우파인 그의 추종자들이 가장 선호한다. 리쿠드당은 시오니즘 극우파의 후예다. 수정주의 시오니즘으로 알려진 이들의 전신은 아랍인이 '나크바(대재앙)'라고 부르는 1948년 팔레스타인 대량학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데이르 야신 학살을 자행한 무장분파다. 당시 시오니스트 무장세력은 전쟁을 통해 영국령 팔레스타인 영토의 78%를 점령했고(설립 초기 유엔은 영토의 55%를 시오니스트에 할당한 분할 계획을 승인했고 서방국가가 신탁통치하기로 했었다), 팔레스타인 주민의 80%가 뿌리째 내쫓겼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데이르 야신에서와 같은 잔혹한 행위에 겁먹고 전쟁을 피해 도망쳤다. 이후 다시는 고향의 집과 땅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오니스트 극우파는 다비드 벤구리온이 이끌던 주류 시오니스트가 지중해와 요르단강 사이 영국령 팔레스타인 땅의 100%를 점령하기도 전 전쟁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10월 7일의 사건이 있기 불과 2주 전 네타냐후는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포함한 '대이스라엘'이 그려진 중동 지도를 내보이며 연설했다. 2005년 네타냐후가 가자지구에서 철수를 결정한 아리엘 샤론 정부에 항의하며 사임했었다는 점도 이번 전쟁과 그의 더 밀접한 연관을 보여준다(1990년대 리쿠드당을 이끌던 네타냐후는 1999년 선거에서 에후드 바라크의 노동당에 패배한 후 당대표직을 샤론에게 넘겨줬다. 이후 2003년 선거에서 승리한 샤론은 네타냐후를 재무장관에 임명했다). 전 세계 언론들은 거의 언급하지 않지만 말이다.

정치인이라기보다 군인에 가까웠던 샤론은 다루기 힘든 가자지구에서 병력을 철수시켜달라는 군대의 요청에 귀기울였고, 외부에서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그는 1967년 점령 이래 서안지구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가자지구의 합병은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는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만들어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가자지구를 맡기고 시오니스트에 더 중요하고 합의된 목표인 서안지구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 인구가 밀집한 서안지구에서만 이스라엘 병력의 철수를 명시했고 대부분의 영토에 대한 통제권은 이스라엘에 그대로 맡겼다. 샤론은 2005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무시한 채 가자지구의 일방적인 '철수'를 강행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준비할 틈도 없이 말이다. 2년 후 하마스는 가자지구 권력을 장악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른바 6일전쟁 이래 가자지구를 점령해왔다. 서안지구에만 영향을 미쳤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파타가 가자지구를 정비할 틈을 주지 않고 이스라엘이 철수했다는 지적이다.]

네타냐후는 샤론의 철수 조치에 항의했다. 리쿠드당 내 샤론 반대파를 이끈 그는 샤론을 내쫓기에 충분한, 그리고 새로운 당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세력을 모았다. 그 이후 리쿠드당은 네타냐후의 수중에 들어갔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정치권의 분열을 이용해 2009년 총리직에 올랐다. 그는 기회주의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십분 발휘해 2021년 6월까지 총리 자리를 지켰다. 1977년 첫 승리후 리쿠드당은 정권을 잡을 때마다 끝이 안보이는 우회전으로 '역사상 가장 우파적'이라는 이름표를 얻곤 했었다. 이제 2022년 말 다시 방향타를 잡은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정부를 '역사상 가장 극우파적'으로 내몰고 있다. 네타냐후가 2020년 도널드 트럼프(와 재러드 쿠슈너)의 '평화 계획'을 수용한 것은 팔레스타인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이 필연적인 거부가 향후 서안지구 대부분의 일방적 합병에 좋은 구실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자지구를 다시 점령하려면 예상에 없던 큰 격변이 필요했다. 그런데 기대할 수 없었던 격변이 하마스의 '알 아크사 홍수' 작전으로 갑작스럽게 시작됐다. 그야말로 이스라엘판 9ㆍ11이었다. 10월 18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네타냐후가 강조했 듯이 인구를 고려하면 10월 7일의 사건은 9ㆍ11보다 20배 이상 치명적이었다. 9ㆍ11로 인해 부시 정부의 숙원 사업이었던 이라크 침공을 위한 정치적 여건이 조성된 것처럼 10월 7일은 가자 재점령을 위한 정치적 여건을 만들었다. 가자 재점령은 네타냐후가 오랫동안 염원해왔던 일이지만 공개적으로 논의하기엔 너무 무모하고 선을 넘는 일이었다.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강경 시오니스트 우파는 이를 갈망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 당국은 가자 주민들에게 이집트 국경 방향의 남부 지역으로 떠나라고 거듭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집트에 국경을 개방하는 방안을 설득하려 애쓰고 있다. 시나이 반도에 230만 명에 달하는 가자지구 주민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는 이러한 방안을 1948년과 1967년 고향에서 내쫓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웃 아랍 국가들에서 영구적 난민 상태로 머물게 된 것처럼 고향에서 내쫓긴 가자지구 주민을 시나이 반도에서 기한 없이 머물 게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10월 18일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에게 임시 보호처를 마련해주려는 것이 진심이라면 1948년 국경선 안쪽의 네게브 사막에 난민캠프를 차리라고 냉소적으로 비꼬았다.

그러나 10월 7일 사건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대이스라엘이라는 야망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야망은 미국에선 공화당 극우파와 기독교 시오니스트들에게서 일부 지지를 받을 뿐이다. 특히 미국 외교정책을 주도하는 민주당으로부터는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네타냐후와의 공감대가 거의 없는 (네타냐후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바이든과 러닝메이트였던 버락 오바마의 맞수였던 밋 롬니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바이든 정부는 오슬로 협정에 따른 명목상의 팔레스타인 국가 방안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 방안을 명분 삼아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제쳐두고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연계와 협력을 위한 길을 닦고자 한다.

바이든이 10월 15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미국 대통령의 말이 하마스 제거를 위한 전면적 가자지구 침공을 실수라고 지칭한 건 아니다. 되레 그는 "
[가자지구에] 들어가 극단주의자들을 제거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명확히 말했다. 기자가 "하마스는 완전히 소탕해야 한다고 믿나"라고 묻자 바이든은 이렇게 답했다.

그렇다. 하마스 대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필요하다. 이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로 가기 위해서다. '두 국가 해법'이라고 불리는 이 길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입장이었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사는 50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위해 이스라엘 옆에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바이든이 하루 동안 이스라엘을 방문한 것은 내년 2024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정치적 목적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는 트럼프와 공화당 우파, 복음주의적 기독교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라는 쟁점을 제기하기 전에 선수를 친 것이다. (바이든이 미국 시민의 다수, 특히 민주당 주류의 견해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바이든과 달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에서 보다 균형 잡힌 접근법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그의 행정부가 진행되고 있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온힘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인도주의적 조치를 위한 협상에 나서려는 것만도 아니다. 아마도 네타냐후든 아니든 이스라엘 정치권이 오슬로 방식을 따르게끔 설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일 것이다. 그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요르단 국왕을 만나 자신의 노력에 힘을 더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방문하기 전날 밤 이스라엘 정부가 알 알리 아랍 병원을 폭격해 파괴하면서 그의 계획도 무너져 내렸다.

이스라엘 전 총리이자 군 참모창을 지내기도 했던 에후드 바라크는 군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정치권의 일부가 바이든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분명한 징후를 보여줬다. 그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조금 더 세밀해진 오슬로 시나리오를 밝혔다.

바라크는 하마스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것과 함께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재건하는 것이 최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에게 "이스라엘의 총검에 의지해 돌아온 것으로 보여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렇기에 그는 과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해 가자지구에 대한 통제를 이집트ㆍ모로코ㆍUAE 등의 국가가 포함된 아랍 평화유지군에 넘길 것이다. 이 평화유지군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제력을 발휘할 때까지 이 지역을 보호할 것이다."

1993년 화려하게 출범한 오슬로 프로세스는 2000년 2차 인티파다를 촉발시켰다.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몫으로 넘기기 위해 철수했던 서안지구를 재점령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결국 오슬로 프로세스는 얼마 진행하지 못하고 중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과 그 동맹들은 이 시나리오를 유일하게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서안지구에서 급증한 이스라엘인 정착촌을 용인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요르단강 서부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의 22%에 불과한 조각난 '독립국가'를 받아들이게끔 하려는 사실상 불가능한 시도였던 트럼프와 쿠슈너의 '평화 계획'과 다를 바 없는 일종의 영토교환을 그들은 믿는 것 같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1월 중동 평화계획을 발표했다. '번영으로 가는 평화(Peace to Prosperity)'라는 제목을 건 이 계획의 핵심은 서안지구 내 유대인 불법 정착촌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정하고, 그 대신 이스라엘 남부 사막지대 비슷한 면적의 땅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할애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이스라엘에 넘기기로 해 파장이 더 커졌다.]

대이스라엘이든 오슬로든 이 두 가지 시나리오는 결국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장악력을 충분히 파괴해 배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전제다. 이는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지구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을 점령해야한다는 걸 뜻한다. 이러한 목표는 막대한 인명피해를 초래할 대규모 파괴를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대테러 전문가이자 조지타운대 교수인 브루스 호프먼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스리랑카 북부의 타밀 반군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을 소탕한 것이 이러한 시도 중 유일한 성공 사례라고 지적했다. 유엔에 따르면 타밀 반군을 박멸하기 위한 스리랑카 정부군의 2009년 공세로 4만여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호프먼은 "신은 오늘날 그와 같은 대학살을 허용하지 않는다"면서도 "테러조직을 박멸하겠다고 결심했다면 가차없이 무자비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스리랑카 내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관심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참전해 지역분쟁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이 인명피해로 인한 국제사회의 압력에 발목 잡히기 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그렇기에 두 시나리오 중 어느 것이 실현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스라엘군의 계획은 최소한으로 잡더라도 가자지구 경계선 전체를 따라 그 내부로 완충지대를 조성해 그곳을 더 나빠진 '지붕 없는 감옥' 상태로 만들려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이번 공세가 비극적인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분쟁 75년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고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또 이 사태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악화할 것이라는 점,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위태로운 지역이었던에 지역이 넘쳐나는 난민과 가공할 폭력에 더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점, 그리고 서방세계가 사태를 이 지경으로 이끌었다는 점도 분명하다. 즉 근시안적 태도와 이중 잣대에 기댄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은 더 비극적인 결과라는 역풍을 이번에는 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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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베르 아슈카르는 런던대 SOAS의 국제관계 및 개발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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