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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독서 정리

때때로 2025. 1. 2. 00:44

2024년엔 서른두 권의 책을 읽었다. 말 그대로 읽기만 했을뿐 충분한 학습은 하지 못했다. '성서의 역사'로 새해 첫 독서를 시작해 기독교 공부를 조금 더 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잠시 가졌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계획적인 독서는 몽상에 그쳤다. 지정학, 우크라이나ㆍ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ㆍ이스라엘 전쟁, 워크 논란과 우파 포퓰리즘의 부상, 페미니즘, 역사, 기후변화 등등. 마음 가는 대로, 세상의 이목이 쏠리는 대로 이 책 저 책을 오갔다.

남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문학을 네 권이나 읽은 것은 나름 성과다. 루쉰의 '광인일기'와 '아Q정전' 등이 실려있는 모음집 '외침',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 켄 리우의 SF 단편 모음 '은랑전',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그 네 권이다. 한강의 소설은 문재인 대통령의 추천으로 2023년 사놓고선 책장 한 편으로 제쳐놓고 있던 것인데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얼른 꺼내 책을 펼쳤다.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 강렬한 시적 산문의 혁신가." 노벨위원회는 한강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기가 너머 힘들어 덮어놨던 것인데 노벨위원회의 설명을 듣고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사태는 다시 한 번 한강의 글에 주목하게 했다. 윤석열이 전두환을 놓고 "정치는 잘했다"고 했을 때 우린 알아차려야 했다. 그에게 대화와 논쟁, 설득과 굴복의 절차는 정치가 아니었다. 그에게 정치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일사불란한 복종을, 이를 위한 폭력적 수단의 사용이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읽기를 더 이상 미루기 힘들게 됐다.

두서 없이 책을 드는 와중에도 지정학과 제국주의, 현재의 전쟁들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졌다. 존 J. 미어샤이머의 책을 올해도 한 권 읽었고 우크라이나ㆍ러시아 전쟁, 팔레스타인ㆍ이스라엘 전쟁 책도 빠뜨리지 않았다. 좀 더 진지한 학습을 통해 내 나름의 관점을 다시 벼려보고자 했지만 결국 2024년에도 바람만 가지다 끝났다.

워크 논란, 우파 포퓰리즘의 부상과 관련한 독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특히 '군중의 광기'가 실망스러웠다. 의심스러운 제목이었지만 번역자 유강은씨와 출판사 열린책들을 믿고 책을 펼쳤지만 결국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대중운동에 대한 혐오와 좌파에 대한 악의로 가득찬, 새로운 주장이라곤 단 한 줄도 보이지 않는 낡디낡은 우파의 철지난 유행가였을 뿐이다.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도 독서를 말리고 싶은 책이다. 2016년 영국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대선에서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후 이를 해석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있었고 나 또한 그랬다. 계급에 등돌린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진지한 사회개혁을 외면해온 진보주의자들의 패착을 비판하지 않을 순 없지만 여기엔 매우 위험한 함정이 있다. 자칫 우파 포퓰리즘의 손을 들어줄 수 있는데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의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책 곳곳에서 손쉽게 우파 포퓰리즘의 손을 들어주곤 했다. 게다가 과학적인, 혹은 체계적인 연구 없이 인상주의적 비평에 기댄 서술은 이 책의 주장을 더 못미덥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러한 분야에 대한 독서 중 '나라, 권력, 영광'을 찾아낸 것은 나름 성과였다. 정치 분야 책일 수도 있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책일 수도 있는 책이다. 저자는 복음주의의 정치적 편향을 복음주의의 믿음 그 자체를 복원하는 것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막상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러한 주장에 더 회의적이 됐다. 하지만 미국 복음주의 정치의 편향된 역사와 현실을 담은 이 책은 전광훈 목사가 매일 같이 난동을 부리는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현대 자본주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기후변화 속 불평등을 다룬 책들은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의외의 만족감이 높았다. 특히 '격차'와 '재앙의 지리학'은 기후변화에 맞선 운동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저항이 연결돼야 그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2024년 읽은 서른두 권 중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해야 한다면 로리 파슨스의 '재앙의 지리학'을 꼽는다. 피터 히더와 존 래플리가 함께 쓴 '제국은 왜 무너지는가'도 추천한다. 누구나 떠올릴법 했지만 쉽사리 쓰진 않았던 로마 제국의 쇠망과 현대 제국주의의 석양을 비교해 보여준다.

2025년의 독서는 칼 마르크스의 '프랑스 혁명사 3부작'으로 시작했다. 윤씨의 친위쿠데타를 보며 문득 루이 보나파르트의 1851년 12월 2월 쿠데타가 떠올라서다. 3부작 중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만 읽으려 했으나 기왕에 읽는 것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부터 다시 차분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일단은 임지현 교수가 번역해 소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프랑스 혁명사 3부작'으로 시작하는데,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으로 번역 출간된 판본도 확인해볼 계획이다. 꿈은 야무지지만 지나고 나면 초라한 모습에 실망하곤 한다. 방향을 잃지 않고 매일 한 걸음씩 나갈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성서의 역사
A History of the Bible│존 바턴 지음│박규태 옮김│비아토르│988쪽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 :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에 대한 공격적 현실주의의 비판
The Great Delusion│존 J. 미어샤이머 지음│이춘근 옮김│김앤김북스│472쪽

펜타닐 : 기적의 진통제는 어쩌다 죽음의 마약이 되었나
Fentanyl, Inc.│벤 웨스트호프 지음│장정문 옮김│소우주│444쪽

한일이 함께 풀어야 할 역사, 관동대학살
유영승 지음│시민모임 독립 기획│무라야마 도시오 옮김│푸른역사│168쪽

당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모른다 : 이분법을 넘어 한 권으로 이해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War in Ukraine : Making Sense of a Senseless conflict
메데아 벤자민, 니컬러스 J.S. 데이비스 지음│이준태 옮김│오월의봄│252쪽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 차가운 결별에서 참혹한 전쟁으로
Ukraine and Russia : From Civilized Divorce to Uncivil War
폴 대니어리 지음│허승철 옮김│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580쪽

우크라이나 전쟁,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각축전
알렉스 캘리니코스, 로잘리, 김준효, 이원웅, 클레어 렘리치, 김영익 지음│책갈피│352쪽

1945년 해방 직후사 : 현대 한국의 원형
정병준 지음│돌베개│454쪽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 : 진지한 민주주의자를 위한 선언
Left is not Woke│수전 니먼 지음│홍기빈 옮김│생각의힘│296쪽

존 벨러미 포스터
김민정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143쪽

외침 - 루쉰문고 3
루쉰 지음│공상철 옮김│그린비 216쪽

말하는 눈
노순택 지음│한밤의빛│256쪽

군중의 광기 : 젠더, 인종, 정체성 그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서
The Madness of Crowds : Gender, Race and Identity
더글러스 머리 지음│유강은 옮김│열린책들│440쪽

은랑전
The Hidden Girl and Other stroies│켄 리우 지음│장성주 옮김│황금가지│504쪽

문화대혁명 -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The Cultural Revolution : A Very Short Introduction, First Edition
리처드 커트 크라우스 지음│강진아 옮김│교유서가│252쪽

새로 쓴 프랑스 혁명사 : 대서양 혁명에서 나폴레옹 집권까지
Nouvelle histoire de la Révolution française
장 클레망 마르탱 지음│주명철 옮김│여문책│888쪽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
정희진 지음│교양인│360쪽

어둠의 심장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1
Heart of Darkness│조지프 콘래드 지음│황유원 옮김│휴머니스트│240쪽

군주론 : 근대 국가를 규정할 새로운 군주의 탄생
IL Principe│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김종법 옮김│arte│280쪽

제국은 왜 무너지는가 : 로마, 미국 그리고 새로운 세계 질서
Why Empires Fall : Rome, America, and the Future of the West
피터 히더, 존 래플리 지음│이성민 옮김│동아시아│264쪽

격차 : 빈곤과 불평등의 세기를 끝내기 위한 탈성장의 정치경제학
The Divide│제이슨 히켈 지음│김승진 옮김│홍기빈 해제│아를│464쪽

헬렌 켈러 : '기적'에 가려진, 사회운당가의 정치 역정
After The Miracle : The Political Crusades of Helen Keller
맥스 월리스 지음│장상미 옮김│arte│592쪽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문학동네│332쪽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 유대인 역사학자의 통렬한 이스라엘 비판서
Ten Myths About Israel│일란 파페 지음│백선 옮김│이희수 감수│틈새책방│328쪽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The Undred Year's War on Palestine : A History of Settler Colonialism and Resistance,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유강은 옮김│열린책들│448쪽

파시즘 개정판 -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9
Fascism : A Very Short Introduction│케빈 패스모어 지음│이지원 옮김│교유서가│288쪽

극단주의
Extremism│J.M. 버거 지음│김태한 옮김│필로소픽│204쪽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 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
The Road to Somewhere│데이비드 굿하트 지음│김경락 옮김│원더박스│456쪽

나라, 권력, 영광 : 미국 정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복음주의자들의 권력 게임
The Kingdom, the Power, and the Glory│팀 앨버타 지음│이은진 옮김│비아토르│724쪽

영원의 전쟁 : 전통주의의 복귀와 우파 포퓰리즘
War for Eternity : The Return of Traditionalism and the Rise of the Populist Right
벤저민 R. 타이텔바움 지음│김정은 옮김│글항아리│372쪽

파시즘의 심리구조
La Structure Psychologique du Fascisme│조르주 바타유 지음│김우리 옮김│두번째테제│91쪽

재앙의 지리학 : 기후붕괴를 수출하는 부유한 국가들의 실체
Carbon Colonialism : How Rich Countires Export Climate Breakdown
로리 파슨스 지음│추선영│옮김│오월의봄│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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