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못한…

[스크랩]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도정일 본문

[스크랩]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도정일

때때로 2008. 9. 28. 23:01


출판사 '생각의나무'에서 問라이브러리라는 새로운 문고판 인문ㆍ사회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첫 6권으로 김우창, 도정일, 최장집, 장회익, 강수돌, 윤평중의 책이 나왔죠.

6권을 한 번에 사서 장식만 해두는 것보다 한권씩 차분히 읽어보는 게 좋을 듯 해서 도정일 교수의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과 최장집 교수의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를 선택했습니다.

도정일 교수의 책은 95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곳에 실렸었던 6편의 글을 모아놨습니다. 그 중 3편은 1999년도에 쓰여진 글이죠. 꽤 긴 시간을 사이에 두고 쓰여진 글들이지만 이 단편적인 글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제목에서 쓰였듯 '시장전체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1년 동구 '현실 사회주의'권 국가의 몰락 이후 시장의 원리를 사회 조직의 기본원리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지지 세력의 기세는 나날이 강해져서, 사실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리 크게 그 지위가 손상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서 도정일 교수가 누누히 얘기하는 것은 이러한 시장 근본주의가 그들이 내세우는 목표와 달리 오히려 인간의 자유와 선택을 억압하고 인간의 존재 조건을 더욱 야만화시킨 다는 것이죠.

지난 10년의 민주화 세력의 집권 기간에도 결코 약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세를 확산시켜왔던 신자유주의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더 시의적절하게 다가오는 글들인 것 같습니다. 물질적 풍족이 아니라 정신적 자유로움과 풍요를 꿈 꾸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도정일|생각의 나무|問라이브러리 002


'경쟁력, 수월성, 창의성의 비극' 《비평》 15호|2007년 여름

가장 무시무시하고 살벌했던 것은 정부 차원에서 퍼뜨린 '생존논리'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말을 원본으로 해서 (그게 한 시절 대통령의 말이었으니까) 세계화 시대에는, 또 무슨 시대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경쟁력 없으면 죽는다, 바뀌어야 산다, 뒤처지면 죽는다 식으로 이어졌던 것이 '생존논리'다. 무엇무엇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하는 이 위협의 논리가 국민들에게 준 겁박 효과는 상당하다. "경쟁력이 머시여? 그거이 없으면 죽는다든디?"로 요약되는 것이 겁박의 효과다. 게다가, 그 "죽는다"는 말은 1997년 아이엠에프 금융위기를 겪고 있던 사람들 앞에 겁박 이상의 현실적 가능성이 되어 나타난다. 실직, 파산, 자살, 노숙자 등을 보면서 국민들은 그 일련의 위기가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가능성 앞에서 몸서리친다. 한겨울 지하철 역사를 메운 노숙자들의 모습은 세기말 한국인의 뇌리에 '트라우마(외상)'와도 같은 깊은 상처와 충격을 안겨놓는다. 실직과 도산으로 자기 자신이 사회적 열패자가 되고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가감 없이 '거세공포' 그대로다. 그렇게 해서, 겁먹고 주눅 든 국민들 사이에 '공포의 문화'라고 부를 만한 불안심리, 자신과 가족의 안전한 생존부터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의 정신상태가 조성된다. 근년 들어 한국 사회를 쪼개 놓은 빈부 양극화 현상도 불안과 공포를 한국인의 거의 항구적인 심리적 현실로 만들어놓고 있다.
110~111pp.


'시장전체주의와 인문 가치' 《녹색평론》 48호|1999년 9~10월

사회갱신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이 기억, 상상력, 이성의 작동이다. 기억과 상상력과 이성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그러므로 어떤 사회체제에서도 포기될 수 없는 인간의 대표적 정신기능들이다. 기억은 여기서 '과거 섬기기'를 위한 메커니즘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오류수정의 정보를 공급받고 그 정보를 미래의 시간에 되먹이기 위한 창조기제이다. 상상력은 인간의 일과 역사가 온갖 종류의 오만과 뜻밖의 실수와 의도되지 않은 우행들로 뒤덮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사유능력이며 과거규범과 현실원칙들의 적용이 정지되 수 있는 대안세계의 상상적 제시능력이다. 이성은 오류를 판단하고 착각을 인지하며 미망을 진단한다. 지금은 이성의 오만에 대한 반성이 치열한 시대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도, 어떤 역사시대도, 어떤 사유체계도 이성의 능력에 작동 중지령을 내리지 못한다. 이성의 능력에 모라토리엄이 걸리는 순간 시대는 암흑 속으로 돌입한다. 프랑크푸르트 이론가들이 늘 말했듯, 이성의 오류를 잡아내고 그 실수를 치유하는 것도 이성이다. 기억, 상상력, 이성 - 이들 세 가지 능력이 제대로 작동되고 상호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할 때에만 인간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며 그것을 잃었을 때 되찾을 방법을 궁리하고, 무엇이 그 상실의 원인인가를 안다. 기억의 능력을 최대화하려는 것이 역사이고 상상의 능력을 최대화하려는 것이 문학을 포함한 예술이며, 이성의 능력을 최대화하려는 것이 철학이다. 문사철(文史哲)은 그래서 인문학의 대종을 이룬다. 사회적 관점에서 말하면 인문학의 이 분과 갈래들은 기억, 상상력, 이성으로 대표되는 인간능력의 공적 사회적 사용과 그 능력 에너지의 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한 체계이며, 이 체계는 이미 사회제도이다. 이것이 인문학의 사회적 의의이고 대학에 인문학이 존재하는 사회적 이유이다.
185~186pp.

나치 독일의 파시즘과 스탈린의 소비에트 전체주의는 정치독재와 기술을 결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기술적 방법지와 실용교육을 강조했던 것이나 반지성주의를 취택했던 것도 두 체제의 공통점이다. 두 체제의 관점에서는 비판적 지성이니 지식인이니 하는 것은 국가의 적이고 사회의 똥이다. 파시즘을 피해 영국으로 도망치면서 칼 만하임은 "나치의 군홧발에 독일의 모든 지성이 침묵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지식인은 때로 허황되고 추상과 관념에 빠져 공론이나 전개하고 딴지걸기를 장기로 삼는 버릇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가 몰락한 데에는 비판적 지성의 학살이라는 어리석은 선택이 큰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음울한 가능성은 권력-자본-기술의 3자 연정이며 이 연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 새로운 형태의 시장전체주의이다. 시장전체주의는 정치전체주의보다 훨씬 날씬하고 세련되고 화려하고 풍요롭다. 시장 체제에는 외견상 자유가 있어 보이고 자유경쟁과 자유선택, 자율결정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시장전체주의적 시장의 신은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박탈하고 선택의 이름으로 선택을 제한하며 다양성의 이름으로 다양성을 죽인다. 시장의 신이 벌이는 풍요의 잔치는 그 풍요성의 외관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거지 만드는 정신의 비참한 궁핍화, 공허한 가치, 내적 빈곤의 기원이기도 하다. 시장의 신은 오락, 소비, 향락의 문화로 세상을 장악하며 비판 지성을 침묵시키고 사회의 창조적 에너지들을 고갈시킨다. 인문학 위기론은 이런 궁핍화, 침묵, 마비의 가능성에 대한 경고이다. 지식기반 사회의 건설을 국정목표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정부는 경박한 지식행상들로부터만 알량한 공식과 신조어를 공급받을 것이 아니라 인문학 위기론이 무엇을 문제 삼고 있는지를 숙고함으로써 정권의 당면 이해관계나 수임기간을 넘어서까지 사람과 사회의 장래를 생각하는 장기적 정책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에 폭과 깊이의 차원을 줄 필요가 있다.
198~199pp.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