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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뿌리 … 갈등의 시작 : 이완범의 '한국 해방 3년사' 본문

분단의 뿌리 … 갈등의 시작 : 이완범의 '한국 해방 3년사'

때때로 2008. 10. 15. 16:55

36년간의 일본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1945년 8월 15일은 해방이라는 의미에서 뿐 아니라 이후 60여년 간 남북간 갈등과 한국 정치체제의 기원이 됐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이완범의 '한국 해방 3년사 : 1945-1948'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라는 외적 요인의 주도 하에 국내 정치 세력의 좌우 갈등이라는 내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반도 남북에 각각 독립적인 정권이 들어섰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후 60년간의 역사는 외인의 힘이 약해졌음에도 내인이 강해지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의 소멸 이후에도 한반도에서 갈등이 지속적으로 강화됐다는 것이죠. 물론 이 책은 해방 후 3년의 기간만을 대상으로 삼기에 이 외적 요인에 대한 분석이 큰 분량을 차지합니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국내적 요인, 좌우파의 갈등과 당시의 대중 운동에 대한 설명은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균형잡힌 해석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기계적인 균형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균형이죠.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과 그로 인한 국내 찬탁-반탁 운동의 대립은 좌-우간에 해석의 차가 가장 큰 영역이었죠. 좌파 쪽에선 찬탁운동을, 찬탁이 아닌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 지지' 운동이었다며 당시의 결정은 탁치가 아닌 '후견'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를 '탁치'로 몰고간 당시 우파와 미국 측의 불순한 음모(단정 수립을 위한)를 제기하곤 하죠. 그러나 이완범에 의하면 그것이 '후견'이었든 '탁치'였든 미국과 소련의 목적이 한반도에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었으며 그 구체적 방법에 있어서 '탁치'와 '후견'의 차이는 크지 않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게 우파가 대중을 호도했다고 할지언정 당시 상황에서 3상회의 결정 지지라는 주장은 대중에게 '찬탁'과 다르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서술에 있어서 대중 운동, 특히 건준과 인공, 각 지역의 인민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건 아쉽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오타가 많은 것도 단점입니다. 하지만45년부터 48년까지 미국과 소련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반도 정세를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해방 3년사 : 1945-1948 이완범|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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