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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 공산당 선언 160주년, 가난한 휴머니즘 등

때때로 2008. 11. 12. 17:00

1. 올해는 1968 혁명 40주년이 되는 해죠. 올 초에 한참을 법석 떨며 관련 책들을 정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깜빡 잊고 있었던 건 올해가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지 160년이 되는 해라는 겁니다. 꼭 선언 160년을 기념해서는 아니겠지만 강유원씨가 번역한 공산당 선언이 이론과실천에서 나왔네요.

공산당 선언
칼 마르크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강유원 옮김|이론과실천

2006년 '경제학ㆍ철학 수고', 올 초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에 이어 3번째로 강유원씨가 번역해 내놓는 마르크스 초기 저작이죠. 이대로 쭈욱 가능한 많이 마르크스의 글을 강유원씨의 번역으로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강유원씨가 번역한 공산당 선언에는 1937년에 트로츠키가 쓴 아프리칸스어판 서문과 1998년 홉스봄이 쓴 Moder Edition 서문도 포함돼 있습니다.

공산당 선언의 경우 2006년에 '강유원의 고전 강의'라는 타이틀을 달고 해설서를 낸 적도 있죠.

강유원의 고전 강의 : 공산당 선언
강유원 지음|정훈이 그림|뿌리와이파리

이 책은 동국대에서 있었던 강의를 기초로 쓰여진 책이지만 이걸 기회로 다른 고전들에 대한 강유원씨의 안내서도 볼 수 있길 바랬었습니다만 이걸로 끝이더군요. 물론 '서구 정치사상 고전 읽기'라는 책이 하나 더 나오긴 했었죠.


2. 올해는 또 조세희 선생님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이 출간된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제 인사동에서 조세희 선생님과 기자들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경향신문 기사 바로가기 '아직도 이루지 못한 '난장이의 꿈''(클릭 하세요)
사진=경향신문

많이들 아시겠지만 조세희 선생님은 노동자들의 집회에 자주 참석합니다. 다른 명사들처럼 목에 힘주고 단상에 서거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거나 하진 않죠. 약간은 구부정한 목에 카메라를 매달고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데 여념이 없으시죠.

집회에서 처음 봤을 땐 '뭐하는 노친네길래 집회에 와서 사진을 찍나'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제가 처음 사진을 찍던 당시엔 사진기자들을 제외하고 아마츄어가 집회장에서 사진을 찍는 경우는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더 눈에 띄기도 했죠. 나중에서야 그 분이 조세희 선생님인 걸 알았답니다. 지금도 종종 집회에서 뵐 수 있었는데 최근엔 뵙기 힘들더군요. 엇그제 대학로의 노동자대회에도 안나오신 것 같더라고요. 기사에 의하면 몸이 아프셨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연세도 있으시니까 거리에 나와 사진 촬영하기엔 부담되시기도 할 것입니다. 그저 바라는 건 몸조리 잘 하셔서 기사에 언급된 '하얀 저고리'를 빨리 내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동안 찍은 그 수많은 사진들을 정리해 전시회를 갖거나 책을 내주시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어쨌든 이 책은 출간된지 30년이 넘어, 200쇄를 돌파했고 현재까지 105만부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더이상 이 책이 팔리지 않을 세상이 오는게 조세희 선생님이 가장 바라는 게 아닐까도 싶네요. 몰랐던 건 알라딘에 검색해보니 '200쇄 특별판'도 나왔었던 것 같더라고요. 이거 어디서 구할 수 없을까 지금 고민 중입니다.


3. 조금있으면 주제 사라마구 원작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개봉하죠.

눈먼 자들의 도시 Blindness 2008

원작을 못봐서 영화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여자친구가 이 영화에 관심이 있어서 오늘 정보를 찾다보니 감독이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더군요.

시티 오브 갓 City of God 2002

'시티 오브 갓'의 감독이죠. 이 영화가 제게 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빈민가 어린이들의 사악함을 지독하게도 잘 잡아냈죠. 그가 이번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선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됩니다. 그 전에 소설부터 얼른 읽어야겠습니다.


4. 전 출퇴근을 버스로 합니다. 1시간 정도 되는 시간에 운 좋게 자리에 앉을 수 있으면 책을 보죠. 월요일부터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의 '가난한 휴머니즘'을 읽었습니다.

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이두부 옮김|이후

책은 오래전에 사놨었죠. 얇은 책이긴 한데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쓴 책이라고 해서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쓴 책을 불신하는 편견 때문이죠. 다음 달 독서모임의 책을 제가 정할 순서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책을 할까 하고 이것 저것 고민하다가 김규항씨의 블로그에서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봤어요.

김규항씨 블로그 글 바로가기(클릭 하세요)

얇고 부담없는 책이라 김규항씨를 믿고 책을 폈습니다. 오늘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정거정을 지나칠 뻔 했어요. 아침부터 버스 안에서 눈물을 흘릴 뻔 하기도 했습니다. 전 가난이 싫습니다. 가난은 사람을 비열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싫습니다. 위에 소개한 '시티 오브 갓'도 폭력적이고 비열한 빈곤층 아이들에 대한 영화죠. 빈곤은 아프리카에서 내전의 중요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동안의 제 생각을 반성하게 됐어요. 가난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지만 그 비참함으로부터의 탈출할 수 있는 힘도 바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죠. 지배자들이 흔히 얘기하는 것 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게으르지만도, 비굴하지만도 않습니다. 잊고 있던 희망을 다시 되찾게 해준 책입니다.

라팡미 셀라비[각주:1]를 방문한 한 변호사가 어느 아이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저는 지금도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이티의 모든 어린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통역하는 사람이 크리올 어로 한 그 대답을 변호사가 알아듣게 하기 위해 프랑스어로 옮겼습니다. "이 소년은 아이티의 모든 어린이들이 배불리 먹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 아이는 크리올 어뿐 아니라 프랑스어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통역의 잘못을 지적하며 끼어들었습니다. "어린이들이 배불리 먹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는 말에는 지금 내가 일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어요. 그러면 제가 말한 뜻과는 다르게 받아들이실 수도 있잖아요. 저는 지금도 일하고 있는 중이고, 결국 아이티의 모든 어린이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을 당신이 알아들으셨으면 좋겠어요."
가난한 휴머니즘 142~143pp.

  1. 라팡미 셀라비(Lafanmi Selavi) : 거리의 아이들을 위한 센터로 아리스티드가 1986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만들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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