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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때때로 2009. 2. 6. 09:31

시내의 모 대형 서점에 자주 갑니다. 책을 몇 권 사니 연필을 주더군요. 사실 며칠전에도 책을 사면서 받았었습니다. 그때 받은 연필은 집 책상에 고이 모셔져 있죠.

전 회사에서 연필을 씁니다. 업무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필로 써오던 버릇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전 칼로 연필을 깎아서 사용해요. 연필을 사용하면서 연필깎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닦듯 나무를 깎아나가면 살며시 드러나는 검은 속살이 연필의 매력이죠. 연필깎이로는 이 매력을 느낄 수 없죠.

회사에선 노란색의 중국산 스테들러 연필을 씁니다. 다른 한 쪽엔 지우개가 달려있죠. 제가 스테들러 사장이라면 중국 공장은 당장에 정리해버리겠습니다. 이 중국산 연필은 스테들러의 명성을 깎아내릴 뿐이죠. 약간 비싸지만 독일산 스테들러 연필을 깎고 사용해보면 단박에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연필의 질을 따질 때 전 두 가지를 꼽아요. 우선 심을 둘러싼 나무(뭐라 부르는 지 잘 모르겠네요)의 질입니다. 좋은 연필은 이 나무의 결이 고와서 칼날에 거스르지 않고 제 살을 내줍니다. 그런데 중국산 스테들러는 곳곳에 드러나는 거친 나뭇결 때문에 고르게 깎기가 힘듭니다. 깎는 손에 힘을 더 줘야만 하죠. 두번째는 심 자체의 품질입니다. 같은 HB라도 고급 제품은 더 부드럽게 써지죠. 중국산 스테들러는 고르지 않게 거친 입자가 포함돼 있어 글을 쓰다보면 걸리는 곳이 느껴지곤 합니다. 뭐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지만 비싼 독일제는 집에서나 사용하고 회사에선 사주는게 중국산이니 그냥 아무 소리 않고 사용하죠.

시내의 모 대형 서점에서 받은 연필은 나무 대신에 종이(재생 종이일까요?)를 사용했더군요. 사무실에 들어자마자 칼을 들고 바로 깎아봤습니다. 결이 없어 모양은 고르게 깎을 수 있었는데 중국산보다도 더 힘이 드네요. 심은 본격적으로 사용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깎으면서 두 번이나 부러진 걸로 봐서는 그리 좋은 질의 것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뭐 공짜로 얻은거니까 고맙게 사용할 뿐이죠.

연필 얘기에 김훈이 빠질 순 없겠죠. 전 소설가 김훈을 잘 모릅니다. 그의 소설이라곤 단편집 '강산무진' 하나 읽은게 다죠. 김훈은 무엇보다 '기자'로서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기사에서 '사실(fact)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기사가 정치적 편향이 없다는 건 아니에요. 어떤 사건과 사실이 글로 옮겨지고 배열되는 순간 거기엔 정치적 판단이 들어가기 마련이죠. 김훈 기사가 매력적이었던 건 그 정치색을 정치적이지 않은 언어로 표현했다는 거죠. 말 그대로 여백의 미. 그의 글은 쓰여진 것보다 쓰여지지 않은 행간에서 더 큰 이야기가 울려나오죠. 이건 지금 대다수의 우파와 좌파가 공히 김훈에게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기사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읊었지만 사실 김훈에게 반한 딱 한 가지 이유는, 그가 저와 비슷하게 연필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같은 종류의 연필을. 연필로 글을 쓴다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죠. 더군다나 요즘은 연필로 원고지에 쓴다고 해도 결국엔 다시 키보드로 입력해야만 하니 두 번 일해야 하는 셈입니다. 저도 지금 이 글은 그냥 키보드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역을 이겨내고 연필로 글을 쓰다보면 한 번 더 생각하고 글을 쓰게 돼요. 내가 사용하는 이 표현이 너무 과도한 건 아닌지, 이게 정확한 건지. 글을 쓰다 막힐 때, 연필을 깎으며 생각을 다듬을 수도 있죠.

연필을 한 번 사용해보세요. 아마 디지털 시대라 이 연필의 매력이 더 도드라져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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