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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라는 핑계

때때로 2008. 6. 25. 10:32

어제(24일) 광우병국민대책위에서 주최한 두 번째 국민대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어제의 토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시민단체와 좌파들보다 '네티즌'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급진적이라는 사실이에요.

나명수씨와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한 남성 분은 어차피 쇠고기고시 강행 할 것 이참에 빨리 해버리고 우린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서자... 이런 식으로 주장했던 것으로 기억나요.

역시나 토론회장에서 청중들은 나명수씨와 고려대 김지윤 학생이 적극적으로 정권퇴진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가장 호응이 컸던 것 같아요. 그에 반해 박진섭 생태지평 부소장은 정권퇴진은 불가능하다, 이제 불매운동 등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야유를 받곤 했죠. 그러자 박 소장은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대중의 대다수는 정권 퇴진을 바라지 않는다"고 주장했죠.

흠... 아마도 그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토론에서 근거를 '대중'에게 돌리는 것은 참 비겁한 짓이라고 봐요.

이런 류의 주장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보수우파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 말하는 '침묵하는 다수'라는 것이죠. 사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친기업적이고 친미적인 정책을 동의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들 보수우파에게 중요한 것은 그 다수가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다수의 침묵' 자체죠. 현재의 상태, 즉 자신들이 정치ㆍ경제적으로 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거나 그들에게 더 유리하게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할 때 우파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행동일지라도 대중의 적극성보다 수동성이 그들에게 더 매력적이죠.(파시스트의 적극적인 대중 동원은 다른 기회에 얘기하죠.)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선거와 투표, 각종 설문조사와 같은 통계적 방법에 의해 대중의 뜻을 읽어내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죠.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좌파와 자유주의적 좌파 모두는 이런 여러 시도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곤 해요. 하지만 대중 전체의 뜻을 대표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봐요. 솔직히 말해서 촛불시위 일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100만 명의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의 정책에 반대해서 거리로 나설 것이라는 것을 그 어떤 설문조사에서 발견할 수 있었나요? 4월 총선 뒤 한겨레21은 아파트에 굴복한 386이라는 기사를 특집으로 다뤘었죠.

물론 자율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전 다중의 집단지성에 조건없는 찬양만 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바로 그 다중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한나라당을 여당으로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어제 토론에서 패널로 나선 사람들은 나름 대중의 다양한 의지를 각자 대표해서 나선 사람들이겠죠. 그렇다면 대중 전체의 뜻이 이러이러하다는 식으로 자신을 '전체의 대표'로 꾸미기 보다는 자신이 대표하는 의견을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토론의 자세라고 봅니다. 자신의 의견을 대중의 뜻으로 돌리는 건 비겁한 핑계를 대는 것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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