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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전성원 지음|인물과사상사

악당의 음모가 세계를 위협합니다. 의연히 일어선 영웅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징치하죠. 세상이 이렇게만 돌아가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영웅 이야기로 먹고 살아가는 DC와 마블의 만화조차도 이러한 단순한 구도의 이야기는 버린지 오래죠.

그럼에도 여전히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매우 유혹적입니다. 좌파, 혹은 진보진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잘못된 것은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의 폭력ㆍ착취ㆍ억압의 탓으로 돌려집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부터 시작해 여러 혁명가들이 지적해왔 듯이 지배자들이 단지 강압을 통해서만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의 의식ㆍ일상을 지배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의도적으로, 또는 우연하게 만들어냅니다. 지배계급의 힘은 눈에 보이는 폭력 만이 아닙니다. 피지배계급 스스로 지배계급의 보이지 않는 사슬에 얽매이게 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힘입니다.

눈에 보이는 폭력ㆍ착취ㆍ억압의 사슬을 끊는 것과 함께 보이지 않는 사슬로부터 스스로를 풀어내지 않으면 어느새 우린 또다른 지배계급의 사슬에 제발로 묶이게 될 것입니다. 지배받는 계급의 사람들이 체제에 맞서 자기계몽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자기계몽은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행동과 의식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반성적으로 살피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의 저자 전성원은 서문에서 바로 이 자기계몽, 즉 우리의 일상과 의식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밝히는 것을 책의 가장 중요한 의도라고 밝힙니다.

이 책이 다루는 16명, 책의 부제에 따르면 '헨리 포드부터 마사 스튜어까지' 16명은 우리의 일상 생활과 의식은 물론 현대 세계질서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흔히 '자기계발'을 위한 책들에서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할 인물들로 인용되곤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취엔 그 만한 그늘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기계적 균형감에 의거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하지만 숨겨져 있기 일쑤인) 규칙이 당대에 어떤 진보를 낳았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금껏 우리가 따라야 할 것들인지에 의문이 이어집니다.

현대 자본주의를 만든 '영웅'의 이면을 드러내보이며 우리가 넘어서야 할 과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을 '반영웅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 전성원은 '황해문화'라는 계간지의 편집장입니다. 2000년대 초반 개인 홈페이지 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에겐 '바람구두'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죠. 그의 홈페이지(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ㆍ링크: 지금은 닫아놓은 상태입니다)에 담긴 문학ㆍ역사ㆍ인물ㆍ문화 정보는 아직 인터넷 '백과사전'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에 정말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홈페이지의 편집(서체와 크기, 행간의 조절)ㆍ디자인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홈페이지는 웹의 '하이퍼링크'를 가장 유용하게 사용한 사이트였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드러났던 그의 박학다식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인물과 그 주변, 당대의 역사ㆍ문화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매력적인 책이죠. 순서에 관계없이 관심있는 인물 이야기 먼저 읽을 수 있으니 500쪽이 약간 넘는 이 책의 분량이 독서에 걸림돌이 되진 않을 것입니다.


2.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

우리에게 다시 세계적 '빈곤'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장 지글러. 그는 이번 책에서 바이오 연료와 곡물기업들의 투기 문제를 다룹니다.

그는 세계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이 유엔 기구로 만들어진 역사를 2차 세계대전의 기아 전략으로부터 찾습니다. '기아'가 제3세계 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 유럽도 기아 문제로 고통받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로부터 배운 교훈을 통해 세계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과 같은 기아 근절을 위한 국제적인 합의와 실천이 시작됐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합의는 위협받고 있습니다. IMF, 세계은행, WTO와 같은 경제기구들은 기아 근절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세계적 곡물기업들과 바이오연료 전략이 있습니다.

장 지글러의 글은 언제나 쉽게 읽힙니다. 고통에 대한 연민과 세계시민적 책임감은 우리에게 '정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3.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좌파 이야기
앙리 베베르 지음|임명주 옮김|에코리브르

저자인 앙리 베베르는 흔히 말하는 '68세대'입니다. 그는 68혁명 당시 혁명적공산주의청년회(JCR) 활동을, 이후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JCR의 후신) 회원으로 좌파 정치인의 길을 걸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사회당 당원으로 있지만 그가 '좌파' 정치인인 것은 분명합니다. 유럽의회 의원까지 했으니 좌파 정치인 중에서도 꽤나 성공적인 길을 걸었다고 봐야겠죠.

그가 자신의 딸과 나눈 대화 형식으로 좌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2000년 즈음 쓰여진 책이라 지금과 약간은 다른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정도 차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지역적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안할 수 있는 정도죠.

아무래도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딸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라 기본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좌파/우파의 이념이 여전히 중요함을 강조하는 이 책은 우리나라의 성인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줄 것 같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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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etas 2012.08.28 1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저도 제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거의 '자뻑' 수준입니다), 이건 도저히 넘볼 수가 없는 ... ㅠㅠ 언급하신 책 가운데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꼭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강조하신 "<b>반영웅전</b>"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정말 저의 구미를 아주 강하게(!) 끌어 당깁니다.

    • 때때로 2012.08.28 1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읽는 책들은 얇고 흥미 위주의 책들이라 술술 넘어가기도 하고, 제가 책을 좀 대충 읽는 편이라 그래요. 좀 제대로 공부해야하는 데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앞으로 추천할 때 빠지지 않을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에 관한 책과 글이 많기는 하지만 보통은 '위인'에 대한 칭찬만 가득하죠. 전성원씨의 책은 역사적 배경과 함께 그 이면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죠.

투표권에 대한 작은 논란을 목격했습니다. 이건 약간의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긴 합니다. 진보신당 지지자들에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참 고역스러운 일입니다. 차라리 '사표' 논란이 나았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후보도 내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진보신당 지지자가 이번 선거에서 '선택'은 그 자체가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작은 논란에서 우려가 되는 것은 투표를 독려하는 이들이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고통'을 몰라줘서가 아닙니다. '투표'를 '권리'로서가 아니라 '의무'로서 도덕률로 제시하려 하기 때문이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자주 가는 게시판에 틈틈이 쓴 글을 여기에 옮깁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율의 저하는 민주적 정치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투표로 상징되는 정치적 참여가 위축될 수록 사회의 공적 문제에 대한 개인들의 영향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죠.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미국 흑인사회입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흑인들은 투표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안철수의 편지가 화제죠. 하지만 그는 사례를 잘못 들었습니다. 흑인 투표권 확보를 위한 60년대 프리 라이더(한국의 희망버스) 운동이 더욱 적절한 사례입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 민주주의 정치에서 투표율 저하의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며 대안을 제시해온 이는 최장집 교수일 겁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도 이 투표율의 문제를 개인의 윤리적 문제로 제기한적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회적 균열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협애한 선거 대안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강조합니다. 즉, 이념적ㆍ실천적 차이가 미미한 보수 중심의 정당 체제가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죠. 이러한 정당 체제는 기본적으로 노동에 대한 배제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투표권의 문제를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투표는 자신의 정치적 존엄을 지키고 사회의 공적 사안에서 개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권리지 의무가 아닙니다. 게다가 투표권은 정치적 참여의 일종입니다. 참여는 개인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뜻합니다. 능동적 활동이 아닌 의무로서, 수동화된 활동의 투표권은 그 본래의 의미가 많이 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투표권 자체는 '민주주의'를 지켜주지 않습니다. 독재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이 여전히 25.7%의 지지를 받고 있는게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김규항으로부터 비롯하고 진보신당의 지지자 다수가 투표를 포기하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더구나 자신들이 원하는 진정한 선거 대안을 만들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을 벌이다 실패를 한 진보신당 지지자들에게 현재의 투표는 그 자체가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자신의 한 표를 사소히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은 박원순에게 흔쾌히 한 표를 던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 박원순에게 표를 던지고 왔습니다. 위에서 잠깐 적었 듯이 투표는 정치 참여의 여러 방편 중 하나일 뿐 그것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동의하진 않겠지만 곽노현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선거와 투표가 우리의 궁극적 대안일 수 없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늘 프레시안에 좋은 글이 있더군요.

이 운동[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은 태동하기까지 3년이 지연됐습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2001년 정부가 은행 계좌를 동결시키기 전부터 있었던 경제적 불만과 디폴트 위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반면 미국 경제는 3년 전에 붕괴됐고, 당시에도 몇몇 분노한 이들이 있었지만 실제 반응은 미뤄졌거나 다른 방식으로 유인되었습니다. 당시 분노는 사실 우리를 위해 상황을 시정할 수 있는 대선 후보에 집중하는 강력한 풀뿌리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운동이었고, 희망에 가득 찬 운동이었습니다. 그 운동은 자신들의 후보를 백악관으로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통령은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떠나버렸습니다.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 운동은 기업과 싸워 기후변화 정책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운동은 한 명의 선출 공직자가 1000만 명의 시민, 또는 시민 사회 자체와 동등하다는 듯이 스스로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그 운동은 나이와 인종을 초월했었습니다. 저는 이 운동이 정치가와 선거에 대한 환멸을 느낀 다음 망가져 버린 제도의 힘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희망을 점령하는 것에 대한 편지', 레베카 솔니트, 프레시안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을 방문한 지젝은 지금껏 기다려오던 이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노 요코는 존 레논의 노래를 빌어 운동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영웅이라고 주장했죠. 소수의 공직자ㆍ정치인을 우리의 대표자로 뽑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언제나 더 큰 변화는 거리에서, 공장에서, 집에서 시작되고 끝났습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시작되기 전, 부자들을 위한 공화당의 패악질과 그에 무능력한 민주당에 대한 분노가 확산되기 전 오바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선거와 투표라는 민주주의의 '정상적' 절차는 오직 그 체계가 만들어진 이후 위기에 처하기 직전까지만 기능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상적 상황에서조차 99% 인민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한 명의 뛰어난 정치인이 아니라 99%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전, 이 한표의 권한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적당히, 그때 그때마다 가장 덜 나쁘거나, 그나마 가장 괜찮은 후보에게 던지면 된다고 봅니다.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있었다면 당연히 그에게 표를 던지겠죠. 그런데 지금 상황이 그건 또 아니지 않습니까? 3년 전 오바마의 선거 열풍을 바라본 미국 좌파의 심정이 얼추 이럴 듯 싶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다시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 '투표 안할 자유'를 비웃는 이들은 자신의 비웃음이 민주주의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고민해봐야 할 겁니다. 많은 이들이 흔히 놓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무엇보다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발성을 유도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옹호했던 이들은 시민 개개인이 공적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게끔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옹호자는 계몽주의자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도덕률로서 투표를 강조하는 것, 특히 '닥치고' 투표하라는 것은 이에 전적으로 반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이를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는 개인의 수동성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좀먹는 짓꺼리입니다.

생각난김에... '닥치고 정치'라니. 말이 됩니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무엇보다 말과 글의, 설득의 힘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말들이, 더 많은 글들이 우리의 공적 생활에 대해 다뤄야 합니다. 그럼에도 '닥치고 정치'라니? 애시당초 김어준을 싫어하기에 이 책을 읽을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저런 제목 센스를 용인하는 김어준에게서 민주주의에 대해 배울 것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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