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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5 00:52

의심스러운 민주주의 투사, 포포비치 2016.03.15 00:52

최근 스르야 포포비치의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이라는 책이 번역∙출간됐다. 한겨레 신문에서도 그의 책을 금요일자 북섹션의 톱으로 소개해줬다. 그러나 '민주주의 투사'로서 그의 조언을 진지하게 고려하기엔 조금 조심스럽다. 그의 경력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래 글은 US Uncut
(미국의 긴축정책 반대 단체) 활동가 칼 깁슨이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스트랫포의 e메일을 기초로 조사한 내용을 폭로한 것이다. 스트랫포는 미국 정부와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 왔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해가 되는 정권을 교체하는 데 있어 폭격과 항모전단보다 해당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한 사회운동을 조장하는 게 더 유용하다고 폭로된 e메일에서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이 CIA와 같은 물리적 힘(군사력 뿐 아니라 공작을 위한 조직ㆍ자금 등)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이 기업이 미국 정부와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정보 조사ㆍ분석 활동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폭로된 e메일에 따르면 스트랫포가 이러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동유럽과 중동지역에서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스르야 포포비치다. 스트랫포는 포포비치의 민주주의 활동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활용하고자 했다. 포포비치가 가진 세계적인 활동가 연락망을 이용해 주요 국가의 활동가 정보를 수집해 왔다. 그들은 미국에서 오큐파이 활동가들을 미행∙감시한 것이 폭로돼 논란을 일으켰다. 아래 글에 따르면 포포비치는 미국 활동가들을 접촉해 그 정보를 스트랫포에 전달했을 뿐 아니라 바레인에서 인권활동가들을 접촉해 그 정보를 넘겼고, 심지어 그가 명성을 얻은 세르비아의 오트포르! 운동 활동가들의 정보조차 사전 동의 없이 제공했다.

포포비치가 의식적인 프락치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개인적 부와 명성을 위해서일지라도 미국 정부와 기업을 위해 일하는 정보업체와 어떤 관계를 맺어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스트랫포의 임직원들을 위해 강연을 했고, 그의 아내는 스트랫포에서 직접 일했었다. 애초 포포비치는 자신의 결혼식에 스트랫포의 많은 임직원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더 위험한 것은 그가 말하는 '혁명'이다. 그가 주 대상으로 삼는 국가ㆍ정부가 주로 그 나라 안에서 압제와 전횡을 일삼는 독재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보더라도 그의 '혁명'은 미국의 외교 언어인 '정권 교체
(regime change)'이지 사회ㆍ경제 전체의 근본적 변혁으로서 '혁명'은 아니다. 더구나 그가 '정권 교체'를 노리는 정부는 거의 언제나 미국의 눈엣 가시 같은 존재인 나라들 만이다. 그러니까 '터키'에 대해선 침묵하며 '베네수엘라'에선 적극적인 그와 그의 조직 칸바스(CANVASㆍ오트포르!의 후신)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포포비치는 차베스가 죽기 전 베네수엘라에서 그를 몰아낼 청사진을 제안했다고도 한다.

따라서 그의 책을 민주주의 건설을 위한 어떤 '교범'으로 고려하고자 한다면 보다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한 의혹을 지나치게 강조해 동유럽과 아랍에서의 격변을 모두 미국 정부 혹은 세계 그림자 정부의 음모 결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아래 글처럼 세르비아에서의 격변을 미국 정부가 후원하고 조직한 결과로 볼 필요도 없다.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과대망상에 빠진 개인과 기업의 주장에 언론이 부화뇌동한 결과 그 지역들의 격변에서 포포비치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된 듯 싶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장들을 살펴봐야 하는 건 베네수엘라에서 실제로 그랬듯이 미국 정부와 기업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운동을 동원하기도 한다. 차베스에 반대한 자본가들과 기업노조들의 파업이 실례다. 비판적으로 살펴보기를 멈춰선 안 되는 이유다. 아래 옮겨놓은 폭로 글은 포포비치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기 위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s. 한겨레는 투쟁의 상징은 불끈 쥔 주먹이 포포비치의 조직 오트포르!가 만들어낸 것으로 소개하는 데,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운동에서 쓰이던 상징이다. 오트포르!와 포포비치는 이를 약간 변형한 것일 뿐이다.

※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인용하려면 반드시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대괄호[ ]는 이해를 위해 옮긴이가 추가한 것입니다.


정보기업 스트랫포와 협력해온 국제적 명성의 활동가
칼 깁슨, 스티브 호른|2013년 12월 2일ㆍ링크

세르비아의 스르야 포포비치는 1990년대 후반부터 동유럽과 그밖에 지역에서 체제 변화를 주도한 기획자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2000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몰아내는 데 기여했으며 미국의 후원을 받은 활동가 그룹 오트포르!(Otpor!)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보다 덜 알려진 것으로, 오큐파이닷컴
(Occupy.com)의 독자적인 조사에 따르면 포포비치와 오트포르!, 그리고 그 후신인 칸바스(CANVASㆍCentre for Applied Nonviolent Action and Strategies)는 골드만삭스의 경영진, 민간 정보기구인 스트랫포(StratforㆍStrategic Forecasting, Inc.), 그리고 미국 정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포포비치의 아내는 스트랫포에서 1년여 일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위키리크스가 '글로벌 정보 파일'의 e메일 수천 통을 새로 공개한 여파로 알려졌다. 미국석유학회
(API)ㆍ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ㆍ다우케미컬ㆍ듀크에너지ㆍ노스롭그루먼ㆍ인텔ㆍ코카콜라와 같은 고객들을 위해 지정학적 사건들과 활동가들의 정보를 모아온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민간 기업 스트랫포와 포포비치는 긴밀하게 협력했다.

'SR501'이란 제목의 e메일을 보면 스트랫포는 동유럽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회사 내부 강연을 위해 2007년 처음 포포비치에 접근했다. 스트랫포의 자료에 따르면 그는 이 이야기를 기밀로 유지하길 요청했다.

e메일 중 하나에서 포포비치는 미국이 무장시킨 바레인 정부에 의해 부상당하거나 살해당한 활동가들의 정보를 전달했다. 이 정보는 2011년 가을 바레인 정부가 민주주의 활동가들에 의해 위기에 처했을 때 바레인 인권센터로부터 얻은 것이다. 또한 포포비치는 2010년 9월 최근 사망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을 어떻게 쫓아낼 수 있을지 그 청사진을 스트랫포에 제안하기도 했다.

●스트랫포의 글로벌 활동가 연결고리

포포비치는 자신의 활동가로서의 명성을 활용해 세계적인 활동가들과 스트랫포의 만남을 여럿 주선했다. 스트랫포가 포포비치의 인맥으로부터 얻어낸 정보는 차례로 그들의 기업 고객-스트랫포는 자신을 '그림자 CIA'로 홍보했다-에게 '유용한 정보'로 제공됐다.

포포비치는 필리핀ㆍ리비아ㆍ튀니지ㆍ베트남ㆍ이란ㆍ아제르바이잔ㆍ이집트ㆍ티벳ㆍ짐바브웨ㆍ폴란드ㆍ벨라루스ㆍ조지아ㆍ바레인ㆍ베네수엘라ㆍ말레이지아 등 세계 곳곳의 현지 운동가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스트랫포에 제공했다. e메일을 보면 포포비치는, 자신의 e메일이 민간 보안기업에 전달되는 것을 알리 없는 활동가들의 정보를 그들의 동의 없이 스트랫포에 여러 번 제공했다.

미국에서는 이 글의 공저자인 칼 깁슨
(US Uncut의 대표)과 더 예스맨의 앤드 비클바움이 포포비치를 만났었다. 그들이 활동하는 두 단체가 GE의 세금 미납을 조롱하는 풍자를 한 직후였다.

그 둘은 자신들 단체의 다음 해 계획을 포포비치에게 얘기했고 이후 뉴스에선 스트랫포가 예스맨의 활동가들을 치밀하게 감시 중임이 보도됐다.

2011년 1월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에서 포포비치는 CNN에 보도될 인터뷰 진행을 제안받았다. 그가 논점을 펼치는 데 의지한 첫 사람은 스트랫포의 직원이었다. 스트랫포 직원은 그에게 다섯 가지 논점을 제시해 인터뷰를 이끌었다.

스트랫포는 포포비치가 자신들에게 유용한 이유로 세계 곳곳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그의 풀뿌리 활동가들 연락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트랫포의 전 유라시아 분석가인 마르코 패픽이 2010년 5월 쓴 e메일을 보면 "다시 상기시키자면 이 만남에서 그의 주요한 유용성은 그가 접촉해온 세계 곳곳의 골칫거리들을 우리에게 연결시켜줄 수 있는 능력이다. 현지의 상황을 파악할 그의 능력은 아마 제한적일 것이다. 그는 주로 정보 제공자와 기초적인 연락을 유지해 정보 제공자들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끔 한다"고 적혀 있다.

포포비치는 그의 부인이 스트랫포에서 일할 만큼 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포포비치의 부인은 스트랫포에서 2010년 3월부터 2011년 3월까지 1년여간 '이주의 공개자료' 업무에 종사했다. 다른 지원자였던 엘레나 탄키츠 또한 칸바스에서 활동한 이다.

"칸바스맨
[포포비치][스트랫포에게] 친구이자 자원이고 그는 그녀를 우리에게 추천했다"고 스트랫포의 분석 담당 부사장인 스콧 스튜어트는 같은 날 면접한 두 사람을 제외하며 2010년 3월 e메일에서 쓰고 있다.

포포비치와 그의 부인은 스트랫포와 무척 가까워졌고 실제로 포포비치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연 그들의 결혼식에 스트랫포 직원 다수를 초대했다.

●스트랫포가 만들어낸 혁명을 돕기

스트랫포는 포포비치의 가치를 세계의 혁명가들과 운동가들의 활동 정보를 얻는 데 만 두지 않았다. 필요할 경우 그가 미국의 지정학적ㆍ금융적 이해관계에 적대적인 나라의 지도자들을 몰아내는 걸 도울 수 있다고도 여겼다. 따라서 스트랫포는 포포비치를 이용하기 위해 그에게 패픽이 '우리가 기업으로서 항상 이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자원'이라고 부른 자유롭게 이용할 기금을 제공했다.

패픽은 2011년 6월 e메일에서 포포비치를 '훌륭한 친구'라며 '혁명을 위해 세계를 여행하는 세르비아 활동가'로 묘사했다.

"그들은 … 기본적으로
(미국이 좋아하지 않는) 독재자와 독재정부를 쓰러뜨리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패픽은 e메일에 적고 있다. 그 e메일에 대한 답장에 대답하면서 그는 "그들은 지금 당장 그 나라들로 가서 사업을 시작해 정부를 무너뜨릴 노력을 펼쳐야 한다. 이는 적절히 사용할 때 항모 전단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트랫포 정보 담당 부사장 프레드 버튼은 '항모 전단' e메일에 대한 답장에서 그들을 이란으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포포비치는 현지 정보 제공자로 이란의 활동가를 소개했고 또한 스트랫포가 '민주주의 프로그램'을 위한 투쟁에 투자해 미국 정부가 '소프트 파워' 정책을 밀어부치도록 했음이 e메일을 통해 폭로되기도 했다.

2010년 3월 스튜어트는 버튼에게 보낸 또 다른 e메일에서 칸바스가 '차베스를 몰아내려 하고 있다'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에 대해 썼다. 2007년 칸바스는 차베스 전복을 위해 활동가들을 훈련시켰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고객들을 고려해, 정보원으로서 혁명적 NGO들을 세심하게 다루기 위해 그와 연락하는 데 허시메일을 사용한다"고 패픽은 2011년 1월 e메일에서 포포비치를 언급한다.

스트랫포는 칸바스가 정부를 전복을 조장하는 데 지닌 광범위한 능력에 반해 여행 경비를 지급해 가며 2010년 포포비치를 오스틴의 본사로 초대해 그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칸바스의 골드만삭스 현금

골드만삭스에서 경영진으로 있다가 2012년 6월 퇴직 후 자신의 새터유환투자관리(Satter Investment Management LLC.)를 운영하고 있는 무니어 새터는 칸바스의 주요 협력자 중 하나다. 스트랫포 CEO 시아 모렌즈는 10년여간 골드만삭스에서 투자관리 담당상무이사와 남서부 개인투자관리 본부장으로 종사했다.

새터는
[골드만삭스에 있던] 그 기간에 공화당의 주요 후원자였다. 그는 2012년 대통령선거 전 칼 로브의 수퍼팩[후보 개인이 아니라 지지세력 전체에 무제한의 정치자금을 후원할 수 있는 제도] 크로스로드 GPS에서 3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그리고 2014년 중간선거를 앞둔 2013년 상반기에는 공화당주지사협의회(the Republican Governors Association)에 10만 달러를 후원하기도 했다.

시카고 노스쇼어의 950만 달러짜리 거대한 고급 주택에 살고 있는 무니어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펀드에 5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포포비치는 세계적 정보기업 스트랫포와 무니어를 만나게 됐을 때 중개인으로서 그 기업의 대표 조지 프리드먼에게 새터를 소개했다.

스트랫포 홈페이지에 새터는 "세계적 사건 이면의 정보를 이해하고 싶어질 때면 나는 언제든 스트랫포를 찾는다"고 추천사를 적고 있다. "그들은 세계적 문제들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와 통찰력 넘치는 분석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주류 언론보다 100보 앞선 것"이라고 말한다.

●오토포르!: 거꾸로 된 역사

포포비치가 어떻게 스트랫포 정보 수집 활동의 수족이 됐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트포르!와 칸바스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포포비치가 스트랫포의 정보원이자 중요한 자문역을 맡게 된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밀로셰비치를 몰아냈던 '불도저 혁명'과 이후 동유럽 정권을 쓰러뜨렸던 운동들에서 풀뿌리 활동가들과 서방 언론의 역할로 인정받는 것들은 보여진 것보다 더 크다.

2000년 워싱턴포스트는 폭로기사에서 "원론적으로
[세르비아의 사건은] 미국 의회가 1999년 정부 예산에서 1000만 달러, 2000년 3100만 달러가량을 투입한 공공연한 작전이었다. 반밀로셰비치 운동에 참여한 몇몇 미국인들은 운동 주변의 CIA 활동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는 지까지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무부와 국제개발처
(USAID∙the 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가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정부의 해외 원조기관을 통해 민간 파트너에게, 그리고 NDI와 공화당의 협력단체인 국제공화주의연구소(IRI∙the International Republican Institute) 같은 비영리단체에 지원금을 보냈다."

패픽이 칸바스를 '항모 전단보다 강력한 힘'이라고 주장한 것이 과장 만은 아니었다. 칸바스는 1990년대 후반 세르비아에서 오트포르!의 경험에 기초해 설립됐다.

독립적인 학자 마이클 바커는 "실제로 1997년에서 2000년 사이 국가민주주의기금
(the Natioanal Endowment for Deomocracy∙이름과 달리 민간 단체다)과 미국 정부는 대략 나토가 3만7000회의 폭격을 통해서 하지 못했던 것을 해냈다. 밀로셰비치를 몰아내고 그들이 선호하는 인물인 보이슬라프 코슈투니차로 대체했으며 세르비아에 신자유주의적 전망을 확산시켰다"고 Z매거진에 썼다. "같은 방법으로 기업의 대리단체들과 가짜 시민단체들(astroturf groups)은 정말 순진한 지지자들을 모은 전략적으로 활용된 사회운동은 잠재적으로 우파의 후원(막대한 자금과 전문적인 지원)을 받은 시민사회를 주도할 수 있었다."

세르비아에서 오토포르!의 성공을 견본 삼아 미국 정부로부터 650만 달러를 후원받은 운동은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다.

오토포르! 활동가는 미국이 지원하는 방송 자유유럽라디오
(Radio Free Europe)에서 "우리는 그들을 훈련시켰다. 어떻게 조직을 건설하고 지역 지부를 만드는지를 교육했다. 로고∙상징∙핵심 메시지를 만들고 '브랜드'를 구축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사회의 약한고리와 사람들이 가장 고통받는 문제를 파악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는 사람들, 무엇보다도 청년들이 투표함으로 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끔 동원할 수 있는 요소일 것이다."

세르비아에서 밀로셰비치를 쓰러뜨리는 데는 강력한 언론기구를 만들기 위한 미국 정부의 지원도 수반됐다. 이렇게 미국이 지원했던 라디오∙TV 중 하나인 B92에서 포포비치의 부인은 기자와 앵커로 활동하기도 했다.

미국 USAID는 2004년 정책보고서에서 "라디오 B92를 돕고 라디오방송국(ANEM)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국제적인 노력은 정부가 뉴스와 정보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능력을 약화시켰다"며 "세르비아에서 USAID와 국제적인 후원자들이 독립적인 언론을 도운 것이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핵심적인 건 동유럽에서 일어난 사건은 그 어떤 말로 해도 정권 교체이지 혁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포틀랜드주립대 도시연구∙계획과 제랄드 서스먼 교수는 그의 책 '민주주의 브랜드 만들기: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동유럽에서 미국의 정권 교체'에서 "
[그것들은] 그것은 실제로 절대 혁명일 수 없다. 지배층 내부에서 권력이 이동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소비에트 붕괴 후 이 지역에서 현대적 선거운동 전술은 포퓰리스트처럼 불안정하고 취약한 상황을 정권 교체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었다"고 썼다.

오트포르!가 미국 정부 내 강력한 세력과 연관을 맺고 있는 만큼 포포비치가 2010년 5월 미국 공사에서의 강의하면서, 또 2009년 12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은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일찌감치 칸바스에 자금 지원을 위해 미국 정부에 로비활동을 펼친 권력가는 현재 주러미대사인 마이클 맥폴
[2014년 사퇴했다]이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교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서 포포비치를 도와 '밀접하게 협력'했다.

●확산되는 비판, 포포비치의 대답

바레인 인권센터의 책임자 마리암 알카와자는 포포비치를 몇 년간 활동가로 알고 있었지만 위키리크스가 스트랫포의 e메일을 폭로하기 전까진 그의 대외 관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스르야와는 여러 번 만났었다. 그는 바레인 혁명과 바레인에서 인권투쟁에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다"고 알카와자는 전화통화에서 말했다. "그가 그들의 정보를 내게 전해줬을 때 나는 매우 놀랐었다."

알카와자는 당시 스트랫포가 어떤 기업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들이 그녀에게 던진 질문을 읽자마자 의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스트랫포로부터 온 e메일에 의혹을 느껴 결단코 그들과 연락하지 않았다.

"그 e메일들은 정말 정보기관의 질문들 같았다. 그들은 인권센터에서 내가 한 일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야권 연합을 누가 후원하는지, 그들에겐 얼마나 많은 회원이 있는지와 같은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물어왔다"며 "그러한 질문들 때문에 내가 받은 e메일 배후의 동기에 의심을 갖게 됐다. 그것이 내가 답변하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그와 같은 e메일을 받거나 정보기관처럼 보이는 질문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이 접촉해오면 우리는 보통 그들을 차단해린다. 우리가 알기엔 그런 이들은 거의 정부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라고 알카와자는 말을 이었다. "기자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알기 때문에 첫 만남에서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나는
[스트랫포의] e메일을 받자마자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고 내가 실제로 절대 답변을 보내지 않은 이유다."

오토포르!의 공동 설립자 중 한 사람
(그는 그 운동에 남아있기에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은 화상 인터뷰에서 위키리크스에 폭로된 e메일 중 포포비치가 활동가들의 정보를 사전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포비치는 인터뷰에서 칸바스에 대해 사뭇 다른 어조로 말한다. 그는 "우리는 우리 활동가들을 위태롭게 하는 어떠한 일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사전 동의 없이는 그 누구에게도 그들을 노출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포포비치는 칸바스가 누구나, 그리고 모두에게나 그 어떤 차별 없이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해 말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디에서든 칸바스가 대변하려 한 것은 저 헌신적인 활동가들과 비폭력 투쟁이지 여전히 냉전시대에 사로잡혀 평범한 사람들이 이끄는 대중운동이 아니라 탱크와 비행기∙핵폭탄이 세계를 움직인다고 믿는 이들이 아니다"고 말했다.

"우리가 워싱톤, 크렘린, 텔아비브, 다마스커스에 있는 세계 정세의 주재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외국 군대의 개입이 아니라 우리가 해온 것을 존중하고 받아들인 비폭력 투쟁 덕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포포비치의 경력을 고려해보면, 특히 그의 활동가 경력 내내 어느 쪽에 붙을지 고민해왔던 과거를 따져보면 그는 스트랫포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고 비판가들은 말한다.

서스먼 교수는 인터뷰에서 "세르비아의 단체는 세르비아 바깥의 어떤 곳에서도 저항운동을 이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술은 어떤 정치적 목표를 쟁취하는 데 유용했다"며 "또한 그는 그 과정에서 민간과 정부 정보기관에 유용한 정보를 취합해 제공했다. 그것이 바로 스트랫포가 그에게서 찾은 유용성"이라고 말했다.

칼 깁슨은 기업을 위한 긴축정책 중단을 위한 비폭력적이고 창조적인 직접행동 운동을 펼치는 US Uncut의 대변인이자 조직가이다.
스티브 호른은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탐사보도 전문기자이자 이 기사가 먼저 발표된 DeSmogBlog의 연구원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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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는 좌파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특히 대안 사회의 미래를 그리려는 시도를 꺼리게끔 했죠.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현실의 모순을 지양하는 운동쯤으로만 취급됐습니다.

이런 상황은 2000년대 들어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단속적으로 파탄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높아져갔죠. 특히 세계사회포럼의 성장과 베네수엘라에서의 격변은 좌파들에게 큰 영감을 줬습니다. 새롭게 성장한 젊은 세대는 현실 사회주의를 경험하지 않았고 그 만큼 사회주의에 대한 레드콤플렉스도 적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가 정치적 대안으로 성장하기 위해 보다 분명한 미래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기할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대안 검토가 확산되고 있었죠. 지금은 진보정당의 기본 정책이 된 '참여예산제' 같은 경우 브라질 노동당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됐습니다. 생태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도시에 대한 대안으로 브라질의 '꾸리찌바'가 관심을 끌기도 했죠.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박용남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 재미와 장난이 만든 생태도시 이야기(박용남 지음, 녹색평론사)'는 이 분야의 필독서가 됐습니다.

국가적, 세계적 차원에서의 대안도 제안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클 앨버트의 '파레콘(Parecom): 자본주의 이후, 인류의 삶(마이클 앨버트 지음, 김익희 옮김, 북로드)'이 여기에 대한 관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파레콘은 참여와 경제의 합성어, 참여경제(Participatory Economics)를 말합니다. 앨버트의 책이 당시 좌파에 충격을 던져준 것은 그것이 '시장'과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마르크스를 따르는 고전적 좌파 안에서는 다수가 동의하는 내용일 겁니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실패 이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시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사적소유의 폐지를 앞세우는 것은 좌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 됐지요. 이런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비판적 입장임을 숨기지 않는 마이클 앨버트가 시장과 사적소유의 폐지를 포함한 미래사회 청사진을 제기한 것입니다.

마이클 앨버트에 의하면 자본주의 이후 건설될 파레콘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제거하고 노동자평의회와 소비자평의회가 할당과 생산, 분배 등 경제생활의 핵심 기구로 활용할 것입니다(할당이란 사회의 가용 자원을 어떤 부분에 얼마만큼 사용할 것인가,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각 부문별 투하비율을 결정하는 문제를 말합니다). 각각의 평의회는 그 내부에서, 또는 다른 평의회와 위계적이지 않은 합의 과정을 거쳐 경제의 문제를 결정합니다.

"평의회는 노동자와 소비자가 자신의 정책결정권을 행사하는 수단이며, 매우 다양한 수준에 걸쳐 조직된다. … 결정될 정책의 상이성에 따라 투표와 의결 방식 또한 달라진다. 고정불변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정책 때문에 파생될 영향의 정도에 비례해서 구성원들이 그 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규범이 지켜지기만 하면 된다." ('파레콘' 25쪽)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앨버트의 '파레콘'을 반깁니다. 하지만 거기에 썩 만족할 수만은 없었죠. 왜냐면 마이클 앨버트는 중앙집권적인 계획과 조정에 일반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제기된 질문은 이미 세계적으로 연결되고 융합된 경제를 평의회 각각의 파편화된 자율적 결정과 합의에 의해 조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캘리니코스는 "자본주의에서 지속가능한 경제로 이행하는 데 필요할 엄청난 재건작업과 방향 전환" 같은 것을 고려할 때 파레콘에서 제안한 "[각 평의회들 간 합의의] 반복을 통해 전반적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과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집단적으로 결정하는 민주적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주의 가치 논쟁' 25쪽). 마이클 앨버트는 '비례적 결정권을 통한 합의'라고 부르는 것을 제안하면서도 그것이 좌파 내에서 "끝없는 논쟁을 야기"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음을 인정하긴 합니다('파레콘' 161~171쪽). 이 문제는 꼭 앨버트의 '파레콘'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죠. 뒤에서 더 언급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관심은 김수행 교수에게도 이어졌습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만든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의 주제를 새로운 사회로 잡아 발표했죠. 그 결과물이 서울대학교출판부에서 발표한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김수행ㆍ신정완 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부)'입니다.

2007년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가 나온 후 자본주의는 1929년 대공황에 비견되는 위기를 겪습니다. 위기가 극복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남유럽에서의 위기로 EU 지도자들 사이에서 갈등의 불똥이 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갈등과 위기에도 한결 같은 것은 이 체제를 이끄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복지 정책 등)이 문제라며 긴축정책을, 즉 노동자계급과 서민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애시당초 재정위기가 위기에 빠진 금융기업들을 구해주기 위한 행동들에서 비롯했다는 것은 깔끔하게 잊혀졌죠. 금융기업들의 잘못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이 모든 게 게으른 남유럽 노동자들 때문이라는 목소리만 높습니다. EUㆍECB(유럽중앙은행)ㆍIMF 트로이카는 심지어 그리스의 노동자들이 주 6일 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노동시간은 연간 2109시간으로 유럽에서 가장 긴데도 말입니다(링크).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상황에서 김수행 교수가 쉬운 글로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내놓았습니다. 김수행 교수는 이렇게 묻습니다.

""자본주의만이 인류의 등불"이라던 자본주의 옹호자들도 2007년 이래 세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업자의 대홍수, 빈민들의 울부짖음, 모든 노동자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한 노동자계급 precarious proletariat)로의 전환, 민주주의의 후퇴, 제국주의적 침략의 확산, 성과 인종의 차별, 자연의 파괴 등에 직면하면서, 자본주의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4~5쪽)

김수행 교수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길도 있음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길'입니다. 이미 완성된, 우리의 도착만 기다리는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얘기지요.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행기'입니다. 이행기에 우리는 사회제도 뿐 아니라 개인들의 습관ㆍ의식 모두 바꿔야 합니다.

"'수탈자를 수탈하는' 정치혁명의 개시로부터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자개연)이 형성되기까지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새로운 사회로 가는 '진정한' 이행기입니다. 이행기에는 무엇보다 먼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사회적 점유'의 형태로 숨어 있는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를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로부터 분리ㆍ자립하여 그들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생산수단을 자본가들의 손에서 빼앗아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자기의 것으로 상대하면서 공동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노동하는 개인들이 자기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임금노예'의 상태를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행기에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노동자들에게 광범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사회의 생산수단 전체와 개인의 노동력 전체를 사회의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이용하는 것의 우월성을 인식시키고, 개인의 자유로운 발달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달의 기초가 된다는 것과 개인이 타인과 자연에 대해 '인류'의 입장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 모든 차별과 자연 파괴를 막는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97~98쪽)

김수행 교수는 자본주의 이후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준비가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자면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이 그러한 가능성 중 하나입니다. 주식회사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전환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마르크스가 주식회사에서 "자본은, 이제 사적 자본과 구별되는 사회적 자본(직접적으로 연합한 개인들의 자본)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취하며, 이런 자본의 기업은 사적 기업과는 구별되는 사회적 기업의 형태를 취한다(80쪽; '자본론' 3권 상 541쪽)"고 말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이렇듯 자본주의 안에 숨어있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로 가는 길의 이정표를 마르크스에 기대 찾을 수 있다는 게 김수행 교수의 주장입니다. 마르크스가 정리된 형태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려낸적은 없지만 그의 여러 저술 속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중요한 자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김수행 교수가 미래사회의 명칭으로 제시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모습이 '공산당 선언'에서 묘사되고 있습니다.

"계급들과 계급대립을 가진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인의 자유로운 발달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달의 조건이 되는 연합이 나타나게 된다." (115쪽; '공산당 선언' 저작선집 1권 421쪽)

김수행 교수가 먼지 쌓인 마르크스의 책속에서만 미래사회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2007년 이후 세계경제위기라는 현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듯이 그는 소련과 베네수엘라라는 과거와 현재의 사례들로부터도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소련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뜨거운 감자입니다. 현실 사회주의로 인정하자는 주장에서부터, 관료적으로 타락한 노동자 국가, 국가자본주의, 새로운 계급사회 등 소련에 대한 다양한 규정이 좌파의 조직적ㆍ정치적 실천을 갈갈이 찢어놓았었습니다. 하지만 김수행 교수는 소련이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자들이 꿈꿨던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착취와 억압을 제거한다는 목표는 국가의 착취로 대체됐고, 사회적 소유라는 전망은 '국가소유' 아래 국가 관료의 전횡으로 실현됐다는 것입니다
(148쪽). 무엇보다 소련은 자유로운 연합에 기초한 개인들의 전면적 발달이라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오랜 이상과 배치됩니다.

소련의 이탈은 어디서부터 비롯한 것일까요. 스탈린은 '생산의 무정부성'을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하고 이 무정부성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소유'와 '계획'을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의 가장 큰 특징으로 앞세웠습니다. 하지만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아닙니다.

"사회적 소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점유하여 사용하던 생산수단들이 정치혁명을 통해 자기들의 것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경우 '사회'는 개인들을 초월하여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ㆍ경제적ㆍ이데올로기적 존재가 아니라, 자각한 개인들의 연합을 가리키거나 연합한 개인들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소련의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폐기되어, 이런 연합한 개인들의 사회적 소유가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소유는 실질적으로 노멘클라투라의 소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58~159쪽)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사회를 고려할 때 '사회적 소유'라는 것은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앨버트가 평의회의 수평적 자율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주장하고, 캘리니코스가 이를 보충하며 민주적 계획을 강조한 것은 이 모호함을 보충하기 위해서입니다('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주의 가치 논쟁' 41~43쪽). 국가 혹은 이를 대체한 어떤 사회적 제도가 구성원 모두의 의사를 충분히 민주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면 국가 혹은 대체 제도의 소유가 곧 사회적 소유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이 현실성을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민주적 통제와 조정 과정 수립, 앨버트와 캘리니코스가 강조한 것 이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소련의 현실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가 아니라면 어떤 사례를 또 찾을 수 있을까요. 최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베네수엘라를 매우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김수행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베네수엘라 혁명을 이끌고 있는 차베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닙니다. 마르크스주자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조직된 노동운동도 베네수엘라에서는 기득권층의 입장에 섰었죠. 차베스의 주요 지지자들은 광범위한 빈민들입니다. 차베스가 대자본가들의 쿠데타로 대통령궁에 갇혔을 때 그를 구해낸 것은 빈민들의 힘이죠.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변화를 위한 조치들도 아래로부터 대중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차베스에 의해 위로부터 조직된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혁명'이었습니다. 제게 차베스는 매우 껄끄러운 존재였죠.

하지만 차베스가 우파 언론들의 데마고기와 자본가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인민의 참여에 기초한 대안 권력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그의 정책이 남미에 뿌리 깊은 포퓰리즘 정치처럼 시혜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인민 스스로를 지배계급으로 조직화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차베스는 2001년 12월에는 전국적으로 볼리바르 서클을 조직해 빈민들을 정치에 참여하게 만들었습니다. 서클의 회원들은 빈민촌인 바리오에서 활동하면서 바리오의 상하수도ㆍ주택ㆍ의료ㆍ전기ㆍ노인복지ㆍ환경ㆍ취업ㆍ교육ㆍ범죄ㆍ질서유지ㆍ운동장ㆍ문화시설 등의 문제를 지역 주민들과 토론하여 각종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 프로젝트를 실행할 자금을 정부의 '플랜 볼리바르 2000'으로부터 받아 주면서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그 프로젝트를 완성하게 도와준 것입니다. 그러나 볼리바르 서클은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2006년 4월에는 법적 근거를 가진 주민자치회가 새로 설치되어 빈민촌의 공동사업을 볼리바르 서클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179쪽)

차베스는 이러한 인민권력의 강화와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다섯 개의 인민권력법을 만들어 "주민자치회ㆍ정부연방주민자치회ㆍ코뮌ㆍ노동자치회ㆍ주의회ㆍ지방의회 등이 전국의 공공계획과 예산ㆍ결산을 토론하고 결정하며 감찰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만듭니다(192쪽). 이행기에 필요하다고 강조된 광범위한 교육과 훈련이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 스스로의 자기계몽 과정이라는 특징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물론 베네수엘라는 아직 매우 불안정한 이행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이 혁명이 진정한 혁명으로 거듭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거대 기업의 자본가들과 언론, 미국의 방해와 견제가 여전히 심하기 때문입니다. 어쩔수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차베스의 정책이 타협의 길로 이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가장 최근의, 그리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현장으로서 베네수엘라는 충분히 관심을 쏟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는 '파레콘'에 비해 정밀하진 못합니다. 국가소유가 곧 사회적 소유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개인적 소유의 회복으로서 사적소유의 철폐와 사회적 소유의 실현이 어떻게 가능할 지는 막연합니다. '계급투쟁'이란 것도 '99%' '서민' 등의 단어를 사용해 그 정체를 불분명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차베스를 지지하는 베네수엘라 인구의 60~80%에 달하는 '빈민'의 계급적 분석이 없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김수행 교수의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는 자본주의가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꼭 참고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 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에 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에 이 책의 장점이 있습니다. 왜냐면 인간의 행동은 비참한 현실로부터 비롯하기보다 미래의 희망으로부터 더 큰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금융자본은 자기의 위험한 투기로 입게 될 손실을 국제적 국가기구를 통해 세계의 서민들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금융공황에서 금융자본이 2007~2011년에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으로부터 약 20조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자기의 손실을 납세자의 혈세로 메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그리스 이외에도 포르투갈ㆍ스페인ㆍ아일랜드ㆍ이탈리아ㆍ프랑스ㆍ영국ㆍ미국 등 거의 모든 나라가 국가채무 문제로 허덕이고 있는데, 그리스 형식의 금융자본 독재가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금융자본을 세계적 차원에서 인류의 소유로 전환하는 정치혁명이 필요할 것이고, 자본이 자본가계급의 이윤 욕심에 봉사하기보다는 인류의 필요와 욕구의 충족에 기여하도록, 개인들이 연합하고 단결하여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자개연)'을 건설해야 할 것입니다." (203쪽)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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