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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에 좌절한 것은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 페미니스트들 만은 아니다. 사실 우파들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얌체공 같은 인물을 두려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절망과 공포는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긴 하다.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한 후 한국 언론은 트럼프가 얼마나 혐오스러운 인물인지 전하는 데만 힘을 써왔다. 뉴욕타임즈와 CNN의 받아쓰기가 한국 언론 외신보도의 전부임을 고려하면 이는 미국 언론의 대선 보도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전하긴 하지만 시종일관 그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책임 있는 대통령에 어울리는 사람으로만 그려졌지 그와 그의 민주당이 해온 일에 대해선 시종 침묵했다. 샌더스가 물러난 뒤로는 계속해서 말이다.

그런데 한국 교육부 고위 관료가 생각하듯 인민은 개ㆍ돼지가 아니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듯 미국의 인민 다수가 팝콘을 씹으며 수퍼보울에만 열광하는 얼간이들도 아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후 그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져가는 걸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고, 자신의 자식들이 맥도날드와 월마트에서 저임금 노동에 종사해야만 한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만든 첨단 무기들이 동유럽과 중동의 인민을 학살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가난한 동네의 공립학교가 축소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다.

남편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에서, 아들 부시의 공화당 정부에서도, 다시 오바마 정부에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2011년 미국의 청년과 노동자들이 월스트리트 권력에 맞서 오큐파이 운동을 벌였을 때 클린턴은 월스트리트의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해 말과 다음해 초, 오바마 정부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직접 지휘해 전국적인 오큐파이 운동을 진압해 말살했다. 2012년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의 파업은, '오바마의 남자'라고 불리던 람 이매뉴얼 시장의 시장주의 '교육개혁'에 맞서 일어난 것이다. 흑인 오바마 정부 하에서도 경찰의 흑인 살해는 끝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는 감동적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함께 부르긴 했지만 연방정부의 권력을 이용해 주 경찰들의 전횡을 막진 않았다. 오큐파이 운동 진압 때와는 달리 말이다.

클린턴은 여성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정치 시스템의 정통 후계자로 여겨진 것이다. 실제 투표 결과를 봐도 올해 트럼프가 받은 표는 2012년 공화당 후보 롬니가 받은 표보다 적다. 문제는 클린턴이 받은 표가 2012년의 오바마가 받은 표보다 크게 준 것이다
(그래프 ①). 출구조사를 보면 특히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에서 지지가 급격히 줄었다. 그럼에도 이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의 가난한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민주당 후보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난다(그래프 ②). 결국 트럼프 승리의 의미는 더 많은 수의 가난한 백인 노동계급이 백인 남성에게 표를 던진 게 아니라, 지난 8년간 클린턴도 중요한 일원으로 참여해온 오바마 정부에 실망한 가난한 인민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거뒀다는 것이다.

그래프 ① 미국 대통령 선거 득표수 변화


그래프 ② 소득별 지지율 변화(출구조사)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한국 우파들의 미 대선 결과에 대한 우려를 살펴봐야 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한ㆍ미FTA를 무효화 시킬까 두려워한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남한을 군사적 보호에서 제외할 것을 염려한다. 그들은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전환할 것에 골치아파 하고 있다. 왜냐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지지하며 중동과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대결정책을 강경하게 밀고나가는 매파인, 미국 정치 시스템의 적자로서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다면, 아무런 걱정 없이 '이대로'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라고 해서 지금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는 무엇보다도 미국 기업 시스템의 적자이다. 그의 기회주의적 과거를 되돌아보면 레토릭과 달리 신자유주의적 경제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미국의 군사주의적 도전은 변치 않을 것이다. 부시도 해외 개입의 축소, 고립주의를 외치며 당선됐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해온 일의 부메랑에 맞은 뒤 군사주의적 개입을 더 적극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한편 자신의 가족과 국내외 친구들의 기업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문제는 클린턴이냐 트럼프냐가 아니다. 트럼프 같은 쓰레기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다. 무릇 정치는 두 개의 머리를 지니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얼마 전까지 샌더스 열풍을 목도했다. 올해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은 다시 파업에 나섰으며 버라이존과 월마트 같은 새로운 부문의 노동자운동 성장도 계속되고 있다. 희망은 워싱톤이 아니라 도시의 거리에서, 사무실ㆍ학교, 공장에서 자라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모든 악의 근원이 최순실로, 그리고 박근혜로 모아지고 있다. 대기업들도 공범이라는 목소리가 크지만 민주당이나 야당도 공범이라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에서 계속해서 시장의 권력은 커져갔으며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악화돼 갔음을.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것을 가속화시켰을 따름이다. 우리는 눈 앞의 적에 집중해야 하지만 12일 거리로 나오겠다는 민주당과 국민의당도 결코 우리 편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 우리는 다시 박근혜와 같은, 미국의 트럼프보다 더 한 인물이 한국의 권력을 잡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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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학 분야 출판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박상훈 대표가 새 책을 내놨습니다.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가 그 책입니다.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폴리테이아



이 책은 박상훈 대표가 지난해 진행한 한 강의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심상정씨가 원장으로 있는 '정치바로 아카데미'에서 마련한 강의입니다. 강의의 대상이 됐던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주로 '진보'라고 불리는 진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일차적인 대상이 '진보파'임을 밝히고 서술을 시작합니다. 그렇기에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더 뼈아픈 비판이 곳곳에 자리합니다.

저자는 작정하고 진보파에 대한 고언을 준비한 듯 싶습니다. 이를 위해 그가 첫 교재로 택한 책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입니다. 80년대 막스 베버 책을 들고 다니다가 '막스'와 '맑스'를 구분 못한 경찰 때문에 연행됐다는 선배의 우스갯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가벼운 농담거리로 채워진 책은 아닙니다. 저자가 '맑스(마르크스)'가 아닌 '막스'를 택한 것은 진보의 이상주의적 정치관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죠. 현실에서 정치는 권력을 다뤄야만 합니다. 진보가 채질적으로 두려움 혹은 거리감을 가진 경찰, 군대, 관료ㆍ공무원 등의 조직을 움직여 목표로 한 무언가를 강제해야 만 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런 것들이 더럽다고 해서 외면하면 현대 국가의 강권력은 보수파와 기득권 세력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정치인은 다뤄야만 하는 폭력, 권력, 권위 등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겸허히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에 관련된 모든 윤리적 문제의 특수성은, 인간이 만든 조직에 내재해 있는 정당한 폭력이라는 수단 그 자체에 의해 규정된다. … 정치가란 모든 폭력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기꺼이 관계를 맺기로 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정치가는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외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외면하면 안된다는 것이겠죠. 수단과 과정에서의 절대적 윤리가 결과의 실패를 옹호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윤리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정치가에게는 거꾸로 '너는 악에 대한 폭력으로 저항해야 한다. 안 그러면 너는 악의 만연에 책임이 있다'라는 계율이 더 타당하다."

한마디로 정치가는 진흙탕에서 뒹굴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듯 이 책은 진보에서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순수한 이념에 일침을 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비판하고, 리더십ㆍ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대한 터부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거리에서의 시위에 대한 순수한 신념이 그 목적과 달리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적 참여를 저해한다는 주장도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저자는 공산주의, 혁명의 신봉자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웁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떠올리게 되더군요. 아마도 그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할 기회가 있을 듯 싶습니다.

베버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은 차례대로 사울 D.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E. E.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 셰리 버만의 '정치가 우선한다'를 교재로 정치가의 윤리, 정치의 실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진보파의 실패한 과거를 짚어나갑니다. 저자는 '정치학 교과서'의 불가능함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지만 이 책은 지금 시기에 진보진영에게 훌륭한 '정치학 교과서'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2008년 촛불이 꺼진 후 무언가 답답함을 느끼며 어떠한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하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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