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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에 해당되는 글 2

  1. 2013.12.20 전략은 불필요한가 (3)
  2. 2012.08.21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힘으로부터 벗어나기 (2)
2013.12.20 12:33

전략은 불필요한가 쟁점2013.12.20 12:33

푸코가 1979년 5월 '르몽드'에 기고한 '봉기는 무용한가'를 읽었다. 1979년 이란혁명에 대한 이 글은 지금의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그러나 전략에 대한 폄훼 혹은 오해는 동의하기 힘들다. 이에 대한 느낌을 아래 적는다.

서정연씨가 옮겼다. 글을 읽으려면 여기: 푸코 '봉기는 무용한가'


1979년 샤에 맞서 무장한 군인 앞에 목숨을 걸고 나선 이란의 인민.

이란 혁명이 결국 호메이니와 종교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는 것으로 끝나자 이에 대한 비난이 좌와 우 모두에서 빗발쳤다. 최근 이집트 혁명과 아랍의 봄에 대해 여러 지식인과 언론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푸코는 이렇게 말한다.

"'봉기[반란]는 무용하다. 언제나 그건 매한가지니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권력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거는 사람들에게 어느 누구도 지시를 내리진 않는다. …… 인민들은 봉기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위대한 사람들이 아닌 아무나의) 주체성은 봉기에 의해서만 역사에 도입되며 역사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사실 봉기와 반란은 푸코가 거리를 두는 전략가들의 '전략'에 의해 일어나지 않는다. 반란의 우연한 계기들은 언제나 예측 불가다. 푸코가 봉기ㆍ반란과 구분하는 혁명도 다르지 않다. 일반적 특징들 몇몇을 꼽을 순 있겠지만 정확한 순간, 계기를 짚어내기는 어렵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일으킨 파장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우발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략은 불필요한 것인가. 푸코는 자신의 이론적 도덕이 '전략가'의 것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나의 이론적 도덕은 이들[전략가]의 것과는 정 반대다. 그것은 '반전략적'이다. 즉 하나의 특이성이 반란을 일으킬 경우에 [이를] 존중하는 것, 권력이 보편적인 것을 침해할 경우에 [이에 대해] 비타협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푸코의 도덕은 전략가들에게 필요한 것임에 틀림 없다. 반란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 비타협적이 되는 것. 그러나 여기에는 석연찮은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봉기와 반란을 순전히 우발적인 현상으로, 즉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자연현상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오는 한계가 아닐까. 그렇기에 푸코가 주목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군대에 맞선 남녀다. 그러나 이러한 남녀가 거리에 나서게 된 계기가 순전히 우발적인 것 만은 아니다. 그들의 동료 형제, 혹은 가족으로부터 이어받은 어떤 의식적 경험들이 존재한다. 새롭게 촉발된 운동이 흔히 과거의 성공한(것처럼 여겨지는) 봉기의 형태를 모방하곤 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 뿐만은 아니다. 봉기와 반란이 촉발되는 구체적인 순간과 계기를 특정할 순 없지만, 이러한 계기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적지 않은 의식적 반대파의 노력이 있어왔다. 인쇄술의 발달과 계몽주의의 확산은 프랑스 혁명의 전제였다. 러시아 혁명은 경찰과 황제까지도 무시하지 못할정도로 성장하던 노동자 운동의 역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1987년 6월 항쟁 앞서 수많은 불온 서적들이 대학가에 넘쳐났고 야학ㆍ서클ㆍ학회와 같은 학습ㆍ조직활동이 확산됐다.

봉기와 반란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은 혁명적 전략가의 필수적 도덕이다. 인민으로부터 배우며 그 내부에서 전략을 세우는 게 전략가가 해야 할 임무다. 봉기와 반란이 자신이 예측 또는 계획한 데서 벗어났다며 기권하는 것은 결코 전략가적인 태도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들 반란을 그저 존중만 하는 게 꼭 비타협적 이론가의 태도도 아니다. 왜냐면 "넘어설 수 없는 법"에 "제한 없는 권리로 맞"서는 것은 언제나 인민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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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때때로 2013.12.20 1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 어쩌면 자기 변명의 목적 하에 자신의 도덕을 위축되게 진술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슬람 혁명으로 끝난 이란 혁명에 대한 좌우파 양쪽의 비난을 견디긴 쉽지 않았을 듯.

    지금도 그렇듯 무슬림과 이슬람주의에 대한 유럽 좌파들의 제국주의적 편견은 꽤나 큰 약점이다. 이를테면 프랑스 좌파는 교육의 세속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이슬람 여학생들의 히잡 착용 금지에 찬성했다. 영국에서는 좌파들 일부에서 전쟁반대 투쟁에 이슬람주의자들과 함께하는 데 불만을 터트리곤 했다.

    그랬으니 호메이니의 승리로 끝난 이란 혁명을 두고 (한때 지지했다고) 푸코를 오죽이나 공격했을까. 그러니 그는 혁명과 봉기를 구분하고 역사로 사로잡힌 봉기, 혁명의 결과가 그렇다 할지라도 자신은 봉기를 존중하고 지지한 것뿐이라고 말하려던 게 아닐까. 당시 논쟁의 맥락을 살펴서 푸코를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었을 듯싶다. 어쨌든 당시 논쟁 맥락을 찾아볼 여력은 없으니 추측일 뿐이다.

  2. 지나가다 2013.12.30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측하신 부분이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푸코의 경우 당시에는 물론이고 아직까지도 이란 혁명에 대한 지지 표명으로 욕을 먹고 있지요. 특히 당시에 푸코가 이란 혁명을 보고 와 작성한 르포 기사들은, 프랑스 좌우파는 물론 이슬람 국가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이들에게까지, 이슬람을 낭만화한다거나 전체주의-가부장적 체제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이 르포 기사들을 보면 푸코가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희망적인 면을 본다거나, 이란 혁명을 이슬람에 기반한 "정치적 영성"의 봉기로 보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러한 부분들이 특히 문제가 되었죠.)

    푸코의 저 글은 그의 전체적인 정치적 입장과도 연결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일중의 자기 방어로 읽혀야 할 겁니다. 실제로 푸코는 이 글 이후 자기 할 말은 다했다는 듯이 수많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이란 혁명에 대해 단 한번도 공식적 발언을 하지 않습니다.



1.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전성원 지음|인물과사상사

악당의 음모가 세계를 위협합니다. 의연히 일어선 영웅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징치하죠. 세상이 이렇게만 돌아가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영웅 이야기로 먹고 살아가는 DC와 마블의 만화조차도 이러한 단순한 구도의 이야기는 버린지 오래죠.

그럼에도 여전히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매우 유혹적입니다. 좌파, 혹은 진보진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잘못된 것은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의 폭력ㆍ착취ㆍ억압의 탓으로 돌려집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부터 시작해 여러 혁명가들이 지적해왔 듯이 지배자들이 단지 강압을 통해서만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의 의식ㆍ일상을 지배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의도적으로, 또는 우연하게 만들어냅니다. 지배계급의 힘은 눈에 보이는 폭력 만이 아닙니다. 피지배계급 스스로 지배계급의 보이지 않는 사슬에 얽매이게 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힘입니다.

눈에 보이는 폭력ㆍ착취ㆍ억압의 사슬을 끊는 것과 함께 보이지 않는 사슬로부터 스스로를 풀어내지 않으면 어느새 우린 또다른 지배계급의 사슬에 제발로 묶이게 될 것입니다. 지배받는 계급의 사람들이 체제에 맞서 자기계몽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자기계몽은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행동과 의식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반성적으로 살피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의 저자 전성원은 서문에서 바로 이 자기계몽, 즉 우리의 일상과 의식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밝히는 것을 책의 가장 중요한 의도라고 밝힙니다.

이 책이 다루는 16명, 책의 부제에 따르면 '헨리 포드부터 마사 스튜어까지' 16명은 우리의 일상 생활과 의식은 물론 현대 세계질서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흔히 '자기계발'을 위한 책들에서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할 인물들로 인용되곤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취엔 그 만한 그늘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기계적 균형감에 의거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하지만 숨겨져 있기 일쑤인) 규칙이 당대에 어떤 진보를 낳았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금껏 우리가 따라야 할 것들인지에 의문이 이어집니다.

현대 자본주의를 만든 '영웅'의 이면을 드러내보이며 우리가 넘어서야 할 과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을 '반영웅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 전성원은 '황해문화'라는 계간지의 편집장입니다. 2000년대 초반 개인 홈페이지 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에겐 '바람구두'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죠. 그의 홈페이지(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ㆍ링크: 지금은 닫아놓은 상태입니다)에 담긴 문학ㆍ역사ㆍ인물ㆍ문화 정보는 아직 인터넷 '백과사전'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에 정말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홈페이지의 편집(서체와 크기, 행간의 조절)ㆍ디자인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홈페이지는 웹의 '하이퍼링크'를 가장 유용하게 사용한 사이트였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드러났던 그의 박학다식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인물과 그 주변, 당대의 역사ㆍ문화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매력적인 책이죠. 순서에 관계없이 관심있는 인물 이야기 먼저 읽을 수 있으니 500쪽이 약간 넘는 이 책의 분량이 독서에 걸림돌이 되진 않을 것입니다.


2.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

우리에게 다시 세계적 '빈곤'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장 지글러. 그는 이번 책에서 바이오 연료와 곡물기업들의 투기 문제를 다룹니다.

그는 세계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이 유엔 기구로 만들어진 역사를 2차 세계대전의 기아 전략으로부터 찾습니다. '기아'가 제3세계 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 유럽도 기아 문제로 고통받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로부터 배운 교훈을 통해 세계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과 같은 기아 근절을 위한 국제적인 합의와 실천이 시작됐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합의는 위협받고 있습니다. IMF, 세계은행, WTO와 같은 경제기구들은 기아 근절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세계적 곡물기업들과 바이오연료 전략이 있습니다.

장 지글러의 글은 언제나 쉽게 읽힙니다. 고통에 대한 연민과 세계시민적 책임감은 우리에게 '정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3.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좌파 이야기
앙리 베베르 지음|임명주 옮김|에코리브르

저자인 앙리 베베르는 흔히 말하는 '68세대'입니다. 그는 68혁명 당시 혁명적공산주의청년회(JCR) 활동을, 이후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JCR의 후신) 회원으로 좌파 정치인의 길을 걸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사회당 당원으로 있지만 그가 '좌파' 정치인인 것은 분명합니다. 유럽의회 의원까지 했으니 좌파 정치인 중에서도 꽤나 성공적인 길을 걸었다고 봐야겠죠.

그가 자신의 딸과 나눈 대화 형식으로 좌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2000년 즈음 쓰여진 책이라 지금과 약간은 다른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정도 차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지역적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안할 수 있는 정도죠.

아무래도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딸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라 기본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좌파/우파의 이념이 여전히 중요함을 강조하는 이 책은 우리나라의 성인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줄 것 같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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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etas 2012.08.28 1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저도 제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거의 '자뻑' 수준입니다), 이건 도저히 넘볼 수가 없는 ... ㅠㅠ 언급하신 책 가운데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꼭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강조하신 "<b>반영웅전</b>"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정말 저의 구미를 아주 강하게(!) 끌어 당깁니다.

    • 때때로 2012.08.28 1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읽는 책들은 얇고 흥미 위주의 책들이라 술술 넘어가기도 하고, 제가 책을 좀 대충 읽는 편이라 그래요. 좀 제대로 공부해야하는 데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앞으로 추천할 때 빠지지 않을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에 관한 책과 글이 많기는 하지만 보통은 '위인'에 대한 칭찬만 가득하죠. 전성원씨의 책은 역사적 배경과 함께 그 이면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