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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 망명 신청자들이 1월 5일 사흘 간의 총파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체포와 구금 중단, 망명 신청 심사를 요구하고 있다. 파업 첫 날 텔아비브 라빈광장에 모인 아프리카 난민들. 이날 시위엔 3만여 명이 참여했다. [사진 Activestills.org]

이스라엘에서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5일 시작한 총파업이 이틀 째 계속되고 있다. 5일 텔아비브 라빈광장에는 3만여 명이 모여 행진과 시위를 벌였다. 6일에는 미국ㆍ캐나다ㆍ독일ㆍ프랑스 등 외국 대사관과 유엔난민기구 이스라엘 사무소 앞에서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AFPㆍ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대사관 앞에는 1만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시위를 벌인 난민은 대개 수단과 에리트레아에서 왔다. 이스라엘 전역에 5만~6만명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텔아비브 남부에 집단을 이뤄 거주하고 있으며 호텔과 식당,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는 등 다양한 방식의 노동착취에 시달리고 있다. 수단과 에리트레아 출신 망명 신청자들은 난민지위에 대한 심사와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 만들어진 법에 의한 체포와 구금에 반대하고 있다. 12월 17일에는 이스라엘 정부가 '개방형 수용소' 또는 난민을 위한 '주거 중심시설'이라고 부르는 홀롯 수용소를 탈출한 난민 150명이 예루살렘 크네세트
[이스라엘 의회] 앞까지 행진해 왔다. 이들은 곧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난민들은 내전과 전쟁, 정부의 억압을 피해 가나안 땅을 찾아 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을 '침입자'로 부르며 쫓아낼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법 모르쇠 … 폐쇄적인 '개방형 수용소'

난민의 체포와 구금, 수용소 건설은 이스라엘 대법원의 판결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2012년 만든 법을 이용해 수단과 에리트레아 출신 난민을 그 해 6월부터 사하로님 수용소에 구금하기 시작했다. 이 법은 최대 3년까지 재판 없이 난민을 구금할 수 있게 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2013년 9월 이 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법원은 난민협약과 이스라엘 국내법에 의거해 강제 추방할 수 없는 난민을 12월 15일까지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꼼수로 대응했다. 크네세트는 법원이 정한 기한을 5일 남긴 12월 10일 새로운 '침입자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정부가 새롭게 만든 '개방형 수용소'에 난민을 최대 1년까지 재판 없이 구금할 수 있게 했다. 새로운 법에 따르면 수용소의 규칙을 어기거나 '국가안보' 또는 '공공질서'를 위협한 망명 신청자는 사하로님의 폐쇄적 수용소에서 12개월까지 구금될 수도 있다. 사실상 무기한 구금이 가능하다. '개방형 수용소'의 규칙은 '개방형'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다.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65㎞ 떨어진 베르셰바까지 수용소가 제공한 버스를 이용해서만 가능하다. 게다가 수용소 수감자는 하루 세 번 사무소에 보고해야 한다. 밤에는 떠날 수도 없다. '폐쇄형 수용소'와 다를 바 없는 처지다. 휴먼라이츠워치 난민조사 책임자 게리 심슨은 "당신이 만약 사막 한가운데서 일거수일투족을 무장한 경비원에게 감시당하며 오직 한 시간 거리의 마을을 방문하는 것만 가능하고, 그것도 보고를 위해 그 즉시 되돌아와야만 한다면 당신은 자유롭지 못하고 구금된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이스라엘의 꼼수를 비판한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조치는 난민 보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기도 하다. 유엔은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1967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를 총회에서 채택해 난민을 보호하고 있다. 난민협약은 난민의 체류국 내에서의 '이동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법에서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입국했을지라도 형벌을 받지 않고 필요 이상의 제한을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난민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재판을 거치지 않고 형벌과 다를 바 없이 수용소에 구금하고 있다. 협약이 금지한 강제 추방과 모국으로의 송환도 시도하고 있다. 내전 중인 남수단과 권위주의적 지배로 고통받는 에리트레아로의 송환은 난민의 목숨을 실질적인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이다. 이 난민협약에는 124개 나라가 동시에 가입해 있다. 이스라엘도 124개 나라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난민의 망명 신청을 심사하지 않는 등 이 협약에서 규정한 모든 난민의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대법원의 판결에도 정부의 반응은 강경하다. 네타냐후 총리는 난민들이 "그곳
[홀롯 수용소]에 머무르거나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을 담당하는 고위 관계자는 자신들의 목적이 강제 추방임을 숨기지 않는다. 3월 초 내무부 장관은 난민을 '침입자'로 부르며 이들을 구금하고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을 수용할 것으로] 확인된 제3국으로 추방할 계획을 이스라엘 언론에 털어놨다. 지난해 12월 이민국은 난민에 대한 체포와 단속을 시작했고 내무부는 비자를 갱신하면서 임시 체류 허가서[conditional release visa]를 받은 이들에게 홀롯 수용소 입소를 명령했다. 정부는 에리트레아인과 수단인이 일하고 있는 기업들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고 지자체는 아프리카인이 소유한 가게와 식당을 폐쇄했다. 구금과 추방에 대한 공포가 텔아비브 남부의 아프리카인 공동체를 휩쓸면서 행동이 촉발됐다.


파업 이틀 째인 6일에는 미국 대사관 등 외국 공관 앞에서의 시위와 거리 행진이 이어졌다. 미 대사관 앞 카페 2층에서 한 남성이 난민들의 시위를 응원하는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Activestills.org]

확대되는 저항과 연대, 이스라엘 흔들다

이스라엘 정부는 새 침입자 법에 따라 사하로님 수용소의 난민을 12월 12일 홀롯 수용소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사하로님 수용소에 구금돼 있던 1000여 명 중 480명이 우선 홀롯 수용소에 수용됐다. 홀롯 수용소의 열악한 처지는 5일 시작된 난민 총파업의 도화선이 됐다. 시위는 사막을 걸어서 탈출해 지난해 12월 17일 예루살렘까지 왔던 150명이 체포되면서 시작됐다. 17일의 시위는 아직 작은 규모였다. 이 시위가 이스라엘 정가를 뒤흔들 정도로 성장한 것은 그 주 토요일, 21일 텔아비브 남부의 레빈스키공원에서 열린 시위부터다. 2시간30분정도 진행된 이날 시위는 활기와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6000여 명의 시위대는 경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제1의 도시인 텔아비브 거리를 행진하며 '자유'를 목청껏 외쳤다.

에리트레아인과 수단인은 새해를 맞아 항의시위를 확대하고 있다. 4일 레빈스키공원에 수천 명이 모여 5일부터 사흘 간의 총파업을 결의했다. 파업과 거리행진, 외국 공관 앞에서의 항의 시위 등 다양한 시위들이 계획돼 진행되고 있다. 난민지위와 처우의 개선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이스라엘 시민사회에도 작은 반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972 매거진에 따르면 적어도 두 명의 크네세트 의원이 5일 총파업 집회에 참여해 지지의 뜻을 밝혔다. 크네세트 이주노동자위원회 위원장인 미크할 로진
[메레츠당ㆍ이스라엘 시온주의 좌파 정당.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으로 2013년 총선에서 6석을 얻었다]은 "이제 행동할 때입니다. 죄 없는 수 만명이 수감돼선 안됩니다. 함께 일어나 외칩시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고 연설했다. 에리트레아인과 수단인을 고용한 어떤 식당은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제국주의의 경비견으로 아랍 국가들을 견제해온 이스라엘은 자국 내에서도 권위주의적 지배를 유지해 왔다.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차별과 분리ㆍ고립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향해 세운 분리장벽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혼란에 빠진 동아프리카 국가들에서 탈출한 난민이 이집트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에 유입되고 있다. 이들 다수는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직항하려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튀니지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길목의 람페두사 섬 앞바다에서 아프리카 난민 500명을 태운 배가 침몰해 194명이 사망하고 150여 명이 실종됐다]. 이들 21세기의 난민 물결이 가장 견고한 인종주의 국가의 정치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하가이 마타르[이스라엘 언론인이자 정치 활동가]는 +927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구금에 대한 저항과 단결할 권리에 대한 요구는 더 이상 정치적 논쟁의 대상에만 머물 수 없다. 이제 정치권의 과제가 됐다"며 난민들의 저항에서 "시민 불복종의 하나로써 정치적 행동주의의 새로운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중요한 인구 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들 아프리카 난민에 대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것과 같은 장벽을 세우려 하고 있다. 이 두 번째 장벽이 세워지기 전 첫 번째 장벽 안쪽의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의 견고한 지배체제는 예사롭지 않은 폭풍우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참고할 만한 글
●유엔 난민협약: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1951),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1967)
●+927 Magazine: 프리즌 브레이크… 아프리카 난민의 정치적 목소리
●+927 Magazine: 난민 총파업, 텔아비브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


6일 이스라엘 유엔난민기구(UNHCR) 책임자인 발푸르가 엥겔브레히트(오른쪽)가 텔아비브 사무실 앞에서 망명 신청서를 손에 쥔 난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Activestills.org]


2013년 12월 28일 아프리카 난민들과 이스라엘 활동가들이 모든 난민의 석방과 난민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요탐 로넨/Activestills.org]


※ 이스라엘 난민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휴먼라이츠워치 홈페이지의 기사를 아래 옮깁니다. 의역이 많고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위선적 구금 정책을 중단하라
2013년 12월 18일, 휴먼라이츠워치

(텔아비브) 이스라엘 당국은 대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에리트레아인과 수단인 망명 신청자 수백 명을 실질적으로 구금하고 있다. 150명 이상의 이주민이 이동을 제한하는 규칙을 무시하고 네게브 사막에 있는 그들이 '개방형 수용소'라고 부르는 곳으로부터 탈출해 예루살렘까지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2013년 12월 17일 예루살렘의 크네세트 앞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대법원이
[지난해] 9월 사하로님 수용소 인근에 난민을 구금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한 후 이스라엘 정부는 네게브 사막에 대부분이 망명 신청자인 에리트레아와 수단 출신 수백 명을 수용할 홀롯 소용소를 건설했다. 이주민이 홀롯에 살려면 하루에 세 번 인증해야 하는 것은 물론 밤에도 그곳에 남아있어야 하는 등 실제로는 구금과 다름없다고 휴먼라이츠워치는 말한다.

휴먼라이츠워치의 난민조사 책임자 게리 심슨은 "이스라엘 당국이 이 사람들을 구금할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한다. "정부는 대법원 결정에 따리 이러한 대규모 제한조치가 구금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가식을 그만두고 진정으로 이들을 풀어줘야 한다."

국제법과 유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집단이 아닌 개인적 차원에서만 안보와 같은 합법적 목표 달성을 위한 엄격한 필요와 균형잡힌 조치를 통해 오직 마지막 수단으로써만 망명 신청자들을 구금할 수 있다.

12월 12일 당국은 사하로님에 구금돼 있던 1000명 이상의 아프리카인 이주민 중 480명을 홀롯으로 이동시켰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홀롯
[수용소]을 건설하고 이스라엘 교도소는 망명 신청자와 그 밖에 수용자들을 감시한다. 수용소는 4m 높이의 담장과 네게브 사막에 둘러싸여 있다. 당국은 이주민이 가까운 마을, 이를테면 65㎞ 떨어진 베르셰바에 갈 수 있는 특별 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2년 6월 초 정부는 대부분 에리트레아와 수단 출신인 망명 신청자 2000여 명을 사하로님 수용소에 구금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모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망명을 신청한 이들 다수는 이스라엘로 오던 중 이집트의 악덕 상인들에게 심한 괴롭힘을 받았다. 2012년 중반
[만들어진] 이스라엘의 새로운 법은 당국이 '침입자'를 최대한 3년까지, 그 어떤 개선의 여지없이 구금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스라엘은 '침입자'를 망명 신청자를 포함해 국경수비대 사무실을 통하지 않고 규칙에 어긋나게 입국한 모두로 정의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모국에서 신체의 자유를 위협받기 때문에 이스라엘 기본법에 의해 강제 추방할 수 없는 외국 국민의 장기간 구금에 대한 2013년 9월 판결에서 2012년 법을 폐지했다. 법원은 당국이 합법적으로 추방할 수 없는 모두를 석방할 시한을 2013년 12월 15일까지로 정했다.

정부는 이를 즉시 시행하지 않았고 10월 이스라엘 난민 담당 부서는 법원 명령을 무시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래서 당국은 겨우 700명을 넘는 수용자만 석방했다. 입법부는 새로운 법에 몰두해 2012년 10월 의회는 새롭게 들어오는 '침입자'를 1년 이상 구금할 수 있고 여기에 더해 2012년부터 구금된 '침입자'들을 '주거 중심시설'로 이동시킬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주는 법을 만들어냈다.

새 법은 주거시설의 규칙을 위반-또는 이를 계획-하거나 '국가 안보' 또는 '공공의 안녕'을 위협한 망명 신청자를 정부가 사하로님 수용소에 12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게 했다.

크네세트 내무환경위원회 의장인 미리 레게브는 12월 15일 정부가 예루살렘을 향해 행진해온 사람들을 하루에 세 번 인증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고 며칠 간 홀롯 수용소를 떠난 '새 법을 파괴한' '침입자'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에 따르면 그녀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경찰이 그들을 위해 바로 폐쇄된 시설로 보내는 것을 기다려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12월 10일 법은 만약
[홀롯] 거주자가 규정된 만큼 보고하지 못하면 당국은 그를 48시간 후 수용소로 이송할 수 있도록 했다.

심슨은 "당신이 만약 사막 한가운데서 일거수일투족을 무장한 경비원에게 감시당하며 오직 한 시간 거리의 마을을 방문하는 것만 가능하고, 그것도 보고를 위해 그 즉시 되돌아와야만 한다면 당신은 자유롭지 못하고 구금된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엔인권위원회는 누군가가 '특정하게 국한된 지역'에 제한돼있을 땐 언제나 구금된 것으로 말한다.
[2013년] 3월 휴먼라이츠워치는 이스라엘의 구금 정책이 에리트레아와 수단 출신의 구금자에게 그들을 모국으로 되돌려 보내는 데 대한 동의를 강제로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2월 25일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스라엘이 구금된 에리트레아인을 "어떤 기준에서도 자발적이라고 할 수 없는 투옥하겠다는 최후통첩 하에 에리트레아로의 귀환"에 동의하게끔 압박했다고 비판한다.

이스라엘 당국에 따르면 2006년 이래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입국한 에리트레아와 수단 출신 사람들 5만 명이 이스라엘의 도시에 살고 있다. 이스라엘은 비공식적으로 그들의 추방을 유보하고 있지만 고위 관계자는 반복해서 그들을 강제 추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3월 초 이스라엘 언론은 내무부 장관은 그와 같은 모든 '침입자'를 구금하고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을 수용할 것으로] 확인된 제3국으로 추방할 계획을 털어놨다.

수단과 에리트레아 사람들이 모국으로 돌아간다면 실질적 위험에 직면한다. 수단의 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방문한 누구라도 10년 이상 수감될 위험에 직면한다. 그리고 수단 정부는 법원이 그 법을 적용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에리트레아의 무기한 병역을 기피한 데 대한 처벌과 연관된 거의 확실한 박해 때문에 전 세계 에리트레아 출신 망명 신청자의 90%는 어떤 형태로든 보호를 제공받는다. 몇 년 간 이스라엘은 에리트레아와 수단 사람들의 망명 신청 처리를 거부해 왔다. 2월 당국은 망명 신청 등록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대개의 경우는 판결에까진 이르진 못했다.

심슨은 "이스라엘 정부는 그 자신의 대법원과 국제적 의무를 거부하는 대신 당국이 망명 신청자에 대한 심사를 진하는 동안 그들을 풀어주고 되돌아갔을 때 심각한 위험에 처할 그 누구라도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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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패전의 결과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던 독일. 1989년 베를린 시내를 가르던 장벽의 붕괴는 공산권 국가 해체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나치 독일이 저질렀던 유대인 학살은 인류사에서 최악의 사건으로 꼽힙니다(저는 인디언 학살과 유럽의 남미 점령이 더 잔혹한 학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으로 시온주의 운동은 국제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결국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을 세웁니다. 시온주의 단체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협력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 학살을 시온주의 국가 건설의 정당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참 씁쓸한 일입니다(랄프 쇤만 '잔인한 이스라엘'ㆍ링크).

학살 피해자들의 후예가 세웠다는 이스라엘은 1989년 이후 지구상에서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장벽을 2002년부터 세우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은 다시 한 번 우리 시대의 상징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가릅니다. 꼭 콘크리트 장벽만은 아닙니다. 때론 철조망과 이스라엘군의 총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가릅니다(영화 '레몬트리'ㆍ링크).

퀘벡 출신의 만화가 기 들릴은 1년간의 예루살렘 생활을 바탕으로 그린 '굿모닝 예루살렘'에서 장벽에 가로막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다룹니다.


굿모닝 예루살렘|기 들릴 지음|서수민ㆍ맹슬기ㆍ이하규 옮김|길찾기

그가 이스라엘을 찾은 것은 딱히 어떤 사명감이나 목표를 가졌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는 국경없는 의사회의 임무로 이스라엘에서 일하게 된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됩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그가 1년간 살게 된 곳은 예루살렘의 동쪽 지역. 성지가 있는 구시가지의 동쪽에 자리한 이곳은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합병된 지역입니다. 국제법상으로는 팔레스타인에 속하는 지역으로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지역이죠.

팔레스타인을 관찰한 많은 이가 주목하듯 그도 이스라엘 정부의 부당한 억압에 분노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는 보다 냉정한 태도를 취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처지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서는 아닙니다. 그는 무엇보다 삶이라는 측면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관찰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그는 어느날 자신이 사는 동예루살렘보다 훨씬 깨끗하고 풍요로운 정착촌을 둘러봅니다. 그곳에서 발견한 슈퍼마켓. 국경없는 의사회의 원칙(정착촌 확장 반대)상 정착촌 슈퍼마켓에서 물견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구경만 하고 나오는 그가 목격한 것은 "슈퍼마켓에서 양손 가득 장을 보고 돌아가는 무슬림 여성"입니다.

또 이런 것도 있습니다. 이슬람ㆍ유대교ㆍ기독교의 성지가 모여있는 구시가지. 성지순례객들이 끊이지 않죠. 이곳을 찾은 이 중에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체험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 들릴에 의하면 "한 아랍인 가족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재연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대여"줍니다. "체험이 끝나면 점원은 그것을 다시 가게까지 가지고 와야" 하죠.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 갈등의 장벽은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 앞에서는 장애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폭력적인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라는 특정 '지역'의 상황입니다. 갈라지고 끊어진 이 지역에서 유대인들의 삶도 온전치는 못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정부의 지원으로 훨씬 깨끗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인구 5만명의 소도시인 피스갓 제브는 그가 자주 찾은 정착촌입니다. 이곳 정착촌의 임대료는 다른 곳보다 싸기 때문에 유대인 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유대인 정착촌이 성장하면서 그 내부에서부터 이민족ㆍ타종파의 정착촌이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정착촌의 상황은 더 아이러니합니다. (적대적일 것이라고 단정된) 팔레스타인 사람들 지역에 고립된 정착촌 사람들은 직업도 없이 오직 팔레스타인과의 분쟁 만을 유일한 일상으로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미국ㆍ이스라엘 정부의 총탄과 미국의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지원 때문입니다. 그들이 운영하는 정착촌 투어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 후원을 호소하는 중요한 이벤트이기도 합니다. 정착촌은 가난한 유대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되는 것이죠.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이스라엘의 양심적 세력과 함께한 부분입니다. 앞서 얘기한 정착촌 투어와 달리 정착촌의 부조리함과 부당함을 고발하고자 하는 정착촌 투어도 있습니다. 이 투어는 정착촌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던 사람들이 만든 NGO 'Breaking The Silence'에 의해 진행됩니다. 그가 처음으로 장벽을 통과하는 검문소를 찾은 것도 그곳에서의 인권 침해를 감시하는 이스라엘 여성 인권단체 '마흐솜 와치'와 함께였습니다.

심지어 가장 근본주의적인 유대인 집단, 토라 연구를 일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초정통파 유대인 지역인 '메아 셰아림'은 시온주의와 자신들 사이에 단 하나의 공통점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플래카드에 이렇게 적어놓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시온주의자가 아니며, 시온주의자들도 유대인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인종차별주의자일 뿐이다. 우리는 시오니즘과 그들의 점령이 당장 중단될 것을 신께 기도드린다."

물론 그가 이스라엘 정부의 부조리함, 폭력에서 눈을 돌리진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잔인한 신무기 백린탄을 이용해 가자지구를 폭격한 2008년 12월 말, 그는 바로 그곳에 있었으니까요. 그의 아내와 국경없는 의사회, 세계에서 몰려든 인권 단체들은 어떻게든 가자지구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으나 이스라엘 정부의 방해 때문에 폭격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죠. 이미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였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인 가자지구에 기 들릴이 관심을 가진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는 가자지구에 들어가보고자 시도하지만 불허 통보를 받습니다. "만화가는 안 됩니다"라고. 그 말을 들은 그는 "조 사코랑 나를 헷갈렸나?"라고 답하죠.

결국 가자지구엔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는 이스라엘 곳곳을 누비며 장벽을 스케치합니다. 그 장벽 자체가 삶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영화 '레몬트리'에서처럼 콘크리트 장벽이 자신의 농장에 세워지면서 생업을 바꿔야 했던 이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1년간 예루살렘에 거주한다고 모두가 그와 같은 것을 보진 못할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의 쉬지 않는 유머가 그와 같은 관찰을 가능케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의 넓은 시야는 우리가 팔레스타인에 대해 얘기할 때 보통 놓치기 쉬운 초정통파 유대인,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베두인족, 사마리아인,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여러 종단도 놓치지 않습니다. 분노에 눈이 멀지 않고 극단적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현장의 이면까지 살피는 그의 사려깊음은 누군가에게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슬람과 유대교의 봉합할 수 없는 갈등 만을 강조한다면 우리에게 대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분할만이 대안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는 더 큰 갈등과 충돌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종교적이지 않은 세속국가의 건설 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대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대안을 얘기할 때, 그토록 '종교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그게 가능한 대안일까 하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제 자신도 의문이 들곤 했죠. 기 들릴은 비록 아주 미약한 가능성이긴 하지만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자신의 1년간의 예루살렘 생활을 담은 책 '굿모닝 예루살렘'에서 보여줍니다. 현대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큰 갈등이 진행 중인 지역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의 평화 가능성을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과 함께 고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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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뎡야핑 2012.08.17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막숨'이라고 들리던데 '마흐솜'이라고 번역했군요 ㅎ 글 잘 가져갈게요~
    http://pa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