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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0 15:25

제 맘대로 뽑은 올해의 책 2010.12.30 15:25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입니다. 그래봤자 다음주 월요일도 여느 한 주의 시작과 다르지 않게 출근하고 또 일을 하겠죠. 그래도 한해를 정리하는 일은 나이 먹을 수록 약해져가는 기억력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최근까지 독서모임 두곳에 참여했습니다. "책은 혼자 읽는거야"라는 선배의 말에 동감하지만, 제 개인을 강제하기 위해 독서모임을 택했죠.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책을 그냥 '보기만' 하지 말고 '읽고' '정리하고' '기억하자'는 게 첫 번째고 두 번째 목적은 책을 좀더 많이 읽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 두가지 다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따져보니 올해 읽은 책의 양도 여느해와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읽은 책을 정리하는 것은 더더욱 진척이 없고요. 이 두 목표는 내년에도 여전히 제 독서생활의 목표가 될 듯 합니다.

올해 나온 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은 1월에 나온 '가난한 이의 살림집'(노익상 글ㆍ사진|청어람미디어|링크)입니다. 급속한 근대화는 우리 생활을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엔 우리의 '주거생활'이 있죠. 노익상의 글과 사진은 우리 중에서도 '가난한 이'들의 주거를 뒤쫓습니다. 그가 찾는 사람들은 전통 농경문화에도 포함되지 못했던 말그대로 배제돼고 무시당해온 사람들입니다. 이른바 '없는 사람' 취급이죠. 그들의 주거는 그들의 존재 만큼 덧 없습니다. 번듯한 콘크리트 아파트, 신식 가옥의 그늘에, 아니 마을 외곽에, 야생과 문명의 중간에 위치한 이들의 가볍고 부유하는 살림집의 처지는 사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부자의 상징으로 떠오른 도곡동 타워팰리스 뒷편에는 주소도 없고, 전기와 상수도도 없는 마을이 아직도 있으니까요(주소는 얼마전 부여된 걸로 압니다. 이 마을 이야기는 노익상의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지난 10년 간의 아파트 열풍은 우리의 시야에서 가난한 이들을 몰아내는 역할을 했죠. 21세기 새마을 운동, 뉴타운 개발열풍은 허름한 주거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정치 분야에서는 어쩔 수 없이 두 책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슬라보예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김성호 옮김|창비|링크)와 로버트 달의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김순영 옮김|후마니타스|링크)가 두 주인공입니다. 공산주의의 재발명을 말하는 지젝과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평등'에 대해 탐구하는 달의 저작은 민주주의를 더 넓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경제에서는 조지프 E. 스티글리츠의 '끝나지 않은 추락'(장경덕 옮김|21세기북스|링크)을 추천합니다.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 가지'(김희정ㆍ안세민 옮김|부키|링크)와 함께 읽으면 더 좋죠. 이에 대해선 제가 전에 썼던 글로 소개를 대신합니다(링크).

이번에 소개할 책은 어디류 분류해야 할지 약간 난감하긴 합니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링크)과 안수찬 등 한겨레21 취재팀의 '4천원 인생'(한겨레출판|링크)이 바로 그 책입니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이 두 책이 모두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것, '가난과 빈곤'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함께 추천합니다. 몇년 전부터 지속된 빈곤과 가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제3세계와 아프리카 등 먼 길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느낌입니다. 김수현, 이현주, 손병돈이 함께 쓴 '한국의 가난'(한울아카데미|링크)은 보다 전문적인 저술이지만 함께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그렇다고 딱딱한 논문은 아닙니다).

제가 10대가 아니기에 지금 추천하려는 이 책이 10대의 삶을 온전히 담았는지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인 한 '어른'이 10대(20대까지 포함됐지만 그 성장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10대인)들을 대하는 태도에 씁쓸히 동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을 만화 분야에서 올 한해 한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감히 꼽습니다. 이 책은 바로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출판사|링크)입니다.

과학 분야의 저술에선 새로운 변화가 감지됩니다. 여전히 강세를 보인건 종교와의 싸움에 나선 책들입니다. 하지만 올해 눈에 띄는건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끈이론'의 퇴조입니다. 심지어 끈이론은 물론이고 '최종이론'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책도 나왔습니다. 이 분야에서도 좋은 책들이 많지만 역시 최고의 책으로는 로저 펜로즈의 '실체에 이르는 길'(박병철 옮김|승산|링크) 1, 2권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막대한 분량은 물론 수학을 피해가지 않는 서술은 최근의 교양 물리학 서적이 빠뜨리고 있는게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올해 초 아이폰에 설치한 앱이 있습니다. 'i Read it Now'라는 프로그램이죠(소개 링크). 이 프로그램으로 읽은 책은 물론 각 월별로 몇권을 읽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따져보니 꼭 회사일이 가장 바쁜 때 독서량이 크게 늘더군요. 제 독서생활이 교양의 증진보다는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는게 반증되는 듯 싶어 얼굴이 화끈 거렸습니다. 바쁠 때 책을 읽는게 나쁜 건 아니지만 정작 여유있게 탐구할 수 있는 시간에 독서를 안한게 아쉽더군요. 내년엔 더 많은 여가를 책과 함께 할 수 있기 바랄 뿐입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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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글리츠와 유엔총회 전문가위원회가 쓴 '스티글리츠 보고서'와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 가지'를 연이어 읽었습니다.

(장 하준의 표현에 의하면) 이 시대의 건강한 경제 시민이 꼭 읽어야 할 두 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두 책의 목적은 약간 다릅니다. 앞의 책은 세계 경제위기를 맞아 유엔이 국제적 공조를 위한 처방전을 만든 것입니다. 얼핏 보면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는 듯 싶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이 책이 매우 신중하게 현재의 경제위기를 진단하고 필요한 최소한의 정책적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금융에 대한 규제, 국제적 기구(IMF 세계은행 등)의 개혁 방향 내지 새로운 국제기구의 제안, 달러 중심 통화 체제의 개혁(지역 기축 통화 및 새로운 세계 통화 체제 건설) 등 어느 하나 가볍게 다룰만한 주제가 없습니다. 특히 이 책이 강조하는 건 지난 30여년간 우리의 경제 생활을 지배해왔던 기존의 통념, 신념체계에 대한 비판적 고찰입니다. 과연 시장에게만 맞겨두면 모든게 잘 이뤄질 것인가. 규제는 적을 수록 좋은 것인가. 금융의 '혁신'이 우리의 경제생활을 풍족하게 했는가. 국가의 개입은 적을 수록 좋은가. 이러한 근본적 성찰이 없이는 이번 위기를 넘긴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또다른 불안과 위기를 되풀이해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이 책의 주장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건 기존의 경제학에서 다뤄지던 수치적 지표 뿐 아니라 '기후변화' '빈곤' 등의 문제도 인류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경제의 개혁에 꼭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침 이 책을 읽는 기간이 G20을 둘러싸고 시끄럽던 기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정부의 과도한 통제와 홍보에 짜증내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압도적이었죠. 저도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한편 아쉬웠던 것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 G20 의제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스티글리츠 보고서에서도 짧게 지나치며 언급하지만 현재의 G20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다루는 방식은 우려를 자아낼 만 합니다. IMF 개혁, 금융 부문에 대한 새로운 규제 등 얼핏 비슷한 얘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봐도 그 내용이 스티글리츠의 주장과 정 반대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갈등 등 주요 강대국 들의 갈등으로 소리만 요란한 깡통이 되고 있는게 현실이긴 합니다.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고 어떠한 합의를 이끌어낸다고 할 지라도 그 방향이 과연 우리에게 장기적으로 유익한 합의일지는 의심스러운 사항이죠. 더구나 전세계 60억 인구와 190여 국가의 경제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들을 겨우 20개 국가들이 모여서 의논하고 있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죠. 그렇기에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유엔 차원에서의 세계 경제체제의 개혁을 촉구하기도 합니다.

스티글리츠 보고서와 함께 장하준의 책을 연이어 읽은 건 애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티글리츠가 강조한 기존의 자유 시장 경제학의 통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장하준의 책에서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하준의 책은 보다 기본적인 쟁점, 하지만 치열한 논쟁의 대상인 쟁점에 대해서 다룹니다. 국가, 규제, 복지, 평등 등. 금융에 대한 규제완화와 국가 부문의 축소가 지난 30년간 경제를 새로운 발전 단계로 진입시켰다는 기존 자유 시장 경제학의 통념에 대해 구체적인 통계, 기초적인 논리를 동원해 통렬하게 비판하죠. 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자유 시장주의에 근거한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더 나은 자본주의를 모색해야 한다. 2. 인간의 합리성은 일반적 믿음과 달리 불완전하다. 이에 걸맞은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3. 이기심은 인간의 여러 본성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보다 긍정적인 부분을 고무하고 발휘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4. 부자는 너무 많은 돈을 벌고 가난한 사랆은 너무 적은 돈을 번다. 기회의 평등을 위해서라도 어느정도 결과의 평등이 필요하다. 5. 탈산업사회, 지식경제라는 새로운 현상은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대개는 착시현상에 의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제조업은 여전히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다. 6. 금융과 실물 부문의 적절한 조화를 위한 금융규제가 필요하다. 7. 더 크고 적극적인 정부는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경제의 성장과 인간사회의 발전을 위해 유용할 수 있다. 8. 기계적 균형이 아닌 개발도상국에 대한 '불공평한' 우대가 필요하다.

장하준은 위의 8가지를 새로운 세계 경제를 설계하기 위해 우리가 꼭 고려해야 할 것으로 꼽습니다. 위의 두 책은 함께 읽어도 좋고 따로 읽어도 좋을 듯 싶습니다. 아쉬운 것은 앞의 책 '스티글리츠 보고서'가 너무 많은 오타(아무래도 디자이너의 ctrl+F 실수가 있었던 듯)와 종종 눈에 띄는 비문과 오역(정태인씨는 심지어 '반역'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내용 자체도 장하준의 책보다는 조금더 기초지식이 필요한 듯 싶습니다. 장하준씨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마칩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여덟 가지 원칙은 모두 지난 30년 동안의 경제적 통념들과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 중에는 불편함을 느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세계를 퇴보시키고 재앙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원칙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예전과 비슷한 대참상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또 빈곤과 불안으로 고통받는 수십억 인구(개발도상국만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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