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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에 해당되는 글 2

  1. 2013.11.07 잉여와 20대
  2. 2013.04.24 마을 공동체 살리려면 노동시간 단축부터 (4)
2013.11.07 02:28

잉여와 20대 쟁점2013.11.07 02:28

잉여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특히 20를 언급하면서 그렇다. 최태섭이 '잉여사회'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지만 실상 '잉여'라고 스스로 부르고 '잉여짓'을 놀이로 하거나, '잉여짓' 한다고 비난받는 이들이 누구인지 명확히 설명하진 못한다. 최태섭의 책 1부는 잉여와 관련있는 듯 보이는 몇몇 담론들을 다룰 뿐이며 2부에서도 인터넷 문화의 일부분만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세대론이 덧붙여진다. 조한혜정은 '평생 자녀를 데리고 살 것인가?'(한겨레 10월 30일ㆍ링크)에서 '속물과 잉여'라는 책을 인용하며 직접적으로 20대와 10대를 겨냥한다. 같은 날 정희진도 경향신문 칼럼(잉여, 경향신문 10월 30일ㆍ링크)에서 잉여를 논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노동절약형 기술발전이 더 많은 사람들을 '없어도 되는 사람'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조한혜정보다는 잉여를 논하는 폭이 넓기는 하지만 그도 주로 20대의 현실을 강조한다. 청년 실업과 취업난, 9만 명이 응시한 모 대기업 입사시험, 늘어나는 캥거루족 등이 그 현실이다.

한겨레21은 '희생양도 개새끼도 아니다'
(2013년 11월 984호ㆍ링크)에서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는 20대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희진이 말한 "중산층 부모를 둔 잉여"인 캥거루족, 조한혜정이 사례로 든 "부모의 연금에 빌붙어 사는" 은둔형 외톨이가 이러한 20대의 대표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한겨레21은 이들 20대를 우치다 타츠루가 '하류지향'에서 제시한 '성장 거부 세대'로 부른다. 20대에 동정적이든 비판적이든 모든 결론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거센 경쟁 압력에 직면한 20대가 아예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걸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문득 청년 실업과 취업난이 그토록 많이 언급되지만 구체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업과 고용에 대해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싶었지만 우선은 20대를 중심으로 몇 가지 자료를 찾아 봤다. 트위터에서 읽은 "정희진의 칼럼은 요즘 떠오르는 '잉여' 의식에 거리를 두지 못해서 결국 '잉여'도 못되는 이들을 보지 못한다. 현 자본주의가 무슨 잉여인력을 양산하나?"라는 지적도 오늘 올릴 그래프를 만들도록 재촉했다. 아직 어떤 분석을 내놓을 수준은 안 되고 현실이 이렇다를 정리하는 정도다.



먼저 볼 것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진로다. 많이들 알려졌지만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진학률은 90년대에 급격히 증가해 2008년에는 83.8%로 정점을 찍었다. 그 반대로 취업률은 낮아졌다. 2008년 이후에는 분위기가 약간 바뀌어 진학률은 71.3%로 떨어졌고 취업률은 8.3%로 올랐다. 진학률이 줄어든 만큼 취업률이 늘지 않은 것은 그래프에는 없지만 무직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2008년 9.3%였던 고졸 후 무직자 비율은 2012년 15.7%까지 늘었다.

대학 졸업자의 진학률은 큰 변함 없이 10% 이하에 머물고 있다. 취업은 2009년까지 꾸준히 늘었지만 2010년에 큰 폭으로 떨어져 1998년 경제위기 직후 취업률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2011년 51.4%까지 늘었던 취업률은 2013년 다시 50.6%로 떨어졌다. 1997년 말 경제위기 직후의 상황보다 낙폭도 크고 회복도 더디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진로에서 예상되듯 20대 초반(20~24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크게 떨어졌다. 반면 대학을 졸업하는 20대 후반(25~29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꾸준히 늘었다.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나이는 늦춰졌지만 그 만큼 20대 후반에게 경제활동 참가 압력이 커진 게 아닌가 싶다. 나이에 따른 경제활동 참가율 변화를 보면 미세하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994년에 비해 2012년에 경제활동참가율 곡선이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경제활동참가율이 가장 높은 나이도 40대 초반(40~44세)에서 40대 후반(45~49세)로 늦춰졌다.

여기서 20대의 경제활동참가를 15세 이상 전체 인구와 조금 더 자세히 따져보자. 20대 초반과 후반으로 나누어 전체 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과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자. 이는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면서, 참여할 의사도 없는 20대가 늘고 있다"는 한겨레21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다. 한겨레21은 20대 비경제활동인구 비중이 2005년 이후 늘어나 올해 9월 37.9%(629만9000명)에 이른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와 함께 57.3%까지 낮아진 고용률, 전체 연령 중 가장 높은 실업률을 예로 들고 있다.



20대를 초반과 후반으로 나눠 살펴보면 한겨레21과 조금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20대 초반(20~24세) 경제활동인구는 1994년 229만9000명에서 2012년 135만7700명으로 꾸준히 줄어든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20대 초반이 차지하는 비율도 11.3%에서 5.3%로 감소해 같은 기간 15세 이상 전체 인구 중 20대 초반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4년 11.2%에서 6.8%로 감소한 것보다 더 급격히 줄었다.1997년까지는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았지만 1998년 역전돼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과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20대 후반(25~29세)은 다르다. 초반과 마찬가지로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들었다. 1994년 287만 명에서 2012년 251만2400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인구가 줄어든 것에 비해서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20대 후반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4년 14.1%에서 2012년 9.9%로 줄었고 전체 인구 중 20대 후반의 비율은 12.7%에서 8.2%로 줄어 거의 비슷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중 20대 후반이 차지하는 비율은 인구에서의 비율보다 높으며 증가와 감소 경향은 큰 격차 없이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앞의 그래프에서 드러났듯 같은 기간 20대 후반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8.3%에서 73.6%로 오히려 늘어났다.

결국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않거나 참여할 의사도 없는 20대라는 한겨레21의 주장은 20대 후반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 20대 초반도 대학진학률과 인구 감소를 따져보면 부분적으로만 진실이다. 노동시장 진입 연령이 대학을 졸업하는 20대 후반으로 늦춰졌다는 게 보다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노동시장 진입을 위한 기본적인 교육비용이 증가하고 부모가 자식을 책임지는 기간이 더 길어졌음을 이 자료로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20대가 취업에서 겪는 어려움과 함께 다른 자료를 통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20대 초반이 경제활동 참가율은 낮지만 실업률은 20대 후반보다 높다. 경제위기 영향도 더 강하다. 1998년 때도 그랬지만 세계경제위기가 시작되던 무렵인 2007년에도 전체 실업률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20대 후반과 비교해도 그렇다. 그러나 경제활동인구와 실업자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우선 경제활동인구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의 경우 큰 변화없이 꾸준히 줄어드는 데 이는 20대 인구가 감소한 영향으로 보인다. 실업자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1998~1999년 전체 실업자 중 20대 실업자 수가 크게 준 것은 1998년 경제위기 직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먼저 일자리에서 밀려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0대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불안정한 일자리 비율이 높아진 것 아닌가 싶다. 2003년 이후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의 변화를 보면 40대에선 크게 줄고, 전체 비율도 조금씩 줄어드는 데도 불구하고 20대는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2009년까지는 40~49세의 비정규직 비율이 20~29세의 비정규직 비율보다 높았지만 2010년에는 역전 돼 2013년에는 격차가 더 커졌다.

박근혜가 요새 관심을 갖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15세 이상 임금근로자 전체에서 시간제 비율이 2009년부터 급격히 높아지고 있지만 특히 20대에서 그 정도가 심하다. 결국 올해에는 전체에서 10.3%인 비율도 추월해 11.1%를 기록했다. 반면 40대는 2009년 이후 시간제 일자리 비중이 조금씩이지만 줄고 있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임금 격차가 더 커지는 것도 심각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 차이는 2004년 61만9000원에서 올해는 111만8000원까지 늘어났다. 시간제 일자리는 말할 것도 없다. 올해 시간제 일자리 월평균임금은 정규직보다 189만2000원 적다. 이는 정규직의 임금 인상률이 비정규직보다도 높다는 데서 기인한다. 비정규직의 경우 임금이 떨어진 해도 있었다. 정규직의 임금은 올해 8월의 경우 전년도 8월보다 3.5% 올랐다. 비정규직은 2.5%로 정규직보다 1.0%포인트 낮다. 세계경제위기가 확산되던 2009년에도 정규직은 3.5% 올랐으나 비정규직은 7.3% 줄었다.

20대 청년들에게 취업의 문은 좁게만 열려있다. 그 열려있는 문조차도 아주 험난한 길로 연결됐을 가능성이 더 커져가고 있다.

※자료는 국가통계포털 KOSIS.kr의 고용ㆍ노동ㆍ임금 통계와 교육통계서비스 cesi.kedi.re.kr의 교육통계연보에서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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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칼럼에서 조한혜정 교수는 '동네 나눔 부엌'을 상상해보자고 한다(한겨레 4월 24일자 30면ㆍ링크). 그는 이 나눔 부엌이 "지속가능한 삶의 시대를 열"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협동조합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이런 주장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사인 293호에도 성북구의 '마을 만들기 사업'에 관한 글이 실렸다.

그런데 오전 6~7시에 출근해 오후 8~9시는 돼야 집에 오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동네 나눔 부엌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OECD에 의하면 2010년 기준 한국의 연간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부지런하다는 독일은 1408시간, 일본은 1733시간 일한다
(OECD Factbook 2012ㆍ링크). 주말이나 휴일에라도 시간이 나면 다행이다. 주말이나 휴일 특근은 제외하더라도 휴일 자체가 적다. 선진국들에 비해 5~13일 덜 쉰다. 2009년 기준으로 평균 휴일 수는 연차휴가 19일을 합해 25일이라고 한다(경향신문 4월 23일자 3면ㆍ링크).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직장에 매여 있기에 개인 또는 가족을 위한 시간은 최소화 되기 일쑤다. 마을 공동체를 위한 시간은 더 말해 뭐할까. 마을과 협동조합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지만 현실은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일까. 조한혜정 교수는 "여유가 생긴 주부"와 "프리랜서"를 '동네 나눔 부엌'의 제일 첫 구성원으로 꼽는다. 시사인의 기사에서도 주부들의 참여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전업주부라고 낮시간에 회사에 매여 있어야 하는 직장인보다 시간이 더 날리도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전업주부 연봉찾기 서비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서울 및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30대 전업주부의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9시간40분에 달한다고 한다
(링크). 취업 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과 그리 다를바 없다(2009년 기준 연간노동시간 2232시간을 휴일ㆍ휴가 129일을 제외한 236일로 나누면 9시간27분정도 된다. 단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시간 조사는 개인이 직접 입력한 시간을 평균한 것으로 엄밀한 조사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집안일을 도울 '아줌마'를 쓸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마을일에 신경쓸 여유가 있을리 없다. 프리랜서는 그 이름 만큼 자유로운가? 가당찮은 말이다.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보다 더 가혹한 조건으로 자신 스스로를 몰아넣어야만 생존 가능한 게 대다수 프리랜서의 현실이다.

마을ㆍ공동체ㆍ협동조합 모두 좋다. 그런데 그 시작은 무엇보다 노동시간의 절대적인 단축이 되어야 한다. 정치 참여를 늘려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넣기 위해서도 노동시간 단축은 필수다. 술자리 욕지거리들을 정치 참여라고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노동조합 활동에 조합원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도 노동시간의 단축은 전제 조건이다. 곧 있으면 노동절이다. 1886년 하루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벌인 미국 노동자의 투쟁을 기념하는 날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주의 역사 내내 가장 큰 갈등의 축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다른 말들의 잔치보다 '노동시간 단축' 이 하나에 힘을 모을 방법은 없을까.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은 매우 훌륭한 슬로건이다.

※ 마을 공동체의 형성에 좌파나 진보 지식인만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다. 건설사들은 몇년 전부터 주민 공동 편의시설인 '커뮤니티 센터'를 아파트 홍보에 적극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피트니스센터와 같은 것들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주민 회의실이나 독서실ㆍ카페 등 아파트 공동체를 위한 시설로 확대되고 있다. 홍보업체들은 "상류층, 그들 만의 커뮤니티"를 홍보 키워드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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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kcom 2013.04.24 16: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건설사 이야기가 솔깃하네요! 요즘 소위 '게이티드' 아파트촌에는 인트라넷 구축도 잘 되어 있어서 한밤중에 해열제가 필요해 글 올리면 여기저기서 응답이 오고 애들 문제로 정보공유도 많이 하고.. 그렇게나 훈훈하고 좋대요. 직접 살아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문화라 듣고 깜짝 놀랐어요.

    • 때때로 2013.04.24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군가 잠입취재 해봤으면 좋겠어요. 저야 홍보 관련해서 저런 키워드들을 사용하는 것만 본 것이니 제대로 알기는 어렵죠. 꼭 이상화된 공동체는 아닐지라도 아파트 부녀회의 강한 결집력은 많이들 인정하는 것이죠. 이번 시사인 기사에서도 민주당 지역 정치인들이 아파트 소유자의 이해관계에 더 밀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로 들었더군요. 이게 입증된 사실인지는 아직 좀 의심스럽습니다. 관련한 연구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2. G.D. 2013.04.24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 그래도 열받을까 싶어 조한의 칼럼은 안 읽었습니다만... 뭐 대충 감이 오네요.
    노동시간 최장인 건 입 싹 씻고 모른 체하고 대체휴일제 하면 32조 날아간다고 발광하는 자본가들이야 뭐 말 다 했죠. 그런데 저런 식의 칼럼 쓰는 교수들도 자본가들 못지않게 짜증 납니다. 육아와 가사 등 노동력 재생산에 꼭 필요한 일을 하지만 무급이다 보니 주부의 노동력 따위 아무 떄나 차출해 공짜로 쓸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죠. 후배들 얘기 들으면 엄마들이 아직도 초등학교에 청소니 뭐니 하며 숱하게 불려 다닌대요.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한 게 없어요.
    그런 사회 분위기도 문제지만, 저런 칼럼에서 얘기하는 '여유가 생긴 주부'라는 것도 웃기는 소리죠. 여유가 있긴 개뿔...

    • 때때로 2013.04.24 1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직접 읽으면 더 열받죠. 글을 시작하면서부터 예로 든다는 것이 '대기업 임원'과 '고액 연봉을 받는 조카사위'니까요. 그러니까 "정말 돈이 없어 문제인가? 살펴보면 지금 우리 주변에는 돈이 너무 많아 탈이고 남아도는 집과 공간도 적지 않다"(조한혜정)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죠. 월 200만원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절반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과 관련해 임금(소득) 문제도 얘기해볼까 하다가 그냥 노동시간에만 집중해 정리했는데 보면 볼 수록 열받는 게 자꾸 나오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