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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왕성'.

※아래 글에는 영화 '명왕성' '더 테러 라이브' '설국열차'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승열패(優勝劣敗)'는 우리 시대 유일한 도덕률이다. 그렇다고 말해진다. 보다 나은 능력과 자원을 지닌 자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사회가 나뉘어지는 것은 당연하게 치부된다. 승자독식은 우승열패 사회의 당연한 결과다. 믿을 것은 자신의 몸뚱이 뿐인 노동자는 "겁에 질려 주춤주춤" 자본가의 작업장으로 걸어들어간다. 탈출구는 교육이다. 물론 자신은 탈출하지 못한다. 자신의 자식만이라도 다른 삶을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교육은 상층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동아줄이 되어 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회의 동아줄은 많지 않았고 그럴 수록 동아줄을 잡기 위한 노동계급 자녀들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민주화 이전 사교육이 금지됐다. 하지만 이는 법의 단속을 피할 수 있고 금지로 인해 높아진 비용을 감당할 여지가 있는 상층 계급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화 이후 치열한 대입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대학 입학정원을 크게 늘렸으나 이는 치유책이 될 수 없었다. 이제 대학은 모두가 당연히 가야할 곳 취급 받았다. 국내의 명문대를 넘어 해외의 유명 대학ㆍ대학원으로 쌓아야할 스펙의 깊이는 더 깊어졌고 치뤄야 할 경쟁의 폭은 더 넓어졌다.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현실, 그리고 상층 계급으로의 이동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교육에서 경쟁을 제거하기 어렵게 만든다.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잡아먹어야만 했던 '설국열차'의 꼬리칸은 동료를 토끼사냥하는 영화 '명왕성'의 교실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최근 잇따라 개봉한 '명왕성' '더 테러 라이브' '설국열차'는 각자 다른 방향에서 이 '꼬리칸'의 문제를 다룬다. 물론 그 태도는 영화마다 다르다. 특정한 주제의식보다는 상황의 긴박함에서 오는 긴장감을 목적으로 소재가 다뤄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 글은 영화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될 수 없다. 단지 영화들에서 떠올릴 수 있는 우리 시대의 현실을 풀어 재구성해볼 뿐이다. 아래는 이 세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명왕성의 김준

영화 '명왕성'은 이러한 교육이 만들어내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서울 강북의 한 학교에서 꽤나 그럴듯한 성적을 올리던 한 학생은 명문고로 전학을 간다. 자신의 자그마한 세계에서 승자였을 그 학생, 김준은 자신이 원했던 더 높은 자리에서 자신의 위치가 이전과 다름을 알게 된다. 이미 한 번 더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한 그에게 계급 상승의 욕망은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은 것이다. 비밀에 쌓여있는 '오답노트'를 얻기 위한 욕망은 자신의 동료를 배신하게 만든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뛰어넘기 힘든 계급의 장벽이 존재함을 그는 뒤늦게 깨닫는다. 그는 1%의 학생들이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한 일회용 도구에 불과했다. 교육을 통한 계급 이동은 기만이었다. 상층 계급의 동료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자신과 그들을 폭력적으로 제거한다. 청소년 자살률이 계속해서 높아져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이기도 하다(2010년 기준 10~24세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는 9.4명으로 OECD 평균 6.5명을 큰 폭으로 상회한다). 영화 '명왕성'에서 이다윗이 열연한 김준의 이야기다.

김준이 만약 자폭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했다면 그의 세계는 아버지의 세계와 달라졌을까. 우리는 아주 높은 확률로 그가 경험할 사회가 학교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거대하게 가로막은 계급 장벽은 우리의 삶을 끊임 없이 좌절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김준이 자폭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일 수 있다. 이다윗이라는 배우가 두 영화 모두에서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역할로 나온 것은 우연하게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더 테러 라이브의 박노신

'더 테러 라이브'에서 박노규는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 밖에 모르는 인물이었다. 야근수당 2만5000원을 더 받기 위해 마포대교 난간에 메달렸던 그는 한강의 어두운 물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세계의 지배자들이 모이는 자리를 위해 강행된 공사였다. 그러나 박노규의 죽음은 세계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세계는 여전히 성공을 위한 아귀다툼으로 가득할 뿐. 그렇게 잊혀져 간다. 경제개발 시절 스러져간 무수히 많은 노동자를 떠올릴 수도 있다. 산업역군으로 칭송받지만 지금 60~70대일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비루한 삶 뿐이다. 아파트 경비 자리를 얻기 위해, 거리에서 폐휴지를 줍기 위해 자신의 또래들과 경쟁은 계속된다. 하지만 박노신의 아버지 박노규의 이야기는 또한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1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114명으로 하루 6명 꼴이다. 박노신이 아버지 박노규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산업 현장에서 스러져가는 노동자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산업재해의 문제는 이 체제가 노동자를 다루는 더 근본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상층 계급으로의 이동을 미끼로 경쟁을 옹호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국 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기계 부속품 이상이 되지 못한다. '명왕성'의 김준이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그의 삶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라는 거대한 기계의 일부분 이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가 보여주지 않는 테러범 박노신의 삶이 아마 그러햇을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한 폭탄을 만들 정도로 뛰어났을지라도, 대학 진학 후 더 높은 수준의 폭탄과 격발장치를 제작하고 경찰의 전화추적을 따돌릴 정도로 뛰어난 해킹 실력을 지니게 됐다고 할지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승-전-치킨집이라는 IT노동자와 엔지니어들의 자괴감 가득한 농담을 떠올려보라.

성공한 샐러리맨 윤영화

박노규의 아들 박노신과 성공한 샐러리맨의 상징 윤영화 앵커의 만남은 이러한 계급 장벽이 사회 곳곳을 치밀하게 둘러싸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정우가 연기한 윤영화는 성공의 사다리에서 아주 잠깐 삐끗한 것처럼 보인다. 몇몇 불운이 있었지만 박노신의 테러는 다시 성공 사다리에 올라탈 기회로 보였다. 그는 차대은 국장에게 9시 뉴스 메인 앵커 자리를, 박정민 테러대응팀장에게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고 그것은 마치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황을 주도한다는 윤영화의 생각이 잘못됐음은 바로 드러난다. 방송국과 차대은 국장은 오직 시청률에만 관심있었고 청와대와 경찰청은 테러범의 체포와 면책, 즉 정부의 유지에만 몰두했다. 이러한 체제에서 그의 명예와 생명은 아무런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윤영화가 박노신과 공명하는 것은 이 부분에서다. 이러한 공감은 윤영화가 박노신에게 이어받은 폭탄 스위치를 누르게 만든다. 테러는 모두 끝났다는 정부의 뻔뻔한 발표에 엿먹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기묘하게 이어지는 이 두 영화에서 주인공 모두는 경쟁사회에서 계급 상승을 위한 사다리에 메달리고자 노력했다. 현실의 우리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배 계급의 일회용 도구에 불과했다. 역시 우리 대부분이 그런것처럼. '명왕성'에서 김준은 스터디그룹 '토끼사냥'의 오답노트가 자신을 1%의 승리자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라디오로 밀려난 윤영화는 차대은 국장과 함께 다시 성공의 길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거짓된 희망마져 사라졌을 때 그들이 선택한 것은 스스로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기

이에 반해 영화 '설국열차'는 꽤나 희망찬 이야기를 전해준다. 체제-열차는 살아남은 인류를 관리해야 하는 기계의 일부분으로 다룬다. '명왕성'과 '더 테러 라이브'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이 열차-체제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지 오래고 그 현실은 더 노골적이다. 인간의 존재가 기계의 안녕을 위협할 땐 주저없이 제거된다. 하지만 체제-열차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그 인간이었다. 무한정한 시간 동안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영구기관은 없었다. 그것이 폭로된 순간 체제-열차는 폭파되고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새 인류가 대지를 밟는다. '명왕성'과 '더 테러 라이브'에서 거대한 폭발에도 불구하고 체제가 그대로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설국열차'의 희망에 가득찬 태도는 더 명확해진다. 아직 현실은 '명왕성'과 '더 테러 라이브'에 더 가깝다. 안타깝게도 '설국열차'는 판타지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 희망이 체제-열차의 안이 아닌 밖에 있음은 분명하다. 열차에서 내리려면 우리는 우선 이 기관차를 멈춰 세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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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전성원 지음|인물과사상사

악당의 음모가 세계를 위협합니다. 의연히 일어선 영웅은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징치하죠. 세상이 이렇게만 돌아가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영웅 이야기로 먹고 살아가는 DC와 마블의 만화조차도 이러한 단순한 구도의 이야기는 버린지 오래죠.

그럼에도 여전히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매우 유혹적입니다. 좌파, 혹은 진보진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잘못된 것은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의 폭력ㆍ착취ㆍ억압의 탓으로 돌려집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부터 시작해 여러 혁명가들이 지적해왔 듯이 지배자들이 단지 강압을 통해서만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의 의식ㆍ일상을 지배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의도적으로, 또는 우연하게 만들어냅니다. 지배계급의 힘은 눈에 보이는 폭력 만이 아닙니다. 피지배계급 스스로 지배계급의 보이지 않는 사슬에 얽매이게 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힘입니다.

눈에 보이는 폭력ㆍ착취ㆍ억압의 사슬을 끊는 것과 함께 보이지 않는 사슬로부터 스스로를 풀어내지 않으면 어느새 우린 또다른 지배계급의 사슬에 제발로 묶이게 될 것입니다. 지배받는 계급의 사람들이 체제에 맞서 자기계몽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자기계몽은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행동과 의식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반성적으로 살피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의 저자 전성원은 서문에서 바로 이 자기계몽, 즉 우리의 일상과 의식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밝히는 것을 책의 가장 중요한 의도라고 밝힙니다.

이 책이 다루는 16명, 책의 부제에 따르면 '헨리 포드부터 마사 스튜어까지' 16명은 우리의 일상 생활과 의식은 물론 현대 세계질서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흔히 '자기계발'을 위한 책들에서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할 인물들로 인용되곤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취엔 그 만한 그늘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기계적 균형감에 의거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하지만 숨겨져 있기 일쑤인) 규칙이 당대에 어떤 진보를 낳았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금껏 우리가 따라야 할 것들인지에 의문이 이어집니다.

현대 자본주의를 만든 '영웅'의 이면을 드러내보이며 우리가 넘어서야 할 과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을 '반영웅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 전성원은 '황해문화'라는 계간지의 편집장입니다. 2000년대 초반 개인 홈페이지 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에겐 '바람구두'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죠. 그의 홈페이지(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ㆍ링크: 지금은 닫아놓은 상태입니다)에 담긴 문학ㆍ역사ㆍ인물ㆍ문화 정보는 아직 인터넷 '백과사전'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에 정말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홈페이지의 편집(서체와 크기, 행간의 조절)ㆍ디자인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홈페이지는 웹의 '하이퍼링크'를 가장 유용하게 사용한 사이트였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드러났던 그의 박학다식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인물과 그 주변, 당대의 역사ㆍ문화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매력적인 책이죠. 순서에 관계없이 관심있는 인물 이야기 먼저 읽을 수 있으니 500쪽이 약간 넘는 이 책의 분량이 독서에 걸림돌이 되진 않을 것입니다.


2.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장 지글러 지음|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

우리에게 다시 세계적 '빈곤'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장 지글러. 그는 이번 책에서 바이오 연료와 곡물기업들의 투기 문제를 다룹니다.

그는 세계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이 유엔 기구로 만들어진 역사를 2차 세계대전의 기아 전략으로부터 찾습니다. '기아'가 제3세계 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 유럽도 기아 문제로 고통받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로부터 배운 교훈을 통해 세계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과 같은 기아 근절을 위한 국제적인 합의와 실천이 시작됐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합의는 위협받고 있습니다. IMF, 세계은행, WTO와 같은 경제기구들은 기아 근절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세계적 곡물기업들과 바이오연료 전략이 있습니다.

장 지글러의 글은 언제나 쉽게 읽힙니다. 고통에 대한 연민과 세계시민적 책임감은 우리에게 '정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3. 좌파 아빠가 들려주는 좌파 이야기
앙리 베베르 지음|임명주 옮김|에코리브르

저자인 앙리 베베르는 흔히 말하는 '68세대'입니다. 그는 68혁명 당시 혁명적공산주의청년회(JCR) 활동을, 이후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JCR의 후신) 회원으로 좌파 정치인의 길을 걸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사회당 당원으로 있지만 그가 '좌파' 정치인인 것은 분명합니다. 유럽의회 의원까지 했으니 좌파 정치인 중에서도 꽤나 성공적인 길을 걸었다고 봐야겠죠.

그가 자신의 딸과 나눈 대화 형식으로 좌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2000년 즈음 쓰여진 책이라 지금과 약간은 다른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정도 차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지역적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안할 수 있는 정도죠.

아무래도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딸에게 들려주는 형식이라 기본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좌파/우파의 이념이 여전히 중요함을 강조하는 이 책은 우리나라의 성인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줄 것 같습니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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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etas 2012.08.28 1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저도 제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거의 '자뻑' 수준입니다), 이건 도저히 넘볼 수가 없는 ... ㅠㅠ 언급하신 책 가운데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꼭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강조하신 "<b>반영웅전</b>"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정말 저의 구미를 아주 강하게(!) 끌어 당깁니다.

    • 때때로 2012.08.28 1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읽는 책들은 얇고 흥미 위주의 책들이라 술술 넘어가기도 하고, 제가 책을 좀 대충 읽는 편이라 그래요. 좀 제대로 공부해야하는 데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앞으로 추천할 때 빠지지 않을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에 관한 책과 글이 많기는 하지만 보통은 '위인'에 대한 칭찬만 가득하죠. 전성원씨의 책은 역사적 배경과 함께 그 이면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죠.

11월 22일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가 진압군이 발사한 최루탄을 들어 던지고 있다. [the Atlantic/Reuters/Amr Abdallah Dalsh]

오늘(28일)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 독재가 종식된 후 첫 선거가 열립니다. 하원 498명, 상원 390명의 의원을 뽑는 내년 3월까지 진행될 기나긴 선거의 시작입니다. 민주주의의 쟁취를 기뻐하고 그 권리를 향유해야 할 이집트 인민에게 오늘의 선거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군부독재의 종료와 민주적 정권 이양을 요구하며 18일 시작된 저항이 열흘 넘게 이어지며 40여 명의 사망자 등 수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기 때문이죠.

최고군사위원회(SCAF)가 장악한 정권은 민주적 권리 확대에 있어서 불철저할 뿐 아니라 되레 무바라크 독재 종식을 위해 거리로 나섰던 청년과 노동자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해 민주세력을 탄압했죠. 엠네스티에 의하면 1만2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군사법정에서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중 적어도 13명은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필립 루더 엠네스티 중동ㆍ북아프리카 실행감독은 무바라크의 억압적인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최고군사위원회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평화적 저항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수천명의 시민을 군사재판에 회부함으로써 평화적 저항을 분쇄하고 무바라크 비상법의 영향(소관)을 확대해왔다. 최고군사위원회는 1월 25일 시위대가 끝장내기 위해 싸워왔던 억압적인 지배를 계속하고 있다." - 필립 루더 엠네스티 중동ㆍ북아프리카 지역 실행감독
● [엠네스티] 이집트: 군부독재가 1월 25일 저항의 희망을 깨뜨리다(링크)

"사회 긴장이 고조되자 정부는 깡패와 군사 법원을 동원해 시위 참가자와 파업 노동자 들을 공격했다. 노동자들은 법원의 사유화 철회 결정을 환영하며 사유화된 기업들의 재국유화를 바랐지만, 정부는 이 염원을 철저히 무시했다. 또, 정부는 옛 무바라크 정당 인사들의 선거 참가 금지를 명한 법원 결정을 무시했다. 현 이집트 정부는 자신이 무바라크 정권과 연속선상에 있음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 11월 20일 이집트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성명서
● [레프트21] "군사독재 물러나라, 무바라크 통치 종식하라!"(링크)

이집트 인민의 불만은 지난 몇 개월간 차곡차곡 쌓여왔습니다. 민주주의적 권리는 확대되지 못했으며 경제적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의 기본권은 부정당했습니다. 10월 9일에는 군부가 콥트교도를 공격해 28명이 학살당하기도 했죠.

내년 3월까지 여러 단계에 걸친 복잡한 선거계획도 군부정권의 민주화 이행 의지에 대한 의심을 부추겼습니다. 오늘(28일) 열리는 하원선거도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하는 게 아닙니다. 28일, 29일 이틀에 걸친 첫 선거는 9개 주 240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6번의 선거를 치뤄야 1단계가 끝나죠. 군부는 대통령 선거 등 정권의 민간이양에 관한 정확한 일정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기도 하죠.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11월 초 발표한 군부의 '신(新)헌법 기본원칙'입니다. 그들이 제시한 기본원칙은 민간정부가 군부를 통제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죠.

● [뉴시스] 이집트, 혼란 속에 하원 선거 실시(링크)
이집트 인민은 왜 다시 거리로 나섰나?(링크)


11월 20일 부상당한 시위대 한 명이 타흐리르 광장 인근 병원에서 진압군에 의해 사용된 탄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boston.com/Reuters/Amr Abdallah Dalsh]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 진압을 위해 사용된 최루탄. 'Made in U.S.A.'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the Atlantic/AP]

이집트 인민은 군부의 잔혹한 시위진압으로 더 큰 분노에 휩쌓이고 있습니다. 특히 진압군이 사용하는 고무총탄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죠. 시위대에 의하면 훈련된 저격수가 시위 참가자의 '눈'을 목표로 저격한다고 합니다.

아흐메드 하라라는 1월 29일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한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그는 그날의 싸움을 기억하기 위해 실명한 눈을 가린 안대에 그 날짜를 적어놨었죠. 하라라는 11월 20일 다시 시위에서 다른 쪽 눈도 잃었습니다. 그는 "이날 오후 3시쯤 타흐리르 광장에 나갔는데 7~10m 거리에서 진압군이 쏜 고무탄환에 눈을 맞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집트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사메 나기브에 의하면 '11월 20일'이 적힌 새로운 안대를 한 하라라는 여전히 시위대와 함께 저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잔혹한 진압군 저격수는 시위대에게 '아이 헌터(eye hunter)'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물론 군부는 고무총탄의 사용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최고군사위원회가 임명한 만수르 알에사위 내무장관은 "진압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은 물론 고무탄ㆍ새총 등을 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려면 손발이라도 맞아야죠. 히샴 시하 보건부 대변인은 "지난주 시위사태에서 실탄ㆍ고무탄ㆍ새총에 의해 최소 41명이 사망하고 3250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죠.

● [레프트21] 정권에 맞선 이집트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다(링크)
● [조선일보] 이집트 시위대 "아이 헌터 처형하라"(링크)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은 11월 25일 뉴욕 이집트 영사관을 방문해 군부정권의 폭력적 시위 진압에 항의했다. 이들은 미국산 최루탄이 이집트 군부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며 12월 1일에는 펜실배니아 제임스타운의 군수공장으로 항의 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occupywallst.org]

이집트 군부의 폭력적 진압에 항의하는 국제적인 연대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는 미국이 만든 최루가스와 무기가 이집트 인민에게 사용되고 있다며 이 무기의 생산과 수출을 중단시켜달라며 연대를 호소했었습니다. 군부독재를 대변하는 이집트 대사관과 이집트 군사정권과 거래를 하는 자국 정부에게 항의해달라고도 요청했죠.

이에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Occupy Wall Street) 참가자 수백명은 11월 25일 뉴욕의 이집트 영사관으로 항의행진을 진행했습니다. 12월 1일에는 이집트 군부독재 정권에 최루가스를 공급하는 펜실배니아 제임스타운의 공장으로 항의 행진을 할 계획입니다.

이집트 인민에 대한 연대의 행동은 한국에서도 있었습니다. 시민ㆍ사회단체 회원 50여 명은 11월 25일 이집트 대사관 앞에 모여 군부정권의 폭력적 시위진압에 항의했습니다.

● [occupywallst.org] 이집트 인민의 연대 요청에 답하다(링크)


오늘 시작된 이집트 총선의 최대 수혜자는 군부가 될 듯 합니다. 가장 많은 지지를 얻어온 무슬림형제단은 자칫 자신들이 '다수파'가 될 이번 총선이 무산될까 전전긍긍하며 18일 시작된 저항에 불참하고 있죠. 그들의 이러한 착각은 정권을 민간정부가 가져온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군부의 손을 들어줄 뿐입니다. 이는 제국주의에 대한 급진적 저항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어온 이들이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향한 대중의 행동에 얼마나 큰 해악을 미치는지 입증해주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종교적 반제국주의가 아닌 세속적 대안정치세력의 성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집트는 앞으로 더 큰 변화의 혼란에 휩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때론 이란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퇴행적 정치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세속적 대안정치의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이번 이집트 혁명이 단순히 법적인 '민주주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겁니다. 아랍의 봄이 시작된 것은 튀니지에서 노점단속을 당한 한 청년의 분신 때문이었습니다. 이집트 또한 최근 고통스러운 경제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특히 무바라크 정권의 공기업 사유화 정책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수년 전부터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행동이 성장하면서 이번 혁명의 배경을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정치가 더 나은 삶을 위한 다수의 참여로 만들어질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아랍봉쇄에 협조한 댓가로 이집트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받은] 경제원조의 댓가는 결코 국민경제 전체를 살찌운 것이 아니었다. 예시적으로 사회주의적 민족주의노선의 낫세르하인 1960년~70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배 증가했으나 이후 사다트, 무바라크를 잇는 70년~2000년 1인당 국민소득은 거의 제로상태라고 한다. 이어 1991년이후 지금껏 314여개 국영기업 중 150개를 사유화(다수를 서방에 팔아먹은) 할 정도로 일방적인 신자유주의를 펴면서 경제가 파탄지경이다. 특히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후 세계경제 불황속에서 미국의 양적완화정책, 저금리기조는 전세계적으로 제삼세계 국가들에 물가압력(인플레이션)으로 전가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수요의 폭증에다 국제투기세력에 의한 곡물 및 석유 투기까지 겹치면서, 이집트에서도 빈곤과 물가상승, 실업난등 생활고가 극심해졌다. 현재 이집트 시위는 이런 정치경제적 맥락하에서 발발했다.
현재의 시위는 ①애초에 두 명의 빈민노점상의 분신항의에서 촉발했듯이 사회경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 ②그러면서 국영기업을 주축으로 한 '국가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이 나라에서는 정치엘리트=경제엘리트(소위 state business elite)인지라, 무바라크등 소수 정치엘리트에 대한 공격과 경제적인 요구의 양자가 구분되기 어렵다는 점이 특징이다(예를 들어 이 국가는 군부가 방산업체 대부분을 경영하는 식이다). 토니 블레어, 오바마등이 그래서 이집트사태 해결에 '경제개혁'이 중요한 과제라고 이미 말했었다." - 권영숙, 1월 31일
이집트 시위의 성격과 전망(링크)

이집트 인민의 봉기가 남의 일이 아닌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뉴욕의 점령하라 운동이 월스트리트에 맞서 싸우는 것, 유럽의 분노하라 시위대가 정부와 탐욕적 자본에 맞서 싸우는 것, 이집트의 인민이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것 모두 99% 인민의 삶을 파괴하고 소수 1%의 이익만 늘려주는 이 체제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혁명이 귀환하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무능력하고 자신감 없는 급진적 정치세력의 외소한 모습이 너무나 아쉬운 때입니다.

이집트 인민에게 승리의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11월 22일 타흐리르 광장 인근의 시위대. [the Atlantic/AFP/Getty Images/Mahmud Hams]

※ 아래 링크에서 더 많은 이집트 저항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간혹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인한 잔인한 사진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the Atlantic] 이집트의 끝나지 않은 혁명(링크)
● [boston.com] 이집트, 새로운 저항이 폭발하다(링크)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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