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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0 23:53

스티커를 붙이는 시민, 떼는 시민 쟁점2016.11.20 23:53


11월 1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밝혀진 촛불의 하나. 시민들은 스스럼 없이 노동조합이 준비한 촛불시위 용품을 자신의 의사표현에 사용했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 준비한 촛불을 든 시민. 
[사진 自由魂]

박근혜 퇴진을 위한 4차 범국민 행동이 11월 19일 있었다. 시위대의 평화시위와 질서 집착에 대한 비판이 이미 나오고 있던 상황에서 경찰버스에 붙인 항의 스티커를 제거한 일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하필이면 이날 전인권은 무대에 나와 애국가를 불렀다. 몇몇 젊은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나왔고, 어떤 노인은 연사에게 '박근혜 퇴진' 외에 다른 얘기들, 이를테면 '사드'라든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같은 얘기는 하지 말라고 소리지르기도 했다.

아마 여기가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 도착한 자리일 것이다. 가퐁 신부가 차르의 초상을 앞세우고 차르를 찬양하며 행진했던 1905년 러시아 피의 일요일을 떠올리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로부터 12년 후에야 러시아에서 혁명으로 차르를 쫓아냈음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도 그랬다. 1788년 루이16세는 명사회 소집과 연이어 삼부회 소집을 허용하면서 그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렸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반란을 일으켜온 특권계급의 공격 아래 '절대왕정'의 권위는 이미 그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16세는 혁명 프랑스에서 1791년까지 국가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앉아 있었다. 1792년 그가 기요틴 아래 목이 잘리기까지는 '귀족의 음모'에 대한 공포와 '외국의 침략'이라는 현실이 반복됐다. 결정적으로는 그 스스로 국가원수의 자리를 포기함으로써 혁명 프랑스에 동의하지 않음을 밝힌 루이16세와 가족의 '도주'라는 사건이 있어야만 했다.

어쩌면 부르주아 시민사회에서 우리는 더 복잡한 길을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문재인이 '명예' 운운했지만 박근혜에게 그 비슷한 것이 조금이라도 남았는지는 의문이다. 이미 비난과 분노의 대상을 거쳐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그에게 더 무슨 권위가 있겠는가. 우리가 싸워야할 권위는 시민사회 그 자체일 것이다. 부르주아적 민주주의가 생활 원리로 주장되고 권위를 지니는 곳 말이다. 그러니까 의경이나 경찰을 시위대의 '가족'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인 것이 아니다. 경찰의 권위, 이른바 '질서의 수호자'라는 권위를 시민들이 끝내 그들에게 희망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희망은 박근혜와 최순실이라는 희대의 '비정상'에 의해 단지 현실에서 왜곡된 것일뿐이기에 그 원리 자체는 손상받지 않고 남아있게 된다.


경찰버스에 붙은 스티커를 제거해줌으로써 시위대의 선함을 강조하려는 참여자와 함께, 거리낌 없이 경찰버스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시민도 있었다. 11월 19일 세종로 정부청사 앞 경찰버스에 어떤 시민들은 스티커를 붙이고 또 다른 시민들은 그 앞에서 인증샷을 찍곤 했다.
[사진 自由魂]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현실로 작동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이 세계에 균열이 가지 않는 이상 이데올로기는 허상이 아닌 현실로 굳건히 작동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10월 24일 JTBC의 태블릿PC 보도 후 거듭된 사과와 아주 약간의 양보에도 사람들의 분노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는 더해만 갔고, 10월 29일 첫 주말 촛불시위 때 1만여 명의 시위대는 3주 만에 100만 명으로 불어났다. 시위대의 수가 늘어난 것만도 아니다. '하야'라는 말도 조심스럽던 시위대는 '퇴진'이란 구호를 자연스럽게 외치게 됐고, 심지어 '하옥' '체포' '구속'과 같은 말까지 외치게 됐다.

2004년, 2008년과 비교해도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보통 시민'들에 의해 쫓겨나곤 했던 '깃발'과 '조끼'는 자연스럽게 시위대와 어울리고 있다. 노동조합 대열은 청소년들에게 환영받고, 이른바 시민들도 스스로 '깃발'을 만들어 들고 나온다. 집회의 기획자들은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에게 수십 만 인파 앞에서 자신들의 투쟁을 이야기할 기회를 줬다. 연사들은 세월호 사건에서 정부의 무능과 기만ㆍ배신을 비난했고 '사드'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문제점을 설파했다. '민중가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노래로 시작하는 '노동가요' 메들리를 공연했다. 애국가만 부른 무대가 아니었다는 것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애초 일부 '시민'이 스티커를 떼내기 전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경찰버스에 스티커를 붙인 더 많은 시민이 있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조금씩이지만 변화는 계속되고 세계의 균열은 커지고 있다. 좌파의 기회는 여기에 있고, 소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덧붙이는 말] 1789년 프랑스 혁명과 1905ㆍ1917년 러시아 혁명뿐 아니라 한국의 1919년 3ㆍ1운동 때도, 1945~1948년 해방정국, 1960년 4ㆍ19혁명, 1987년 6월항쟁 때 모두 반란에 나선 인민의 움직임은 혁명적 지식인의 예측을 쉽게 벗어나곤 했다. 이 지식인들의 계획에 비추자면 인민은 때론 게으르고, 때론 너무 순하며, 때론 너무 성급하다. 1919년 봄의 평화적인 만세 운동은 일제 통치기구에 대한 전면적인 물리적 공격으로 이어졌고, 1945년 여름 해방의 기쁨은 봉건지주와 미국 점령군에 대한 무장투쟁으로, 다시 1960년 학생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 또한 노동조합의 건설과 정부기구에 대한 습격으로 이어지곤 했다. 1987년의 뜨겁던 여름은 창원ㆍ울산 등 전국에서 노동자투쟁의 뜨거운 가을로 바통을 넘겨줬다. 그러니까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최선"이라 함은, 대중을 좌파의 뜻대로 움직이게 될 그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이 품은 힘을 급격히 발산하게 될 그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현재의 투쟁에서 배워야 한다. 대중의 관념과 행동양식을 어떻게 급진적 변화의 힘에 맞닿게 할지 바로 지금 대중에게서 훈련받아야 한다.


10월 29일 첫 촛불시위는 3주 후의 시위에 비하면 많은 수가 참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대통령의 첫 번째 사과로 갈피를 못잡던 경찰은 손쉽게 이순신장군상 앞 저지선을 뚫리고 세종대왕상 앞까지 밀렸다. 좌파는 길을 열어가고 있고 마침 더 큰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사진 自由魂]

Posted by 때때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에 좌절한 것은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 페미니스트들 만은 아니다. 사실 우파들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얌체공 같은 인물을 두려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절망과 공포는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긴 하다.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한 후 한국 언론은 트럼프가 얼마나 혐오스러운 인물인지 전하는 데만 힘을 써왔다. 뉴욕타임즈와 CNN의 받아쓰기가 한국 언론 외신보도의 전부임을 고려하면 이는 미국 언론의 대선 보도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전하긴 하지만 시종일관 그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책임 있는 대통령에 어울리는 사람으로만 그려졌지 그와 그의 민주당이 해온 일에 대해선 시종 침묵했다. 샌더스가 물러난 뒤로는 계속해서 말이다.

그런데 한국 교육부 고위 관료가 생각하듯 인민은 개ㆍ돼지가 아니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듯 미국의 인민 다수가 팝콘을 씹으며 수퍼보울에만 열광하는 얼간이들도 아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후 그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져가는 걸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고, 자신의 자식들이 맥도날드와 월마트에서 저임금 노동에 종사해야만 한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만든 첨단 무기들이 동유럽과 중동의 인민을 학살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가난한 동네의 공립학교가 축소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다.

남편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에서, 아들 부시의 공화당 정부에서도, 다시 오바마 정부에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2011년 미국의 청년과 노동자들이 월스트리트 권력에 맞서 오큐파이 운동을 벌였을 때 클린턴은 월스트리트의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해 말과 다음해 초, 오바마 정부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직접 지휘해 전국적인 오큐파이 운동을 진압해 말살했다. 2012년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의 파업은, '오바마의 남자'라고 불리던 람 이매뉴얼 시장의 시장주의 '교육개혁'에 맞서 일어난 것이다. 흑인 오바마 정부 하에서도 경찰의 흑인 살해는 끝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는 감동적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함께 부르긴 했지만 연방정부의 권력을 이용해 주 경찰들의 전횡을 막진 않았다. 오큐파이 운동 진압 때와는 달리 말이다.

클린턴은 여성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정치 시스템의 정통 후계자로 여겨진 것이다. 실제 투표 결과를 봐도 올해 트럼프가 받은 표는 2012년 공화당 후보 롬니가 받은 표보다 적다. 문제는 클린턴이 받은 표가 2012년의 오바마가 받은 표보다 크게 준 것이다
(그래프 ①). 출구조사를 보면 특히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에서 지지가 급격히 줄었다. 그럼에도 이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의 가난한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민주당 후보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난다(그래프 ②). 결국 트럼프 승리의 의미는 더 많은 수의 가난한 백인 노동계급이 백인 남성에게 표를 던진 게 아니라, 지난 8년간 클린턴도 중요한 일원으로 참여해온 오바마 정부에 실망한 가난한 인민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거뒀다는 것이다.

그래프 ① 미국 대통령 선거 득표수 변화


그래프 ② 소득별 지지율 변화(출구조사)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한국 우파들의 미 대선 결과에 대한 우려를 살펴봐야 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한ㆍ미FTA를 무효화 시킬까 두려워한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남한을 군사적 보호에서 제외할 것을 염려한다. 그들은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전환할 것에 골치아파 하고 있다. 왜냐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지지하며 중동과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대결정책을 강경하게 밀고나가는 매파인, 미국 정치 시스템의 적자로서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다면, 아무런 걱정 없이 '이대로'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라고 해서 지금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는 무엇보다도 미국 기업 시스템의 적자이다. 그의 기회주의적 과거를 되돌아보면 레토릭과 달리 신자유주의적 경제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미국의 군사주의적 도전은 변치 않을 것이다. 부시도 해외 개입의 축소, 고립주의를 외치며 당선됐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해온 일의 부메랑에 맞은 뒤 군사주의적 개입을 더 적극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한편 자신의 가족과 국내외 친구들의 기업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문제는 클린턴이냐 트럼프냐가 아니다. 트럼프 같은 쓰레기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다. 무릇 정치는 두 개의 머리를 지니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얼마 전까지 샌더스 열풍을 목도했다. 올해 시카고 교사 노동자들은 다시 파업에 나섰으며 버라이존과 월마트 같은 새로운 부문의 노동자운동 성장도 계속되고 있다. 희망은 워싱톤이 아니라 도시의 거리에서, 사무실ㆍ학교, 공장에서 자라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모든 악의 근원이 최순실로, 그리고 박근혜로 모아지고 있다. 대기업들도 공범이라는 목소리가 크지만 민주당이나 야당도 공범이라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에서 계속해서 시장의 권력은 커져갔으며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악화돼 갔음을.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것을 가속화시켰을 따름이다. 우리는 눈 앞의 적에 집중해야 하지만 12일 거리로 나오겠다는 민주당과 국민의당도 결코 우리 편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 우리는 다시 박근혜와 같은, 미국의 트럼프보다 더 한 인물이 한국의 권력을 잡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Posted by 때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