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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패스모어'에 해당되는 글 1

  1. 2011.03.19 파시즘(케빈 패스모어 지음|강유원 옮김) 옮긴이의 말

'파시즘'으로 교보문고에서 검색하면 국내도서에 47권의 책이 나옵니다. 그리 쉽지 않음에도 꽤 많은 책이 이 주제로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들 중 '파시즘'에 대한 명료한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이 얼마나 될지는 의심 스럽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세력의 독재정권을 '파시즘'이라고 불러왔던 경험이 있습니다. 때론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 수식어로 '파시즘(파쇼)'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민주화된 이후 우리는 '우리 안의 파 시즘' '일상 속의 파시즘'이라는 개념에 익숙해 왔습니다. '디워' '황우석' 등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우리는 대 중의 집단적 쏠림 현상에 대해서도 '파시즘'적 징후라 이름 붙이곤 했죠. 어찌 보면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이 '파시즘'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듯 합니다.

근대 세계에서 최악의 비극을 불러왔던 '파시즘'을 파악하고 미래의 전망을 도출하는 데 이러한 인식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파시즘'이란 그 모든 것에 이름 붙일 수 있는 만큼 그 어떤 것도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파시즘에 대한 이해를 위한 출발로 케빈 패스모어의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몇몇 과대망상증 환자에게 책임을 묻지도, 불필요하게 모든 것에 파시즘이란 딱지를 붙이지도 않습니다. 파시즘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원하시는 분께 그 출발로 이 책, 케빈 패스모어의 '파시즘'을 권합니다.

※ 아래 이 책을 옮김 강유원의 서문을 붙입니다.



파시즘은 수수께끼 같은 면모를 띠고 있다.
그 안에는 가장 균형 잡힌 내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위주의를 주장하면서도 반란을 조직한다.
그것은 당대의 민주주의와 싸우는 한편으로 과거의 지배의 회복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강력한 국가의 용광로인 척하지만 파괴적인 분파나 비밀결사처럼 국가의 해체에 아주 도움이 되는 수단들을 이용한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거쳐 파시즘에 접근하든 그것은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반대되는 것,
다시 말해 A이면서도 A가 아닌 것임을 알게 된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파시즘에 대하여』(1927)


파시즘(케빈 패스모어 지음|강유원 옮김) 옮긴이의 말

근대세계의 여러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치가 삶의 모든 영역을 규율한다는 것인데, 이때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세력들은 그들 나름의 규율원리를 정립하여 서로 각축을 벌이거니와, 우리는 이 원리들을 '주의ism'라 부르기도 한다. 얼핏 보기에는 파시즘도 이러한 원리들 가운데 하나일 듯하나 그것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의 정체성이 모호하고 그에 따라 내세우는 주장을 종잡을 수 없어서 그 만큼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린다. 파시스트 체제를 경험하고 제법 오랫동안 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온 서구의 상황이 이러한 데다 한국의 처지는 더 말할 나위도 없으므로 지금은 뚜렷한 개념 정의와 간명한 역사적 통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주지하듯이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관철된 정치체제는 일인 또는 소수의 지배자 집단과 다수의 피지배자(이들은 체제의 적극적 구성원이 아닌 그저 숫자로만 처리되었다)로 구성된 것이었다. 지배자와 그를 둘러싼 지배집단은 서로 힘을 합해 지배력 행사의 구체적 수단인 폭력을 제도적으로 독점하고 정치적 권위를 정당화하는 근거인 과거와 미래를 배타적으로 장악했다. 이러한 독점과 장악에서 주요하고도 뚜렷한 구실을 한 것은 우리가 종교라 부르는 신념체계들이다. 이집트의 종교, 희랍의 올림포스 신들, 메소포타미아의 다신교 신앙, 페르시아의 배화교拜火敎, 인도의 고대 신앙, 중국의 천天, 시베리아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샤먼, 남아메리카의 태양신 숭배 등을 떠올리면 우리는 곧바로 '제정일치祭政一致'가 인류의 오랜 전습傳習임을 알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그 역할도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으로 불리는 보편종교의 역할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서구 근대세계는 '근대화' 과정(이 과정은 종교가 더는 삶의 희망이 아니라 고통과 비극의 원천임을 징그럽게 보여준 30년 전쟁, 반종교[기독교]주의에서 시작된 계몽주의, 지상과 천국을 수학적으로 통일하려 한 과학혁명, 욕망을 부추기는 삶의 극대화인 자본주의의 등장 등을 포괄한다)을 거치면서, '제'를 떼어내고 '정'으로써만 세계 지배의 핵심을 삼았으며, '제'가 제거된 곳에는 오늘날 우리가 '이데올로기'라 부르는 이념체계가 들어섰거니와, '자유주의liberalism' '보수주의conservatism'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의communism' 등이 그것에 해당한다('민주주의democracy'는 이념체계라기보다는 이념이 작동하는 방식이며, 이를 인식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의의 출발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ism'이 아니라 'cracy'임을 주목하라).

그렇다면 파시즘fascism은 앞서 거론한 '이즘'들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근본원리를 가지고서 그것들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수행했는가?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해 '예'와 '아니오'를 동시에 말할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근본원리에 대해서는 '글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듯하며, 역할에 관해서는 '아주 그렇다'는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의 신념체계, 보편종교가 설립시킨 교설, 근대의 이데올로기 모두는 출발점으로 삼는 단 하나의 원리가 있다. 이를테면 세계의 창조주는 야훼 하느님이라든가, 광명의 신 아후라마즈다가 악의 신 아흐리만을 타도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든가, 세계 속의 모든 인간은 자신의 신체의 주인이라든가, 모든 인류는 인간이 인간 아닌 것으로 취급되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파시즘은 이러한 원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어떤 것을 긍정하는가 하면 동시에 그와 정반대되는 것을 긍정하여 두 개를 동시에 세운다.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표어인 '민족사회주의'에만 해도 특정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와 노동자를 중심에 둔 사회주의가 뒤엉켜 있다. 심하게 말해 파시즘은 그때그때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거의 즉흥적으로 가져다가 이리저리 짜 맞추면서 형성된, 그래서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항상 변화하는 역동적인 이데올로기거니와, 바로 이것이 파시즘을 명료하게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된 요소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런 잡탕 덩어리가 전간기戰間期 서구에서 아주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지배층, 지배기구의 구성원, 피지배집단(이들의 참여를 감안하면 '피지배'라는 말을 붙이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긴 하다. 그런 점에서 파시즘을 규정할 때에는 치밀하고 적극적인 대중동원과 열광적이고 긍정적인 대중참여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며, 이는 파시즘이 참여 민주주의적으로 작동했다는 판단도 가능케 한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이념체계 실현에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바쳤던 것이다. 이러한 실행과정 역시 명료한 파악을 저해하면서 동시에 파시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밀고 나간 인간 군상의 심성구조 이해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는 요소다.

한국에서 파시즘 논의는 서구의 파시즘 논의가 가진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한국적 수용과정에서 생겨난 난점들까지 더해져 그 혼란이 더없이 크다. 군사독재에 대해서도, 파편화된 대중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취향을 강요하는 짓에 대해서도, 심지어 일상에서 벌어지는 억압적 행태에 대해서도 파시즘이라는 표찰을 붙여왔다. 아예 파악해보려는 생각을 접는 것이 파시즘을 파악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인 듯하다. 사실 뭐라 이름붙이건 그런 사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만 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사람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그릇된 이름붙이기는 불명료한 사태파악에서 비롯된 것이고, 불명료한 사태파악은 부적절한 처방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최소한의 준거틀이라도 마련해두는 것이 공부하는 이의 현명한 태도겠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펴내는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이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파시즘의 기본개념, 그것의 다양한 변(형)태들, 앞으로의 전망 등에 관한 간명한 식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완전에 근접한 대안의 바탕으로 기여할 것이다. 현실은 이론을 거부하니 이론적 활동이 부질없어 보인다 해도 우리는 이를 포기할 수 없다. 이성적 사유를 포기하는 순간이 곧 파시스트적 열정에 몸을 맡기는 시점始點이다.

2007년 11월
강유원 적음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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