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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무르시 대통령의 새 헌법에 반대해 다시 타흐리르 광장으로 모여든 이집트 인민. [사진=RoarMag.org]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후 휴전을 성공적으로 중재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미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쓸모를 인정받은 무르시는 국내 정책에도 과감한 전환을 시작했다.

'파라오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새 헌법은 무슬림형제단이 장악하고 있는 제헌의회와 상원(슈라위원회), 무르시 대통령에게 견제받지 않는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2011년의 혁명적 열정이 충분히 식었다고 판단한 데서 비롯한 반혁명 시도일 것이다. 1979년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난 몇 주간 타흐리르 광장에서 보여준 이집트 인민의 용기는 혁명이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의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 물론 아직 어느 한쪽도 승리하진 못했다. 오랫동안 이집트의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뿌리내려온 무슬림형제단은 설탕과 빵, 고기를 미끼로 빈민을 반혁명의 도구로 동원하고 있다. 군대의 움직임도 여전히 큰 변수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끝나지 않는 혁명'이라고 표현한 이집트 혁명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진 않을 것이다. 나딤 페타이가 RoarMag.org에 기고한 아래 글은 이집트 혁명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 아래 글은 제가 읽기 위해 한글로 옮긴 것으로, 상당히 많은 의역과 오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링크한 원문을 참조하세요.


[RoarMag.org] 타흐리르, 파라오의 시작과 끝
2012년 12월 3일 나딤 페타이링크

이집트의 혁명가들이 타흐리르로 돌아왔다. 그들은 이번에야 말로 그들이 시작한 것, 파라오를 무릎 꿇리고 진짜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것을 끝내려 한다.

1970년 사다트가 권력을 잡았을 때 정치적 자유의 성장 속에서 불법 단체였던 무슬림형제단은 정치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그들의 관점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결과에 상관없이 그들의 이슬람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킬 수 있었고, 정부의 간섭 없이 아이들에게 [그들의 사상을] 주입할 수 있었고, 이집트의 가장 가난한 지역의 풀뿌리 조직에 퍼져나갈 수 있었다.

이로부터 40년이 지났다. 따라서 한 세대 이상 폭력적인 체제에서 유일한 야당이었다는 것, 무바라크 타도를 계기로 대의민주주의를 시행하게 됐을 때 의회와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유일한 진짜 정당이었음은 분명하다.

2011년 1월 25일 혁명이 시작된 초기에 무슬림형제단은 저항에 동참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며 혁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운동이 승리 없이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인민의 편에 섰다. 모스크의 이맘(이슬람 성직자)들은 거리에서 충돌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각의 기도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어떤 흠결도 없는 아름다운 얘기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도덕적인 어떤 것이 아닌 정치적 결정이었다. 2011년 2월 11일 무바라크의 퇴진은 이집트 사람들이 본적 없는 빈 공간을 열어젖혔다. 무슬림형제단이 사태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2012년 여름 이집트에서 첫 민주적 선거가 치러졌을 때 선택지는 서구의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이었다: 바로 차악을 선택하는 것. 그렇다. 구체제의 대리인인 아메드 샤피크와 무슬림형제단의 회원인 모하메드 무르시가 선택지였던 것이다. 구체제를 충분히 경험한 사람들은 무르시에게 투표했다. 그리고 그가 60년 만에 권력에 선출된 첫 대통령이 됐다.

이것이 이집트에서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믿음, 서구의 모든 이들이 듣고있는 이야기다. "혁명은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것이 민주주의고 이것이 이집트 인민들이 싸워서 얻어내려고 했던 것이다고 말이다. 그러나 혁명의 무대 뒷편에서 진정한 선택권의 부족함에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선거를 거부한 많은 인민들은 계속되는 국가 탄압과 이슬람 정당이 요구하는 행정부로의 권력 집중에 맞선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또한 이집트 혁명은 국제적 압력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예를들어 국제통화기금(IMF)은 누가 권력을 잡든지 상관 없이 이집트의 경제 재건을 돕기 위한 수십억 달러의 원조를 약속하고, 긴급한 자금 지원에 대한 댓가로 극적인 신자유주의적 자유 시장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해마다 12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오바마의 약속과 짝을 이룬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을 보여준다: 무슬림형제단은 무바라크 체제와 그의 전임자들이 해왔던 것과 같은 세계적 군사력을 위한 또다른 애완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집트의 지정학, 크기, 아랍 세계의 다른 부분에 대한 문화적 중요성은 서구ㆍ이스라엘과의 동맹을 중요하게 한다. 그렇기에 언론은 무르시를 그들의 동맹을 위한 이집트의 영웅으로 추켜세운다. 그들은 무르시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휴전협상을 이끌어낸 사람이라고 찬양한다. 바로 그들이 사다트에게 대했던 것 처럼 국제사회는 무르시가 독재자가 아닌 책임감 있는 실용주의자이자 믿을만한 대화 상대라고 믿는다.

그런데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휴전을 발표한 며칠 후 바로 무르시는 이집트 인민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 충격을 준 법령을 공표한다.


새 법령의 진실
자료:알자지라
-대통령은 국가기관의 정화를 목표로 한 법령을 말한다.
-새 법에 의하면 4년 간 대통령이 검사를 임명할 수 있다.
-무르시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법도 제정할 수 있는 권력을 그 자신에게 부여했다.
-무르시의 법령은 사실상 현직 검찰청장을 파면할 수 있게 한다. 이는 어떤 권한으로도 대통령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무르시는 시위대 살해와 관련한 재판의 재심을 명령했다.
-무르시의 법령은 새로운 의회 선거 때까지 그의 권력을 유지한다.
-의회는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선출될 수 없다.
-무르시는 또한 새로운 헌법의 제안을 위한 기간을 늘렸다.
-무르시는 그 자신이 혁명을 수호하는 절대 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법령은 무르시의 절대 권력만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상원[슈라위원회]이 (새 헌법 제정을 담당한) 제헌의회와 마찬가지로 [사법부에 의해] 해산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한다. [상원과 제헌의회] 둘 모두 동시에 무슬림형제단 대표자 다수에 의해 조정된다. 두 집단에서 몇몇은 저항에 참여하긴 하지만 그 과정을 중단시키진 못할 것이다.

지난 몇달 동안 새로운 법과 헌법의 일부에 의해 여성 권리가 억압받았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이집트가 이슬람 국가로 변화하면서 두려움은 현실이 되고 있다. 많은 혁명가들이 인민의 혁명을 도둑맞았다는 의식이 확산되길 기대하며 몇 달동안 거리를 점거한 덕에 무르시는 점차 정당성을 잃어갔다.

몇몇 자경단은 여성에게 (언어와 육체적인) 공격을 가하는 폭력배를 찾기 위해 카이로 도심을 수색하고 있다. 여성이 안전해질 때까지 스스로를 폭력배와 여성 사이에 서있겠다는 그들의 태도는 평화적인 데서부터 더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거리에서 여성을 학대한 남성의 눈에 페인트를 뿌리는 한 자경단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르시가 새 법률을 밝히자 마자 많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충돌하기 시작했고 다시 한 번 분노한 사람들이 모여 악명 높은 타흐리르 광장에 횃불이 밝혔다. 상황은 무르시 얼굴의 절반은 무바라크의 얼굴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함마드 무르시 무바라크". 그리고 그 안에 무슬림형제단의 실수가 있다: 그들은 대중의 혁명적 정신이 차갑게 가라앉을 만큼 충분히 기다렸다고 믿었다. 그들은 확실히 틀렸다.

지난 1년 반동안 이집트 사회는 전례 없는 정치적 자각 수준을 성취했다. 특히 무바라크 퇴진투쟁의 맨 선두에서 싸웠고 봉기에서 친구와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 혁명가들 자신의 혁명적 정서는 특별히 강했다. 그래서 더욱 평범한 이집트 사람들이 무르시의 법률을 알게 됐을 때 그들은 자신의 투쟁이 소용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기보다 타흐리르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다른 점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인민은 분열돼 있다. 무르시 지지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에 거대한 규모의 - 지금에서야 나타나기 시작한 - 종파간 분열이 성장했다. 한쪽에는 자유주의자, 좌파, 판사, 청년, 지식인, 혁명가들이 있다. 다른쪽에는 무슬림형제단 회원ㆍ동조자들과 설탕ㆍ빵 또는 (드물게) 고기에 매수당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 18일간의 타흐리르 광장 점거 기간에 낙타를 타고 공격한 그 날 동원됐던 같은 사람들 - 이 있다.

거리는 다시 한 번 작은 전쟁터가 됐다. 경찰은 최루탄을 뿌리고, 무슬림형제단 민병대는 평화적인 반정부 인사들을 공격하고, 혁명가들은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안절부절 하면서 기다리던 군대가 제자리를 지키는 동안에 일어났다. 바로 혁명의 시작인 이러한 일들은 어느 방향으로든 저울의 균형추를 움직일 것이다. 만약 군대가 반정부 인사들의 편에 선다면 무르시가 오랫동안 인민의 반대편에 서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의 파라오법은 그것이 제기됐던 만큼 빠르게 종말을 고할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군대가 무슬림형제단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다면 내전이 벌어질 것이다.

2011년 11월 뉴욕타임스는 이집트 혁명은 끝나지 않는 혁명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 시간, 그것은 진실이 됐다: 군사 최고위원회(SCAF)는 "과도정부" 형태로 권력을 잡았다. 이 기간 내내 시민에 대한 군사재판이 실시됐고 이집트 인민들은 단지 다른 사람들을 만나 하나의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체제에 맞서기 위해 단순히 투쟁한 것 같았다. 체제 스스로 무너지진 않았다. 단지 얼굴이 바뀌었을 뿐이다. 무바라크로부터 SCAF로, 다시 무함마드 무르시로.

현재 우리는 느리고 고통스럽게 태어나고 있는 끝나지 않는 혁명의 마지막 무대를 목격하고 있다. 현실에서 대의민주주의적 과정에 포함된 내재적 오류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이집트 인민이 더 많은 무언가를 요구하며 봉기하는 게 가능할까? 세계 모든 곳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봉기를 고무한 후 거의 2년이 된 이집트 사람들이 바리케이트로 되돌아와 그들 스스로 그와 같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할 수 있을까?

이집트 군대의 [앞으로의] 결정을 포함한 이러한 질문들에는 단지 시간 만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답변이 무엇이든 이 혁명이 시작된 후 거의 2년 지난 지금 그 끝이 가까워졌다. 끝나지 않는 혁명은 더이상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 혁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말이다. 따라서 지금의 사태들은 2011년처럼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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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가 진압군이 발사한 최루탄을 들어 던지고 있다. [the Atlantic/Reuters/Amr Abdallah Dalsh]

오늘(28일)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 독재가 종식된 후 첫 선거가 열립니다. 하원 498명, 상원 390명의 의원을 뽑는 내년 3월까지 진행될 기나긴 선거의 시작입니다. 민주주의의 쟁취를 기뻐하고 그 권리를 향유해야 할 이집트 인민에게 오늘의 선거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군부독재의 종료와 민주적 정권 이양을 요구하며 18일 시작된 저항이 열흘 넘게 이어지며 40여 명의 사망자 등 수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기 때문이죠.

최고군사위원회(SCAF)가 장악한 정권은 민주적 권리 확대에 있어서 불철저할 뿐 아니라 되레 무바라크 독재 종식을 위해 거리로 나섰던 청년과 노동자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해 민주세력을 탄압했죠. 엠네스티에 의하면 1만2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군사법정에서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중 적어도 13명은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필립 루더 엠네스티 중동ㆍ북아프리카 실행감독은 무바라크의 억압적인 체제를 이어가고 있는 최고군사위원회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평화적 저항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수천명의 시민을 군사재판에 회부함으로써 평화적 저항을 분쇄하고 무바라크 비상법의 영향(소관)을 확대해왔다. 최고군사위원회는 1월 25일 시위대가 끝장내기 위해 싸워왔던 억압적인 지배를 계속하고 있다." - 필립 루더 엠네스티 중동ㆍ북아프리카 지역 실행감독
● [엠네스티] 이집트: 군부독재가 1월 25일 저항의 희망을 깨뜨리다(링크)

"사회 긴장이 고조되자 정부는 깡패와 군사 법원을 동원해 시위 참가자와 파업 노동자 들을 공격했다. 노동자들은 법원의 사유화 철회 결정을 환영하며 사유화된 기업들의 재국유화를 바랐지만, 정부는 이 염원을 철저히 무시했다. 또, 정부는 옛 무바라크 정당 인사들의 선거 참가 금지를 명한 법원 결정을 무시했다. 현 이집트 정부는 자신이 무바라크 정권과 연속선상에 있음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 11월 20일 이집트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성명서
● [레프트21] "군사독재 물러나라, 무바라크 통치 종식하라!"(링크)

이집트 인민의 불만은 지난 몇 개월간 차곡차곡 쌓여왔습니다. 민주주의적 권리는 확대되지 못했으며 경제적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의 기본권은 부정당했습니다. 10월 9일에는 군부가 콥트교도를 공격해 28명이 학살당하기도 했죠.

내년 3월까지 여러 단계에 걸친 복잡한 선거계획도 군부정권의 민주화 이행 의지에 대한 의심을 부추겼습니다. 오늘(28일) 열리는 하원선거도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하는 게 아닙니다. 28일, 29일 이틀에 걸친 첫 선거는 9개 주 240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됩니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6번의 선거를 치뤄야 1단계가 끝나죠. 군부는 대통령 선거 등 정권의 민간이양에 관한 정확한 일정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기도 하죠.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11월 초 발표한 군부의 '신(新)헌법 기본원칙'입니다. 그들이 제시한 기본원칙은 민간정부가 군부를 통제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죠.

● [뉴시스] 이집트, 혼란 속에 하원 선거 실시(링크)
이집트 인민은 왜 다시 거리로 나섰나?(링크)


11월 20일 부상당한 시위대 한 명이 타흐리르 광장 인근 병원에서 진압군에 의해 사용된 탄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boston.com/Reuters/Amr Abdallah Dalsh]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 진압을 위해 사용된 최루탄. 'Made in U.S.A.'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the Atlantic/AP]

이집트 인민은 군부의 잔혹한 시위진압으로 더 큰 분노에 휩쌓이고 있습니다. 특히 진압군이 사용하는 고무총탄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죠. 시위대에 의하면 훈련된 저격수가 시위 참가자의 '눈'을 목표로 저격한다고 합니다.

아흐메드 하라라는 1월 29일 무바라크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한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그는 그날의 싸움을 기억하기 위해 실명한 눈을 가린 안대에 그 날짜를 적어놨었죠. 하라라는 11월 20일 다시 시위에서 다른 쪽 눈도 잃었습니다. 그는 "이날 오후 3시쯤 타흐리르 광장에 나갔는데 7~10m 거리에서 진압군이 쏜 고무탄환에 눈을 맞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집트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사메 나기브에 의하면 '11월 20일'이 적힌 새로운 안대를 한 하라라는 여전히 시위대와 함께 저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잔혹한 진압군 저격수는 시위대에게 '아이 헌터(eye hunter)'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물론 군부는 고무총탄의 사용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최고군사위원회가 임명한 만수르 알에사위 내무장관은 "진압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은 물론 고무탄ㆍ새총 등을 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려면 손발이라도 맞아야죠. 히샴 시하 보건부 대변인은 "지난주 시위사태에서 실탄ㆍ고무탄ㆍ새총에 의해 최소 41명이 사망하고 3250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죠.

● [레프트21] 정권에 맞선 이집트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다(링크)
● [조선일보] 이집트 시위대 "아이 헌터 처형하라"(링크)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은 11월 25일 뉴욕 이집트 영사관을 방문해 군부정권의 폭력적 시위 진압에 항의했다. 이들은 미국산 최루탄이 이집트 군부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며 12월 1일에는 펜실배니아 제임스타운의 군수공장으로 항의 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occupywallst.org]

이집트 군부의 폭력적 진압에 항의하는 국제적인 연대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는 미국이 만든 최루가스와 무기가 이집트 인민에게 사용되고 있다며 이 무기의 생산과 수출을 중단시켜달라며 연대를 호소했었습니다. 군부독재를 대변하는 이집트 대사관과 이집트 군사정권과 거래를 하는 자국 정부에게 항의해달라고도 요청했죠.

이에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Occupy Wall Street) 참가자 수백명은 11월 25일 뉴욕의 이집트 영사관으로 항의행진을 진행했습니다. 12월 1일에는 이집트 군부독재 정권에 최루가스를 공급하는 펜실배니아 제임스타운의 공장으로 항의 행진을 할 계획입니다.

이집트 인민에 대한 연대의 행동은 한국에서도 있었습니다. 시민ㆍ사회단체 회원 50여 명은 11월 25일 이집트 대사관 앞에 모여 군부정권의 폭력적 시위진압에 항의했습니다.

● [occupywallst.org] 이집트 인민의 연대 요청에 답하다(링크)


오늘 시작된 이집트 총선의 최대 수혜자는 군부가 될 듯 합니다. 가장 많은 지지를 얻어온 무슬림형제단은 자칫 자신들이 '다수파'가 될 이번 총선이 무산될까 전전긍긍하며 18일 시작된 저항에 불참하고 있죠. 그들의 이러한 착각은 정권을 민간정부가 가져온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군부의 손을 들어줄 뿐입니다. 이는 제국주의에 대한 급진적 저항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어온 이들이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향한 대중의 행동에 얼마나 큰 해악을 미치는지 입증해주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종교적 반제국주의가 아닌 세속적 대안정치세력의 성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집트는 앞으로 더 큰 변화의 혼란에 휩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때론 이란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퇴행적 정치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세속적 대안정치의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이번 이집트 혁명이 단순히 법적인 '민주주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겁니다. 아랍의 봄이 시작된 것은 튀니지에서 노점단속을 당한 한 청년의 분신 때문이었습니다. 이집트 또한 최근 고통스러운 경제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특히 무바라크 정권의 공기업 사유화 정책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수년 전부터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행동이 성장하면서 이번 혁명의 배경을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정치가 더 나은 삶을 위한 다수의 참여로 만들어질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아랍봉쇄에 협조한 댓가로 이집트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받은] 경제원조의 댓가는 결코 국민경제 전체를 살찌운 것이 아니었다. 예시적으로 사회주의적 민족주의노선의 낫세르하인 1960년~70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배 증가했으나 이후 사다트, 무바라크를 잇는 70년~2000년 1인당 국민소득은 거의 제로상태라고 한다. 이어 1991년이후 지금껏 314여개 국영기업 중 150개를 사유화(다수를 서방에 팔아먹은) 할 정도로 일방적인 신자유주의를 펴면서 경제가 파탄지경이다. 특히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후 세계경제 불황속에서 미국의 양적완화정책, 저금리기조는 전세계적으로 제삼세계 국가들에 물가압력(인플레이션)으로 전가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수요의 폭증에다 국제투기세력에 의한 곡물 및 석유 투기까지 겹치면서, 이집트에서도 빈곤과 물가상승, 실업난등 생활고가 극심해졌다. 현재 이집트 시위는 이런 정치경제적 맥락하에서 발발했다.
현재의 시위는 ①애초에 두 명의 빈민노점상의 분신항의에서 촉발했듯이 사회경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점, ②그러면서 국영기업을 주축으로 한 '국가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이 나라에서는 정치엘리트=경제엘리트(소위 state business elite)인지라, 무바라크등 소수 정치엘리트에 대한 공격과 경제적인 요구의 양자가 구분되기 어렵다는 점이 특징이다(예를 들어 이 국가는 군부가 방산업체 대부분을 경영하는 식이다). 토니 블레어, 오바마등이 그래서 이집트사태 해결에 '경제개혁'이 중요한 과제라고 이미 말했었다." - 권영숙, 1월 31일
이집트 시위의 성격과 전망(링크)

이집트 인민의 봉기가 남의 일이 아닌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뉴욕의 점령하라 운동이 월스트리트에 맞서 싸우는 것, 유럽의 분노하라 시위대가 정부와 탐욕적 자본에 맞서 싸우는 것, 이집트의 인민이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것 모두 99% 인민의 삶을 파괴하고 소수 1%의 이익만 늘려주는 이 체제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혁명이 귀환하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무능력하고 자신감 없는 급진적 정치세력의 외소한 모습이 너무나 아쉬운 때입니다.

이집트 인민에게 승리의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11월 22일 타흐리르 광장 인근의 시위대. [the Atlantic/AFP/Getty Images/Mahmud Hams]

※ 아래 링크에서 더 많은 이집트 저항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간혹 경찰의 폭력적 진압으로 인한 잔인한 사진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the Atlantic] 이집트의 끝나지 않은 혁명(링크)
● [boston.com] 이집트, 새로운 저항이 폭발하다(링크)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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