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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밤 그리스 정부는 긴축정책을 위해 국영 방송국 ERT를 폐쇄하고 노동자를 정리해고 했다. 노동자는 바로 방송국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통제하에 제작된 방송을 송출했고 그리스 시민들은 노동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방송국 주변에서 연대 시위를 열었다. 'ERTaksim, SMARdogan(ERT는 곧 탁심 광장이고, 사마라스는 에르도안과 같다는 뜻)'이라는 구호로 탁심 광장의 터키 시위와 연대를 표했다. [사진 facebook europeans against the political system]


터키의 봄

이스탄불의 작은 공원 철거에 반대하며 시작된 시위는 곧 터키 전국의 주요 도시와 지역으로 확산됐다. 지난 10년간 터키 정의개발당(AKP) 에르도안 정부의 승승장구는 경제성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10년 간의 경험으로 터키 인민은 '경제성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파악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공원의 파괴를 보면서 가난한 노동자, 쿠르드인들은 지난 몇년 간 자신과 이웃의 집들이 파괴된 것을 떠올렸을 것이다. 국유재산과 공공 서비스를 팔아먹기에 정신이 팔린 에르도안 정부는 꽤 짧은 기간에 '도시 재생'이라는 명목으로 가난한 이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해 왔다. 게지 공원에서 철거될 위기에 놓인 나무는 가난한 노동자와 쿠르드인의 처지와 다를 게 없었다.

1950~60년대 자본주의 선진 국가의 황금기에는 가난한 이들에게 떡고물을 던져줄 수 있었지만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강력한 권위주의적 정부와 독재가 필요했듯이 다른 많은 나라들, 특히 터키도 그랬다. 그러나 인구의 99.8%가 이슬람 신자인 나라에서 군부는 세속주의 국가의 버팀목이었다. 이슬람 성향의 정의개발당 정부는 권위주의적 경제성장-신자유주의화를 위해 군부를 동원할 수 없었다. 그들이 기댄 것은 이슬람화였다. 술의 판매와 광고를 제한하고, 공공장소의 애정표현을 금지하는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기초한 권위주의적 조치들이 잇따라 시행됐다. 젊은이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했다. 이들은 게지 공원의 나무를 통해, 가난한 노동자ㆍ쿠르드인의 처지와 자신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 게 아닐까
(자유롭지 못한… 터키, 이슬람주의에 대한 반란?ㆍ링크).

5월 말 시작된 터키에서의 저항은 에르도안 정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인구의 다수가 이슬람 신자인데다가, 에르도안 정부가 이슬람주의적인, 하지만 근본주의적 색채와는 거리가 있는 교육 운동과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이 저항이 당장에 2012년 튀니지ㆍ이집트와 같은 봉기와 승리로 이어지긴 힘들어 보인다. 그러니 지금 터키에서의 투쟁은 민주주의의 훈련장으로서 새로운 민중의회 실험과 용기있는 개인들의 침묵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ROARMAG.org Assemblies emerging in Turkey: a lesson in democracyㆍ링크, 경향신문 KHross 말없이 일어서! 트위터에 나타난 #standingmanㆍ링크).


브라질, 월드컵보다 공공 서비스

터키에서의 반란이 고비를 넘기도 전에 브라질에서 또 다른 시위 소식이 들려왔다. 인구 900만 명의 상파울루 시정부가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발표하자 여기에 반발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대중교통 요금을 3.0헤알(1570원)에서 3.2헤알(1670원)으로 올리려 했다. 그 자체로 우리보다 비싼 대중교통 요금이지만 최저임금(2013년 기준 378헤알, 35만원)을 고려하면 더더욱 엄청난 것이다. 상파울루에서 수천 명이 시작한 시위는 곧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리아 등 브라질의 주요 도시로 확산됐다. 18일에는 전국에서 수백만 명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대한 불만은 곧 삶의 질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다(참세상 브라질, "월드컵 대신 공공 서비스를" 20만 명 시위ㆍ링크).

2003년 룰라가 대통령에서 당선되면서 시작된 노동당 정권 시대는 빈곤퇴치와 경제성장의 모범으로 꼽혔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유치는 지난 10여년 간 성공의 달콤한 열매가 될 것 같았다. 1인당 국민총소득(구매력평가지수 기준)은 2003년 7280달러에서 2011년 1만1420달러로 증가했다. 그러나 인민이 느끼기엔 여전히 부족했던 것 같다. 젊은 노동자들은 "우리는 월드컵이 필요 없다" "우리는 병원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독일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 단치 본핑 코스타 산투스는 "소수는 매우 부자지만 다른 이들은 아무 것도 없다"며 최근 시위를 지지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참세상 브라질 버스요금 반대 시위, 반정부 투쟁으로 확산ㆍ링크).

브라질 노동당 정부는 터키 정의개발당 정부보다는 유화적인 태도로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철회할 것을 내비쳤다. 그렇지만 역시 다수의 최루탄을 사용하고 기마경찰을 비롯한 폭동진압 경찰을 동원해 시위를 공격했다. 터키에서처럼 이 시위를 폭발시킨 것은 경찰의 잔인한 진압 때문이다. 특히 취재 중인 언론인에 대한 공격은 경악을 금치 못할 잔인한 행위였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에서의 경제성장은 민주주의의 확산이 아닌 권위주의적 지배의 강화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리스, 국영방송 폐쇄? 차라리 우리가 운영할 것

그렇기에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고향인 그리스에서 '민주주의'는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트로이카[유럽연합 EU, 유럽중앙은행 ECB, 국제통화기금 IMF]로부터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긴축정책 압박을 받고 있던 그리스 정부의 안토니스 사마라스 총리는 11일 밤 그 어떤 사전 예고도 없이 국영 방송국 ERT의 폐쇄와 노동자 2656명의 해고를 결정했다. 그리스 시민들은 12일 유럽에서 유일하게 국영 방송이 없는 아침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신민당의 지도자인 안토니스 사마라스는 연정을 구성한 다른 정당들과의 사전 논의도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과두지배 내에서도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ROARMAG.org What do Bosnia, Bulgaria and Brazil have in common?ㆍ링크).

해고된 2656명의 노동자는 그 즉시 방송국을 점거하고 노동자들의 통제하에 만들어진 방송을 인터넷 생중계로 송출하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은 정부의 공격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방송국 밖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아니 세계에서 유일하게 노동자들이 통제하는 방송국인 ERT의 한 스튜디오 창문에는 이런 글이 붙어있다.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ΤΗΝ ΕΠΑΝΑΣΤΑΣΗ ΔΕΝ ΘΑ ΤΗ ΔΕΙΞΕΙ Η ΤΗΛΕΟΡΑΣΗ: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Jean Valjean Facebook 6월 13일ㆍ링크).


불가리아, 민주주의 24년의 역사는 곧 부패의 역사였다

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약속은 애초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는 지 모르겠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공산주의 체제로 불리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이행하며 도입된 민주주의가 동유럽에서 겪은 실패를 살펴보면 이러한 의심은 확신이 된다. 불과 5주 전 총선을 치른 불가리아 정부는 부패한 정치인이자 언론의 실력자인 델리안 피브스키를 국가안보부의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시민의 거대한 저항에 휩싸였다. 피브스키는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고, 마피아와도 연관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시민들은 그를 '마피아'라고 비난하며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5월 총선은 2월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한 거대한 대중시위의 결과였다. 2003년 이후 민영화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전기 공급도 외국계 기업으로 넘어가버렸다. 2012년 7월 전기요금을 13% 인상한 결과 겨울철 난방을 위한 전기요금은 노동자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렸다. 실업자 모니카 바살레바는 "내가 구하는 일자리는 금료가 200~350달러인데 전기료는 135달러 넘게 내야 한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한겨레 2월 22일자 '전기요금 분노'에 두손든 불가리아 총리ㆍ링크). 분노가 폭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인들은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가리아 인민의 삶의 질 향상에는 관심이 없음을 부패 정치인 피브스키의 국가안보 수장 임명을 통해 드러냈다. 불가리아 인민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린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불가리아에 책임질 정치인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난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했지만 과반에 미치지 못한 옛 여당 유럽발전시민당(GERB)은 정부 구성을 포기했다. 제2당인 불가리아사회당(BSP)이 다른 당과 함께 정부를 구성했지만 이번 국가안보 수장 임명으로 불거진 시위로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다
(연합뉴스 5월 29일 불가리아, 야당 연정 출범ㆍ링크). 특히 피브스키의 임명은 불과 15분여 만에 그 어떤 토론도 없이 의회에서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부패한 정치인과 범죄자들을 대표할 뿐인 의회는 더이상 시민의 의사를 '대의'하는 기구가 아니다. 수만 명의 시민들은 소피아의 거리에서 의회의 해산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불가리아 인민의 저항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게오르기 마리노프는 민주주의가 도입된 후 24년 간의 부패와 무능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OARMAG.org What's happening in Bulgaria?ㆍ링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무능한 정치인들이 시민의 분열을 바라다

민주주의, 법과 제도의 실패는 말 그대로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보스니아에서는 한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3월에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무슬림 가족에게서 태어난 베리나 하미도비크는 긴급한 치료가 필요했다. 보스니아에선 치료가 불가능했다. 치료를 위해서는 세르비아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치료를 위한 국경 통과가 불가능했다. 신생아의 사회보장 번호 등록을 위한 시민권 법이 지난 겨울 그 기한이 만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민권 법은 여전히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등록되지 못한 채 없는 존재 취급 받고 있다. 베리나의 가족은 대중의 관심 덕에 간신히 '특별한' 증명서를 발급받았지만 오랜 내전과 갈등으로 편견에 가득찬 인종차별적 국경관리 공무원의 제지 때문에 결국 시간을 놓쳤다. 베리나의 시간은 영원히 끝나고 말았다. 분노한 시민들은 사라예보의 거리로 뛰쳐나와 의회를 봉쇄했다. 새 시민권 법이 통과되기까지 하원의원들의 출입을 허용치 않겠다는 기세였다. 결국 총리는 창문을 통해 도망처야만 했다.

보스니아의 주요 세 정당은 1995년 끝난 내전에 그 정체성의 뿌리를 갖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무슬림과 비무슬림, 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계의 종교적ㆍ민족적 갈등이 주요 원인인 것처럼 보여진다. 실제로 새 법률이 통과되지 못한 데는 세르비아계가 새로운 시민권에 종교적ㆍ민족적 정체성을 포함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다수파인 보스니아계는 종교적ㆍ민족적 정체성과 상관 없는 임의의 번호를 부여하자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여기에는 유럽연합 개발차관과, 세계은행ㆍ외국인 투자자의 호혜를 기대하며 인민을 분열시키길 원하는 정치인들의 책략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JMBG 운동은 이러한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했다. 결국 보스니아에서도 '의회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
(900poundgorilla The Forgotten Protest JMBG-SARAJEVO/BOSNIA and the unnecessary death of Berina Hamidovicㆍ링크).


공명하는 저항, 광장에 미래가 싹트다

이 모든 사건들이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벌어진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말이다. 로어매그(ROARMAG.org)의 편집자 제롬 로스는 이를 '공명하는 저항'이라고 부른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저항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각각의 저항에서 서로의 투쟁을 지지하고 고무하는 구호와 팻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탁심ㆍ사라예보ㆍ상파울루다(We are all Taksim, Sarajevo, Sao Paulo)"(ROARMAG.org What do Bosnia, Bulgaria and Brazil have in common?ㆍ링크).

시작은 튀니지였다. 2008년 경제위기, 그 이전부터 시작된 투기꾼들의 국제 곡물 투기로 인한 곡물가 상승으로 시작된 경제적 저항은 처음부터 권위주의적 지배에 대한 반란과 결합됐다. 그것은 이제 보다 보편적인 민주주의적 권리에 대한 요구로 성장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지난 10여 년 간의 경제성장의 끝에서 벌어진 현재의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사회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방식에서 민주주의적 원리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원칙에 의해 지배받는 다는 것을 최근 폭로하고 있다. 세계 곳곳의 연이은 투쟁들에서 그 상징으로 각각의 광장이 부상되고 있는 것은 그 무엇보다 의미심장하다. 그리스의 신타그마, 이집트의 타흐리르, 터키의 탁심 ……. '광장'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출발점 아니던가.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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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 있는 작은 공원의 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에르도안 정의개발당 정권에 반대하는 거대한 투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진 facebook The Turkish Revolution 2013 - Türk Devrimi]


조선일보는 '아랍의 봄 2.0'이라고 이름 붙였다. 사실 '봄'이라기엔 좀 덥다. 날씨만 다른 것은 아니다. 경제적ㆍ정치적 상황 또한 달라 보인다. 경향신문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하의 터키 경제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취임 뒤 에르도안은 외국인 투자자를 적극 끌어들이고 정부 규제를 과감히 없앴으며, 그가 집권한 이래 지난 10년간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3%에 이른다. 2002년 235억 달러였던 나라빚은 지난해 9억 달러로 줄었으며 올해는 빚을 모두 갚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률은 8.2%로 10년 만에 최저이고 GDP 대비 국가부채율이나 GDP 대비 재정적자는 유럽연합 대부분 나라들보다 낮다."
- 경향신문 6월 4일자 12면(링크)

그렇기에 5월 31일부터 계속된 전국적인 격렬한 시위에도 불구하고 "당장 정치적 격변을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향후 정치적 격변의 가능성에 대한 평가는 안하고 있지만 "지난 2011년부터 중동 각국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과 비슷해 보이지만 배경과 내용은 전혀 다르다"고 적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아랍의 봄'이 시작된 것과 달리 이번 터키는 경제성장의 결과 "안정된 중산층이 더 높은 수준의 자유와 문화 향유를 주장"하고 있기에 '아랍의 봄 2.0'이라고 부른 것이다(조선일보 6월 4일자 16면ㆍ링크).

경향신문이 제시한 '터키 이슬람주의ㆍ권위주의 조치'에 따르면 5월만 해도 '주류 판매ㆍ광고 제한' '공공장소 애정표현 규제 추진'과 같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가까운 조치들이 연이어 이뤄졌다. 이슬람주의 교육운동을 펼치고 있는 페툴라 귤렌과 에르도안 총리의 연계설도 피어오른다. 실제로 천연자원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터키가 중요한 발판으로 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페툴라 귤렌이 아프리카 전역에 설립한 학교였다.

그러나 상황이 이슬람주의를 둘러싼 갈등 만은 아니다. 애초에 이번 시위가 '나무' 몇 그루를 둘러싼 투쟁이 아니듯이 말이다. 에르도안 정부는 에너지ㆍ교통ㆍ도로ㆍ항만ㆍ토지에 대한 민영화와 국유자산 매각을 대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1월ㆍ링크). 올해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입찰가격이 기대보다 낮아서일 뿐 민영화 자체에 대한 방향 전환은 아니다. 이와 함께 이스탄불의 동쪽 지역을 금융중심지로 변화시키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세계일보 2011년 4월 2일자 14면ㆍ링크). '도시 재생' '주거 개량'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정의개발당 정부의 이스탄불 개조사업은 큰 저항 없이 추진될 수 있었다. 도시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주거를 잃고 쫓겨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게지 공원 투쟁이 거대한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켰다는 것은 그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게지 공원을 철거하고 오스만 제국 시절 병영을 본딴 거대한 쇼핑몰을 짓겠다는 계획은 정부의 이스탄불 개조 계획 중 하나였다. 이스탄불 '주거 개량' 사업은 550년 역사를 지닌 술루쿨 지역에서 시작됐다. 그곳에 모여 살던 가난한 집시들은 집을 잃어야만 했다. 그 다음은 탈라바시였다. 이곳은 마찬가지로 터키에서 주로 하층민에 속하는 쿠르드족의 주거지였다(Socialist Worker 6월 3일ㆍ링크).

참아왔던 불만이 결국 게지 공원에서의 경찰의 잔인한 진압으로 인해 폭발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슬람주의적 권위주의 지배의 강화, 신자유주의 정책의 급격한 도입, 터키의 오래된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 게지 공원에서 만나 불꽃을 일으킨 것이다.

앞선 이집트 혁명이 보여줬듯이 '혁명'이 쉽게 진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 전통이 강한 국가 중 세속적 민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모범 국가라고 칭송받는 터키지만, 그 세속주의의 유지에는 케말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군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쿠데타'의 위협은 여전히 높고 지금까지도 쿠데타 음모와 관련되 군부에 대한 조사와 체포,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정의개발당이 정권을 잡기 전까지 터키를 지배하던 케말주의자들 또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제이넵 감베티 이스탄불 보가지치 대학 정치학 부교수는 "케말-민족주의 광신도들이 지금은 [그들이 탄압했던] 쿠르드족ㆍ좌파ㆍ아나키스트ㆍLGBT 그룹과 같이 공원을 점거"하고 있다며 이 모습을 '기이한 동맹'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Roarmag.org 6월 2일ㆍ링크). 아직까지는 자신들을 "[터키를 건국한] 아타튀르크의 군대"라고 부르는 이들이 대중운동을 탈취하는 데 성공하진 못했다(레프트21 6월 4일ㆍ링크).

탁심 공원은 터키 좌파에게 유서 깊은 장소다. 1977년 노동절 이곳에서 노동조합과 좌파 활동가 수십여 명이 괴한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이후 좌파는 노동절이면 먼저 떠난 동료들을 기리며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거듭 노력해 왔다. 지난달 노동절에도 이곳 탁심 광장에서는 좌파와 경찰의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었다. 탁심의 활동가들이 과거 자신의 선배들이 겪었던 비극을 따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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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기사는 영어 실력이 중학생에도 못미치는 제가 제 멋대로 번역한 것임으로 인용하거나 퍼가시려면 꼭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오역에 대한 지적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터키에 봄이 오다
Socialist Worker 6월 3일ㆍ원문 링크

톰 게인은 이스탄불 한 공원의 파괴를 저지하려는 작은 시위가 정부와 억압기구에 대한 도전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 설명한다.

비무장한 평화로운 점령자들과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폭력으로 가득했던 날 이후 이스탄불 탁심 광장 가까이에 사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아온 내 오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한밤 중이었는 데도 내 주변은 모두가 깨어 있었지. 이웃 모두가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발을 구르고, 휘파람을 불고, 냄비와 후라이팬을 두드리며 소리쳤어. '타이이프 이스티파! 타이이프 이스티파!(타이이프는 사임하라! 타이이프는 사임하라!)'"

터키 총리이자 이슬람주의 영향을 받은 보수파 정의개발당(AKP)의 수장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다양한 정치적 경향이 함께한 인민의 봉기를 직면해 매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에르도안은 터키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맨 앞자리에 서왔다. 국가 산업의 거의 완벽한 사유화, 지중해 천연자원의 독점에 도전하면서 지역 권력으로의 부상, 그리고 터키의 가장 큰 도시인 이스탄불을 '도시 재생' 또는 '주거 개량'이라는 이름으로 금융중심지로 변화시키기 위해 비잔틴과 오스만 전통 지역의 완벽한 파괴가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포함돼 있다.

이 마지막 부분이 지난주 분출돼 이제까지 계속 확산되고 있는 거대한 시위가 촉발된 계기다.


2012년 2월 정의개발당은 지난 몇년간 그 어떤 정치적 반대도 없었던 가장 최근의 도시 재생 계획 일부로 이스탄불의 가장 번화가 중심에 있는 작은 녹색 오아시스인 탁심 공원의 게지 공원 철거에 착수했다. 정부의 계획은 1940년대 철거된
[오스만 제국 시절] 탁심 병영을 본딴 쇼핑몰을 건설하는 것이다.

공사가 계속되던 5월 27일 월요일 일련의 반-자생적인 시위 결과 작은 활동가 모임이 나무와 녹지를 뿌리뽑는 것을 중단시키기기 위해 게지 공원을 점거했다. 그날 밤 불도저가 공원의 벽을 철거하기 시작했지만 공사는 점령자들에 의해 늦춰졌다.

다음 며칠 동안 시위가 계속됐다. 목요일 아침 유명한 쿠르드 정치인 시리 슈레야 왼더가 불도저와 맞선 후 시위대는 일시적으로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었다. 철거를 승인한 법적인 문서를 받을 수 없었던 건설사는 이스탄불 경찰에게 달려갔다.

목요일 밤 1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공원을 점거했다. 그들의 시위는 2010년 가자 봉쇄를 풀기 위한 선단의 기함인 터키 선박 마비 마르마라호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치명적 공격을 추모하기 위한 거대한 행진과 함께 진행됐다.

'이스키 무카델레시(노동자의 투쟁)' 편집자 선가르 사브란이 캐나다의 '사회주의자의 계획: 총알' 웹사이트
(링크)에 기고한 바에 따르면 경찰은 시위대에게 악랄한 공격을 하기 위해 새벽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사브란은 이렇게 말한다.

이스탄불은 최루가스로 뒤덮인 전장이 됐다. … 이 모든 것은 보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터키 경찰은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은 시위대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잔인하기로 유명하다. 바로 한 달 전, 노동절에 경찰은 최루가스를 아낌없이 사용해 수천 명의 노동자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해산시켰다. … 차이점은 시위대의 투지와 대담함에 있다.

금요일 거리에서의 대치가 계속되자 경찰은 게지 공원을 봉쇄했다. 그러나 경찰이 잔인하게 진압하는 충격적인 이미지가 이미 세계로 확산되면서 격분을 일으켰고 터키 자체 내에서 여전히 최대 규모의 [시위를] 동원하고 있다.

지난 며칠간 촬영된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이스탄불의 거리를 이집트 혁명 초기의 카이로와 닮았다고 하는 것은 불공정한 것 같다. 딱바닥엔 최루탄 껍질이 어지럽게 깔려있다. 얼굴에 피칠갑을 한 사람이나 팔이 부러진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경찰 또는 정부] 지휘부는 시위대를 해산시기 위해 장갑차와 물대포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시위대는 차를 불태우고 세계에 '혁명'을 선언하는 현수막과 함께 바리케이트를 세웠다.

독립 노동조합 활동가인 유수프 케말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 경찰은 실탄을 사용하기까지 했습니다. 누군가 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오후 7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싸웠습니다."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의 사회주의 활동가인 오누르 데브림 유크바스는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기후변화 저지 활동가와 관심 있는 모든 부류의 시민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다시 야만적으로 공격해왔습니다. 사람의 머리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며 말입니다. 그 습격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시위대의] 주력인 '탁심 연대(Taksim Solidarity)'는 금요일 거대한 시위를 벌일 것을 호소했습니다.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날 저녁 탁심으로 몰려들어 수백발의 최루탄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았죠. 그러자 투쟁은 거대한 규모로 다른 도시에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6월 1일 10만 명 이상이 탁심 광장의 공원에 모였습니다. 경찰은 고무총탄과 물대포를 사용했습니다. 9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연행됐고 적여더 몇 십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망자는 없습니다.

운동은 말 그대로 터키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수만 명이 앙카라, 이즈미르와 같은 대도시에서 행진했습니다. 처음으로 정치적인 행진에 참여한 수천 명의 청년들은 '유력한 용의자'가 아닙니다
[상습 시위꾼이란 뜻의 비난에 대한 해명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구 세대에 의해 '비정치적'이라고 불렸지만 지금 우리는 정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공원과 그 역사를 지키고자 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시위가 변화한 결정적 순간은 무엇에서 시작했을까. 보수 종교적 가치에 의해 고취된 일당독재국가로의 변화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신자유주의적 전환으로 인한 나라 전체의 의식하지 못한 모든 불만들, 정치적 문제와 잠재된 분노가 [저항의 폭발을] 자극해 왔다.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작가인 리차드 세이무어는 가디언지에 "이것은 환경에 관한 시위 그 이상의 것이다. 이것은 정부에 대해 쌓여온 모든 불만을 모으는 피뢰침이 될 것"이라고 썼다.

이스탄불과 터키 전역의 시위대는 노동조합 운동에 자신감을 주고 있다. 이는 투쟁의, 또한 억압의 다채로운 과거를 가진 운동이다. 정의개발당 정권 아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진행된 지난 10년간 대체로 수동적이었던 태도가 여전히 남아있다.

터키에 있는 네 개의 주요 노동조합 중 하나인 '공공노동조합연맹(the Confederation of Publi Worker's Unions)'은 6월 5일 정파를 넘어선 파업을 호소했다. 에르도안과 정의개발당 정권이 게지 공원 파괴 정책을 지키려 한다면 총파업의 가능성은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니다.

터키 사람들의 용기 있는 시위는 전 세계로부터의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 지난주 뉴욕의 점령하라 활동가들은 터키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주코티 공워에서부터 터키 영사관까지 거리 시위를 벌였다. 보스톤에서 활발한 시위가 있었고 이번 주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의 도시에서도
[시위가] 열릴 것이다.

게지 공원을 철거하겠다는 것은 이스탄불과 터키 전국을 대상으로 한 더 큰 계획의 일부다. 그것은 2008년 열성적으로 시작돼 2010년 이스탄불을 '문화의 수도'로 선언하게 된다. 에르도안과 정의개발당에게 그 과정은 추가적인 개발과 '도시 재생' 계획의 허가권을 그들의 손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스탄불에서 강요된 주거 개량 계획은 술루쿨이라고 불리는 550년 역사를 지닌 지역의 철거로 시작했다. 그 지역에 가장 많이 모여 살던 가난한 집시들이 쫓겨났다. 목록의 다음에는 쿠르드족이 대규모로 살던 탈라바시-이 곳은 이주 노동자로 가득한 역사적인 장소다-가 있었다. 그 계획은 그곳에 살던 소수파로 전락한 유대인ㆍ그리스인ㆍ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족 사람들의 문화적 전통과 오스만 시대 건축물을 파괴했다.

이스탄불에는 제안된 50개의 주거 개량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인 게지 공원 철거 제안은 많은 활동가로부터 최후의 반격을 받게 된다. 다수의 터키인들이 정의개발당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계획에 관한 모든 것에 진저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게지 공원이 있는 탁심 광장은 1977년 노동절 때 노동조합 과격파와 급진파 수십여 명이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괴한들에게 학살당한 후 터키 좌파의 중요한 상징이었다. 1980년대 초의 잔인했던 군사독재 다음 몇년 동안 시위대는 노동절 때마다 잃어버린 동지들을 위한 상징적 행동으로 탁심 광장 점거를 시도해왔다.

2010년 노동절 경찰은 빡빡한 보안절차를 세우고 시위를 위해 광장을 열었다. 올해 노동절 탁심 광장은 다시 폐쇄됐고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다른 좌파는 국가 폭력에 맞섰다.

터키의 다른 미래는 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와 함께 탁심 광장에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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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이스탄불: 한 시대의 끝이 시작되는가?
Roarmag.org 6월 2일ㆍ원문 링크

한 터키 교수가 이제 새로운 시대를 열 기이한 동맹의 모호한 이미지를 묘사하며 그녀의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는 저항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본다. 이 글을 쓴 제이넵 감베티는 이스탄불에 있는 보가지치 대학 정치학 부교수다.

내 외국인 친구들에게: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사흘 째 최루가스를 마시고 있다. 경찰은 수 톤의 최루가스와 물을 뿌렸고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쐈다. 사람들은 다리와 허리, 머리를 가격당했다. 토요일 저녁 앙카라의 이즈미르와 몇몇 다른 도시에서 군중은 경찰과 충돌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치료받고 있다. 사람들은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집과 사무실, 식당을 열어주고 있다. 물론 경찰은 시위대를 추적해 빌딩 안에 최루가스를 살포하고 사람들을 폭행했다.

앙카라에서 트위터와 매우 용기 있는 두 개의 TV 채널은 경찰잉 고무탄을 사용한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위해 (주로 SNS를 통해)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토요일 오후 군중이 탁심 광장을 점거한 후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경찰이 물러섰지만 시위대가 이스탄불 지역 곳곳, 주로 베식타스[총리실이 있는 곳]로 확산되면서 팽팽한 소강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총리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쇼핑몰과 상류층을 위한 주택으로 바꾸고자 하는 그의 계획을 양보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총리는 귤렌파에 가깝다고 한다. 페툴라 귤렌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교육ㆍ평화운동가, 하지만 일부 보도에 의하면 페툴라 귤렌은 이슬람적 율법-샤리아-에 의한 체제를 정의개발당과 함께 꿈꾸고 있다고 한다]이 이끄는 현대적 허울을 쓴 이 종교적 분파는 언론의 일부를 통제하고 있고 미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 학교를 가지고 있다. 압둘라 굴 대통령은 진정할 것을 요구하며 경찰 폭력을 비판했었다. 그러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시위대는 한 묶음의 선동가들일 뿐"이라고 두드러지게 선동적인 어조로 토요일에 선언한 후 그 의견에 대한 논쟁을 피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들은 대통령이 말해왔던 그의 시민-민주주의적인 정부에 대항해 새로운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토요일 저녁 게지 공원에 많은 터키 국기가 놀랄 만큼 높이 솟았다. 이것은 기이한 동맹이다. 어제의 케말-민족주의 광신도들이 지금은 쿠르드족, 좌파, 아나키시트, LGBTT 그룹처럼 같은 공원을 점거하고 있다.

게지 공원에서 승리하는 데는 축구 팬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기에 연고지를 둔 세 개의 축구단 팬들은 하루종일 경찰과 싸웠다. 그들은 경기장에서의 훌리건처럼 활동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그들이 경찰에 대해 두려움 없이 싸우는 법을 안다고 받아들였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정부에 맞서 의미있는 항의로 연결될 것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애매모호하다. 어쨌든 탁심 광장 밖에서의 싸움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 것은 나무를 구하기 위한 시위가 아니다. 정부는 선을 넘었다. 우리는 지난 몇 달간 다른 몇몇 것들을 참아왔지만 게지 공원은 최후의 결정타였다. 체포된 쿠르드족과 활동가들은 터무니 없는 비난을 받고 있다. 변화한 학교 교육과정에는 어린이에게 종교교육을 하는 게 포함됐다. 낙태가 금지됐다. 터키-이라크 국경지역을 가로지르는 쿠르드족 민간인을 폭격해왔다(무장 게릴라로 오해했다고 한다). 시리아 내전
[터키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부추기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리아 접경 지역 레이한리에서 50명이 죽은 미심쩍은 폭탄테러. 음주 제한 시도. 이스탄불의 모든 것을 바꾸려는 거대한 계획. 제3 보스포러스교에 알레비파 사람들(터키에서 비수니파 무슬림 중 다수파)을 거의 완전히 전멸시켰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이름을 붙이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게지 공원 계획.

그동안 쿠르드족은 대안적인 평화 계획을 세우기 위해 지난주 앙카라에서 500명의 터키 지식인과 언론인, 시민사회 지도자를 모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시작하고, 타인에 대한 자신의 죄(예를 들어 쿠르드족은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참여했었고 LGBTT는 마르크스주의 좌파에 의해 매도당해 왔다)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게 된 것은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

요약하면 이것은 아마도 한 시대의 끝이 시작되는 것이리라. 대중의 일부는 이 정부를 끝낼 필요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정부를 대신해] 그 장소에 올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Posted by 때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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