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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그리스 정부에 의해 18개월 넘게 불법적으로 구금돼 있는 아나키스트 활동가 코스타스 사카스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 코스타스 사카스는 6월 4일부터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 Teacher Dude 플리커 페이지]

2010년 12월 테러 조직 가입 혐의로 체포된 코스타스 사카스(Κώστας Σακκάς, Kostas Sakkas)는 여전히 사전심리 과정에 놓여 있다. 그는 그리스 헌법이 정한 최대 구금 기간인 18개월 넘게 구속돼 있다. 6월 4일부터 단식 투쟁 중인 그는 의사에 의하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간으로 7월 10일 오전.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양심수 코스타스 사카스의 석방을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위가 무장한 경찰의 공격을 받았다. 소수의 시위대는 그 어떤 무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의 공격은 가차 없었고 그 장면을 촬영 중이던 카메라도 공격받았다
[▶유튜브 동영상].

우리는 예전보다 더 자주 경찰이 곤봉과 최루탄 등을 사용해 시위대를 잔인하게 폭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민주주의가 태어난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ㆍ사회적 권리를 위한 네트워크'의 회원인 지아나 쿠루토비크는 "현재 경찰의 행동이 지난 10여년 동안 그 이전보다 더 잔인해졌다"고 말한다.

"경찰은 완전무장을 갖추고 특수부대는 군대의 장비로 무장했다. 이 무장에는 불법적인 것도 있다. … 유럽 다른 나라의 그 어떤 수도에서도, 심지어 이스탄불(이곳은 수도가 아니다)에서도 이처럼 노골적인 경찰은 보지 못했다. 내 생각에 그리스와 터키의 독재 시절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경찰의 폭력은 그리스와 터키에서만 문제가 아니다. 최근 브라질 시위도 경찰의 잔인한 행동, 특히 기자들에 대한 폭력이 도화선이 됐다. 2012년 10월 스페인을 뜨겁게 달궜던 시위도 기폭제는 경찰 폭력이었다. 해리 라디스는 그리스 정부가 통치의 주요 수단으로 폭력에 의지하게 된 것은 한마디로 "더 이상 '당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현 정부가 "오래 전부터 '당근과 채찍'으로 알려진 방법을 이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2008년 이래 계속되고 있는 경제위기가 이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7월 8일 유로존 재무장관 회담에서는 그리스에 68억 유로의 추가 구제금융 지원을 결정했지만 그 조건은 공무원 4000명을 해고 하고 2만5000명을 재배치 하는 것이다. 임금도 25% 삭감해야 한다. 참세상에 의하면 정리해고 규모는 1만5000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경향신문 7월 10일자 10면, 참세상 7월 11일]. 인민은 '빵'을 찾고 있지만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정부는 주먹으로 대응할 뿐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무시는 경제위기 시대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리스 연정을 주도하고 있는 신민당의 안토니스 사마라스는 정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다른 정당들과 사전 논의도 거치지 않고 6월 국영 방송국의 폐쇄를 결정했다. 유럽연합의 여러 나라들은 그리스의 여러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급속히 성장하자 노골적으로 정치적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급진좌파연합이 정부를 구성하면 지원은 없을 것이라며 말이다.

이집트에서는 아예 군부가 나섰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임기를 채우지 않고 끌어내린 것을 문제삼고자 하는 게 아니다. 군부는 국민의 뜻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나섰지만 그들이 내놓은 것은 무르시의 파라오법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만수르 과도 정부 대통령은 1992년 무바라크가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명한 자다. 총리로 지명된 하젬 엘베블라위는 BBC 보도에 의하면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이집트 경제 전문가"다. 이집트 인민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자유시장 경제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참세상 7월 10일].

경찰의 폭력은 민주주의 위기의 한 측면일 뿐이다. 정치인 대부분이 소수 경제 엘리트의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다. 그리스 정부는 트로이카(유럽연합ㆍ유럽중앙은행ㆍ국제통화기금)의 대변인이다. 이집트 군부와 과도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자유시장 경제와 구 무바라크 세력의 후계자다. 심지어 브라질에선 전투적 노동계급 운동으로 탄생한 노동자당(PT)의 호세프 대통령과 정치인들도 소수 지배계급의 이익에 배신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정치인이 세계 어디서나 가장 인기 없는 이유다. 그리스의 법률가 지아나 쿠루토비키는 심화되는 경찰 폭력이 대표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권위주의적 변형은 그것이 역사적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 한계는 바로 소수 경제 엘리트와 이에 기반한 정치인들의 기득권이다.

Landscapes of emergency from Ross Domoney on Vimeo.

Posted by 때때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무장한 젊은이들의 '새로운' 반란? 세계 곳곳의 반란에서 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은 고전적인 바리케이트와 무장한 시위대-경찰의 충돌이다. 사진은 6월 26일 칠레 산티아고의 시위 모습. [사진 europeans against the political system 페이스북]

'역사의 종말'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최근의 반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2011년 튀니지ㆍ이집트 혁명부터 올해 터키ㆍ브라질 반란까지 모두 '중산층 혁명'이라고 주장한다[월스트리트저널 6월 28일ㆍ링크]. 후쿠야마의 기고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이후 우리 언론에서도 '중산층 혁명'에 대한 기사가 잇따랐다. 특히 경향신문은 7월 3일자 1면과 8면 두 개 면을 사용해 가장 크게 '중산층의 반란'을 다뤘다. 이 글에서는 후쿠야마의 월스트리트 기고를 중심으로 '중산층 혁명'에 대해 따져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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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7월 3일자 지면에는 '지구촌 휩쓰는 중산층의 반란'이란 표제의 기사가 실렸다.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의 물결을 분석하고 있다. 이번 시위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은 군부독재에 맞서는 정치세력도, 세계화의 그늘 속에 좌절한 젊은이들도 아닌 '글로벌 중산층'"이라는 게 요지다[경향신문 7월 3일자 1ㆍ8면ㆍ링크].

최근 저항에 대한 경향신문의 '중산층의 반란'이라는 규정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중산층 혁명(The Middle-Class Revolution)'에 크게 기대고 있다. 그는 사무엘 헌팅턴이 말한 '격차(the gap)'를 이번 시위의 공통점으로 꼽고 있다. 후쿠야마에 의하면 세계적인 자본주의 성장은 거대한 규모로 중산층을 만들어 냈다. 이들은 이전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자산을 소유하게 됐다고 말한다. 당연히 이들은 정부와 정치 엘리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됐지만 정치가 이 증대된 기대감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직면한 실패가 최근 시위들이 공유하고 있는 배경이라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이렇게 말한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처럼 터키와 브라질에서도 정치적 저항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닌 평균 이상의 교육 수준과 소득을 지닌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기술 친화적인 그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해 시위를 조직하고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위를 조직하고 연대를 건설하는 모습은 우리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반란과 혁명에 대한 틀에 잡힌 관념이 많이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못배운, 억압받는 이들이 들고 일어난 시위는 마치 옛 이야기처럼만 여겨진다. '중산층 혁명'이라는 주장은 현재의 시위를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중산층의 성장? 세계는 평평해졌는가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우선 세계적으로 봤을 때 '중산층'의 성장은 한정된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후쿠야마 스스로도 중산층의 증가 현상이 중국ㆍ인도에 집중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0년대 세계경제의 불안정성과 연관된 것이기도 하다. 1997년 동아시아 국가를 강태한 경제위기와 2000년대 초 미국의 IT버블 붕괴를 거친 후 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 네 개 나라가 매력적인 투자처로 새롭게 제시됐다. 브릭스(BRICs)는 이 네 나라의 이름에서 비롯한 단어로 세계적 금융자본인 골드만삭스가 2003년 처음 사용했다. 즉 애초 브릭스에 대한 관심은 자본주의 선진 국가들의 경제적 위기에 대한 금융자본의 반응이었다. 세계경제의 성장과 중산층의 부흥은 결코 전 세계적으로 고르게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불평등은 여전히 심각하다. 후쿠야마가 주목하고 있는 터키와 브라질에서 지니계수(세계은행, 100 기준)는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AKP)과 룰라의 노동자당(PT)이 집권한 2003년 각 43.42와 58.78에서 2010년 터키 40.03, 2009년 브라질 54.69으로 줄어들었다. 2010년 멕시코의 지니계수가 47.16임을 감안하면 브라질의 불평등이 여전히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터키는 2008년 38.95까지 떨어졌던 지니계수가 2010년 다시 증가한 것이다. 후쿠야마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불평등도 마찬가지로 심각하다. 중국은 1981년 이후 꾸준히 지니계수가 상승해 2009년에는 42.06에 다다른다
[구글 Public Dataㆍ링크]. 지난해 12월 또다른 보도에 의하면 중국가정금융조사연구센터(쓰촨성 청두 시난차이징대와 인민은행 금융연구소가 함께 설립한 연구소)의 조사결과 2010년 중국 지니계수는 0.61에 달해 '폭동을 부를 수준'이다[동아일보 2012년 12월 11일자 21면ㆍ링크].

터키와 브라질에서 빈곤층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브라질의 빈곤층(국가 빈곤선 기준 빈곤층 인원수, 국제 빈곤선 기준 이하 인구 포함) 인구는 2004년 33.7%에서 2009년 21.4%로, 터키는 2004년 25.6%에서 2009년 18.1%로 줄었다. 그러나 실업률은 정체 수준이며, 터키의 경우 장기실업률은 2003년 23.4%에서 2011년 26.5%로 오히려 증가했다
[구글 Public Dataㆍ링크]. 후쿠야마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도 "평균 이상의 소득을 지닌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도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서울경제는 무르시를 실각시킨 이집트 제2혁명의 원인을 "치솟는 청년 실업률ㆍ경제난"이라고 지적한다. 민간연구소들의 조사에 의하면 30세 이하의 청년 실업률은 60%에 달한다는 것이다. 튀니지는 말할 것도 없다. 아랍의 봄의 도환선이었던 튀니지 혁명은 한 대졸 노점상의 분신으로 시작됐다. 대학을 졸업했으나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과일 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경찰의 단속으로 노점을 계속할 수 없었던 그가 분신하면서 높은 실업률과 물가에 고통받던 튀니지 인민들이 반란에 나선 것이다[프레시안 2011년 1월 16일ㆍ링크].

경향신문이 '중산층의 반란'이라고 부른 최근의 보스니아 시위의 배경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 스스로 지적하듯이 "보스니아는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이 유럽연합 평균의 29% 수준에 머무는 유럽 내 가장 가난한 국가"이고 "실업률이 44.6%에 달하면서 정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졌다
[경향신문 7월 3일자 8면ㆍ링크]. 부패한 정치인의 공직 임명에 반발해 시작된 불가리아 반란도 다르지 않다. 이 반란이 시작되기 세 달 전 불가리아 인민은 전기요금의 급등에 반발해 거리로 나섰었다. 불가리아 정부는 분노한 시민을 달래기 위해 조기총선을 실시했지만 사태의 수습은 아직 멀어 보인다.

결국 이 모든 반란의 배경에는 고전적인 테마가 자리잡고 있다. 즉 극심해진 빈부격차, 열악해지는 삶의 질이 그 공통된 배경인 것이다. '중산층의 성장'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좀 더 평등해진 세계의 이미지는 현실이 아니다. 경제성장은 몇몇 나라의 소수에게만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했을 뿐이다.

푸틸로프 공장 노동자가 없었다면 레닌도 없다

경향신문은 이 중산층을 부르킹스 연구소의 기준을 빌어와 10~100달러의 소득수준을 지닌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2009년 '글로벌 중산층'은 18억명에 이른다. 이 추세는 계속 이어져 2030년에는 세계인구 80억명의 절반을 넘는 48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이 기준이 적절한지 따지기 이전에 앞에서 살펴본 세계경제의 현실은 경제적 기준의 중산층 성장이라는 주장이 현실과 다를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래서였을까. 후쿠야마는 중산층을 경제적 기준 만으로 다루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그는 중산층을 "교육과 직업, 자산의 소유에 의해 정의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의가 '중산층'의 정치적 태도를 예측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자산을 소유하고 세금을 많이 내는 중산층은 정치에 더 민감할 것이라는 것이다. 기술 친화적인 이들은 다른 나라의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더 밀접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공동의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수준이다. 더 높은 교육수준은 진보와 민주주의에 더 친화적이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이 이들의 높아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의 혁명들까지 끌고 온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프랑스 혁명, 볼셰비키 혁명, 중국 혁명 모두 불만을 품은 중산층이 주도했다. 그들의 궁극적인 행동 방침이 소작농과 노동자, 빈민층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1848년 '인민의 봄'은 사실상 유럽 대륙 전체에서 분출한 혁명이 직접적으로 앞선 수십여 년 동안의 유럽 중산층 성장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부분적으로 진실이다.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혁명가들을 보자.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ㆍ생쥐스트, 1848년 혁명의 마르크스ㆍ엥겔스와 루이 블랑, 1871년 (비록 결정적 순간에 감옥에 갖혀있었지만) 파리 코뮌의 블랑키, 1917년의 레닌 …. 이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들 대표적 혁명가들은 몰락한 귀족 또는 교육 받은 지식인 출신이다. 심지어 엥겔스는 자본가다.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는 또 어떤가.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의사다. 우리는 이러한 목록을 끝없이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이들 혁명의 대표자들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배후에 더 거대한 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1789년부터 1794년 사이 상퀼로트의 행동이 없었다면 로베스피에르의 위명 또는 악명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상퀴로트의 핵심 지도자들을 숙청했을 때 그는 더 이상 자신을 혁명의 적으로부터 보호해줄 대중을 발견할 수 없었고 바로 그 때 그를 몰락시킨 테르미도르 반동이 닥쳐왔다. 마르크스에게 '붉은 박사'라는 악명을 안겨줬지만 1848년 혁명은 그의 '의지'에 따라 일어난 게 아니며 파리 프롤레타리아트는 1871년 블랑키 없이 코뮌을 80일간 운영했다. 1917년 레닌에게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가 없었다면 볼셰비키의 10월 봉기는 실패했을 것이다. 푸틸로프 공장의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레닌도 없다.

동맹, 혁명의 필요조건

물론 후쿠야마가 '개인'으로서 혁명을 주도하는 중산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과거의 혁명을 얘기할 때 '개인'으로서 혁명가의 출신성분을 따지지만 현재의 혁명을 얘기할 때는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따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혁명에서 이 중산층 '집단'의 다른 계급 또는 계층과의 동맹은 매우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시위와 봉기, 때때로 혁명은 일반적으로 새롭게 성장한 중산층이 주도하지만 마지막에 장기적인 정치적 변화를 끌어내는 것에는 드물 게만 성공한다. 그것은 중산층이 발전된 국가에서 사회의 소수 이상을 대표하지 못하고 그들 내부가 스스로 분열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회의 다른 부분과 동맹을 맺지 못하는 한 그들의 운동은 지속적인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후쿠야마는 동맹을 맺는 것 자체가 중요한 듯 말하지만 사회를 뒤흔드는 중요한 투쟁은 거의 언제나 여러 계급ㆍ계층이 동시에 행동하며 벌어진다. 다시 한 번 그 목록을 늘어놓자면 1789년 프랑스 혁명 1848년 혁명, 1817년 파리 코뮌, 1917년 러시아 혁명, 1968년 혁명 모두가 그랬다. 보통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계급의 미발전(또는 충분히 분화되지 못한 현실)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하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대부분의 혁명은 하나의 계급 또는 계층에 의해 주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도 노동계급은 소수였으며 레닌과 볼셰비키는 농민의 협력을 얻기 위해 여러 타협을 해야만 했다.

현재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터키에서 젊은 활동가들의 투쟁은 노동조합의 파업과 쿠르드족의 연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칠레에서는 무상교육과 공교육 강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투쟁에 교사ㆍ부두ㆍ광산ㆍ의료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연대에 나섰다
[참세상 2013년 6월 27일ㆍ링크].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은 오클랜드 항만 노동자와의 연대, 시카고 교사 파업, 월마트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거대한 투쟁들이 자동적으로 노동자 반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집트의 두 번째 혁명에는 무르시 정권에 반대하는 거의 모든 세력이 함께 참여했다.

계급 화해의 정치, 모호한 미래

이미 동맹은 현실에서 이뤄져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동맹이냐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중요한 동맹의 사례 하나를 제시한다. 1849년 2월의 쁘띠부르주아와 노동자의 연합이 바로 그것이다. 1848년 파리 노동자의 6월 봉기가 무참히 진압된 뒤 쁘띠부르주아는 "물질적 이해관계가 위협받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물질적 이해관계의 실현을 보장해 주는 제반 민주주의적 보장책들이 반혁명으로 인해 의문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쁘띠부르주아는 노동자들에게 한층 가까이 접근했다". 6월 봉기의 실패로 실의에 빠져있던 노동자는 이들의 제안에 동의해 공동강령을 마련하고 연합선거위원회를 발족해 공동후보를 추천했다.

"플로레타리아의 사회적 요구로부터 혁명적 요소가 사라지고 민주주의적 요소가 대신하게 되었다. 쁘띠부르주아의 민주주의적 주장에서 순수하게 정치적인 형태가 없어지고 사회주의적 요소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 사회-민주주의이다. …… 사회-민주주의의 독특한 성격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요약된다. 곧, 민주공화주의 제도가 자본과 노동이라는 양 극단을 폐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양자 사이의 적개심을 무디게 하고 조화롭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 53쪽, 최형익 옮김, 비르투

동맹의 결과 1849년 5월 28일 입법국민의회가 열렸을 때 마르크스가 사회-민주주의라고 말한 산악당은 750석 중 200석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두 왕당파와 보나파르트파 중 하나와는 맞먹을 수 있는 수였다. 특히 파리에서 선출된 의원의 다수가 산악당이라는 점에서 이 동맹은 성공적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6월 13일 산악당은 2주 만에 질서당(두 왕당파와 보나파르트파의 연합)에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후퇴한다. 그 지도자인 르드뤼롤랭은 영국으로 망명해 1870년 보나파르트의 몰락 이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마르크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민주파[산악당]는 과도적 계급, 즉 그 안에 두 계급의 이해관계가 동시에 서로 뭉뚱그러져 있는 쁘띠부르주아지의 대표였기 때문에 자신들이 계급 적대 일반을 초월했다고 상상한다. 민주파들은 자신들이 특권계급과는 대립하고 있으나, 나머지 국민과 함께 인민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대변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이며 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인민의 이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법에 근거하여 투쟁의 시간이 임박해 올 때조차 그들은 여타 계급의 이해관계와 입장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원을 그다지 심각하게 평가할 필요조차도 없다. 단지 신호만 보내주면 인민은 자신들의 고갈될 줄 모르는 힘으로 압제자들을 공격할 것이다." - 58쪽, 최형익 옮김, 비르투

1848년 6월 봉기의 패배로부터 쁘띠부르주아에 대한 의심이 가시지 않은 노동자에게 사회-민주주의의 모호한 정치는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비치지 않았을 것이다.

브라질, 계급타협 정치의 종언

적대적인 계급의 이해관계를 화해키려는 모호한 정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브라질에서의 반란은 이러한 정치의 종말을 보여준다.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의 지도자인 페드로 스테딜레는 "신자유주의 15년, 그에 이어 계급타협 정부의 지난 10년은 정치를 자본의 인질로 전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룰라 시절에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한 개혁 정치의 당근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세계경제위기로 지우마 호세프에겐 룰라와 같은 좋은 조건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참세상 2013년 7월 2일ㆍ링크, 레디앙 2013년 6월 27일ㆍ링크]. 그럼에도 후쿠야마는 "많은 것은 리더십에 달렸다"며 반란을 적절한 개혁에 대한 타협으로 이끌 수 있길 바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중산층 중) 기업가적 소수는 정치인들에게 부패의 책임을 지우고 수혜자 중심의 정치를 가능케 하도록 원칙을 바꾸는, 브라질의 정치 체제 전체를 재구성하기 위한 중산층 동맹의 기초를 지원할 수 있다. 이것은 광범위한 중산층이 동원돼 19세기적 정실주의를 끝장내고 공적 서비스를 개혁하는 것에 대한 지지를 성공적으로 이끈 미국의 진보 시대(1890~1920년)에 일어난 일이다. …… 호세프 대통령에게 봉기는 좀 더 야심찬 체제 개혁을 시작할 계기다."

실제로 그녀는 시위대에 대해 다른 나라의 지배자들보다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녀와 달리 브라질 경찰은 터키의 경찰, 이집트의 군대와 다를 바 없는 잔인한 폭력으로 시위대를 대하고 있다. 시위대 또한 정부의 유화적 태도에도 결코 물러설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후쿠야마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진보 시대가 1차 세계대전과 세계적 혁명의 물결 속에 막을 내렸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터키와 이집트, 그 밖에 많은 나라의 반란에서 보여주는 것은 지배자들이 실제로 양보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에서 정치인들은 트로이카(유럽연합ㆍ유럽중앙은행ㆍ국제통화기금)의 압력하에 긴축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대중의 계속된 반란과 위협에도 말이다. 올해 초 대중의 저항에 직면해 조기총선을 치뤘던 불가리아에서는 제1당이 정부 구성 권리를 포기했다. 이집트에서는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뿌리 내린 지난 수 십년의 활동을 기반으로 무슬림형제단이 1차 혁명의 성과를 차지했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안돼 그들도 대안이 아님이 입증됐다. 무슬림형제단은 국제통화기금의 식료품과 공공요금 보조금 삭감 압력에 굴복했다. 실업은 해결되지 못하고 더 심각해졌다. 노동자들의 권리는 억압당했다.

반란을 겪고 있는 많은 나라들에서 권위주의의 강화, 경찰의 잔인한 시위대 탄압이 분노의 도화선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양보할 게 없는, 타협할 여지가 없는 정부는 주먹에 의지하기 쉽다. 계급타협 정치는 좌파가 아니라 우파와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먼저 종언을 고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좌파의 기회

그럼에도 계급타협 정치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반란에서 계급 간 대결이 순수한 형태로 드러나진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중간계급의 지위를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만들고 사회 전체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양대 계급의 대결로 몰아간다는 사정 자체가 갈등을 복잡하게 한다.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한 중간계급이 소부르주아적 습속을 버리긴 어려우며 프롤레타리아는 피지배 계급이라는 현실 때문에 부르주아적 의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후쿠야마가 말하는 중산층,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중간계급이 (이 둘이 완전히 일치하진 않더라도) 혁명의 대열에 끝까지 참여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무르시를 쫓아낸 2차 혁명에서 이집트 자유주의자들은 군부의 폭력에 기대고 있다. 이들은 무슬림형제단과 마찬가지로 반란의 배경이었던 국제통화기금의 긴축 압력에 맞서지 않고 있다.

노동계급도 분열돼 있다. 민족적ㆍ인종적ㆍ종교적ㆍ성적 차이에 기반한 전통적인 분열의 위세는 여전히 강력하다. 단결에 대한 열망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계급 간 타협에 대한 미련도 그렇다. 이번 반란들도 분열된 노동계급의 현실 때문에 단일한 노동계급의 투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인민' 또는 '민중'의 반란이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는 없다. 패배든 승리든 반란은 현실의 역사에 흔적을 남길 것이고 그 흔적은 어느 계급이 혁명의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결론을 내려보자. 최근의 반란으로 사회 전체가 흔들리며 여러 계급ㆍ계층이 동시에 진출하고 있다. 때로는 반란에 적대적인 세력까지도 집단적 행동으로 역사의 키를 쥐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산층의 혁명'은 지나치게 협소한 규정이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동맹은 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고 갈등할 것이다. 중산층 중심의 계급타협 동맹은 우파와 지배계급에 의해 부정당하고 있다. 따라서 동맹에서 어떤 정치에 의한, 어느 계급에 기반한 정치세력이 주도권을 잡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여러 투쟁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계급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칠레의 학생 반란에는 교사와 광부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스에서 노동조합은 중요한 투쟁들을 조직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노동계급은 2011년 아랍의 봄을 준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마르크스주의 좌파가 허약해 보이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몇몇 짧은 장들을 예외로 한다면, 1848년에서 1849년까지의 혁명 연보는 중요한 부분마다 "혁명의 패배!"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그러나 이 패배 때문에 사라진 것은 혁명이 아니었다. 사라진 것은 혁명 이전의 전통의 잔재, 다시 말해 아직 날카로운 계급 대립으로까지는 고양되지 않았던 사회적 관계의 결과물들이었다. 그것은 2월 혁명 이전의 혁명적 당파들이 벗어날 수 없었던 인물ㆍ환상ㆍ관념ㆍ계획들이었는데 혁명적 당파들은 2월의 승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련의 패배를 통해서만 그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혁명적 진보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진보의 직접적이고 희비극적인 성과물들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결속력 있고도 막강한 반혁명이라는 하나의 적을 만들어냈기 때문인데, 이 적과의 싸움을 통해서야 비로소 혁명적 당파들은 진정으로 혁명적인 당으로 성숙해 갔다.
-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 '프랑스 혁명사 3부작' 39쪽, 임지현 외 옮김, 소나무

마르크스는 1848년 혁명의 당파는 패배를 통해서만 과거의 습속과 환상, 현실의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현대의 우리도 이어진 투쟁의 굴곡 속에 몇몇, 때로는 심각한 패배를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열었고, 그들이 멈췄던 곳으로부터 보다 수월하게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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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의 2011년과 2013년. 아랍의 봄으로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쫓아낸 지 2년 만에 다시 광장으로 돌아온 이집트 인민들. 다시 출발한 이들이 도착할 곳은 어디일까. [사진 ROARMAG.org 페이스북]

6월 30일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 이집트의 주요 도시 거리에 수 백만 명이 쏟아져나왔다. 이들은 이미 2011년 독재자 무바라크를 쫓아낸 경험이 있다. 그러나 무바라크가 떠난 자리에 오른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은 종교의 탈을 쓴 또 다른 독재자였을 뿐이다. 이집트의 동지들은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물론 일시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다시 일어섰다. 이 점이 중요하다. 애초 2011년 이후 미국의 점령하라 운동, 스페인의 분노하라 운동, 2012년 터키와 브라질 반란에 영감을 전해줬던 이집트 동지들이 다시 터키와 브라질 반란으로부터 고무받아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다시 시작된 이집트의 운동은 전과는 다를 것이다. 전에 멈춘 곳에서 출발하게 된 운동은 그 결과가 인민의 승리든 패배든 더 격렬하게 지배자들과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30일 시위 전날인 29일 로어매그(ROARMAG.org)에 실린 이집트 활동가들의 편지는 그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스로를 '카이로의 동지들'이라고 칭한 이들은 단지 "권리나 시민권 개혁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합법성에 대한 강조"가 체제의 진정한 핵심을 가리고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이번 행동이 보다 근본적인 것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이들 스스로 지적하고 있듯이 이러한 목표가 거리로 나온 시위대 모두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어제의 시위는 이들의 주장이 허언 만은 아닐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이집트 활동가들의 공개 편지를 아래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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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가스 속 탁심과 리우의 동지들에게
Roarmag.org 6월 29일ㆍ링크

우리와 함께 투쟁하는 당신에게,

우리에게 6월 30일은 2011년 1월 25일과 28일 시작된 반란의 새로운 단계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에 우리는 경제적 착취와 경찰 폭력, 고문과 살해의 더 심한 판본일 뿐인 무슬림형제단의 통치에 맞서 일어선다.

'민주주의'의 도입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적절한 생계수단과 존엄의 [향상을 나타내는] 어떤 지표를 지닌 괜찮은 삶을 누릴 가능성과는 그 어떤 연관성도 없다. 선거 과정에서의 합법성에 대한 강조는 이집트에서 우리가 투쟁을 계속해야 만 하는 이유, 즉 얼굴만 바뀌었을 뿐 탄압과 긴축, 경찰 폭력의 원리는 그대로인 억압적 체제의 영구화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든다. 정권은 여전히 공중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고 고위직은 개인의 권력과 부를 획득할 기회로만 이해된다.

6월 30일 다시 시작될 혁명의 외침은 이거다: "인민은 체제의 폐지를 원한다". 우리는 비겁한 권위주의나 무슬림형제단의 식민주의적 자본주의, 여전히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삶의 목을 죄는 군부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무바라크 시대의 구체제로 돌아가지 않는 미래를 찾고 있다. 6월 30일 거리로 쏟아져나올 시위대 구성원들은 아직 이 요구로 하나가 되진 않았지만, 피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우리 [활동가] 네트워크는 여전히 약하지만 최근의 봉기, 특히 터키와 브라질의 봉기로부터 희망과 영감을 받고 있다. 그것들은 각자 다른 정치적ㆍ경제적 현실에서 비롯했지만 우리 모두는 인민에게 도움이 될 것은 생각도 안하는 체제를 영구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최상층의 지배를 받아왔다. 우리는 2003년 브라질 바히아의 무상교통운동의 수평적 조직과 터키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민중의회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은 지역화된 신자유주의 원리가 인민의 삶을 짓밟는 과정에 오직 종교적 허식만을 추가했을 뿐이다. 민간 부분을 공격적으로 성장시킨 터키의 전략은 반대자들과 진보적 계획에 대한 시도를 억압하는 주요 무기로서 경찰의 폭력적 지배와 같은 원리의 권위주의적 지배로 변화했다. 브라질에서 혁명적 전통에 뿌리를 둔 정부는 그들의 과거가 인민과 자연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적 지배에 협력하는 자신을 가리는 가면일 뿐임을 입증했다.

최근의 이러한 투쟁들은 보다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쿠르드족과 라틴 아메리카 토착민 투쟁의 영향을 받았다. 지난 10여 년간 터키와 브라질 정부는 생존을 위한 이 운동을 진압하려고 시도해왔지만 실패했다. 정부 탄압에 맞선 그들의 저항은 터키와 브라질 전역에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저항 물결의 선구자다. 우리는 각자의 투쟁이 중대함을 인식하는 것의 절실함을 알고, 새로운 공간과 주민, 공동체로 확산되는 반란의 양식을 찾아냈다.

우리의 투쟁은 국가들로 구성된 세계 체제에 맞설 수 있는 잠재력을 공유하고 있다. 무바라크와 군부, 무슬림형제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집트에서는 위세를 떨치고 있는 위기 때 국가가 권력을 사용해 저들의 부와 특혜를 보호하고 확산하기 위해 [인민의] 재산을 빼앗고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투쟁하는 우리는 고립돼 있지 않다. 우리는 바레인, 브라질, 보스니아, 칠레, 팔레스타인, 시리아, 터키, 쿠르디스탄, 튀니지, 수단, 사하라 서부 지역과 이집트에서 공통의 적에 맞서고 있다. 이 목록은 계속 이어진다. 모든 곳에서 그들은 우리를 폭력배, 파괴자, 약탈자,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 우리는 경제적 착취, 적나라한 경찰 폭력, 부조리한 법질서에 이상의 것에 맞서 싸우고 있다. 권리나 시민권 개혁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지역 지배자들이 우리의 삶을 착취할 수 있게 하거나 세계적 권력이 우리 매일의 삶에 대한 통치권을 유지시킬 수 있게 하는 중앙집권적 억압기구로서 국가에 반대한다. 총탄과 방송,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모든 것이 동시에 작동한다. 우리는 우리의 다양한 투쟁을 [억지로] 통일하려 하거나 동일시 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투쟁들의 배경에는 우리가 싸우고 해체해 쓰러뜨리려 하는 지배와 권력의 동일한 구조가 있다. 함께하면 우리의 투쟁은 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는 체제를 쓰러뜨리길 바란다.

카이로의 동지가.

※ 위 편지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제가 임의로 옮긴 것임으로 인용하거나 퍼가시려면 꼭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잘못 옮겼거나 틀리게 이해한 데 대한 지적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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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밤 그리스 정부는 긴축정책을 위해 국영 방송국 ERT를 폐쇄하고 노동자를 정리해고 했다. 노동자는 바로 방송국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통제하에 제작된 방송을 송출했고 그리스 시민들은 노동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방송국 주변에서 연대 시위를 열었다. 'ERTaksim, SMARdogan(ERT는 곧 탁심 광장이고, 사마라스는 에르도안과 같다는 뜻)'이라는 구호로 탁심 광장의 터키 시위와 연대를 표했다. [사진 facebook europeans against the political system]


터키의 봄

이스탄불의 작은 공원 철거에 반대하며 시작된 시위는 곧 터키 전국의 주요 도시와 지역으로 확산됐다. 지난 10년간 터키 정의개발당(AKP) 에르도안 정부의 승승장구는 경제성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10년 간의 경험으로 터키 인민은 '경제성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파악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공원의 파괴를 보면서 가난한 노동자, 쿠르드인들은 지난 몇년 간 자신과 이웃의 집들이 파괴된 것을 떠올렸을 것이다. 국유재산과 공공 서비스를 팔아먹기에 정신이 팔린 에르도안 정부는 꽤 짧은 기간에 '도시 재생'이라는 명목으로 가난한 이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해 왔다. 게지 공원에서 철거될 위기에 놓인 나무는 가난한 노동자와 쿠르드인의 처지와 다를 게 없었다.

1950~60년대 자본주의 선진 국가의 황금기에는 가난한 이들에게 떡고물을 던져줄 수 있었지만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강력한 권위주의적 정부와 독재가 필요했듯이 다른 많은 나라들, 특히 터키도 그랬다. 그러나 인구의 99.8%가 이슬람 신자인 나라에서 군부는 세속주의 국가의 버팀목이었다. 이슬람 성향의 정의개발당 정부는 권위주의적 경제성장-신자유주의화를 위해 군부를 동원할 수 없었다. 그들이 기댄 것은 이슬람화였다. 술의 판매와 광고를 제한하고, 공공장소의 애정표현을 금지하는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기초한 권위주의적 조치들이 잇따라 시행됐다. 젊은이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했다. 이들은 게지 공원의 나무를 통해, 가난한 노동자ㆍ쿠르드인의 처지와 자신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 게 아닐까
(자유롭지 못한… 터키, 이슬람주의에 대한 반란?ㆍ링크).

5월 말 시작된 터키에서의 저항은 에르도안 정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인구의 다수가 이슬람 신자인데다가, 에르도안 정부가 이슬람주의적인, 하지만 근본주의적 색채와는 거리가 있는 교육 운동과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이 저항이 당장에 2012년 튀니지ㆍ이집트와 같은 봉기와 승리로 이어지긴 힘들어 보인다. 그러니 지금 터키에서의 투쟁은 민주주의의 훈련장으로서 새로운 민중의회 실험과 용기있는 개인들의 침묵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ROARMAG.org Assemblies emerging in Turkey: a lesson in democracyㆍ링크, 경향신문 KHross 말없이 일어서! 트위터에 나타난 #standingmanㆍ링크).


브라질, 월드컵보다 공공 서비스

터키에서의 반란이 고비를 넘기도 전에 브라질에서 또 다른 시위 소식이 들려왔다. 인구 900만 명의 상파울루 시정부가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발표하자 여기에 반발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대중교통 요금을 3.0헤알(1570원)에서 3.2헤알(1670원)으로 올리려 했다. 그 자체로 우리보다 비싼 대중교통 요금이지만 최저임금(2013년 기준 378헤알, 35만원)을 고려하면 더더욱 엄청난 것이다. 상파울루에서 수천 명이 시작한 시위는 곧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리아 등 브라질의 주요 도시로 확산됐다. 18일에는 전국에서 수백만 명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대한 불만은 곧 삶의 질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다(참세상 브라질, "월드컵 대신 공공 서비스를" 20만 명 시위ㆍ링크).

2003년 룰라가 대통령에서 당선되면서 시작된 노동당 정권 시대는 빈곤퇴치와 경제성장의 모범으로 꼽혔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유치는 지난 10여년 간 성공의 달콤한 열매가 될 것 같았다. 1인당 국민총소득(구매력평가지수 기준)은 2003년 7280달러에서 2011년 1만1420달러로 증가했다. 그러나 인민이 느끼기엔 여전히 부족했던 것 같다. 젊은 노동자들은 "우리는 월드컵이 필요 없다" "우리는 병원과 교육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독일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고 있는 축구선수 단치 본핑 코스타 산투스는 "소수는 매우 부자지만 다른 이들은 아무 것도 없다"며 최근 시위를 지지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참세상 브라질 버스요금 반대 시위, 반정부 투쟁으로 확산ㆍ링크).

브라질 노동당 정부는 터키 정의개발당 정부보다는 유화적인 태도로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철회할 것을 내비쳤다. 그렇지만 역시 다수의 최루탄을 사용하고 기마경찰을 비롯한 폭동진압 경찰을 동원해 시위를 공격했다. 터키에서처럼 이 시위를 폭발시킨 것은 경찰의 잔인한 진압 때문이다. 특히 취재 중인 언론인에 대한 공격은 경악을 금치 못할 잔인한 행위였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에서의 경제성장은 민주주의의 확산이 아닌 권위주의적 지배의 강화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리스, 국영방송 폐쇄? 차라리 우리가 운영할 것

그렇기에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고향인 그리스에서 '민주주의'는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트로이카[유럽연합 EU, 유럽중앙은행 ECB, 국제통화기금 IMF]로부터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긴축정책 압박을 받고 있던 그리스 정부의 안토니스 사마라스 총리는 11일 밤 그 어떤 사전 예고도 없이 국영 방송국 ERT의 폐쇄와 노동자 2656명의 해고를 결정했다. 그리스 시민들은 12일 유럽에서 유일하게 국영 방송이 없는 아침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신민당의 지도자인 안토니스 사마라스는 연정을 구성한 다른 정당들과의 사전 논의도 거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과두지배 내에서도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ROARMAG.org What do Bosnia, Bulgaria and Brazil have in common?ㆍ링크).

해고된 2656명의 노동자는 그 즉시 방송국을 점거하고 노동자들의 통제하에 만들어진 방송을 인터넷 생중계로 송출하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은 정부의 공격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방송국 밖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아니 세계에서 유일하게 노동자들이 통제하는 방송국인 ERT의 한 스튜디오 창문에는 이런 글이 붙어있다.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ΤΗΝ ΕΠΑΝΑΣΤΑΣΗ ΔΕΝ ΘΑ ΤΗ ΔΕΙΞΕΙ Η ΤΗΛΕΟΡΑΣΗ: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Jean Valjean Facebook 6월 13일ㆍ링크).


불가리아, 민주주의 24년의 역사는 곧 부패의 역사였다

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약속은 애초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는 지 모르겠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공산주의 체제로 불리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이행하며 도입된 민주주의가 동유럽에서 겪은 실패를 살펴보면 이러한 의심은 확신이 된다. 불과 5주 전 총선을 치른 불가리아 정부는 부패한 정치인이자 언론의 실력자인 델리안 피브스키를 국가안보부의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시민의 거대한 저항에 휩싸였다. 피브스키는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고, 마피아와도 연관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시민들은 그를 '마피아'라고 비난하며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5월 총선은 2월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한 거대한 대중시위의 결과였다. 2003년 이후 민영화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전기 공급도 외국계 기업으로 넘어가버렸다. 2012년 7월 전기요금을 13% 인상한 결과 겨울철 난방을 위한 전기요금은 노동자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렸다. 실업자 모니카 바살레바는 "내가 구하는 일자리는 금료가 200~350달러인데 전기료는 135달러 넘게 내야 한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한겨레 2월 22일자 '전기요금 분노'에 두손든 불가리아 총리ㆍ링크). 분노가 폭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인들은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가리아 인민의 삶의 질 향상에는 관심이 없음을 부패 정치인 피브스키의 국가안보 수장 임명을 통해 드러냈다. 불가리아 인민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린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불가리아에 책임질 정치인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난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했지만 과반에 미치지 못한 옛 여당 유럽발전시민당(GERB)은 정부 구성을 포기했다. 제2당인 불가리아사회당(BSP)이 다른 당과 함께 정부를 구성했지만 이번 국가안보 수장 임명으로 불거진 시위로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다
(연합뉴스 5월 29일 불가리아, 야당 연정 출범ㆍ링크). 특히 피브스키의 임명은 불과 15분여 만에 그 어떤 토론도 없이 의회에서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부패한 정치인과 범죄자들을 대표할 뿐인 의회는 더이상 시민의 의사를 '대의'하는 기구가 아니다. 수만 명의 시민들은 소피아의 거리에서 의회의 해산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불가리아 인민의 저항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게오르기 마리노프는 민주주의가 도입된 후 24년 간의 부패와 무능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OARMAG.org What's happening in Bulgaria?ㆍ링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무능한 정치인들이 시민의 분열을 바라다

민주주의, 법과 제도의 실패는 말 그대로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보스니아에서는 한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3월에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무슬림 가족에게서 태어난 베리나 하미도비크는 긴급한 치료가 필요했다. 보스니아에선 치료가 불가능했다. 치료를 위해서는 세르비아로 가야만 했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치료를 위한 국경 통과가 불가능했다. 신생아의 사회보장 번호 등록을 위한 시민권 법이 지난 겨울 그 기한이 만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민권 법은 여전히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등록되지 못한 채 없는 존재 취급 받고 있다. 베리나의 가족은 대중의 관심 덕에 간신히 '특별한' 증명서를 발급받았지만 오랜 내전과 갈등으로 편견에 가득찬 인종차별적 국경관리 공무원의 제지 때문에 결국 시간을 놓쳤다. 베리나의 시간은 영원히 끝나고 말았다. 분노한 시민들은 사라예보의 거리로 뛰쳐나와 의회를 봉쇄했다. 새 시민권 법이 통과되기까지 하원의원들의 출입을 허용치 않겠다는 기세였다. 결국 총리는 창문을 통해 도망처야만 했다.

보스니아의 주요 세 정당은 1995년 끝난 내전에 그 정체성의 뿌리를 갖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무슬림과 비무슬림, 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계의 종교적ㆍ민족적 갈등이 주요 원인인 것처럼 보여진다. 실제로 새 법률이 통과되지 못한 데는 세르비아계가 새로운 시민권에 종교적ㆍ민족적 정체성을 포함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다수파인 보스니아계는 종교적ㆍ민족적 정체성과 상관 없는 임의의 번호를 부여하자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여기에는 유럽연합 개발차관과, 세계은행ㆍ외국인 투자자의 호혜를 기대하며 인민을 분열시키길 원하는 정치인들의 책략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JMBG 운동은 이러한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했다. 결국 보스니아에서도 '의회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
(900poundgorilla The Forgotten Protest JMBG-SARAJEVO/BOSNIA and the unnecessary death of Berina Hamidovicㆍ링크).


공명하는 저항, 광장에 미래가 싹트다

이 모든 사건들이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벌어진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말이다. 로어매그(ROARMAG.org)의 편집자 제롬 로스는 이를 '공명하는 저항'이라고 부른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저항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각각의 저항에서 서로의 투쟁을 지지하고 고무하는 구호와 팻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탁심ㆍ사라예보ㆍ상파울루다(We are all Taksim, Sarajevo, Sao Paulo)"(ROARMAG.org What do Bosnia, Bulgaria and Brazil have in common?ㆍ링크).

시작은 튀니지였다. 2008년 경제위기, 그 이전부터 시작된 투기꾼들의 국제 곡물 투기로 인한 곡물가 상승으로 시작된 경제적 저항은 처음부터 권위주의적 지배에 대한 반란과 결합됐다. 그것은 이제 보다 보편적인 민주주의적 권리에 대한 요구로 성장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지난 10여 년 간의 경제성장의 끝에서 벌어진 현재의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사회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방식에서 민주주의적 원리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원칙에 의해 지배받는 다는 것을 최근 폭로하고 있다. 세계 곳곳의 연이은 투쟁들에서 그 상징으로 각각의 광장이 부상되고 있는 것은 그 무엇보다 의미심장하다. 그리스의 신타그마, 이집트의 타흐리르, 터키의 탁심 ……. '광장'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출발점 아니던가.

Posted by 때때로


5월 31일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 있는 작은 공원의 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에르도안 정의개발당 정권에 반대하는 거대한 투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진 facebook The Turkish Revolution 2013 - Türk Devrimi]


조선일보는 '아랍의 봄 2.0'이라고 이름 붙였다. 사실 '봄'이라기엔 좀 덥다. 날씨만 다른 것은 아니다. 경제적ㆍ정치적 상황 또한 달라 보인다. 경향신문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하의 터키 경제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취임 뒤 에르도안은 외국인 투자자를 적극 끌어들이고 정부 규제를 과감히 없앴으며, 그가 집권한 이래 지난 10년간의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3%에 이른다. 2002년 235억 달러였던 나라빚은 지난해 9억 달러로 줄었으며 올해는 빚을 모두 갚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률은 8.2%로 10년 만에 최저이고 GDP 대비 국가부채율이나 GDP 대비 재정적자는 유럽연합 대부분 나라들보다 낮다."
- 경향신문 6월 4일자 12면(링크)

그렇기에 5월 31일부터 계속된 전국적인 격렬한 시위에도 불구하고 "당장 정치적 격변을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향후 정치적 격변의 가능성에 대한 평가는 안하고 있지만 "지난 2011년부터 중동 각국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과 비슷해 보이지만 배경과 내용은 전혀 다르다"고 적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아랍의 봄'이 시작된 것과 달리 이번 터키는 경제성장의 결과 "안정된 중산층이 더 높은 수준의 자유와 문화 향유를 주장"하고 있기에 '아랍의 봄 2.0'이라고 부른 것이다(조선일보 6월 4일자 16면ㆍ링크).

경향신문이 제시한 '터키 이슬람주의ㆍ권위주의 조치'에 따르면 5월만 해도 '주류 판매ㆍ광고 제한' '공공장소 애정표현 규제 추진'과 같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가까운 조치들이 연이어 이뤄졌다. 이슬람주의 교육운동을 펼치고 있는 페툴라 귤렌과 에르도안 총리의 연계설도 피어오른다. 실제로 천연자원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터키가 중요한 발판으로 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페툴라 귤렌이 아프리카 전역에 설립한 학교였다.

그러나 상황이 이슬람주의를 둘러싼 갈등 만은 아니다. 애초에 이번 시위가 '나무' 몇 그루를 둘러싼 투쟁이 아니듯이 말이다. 에르도안 정부는 에너지ㆍ교통ㆍ도로ㆍ항만ㆍ토지에 대한 민영화와 국유자산 매각을 대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1월ㆍ링크). 올해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입찰가격이 기대보다 낮아서일 뿐 민영화 자체에 대한 방향 전환은 아니다. 이와 함께 이스탄불의 동쪽 지역을 금융중심지로 변화시키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세계일보 2011년 4월 2일자 14면ㆍ링크). '도시 재생' '주거 개량'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정의개발당 정부의 이스탄불 개조사업은 큰 저항 없이 추진될 수 있었다. 도시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주거를 잃고 쫓겨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게지 공원 투쟁이 거대한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켰다는 것은 그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게지 공원을 철거하고 오스만 제국 시절 병영을 본딴 거대한 쇼핑몰을 짓겠다는 계획은 정부의 이스탄불 개조 계획 중 하나였다. 이스탄불 '주거 개량' 사업은 550년 역사를 지닌 술루쿨 지역에서 시작됐다. 그곳에 모여 살던 가난한 집시들은 집을 잃어야만 했다. 그 다음은 탈라바시였다. 이곳은 마찬가지로 터키에서 주로 하층민에 속하는 쿠르드족의 주거지였다(Socialist Worker 6월 3일ㆍ링크).

참아왔던 불만이 결국 게지 공원에서의 경찰의 잔인한 진압으로 인해 폭발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슬람주의적 권위주의 지배의 강화, 신자유주의 정책의 급격한 도입, 터키의 오래된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 게지 공원에서 만나 불꽃을 일으킨 것이다.

앞선 이집트 혁명이 보여줬듯이 '혁명'이 쉽게 진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 전통이 강한 국가 중 세속적 민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모범 국가라고 칭송받는 터키지만, 그 세속주의의 유지에는 케말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군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쿠데타'의 위협은 여전히 높고 지금까지도 쿠데타 음모와 관련되 군부에 대한 조사와 체포,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정의개발당이 정권을 잡기 전까지 터키를 지배하던 케말주의자들 또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제이넵 감베티 이스탄불 보가지치 대학 정치학 부교수는 "케말-민족주의 광신도들이 지금은 [그들이 탄압했던] 쿠르드족ㆍ좌파ㆍ아나키스트ㆍLGBT 그룹과 같이 공원을 점거"하고 있다며 이 모습을 '기이한 동맹'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Roarmag.org 6월 2일ㆍ링크). 아직까지는 자신들을 "[터키를 건국한] 아타튀르크의 군대"라고 부르는 이들이 대중운동을 탈취하는 데 성공하진 못했다(레프트21 6월 4일ㆍ링크).

탁심 공원은 터키 좌파에게 유서 깊은 장소다. 1977년 노동절 이곳에서 노동조합과 좌파 활동가 수십여 명이 괴한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이후 좌파는 노동절이면 먼저 떠난 동료들을 기리며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거듭 노력해 왔다. 지난달 노동절에도 이곳 탁심 광장에서는 좌파와 경찰의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었다. 탁심의 활동가들이 과거 자신의 선배들이 겪었던 비극을 따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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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기사는 영어 실력이 중학생에도 못미치는 제가 제 멋대로 번역한 것임으로 인용하거나 퍼가시려면 꼭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오역에 대한 지적은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터키에 봄이 오다
Socialist Worker 6월 3일ㆍ원문 링크

톰 게인은 이스탄불 한 공원의 파괴를 저지하려는 작은 시위가 정부와 억압기구에 대한 도전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 설명한다.

비무장한 평화로운 점령자들과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폭력으로 가득했던 날 이후 이스탄불 탁심 광장 가까이에 사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아온 내 오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한밤 중이었는 데도 내 주변은 모두가 깨어 있었지. 이웃 모두가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발을 구르고, 휘파람을 불고, 냄비와 후라이팬을 두드리며 소리쳤어. '타이이프 이스티파! 타이이프 이스티파!(타이이프는 사임하라! 타이이프는 사임하라!)'"

터키 총리이자 이슬람주의 영향을 받은 보수파 정의개발당(AKP)의 수장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다양한 정치적 경향이 함께한 인민의 봉기를 직면해 매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에르도안은 터키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맨 앞자리에 서왔다. 국가 산업의 거의 완벽한 사유화, 지중해 천연자원의 독점에 도전하면서 지역 권력으로의 부상, 그리고 터키의 가장 큰 도시인 이스탄불을 '도시 재생' 또는 '주거 개량'이라는 이름으로 금융중심지로 변화시키기 위해 비잔틴과 오스만 전통 지역의 완벽한 파괴가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포함돼 있다.

이 마지막 부분이 지난주 분출돼 이제까지 계속 확산되고 있는 거대한 시위가 촉발된 계기다.


2012년 2월 정의개발당은 지난 몇년간 그 어떤 정치적 반대도 없었던 가장 최근의 도시 재생 계획 일부로 이스탄불의 가장 번화가 중심에 있는 작은 녹색 오아시스인 탁심 공원의 게지 공원 철거에 착수했다. 정부의 계획은 1940년대 철거된
[오스만 제국 시절] 탁심 병영을 본딴 쇼핑몰을 건설하는 것이다.

공사가 계속되던 5월 27일 월요일 일련의 반-자생적인 시위 결과 작은 활동가 모임이 나무와 녹지를 뿌리뽑는 것을 중단시키기기 위해 게지 공원을 점거했다. 그날 밤 불도저가 공원의 벽을 철거하기 시작했지만 공사는 점령자들에 의해 늦춰졌다.

다음 며칠 동안 시위가 계속됐다. 목요일 아침 유명한 쿠르드 정치인 시리 슈레야 왼더가 불도저와 맞선 후 시위대는 일시적으로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었다. 철거를 승인한 법적인 문서를 받을 수 없었던 건설사는 이스탄불 경찰에게 달려갔다.

목요일 밤 1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공원을 점거했다. 그들의 시위는 2010년 가자 봉쇄를 풀기 위한 선단의 기함인 터키 선박 마비 마르마라호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치명적 공격을 추모하기 위한 거대한 행진과 함께 진행됐다.

'이스키 무카델레시(노동자의 투쟁)' 편집자 선가르 사브란이 캐나다의 '사회주의자의 계획: 총알' 웹사이트
(링크)에 기고한 바에 따르면 경찰은 시위대에게 악랄한 공격을 하기 위해 새벽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사브란은 이렇게 말한다.

이스탄불은 최루가스로 뒤덮인 전장이 됐다. … 이 모든 것은 보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터키 경찰은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은 시위대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잔인하기로 유명하다. 바로 한 달 전, 노동절에 경찰은 최루가스를 아낌없이 사용해 수천 명의 노동자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해산시켰다. … 차이점은 시위대의 투지와 대담함에 있다.

금요일 거리에서의 대치가 계속되자 경찰은 게지 공원을 봉쇄했다. 그러나 경찰이 잔인하게 진압하는 충격적인 이미지가 이미 세계로 확산되면서 격분을 일으켰고 터키 자체 내에서 여전히 최대 규모의 [시위를] 동원하고 있다.

지난 며칠간 촬영된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이스탄불의 거리를 이집트 혁명 초기의 카이로와 닮았다고 하는 것은 불공정한 것 같다. 딱바닥엔 최루탄 껍질이 어지럽게 깔려있다. 얼굴에 피칠갑을 한 사람이나 팔이 부러진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경찰 또는 정부] 지휘부는 시위대를 해산시기 위해 장갑차와 물대포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시위대는 차를 불태우고 세계에 '혁명'을 선언하는 현수막과 함께 바리케이트를 세웠다.

독립 노동조합 활동가인 유수프 케말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 경찰은 실탄을 사용하기까지 했습니다. 누군가 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오후 7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싸웠습니다."

혁명적사회주의노동자당의 사회주의 활동가인 오누르 데브림 유크바스는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기후변화 저지 활동가와 관심 있는 모든 부류의 시민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다시 야만적으로 공격해왔습니다. 사람의 머리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며 말입니다. 그 습격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시위대의] 주력인 '탁심 연대(Taksim Solidarity)'는 금요일 거대한 시위를 벌일 것을 호소했습니다.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날 저녁 탁심으로 몰려들어 수백발의 최루탄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았죠. 그러자 투쟁은 거대한 규모로 다른 도시에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6월 1일 10만 명 이상이 탁심 광장의 공원에 모였습니다. 경찰은 고무총탄과 물대포를 사용했습니다. 9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연행됐고 적여더 몇 십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망자는 없습니다.

운동은 말 그대로 터키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수만 명이 앙카라, 이즈미르와 같은 대도시에서 행진했습니다. 처음으로 정치적인 행진에 참여한 수천 명의 청년들은 '유력한 용의자'가 아닙니다
[상습 시위꾼이란 뜻의 비난에 대한 해명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구 세대에 의해 '비정치적'이라고 불렸지만 지금 우리는 정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공원과 그 역사를 지키고자 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시위가 변화한 결정적 순간은 무엇에서 시작했을까. 보수 종교적 가치에 의해 고취된 일당독재국가로의 변화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신자유주의적 전환으로 인한 나라 전체의 의식하지 못한 모든 불만들, 정치적 문제와 잠재된 분노가 [저항의 폭발을] 자극해 왔다.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작가인 리차드 세이무어는 가디언지에 "이것은 환경에 관한 시위 그 이상의 것이다. 이것은 정부에 대해 쌓여온 모든 불만을 모으는 피뢰침이 될 것"이라고 썼다.

이스탄불과 터키 전역의 시위대는 노동조합 운동에 자신감을 주고 있다. 이는 투쟁의, 또한 억압의 다채로운 과거를 가진 운동이다. 정의개발당 정권 아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진행된 지난 10년간 대체로 수동적이었던 태도가 여전히 남아있다.

터키에 있는 네 개의 주요 노동조합 중 하나인 '공공노동조합연맹(the Confederation of Publi Worker's Unions)'은 6월 5일 정파를 넘어선 파업을 호소했다. 에르도안과 정의개발당 정권이 게지 공원 파괴 정책을 지키려 한다면 총파업의 가능성은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니다.

터키 사람들의 용기 있는 시위는 전 세계로부터의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 지난주 뉴욕의 점령하라 활동가들은 터키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주코티 공워에서부터 터키 영사관까지 거리 시위를 벌였다. 보스톤에서 활발한 시위가 있었고 이번 주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의 도시에서도
[시위가] 열릴 것이다.

게지 공원을 철거하겠다는 것은 이스탄불과 터키 전국을 대상으로 한 더 큰 계획의 일부다. 그것은 2008년 열성적으로 시작돼 2010년 이스탄불을 '문화의 수도'로 선언하게 된다. 에르도안과 정의개발당에게 그 과정은 추가적인 개발과 '도시 재생' 계획의 허가권을 그들의 손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스탄불에서 강요된 주거 개량 계획은 술루쿨이라고 불리는 550년 역사를 지닌 지역의 철거로 시작했다. 그 지역에 가장 많이 모여 살던 가난한 집시들이 쫓겨났다. 목록의 다음에는 쿠르드족이 대규모로 살던 탈라바시-이 곳은 이주 노동자로 가득한 역사적인 장소다-가 있었다. 그 계획은 그곳에 살던 소수파로 전락한 유대인ㆍ그리스인ㆍ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족 사람들의 문화적 전통과 오스만 시대 건축물을 파괴했다.

이스탄불에는 제안된 50개의 주거 개량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인 게지 공원 철거 제안은 많은 활동가로부터 최후의 반격을 받게 된다. 다수의 터키인들이 정의개발당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계획에 관한 모든 것에 진저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게지 공원이 있는 탁심 광장은 1977년 노동절 때 노동조합 과격파와 급진파 수십여 명이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괴한들에게 학살당한 후 터키 좌파의 중요한 상징이었다. 1980년대 초의 잔인했던 군사독재 다음 몇년 동안 시위대는 노동절 때마다 잃어버린 동지들을 위한 상징적 행동으로 탁심 광장 점거를 시도해왔다.

2010년 노동절 경찰은 빡빡한 보안절차를 세우고 시위를 위해 광장을 열었다. 올해 노동절 탁심 광장은 다시 폐쇄됐고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다른 좌파는 국가 폭력에 맞섰다.

터키의 다른 미래는 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와 함께 탁심 광장에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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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이스탄불: 한 시대의 끝이 시작되는가?
Roarmag.org 6월 2일ㆍ원문 링크

한 터키 교수가 이제 새로운 시대를 열 기이한 동맹의 모호한 이미지를 묘사하며 그녀의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는 저항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본다. 이 글을 쓴 제이넵 감베티는 이스탄불에 있는 보가지치 대학 정치학 부교수다.

내 외국인 친구들에게: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사흘 째 최루가스를 마시고 있다. 경찰은 수 톤의 최루가스와 물을 뿌렸고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쐈다. 사람들은 다리와 허리, 머리를 가격당했다. 토요일 저녁 앙카라의 이즈미르와 몇몇 다른 도시에서 군중은 경찰과 충돌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치료받고 있다. 사람들은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집과 사무실, 식당을 열어주고 있다. 물론 경찰은 시위대를 추적해 빌딩 안에 최루가스를 살포하고 사람들을 폭행했다.

앙카라에서 트위터와 매우 용기 있는 두 개의 TV 채널은 경찰잉 고무탄을 사용한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위해 (주로 SNS를 통해)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토요일 오후 군중이 탁심 광장을 점거한 후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경찰이 물러섰지만 시위대가 이스탄불 지역 곳곳, 주로 베식타스[총리실이 있는 곳]로 확산되면서 팽팽한 소강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총리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쇼핑몰과 상류층을 위한 주택으로 바꾸고자 하는 그의 계획을 양보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총리는 귤렌파에 가깝다고 한다. 페툴라 귤렌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교육ㆍ평화운동가, 하지만 일부 보도에 의하면 페툴라 귤렌은 이슬람적 율법-샤리아-에 의한 체제를 정의개발당과 함께 꿈꾸고 있다고 한다]이 이끄는 현대적 허울을 쓴 이 종교적 분파는 언론의 일부를 통제하고 있고 미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 학교를 가지고 있다. 압둘라 굴 대통령은 진정할 것을 요구하며 경찰 폭력을 비판했었다. 그러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시위대는 한 묶음의 선동가들일 뿐"이라고 두드러지게 선동적인 어조로 토요일에 선언한 후 그 의견에 대한 논쟁을 피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들은 대통령이 말해왔던 그의 시민-민주주의적인 정부에 대항해 새로운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토요일 저녁 게지 공원에 많은 터키 국기가 놀랄 만큼 높이 솟았다. 이것은 기이한 동맹이다. 어제의 케말-민족주의 광신도들이 지금은 쿠르드족, 좌파, 아나키시트, LGBTT 그룹처럼 같은 공원을 점거하고 있다.

게지 공원에서 승리하는 데는 축구 팬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기에 연고지를 둔 세 개의 축구단 팬들은 하루종일 경찰과 싸웠다. 그들은 경기장에서의 훌리건처럼 활동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그들이 경찰에 대해 두려움 없이 싸우는 법을 안다고 받아들였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정부에 맞서 의미있는 항의로 연결될 것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애매모호하다. 어쨌든 탁심 광장 밖에서의 싸움은 중단되지 않았다. 이 것은 나무를 구하기 위한 시위가 아니다. 정부는 선을 넘었다. 우리는 지난 몇 달간 다른 몇몇 것들을 참아왔지만 게지 공원은 최후의 결정타였다. 체포된 쿠르드족과 활동가들은 터무니 없는 비난을 받고 있다. 변화한 학교 교육과정에는 어린이에게 종교교육을 하는 게 포함됐다. 낙태가 금지됐다. 터키-이라크 국경지역을 가로지르는 쿠르드족 민간인을 폭격해왔다(무장 게릴라로 오해했다고 한다). 시리아 내전
[터키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부추기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리아 접경 지역 레이한리에서 50명이 죽은 미심쩍은 폭탄테러. 음주 제한 시도. 이스탄불의 모든 것을 바꾸려는 거대한 계획. 제3 보스포러스교에 알레비파 사람들(터키에서 비수니파 무슬림 중 다수파)을 거의 완전히 전멸시켰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이름을 붙이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게지 공원 계획.

그동안 쿠르드족은 대안적인 평화 계획을 세우기 위해 지난주 앙카라에서 500명의 터키 지식인과 언론인, 시민사회 지도자를 모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시작하고, 타인에 대한 자신의 죄(예를 들어 쿠르드족은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참여했었고 LGBTT는 마르크스주의 좌파에 의해 매도당해 왔다)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게 된 것은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

요약하면 이것은 아마도 한 시대의 끝이 시작되는 것이리라. 대중의 일부는 이 정부를 끝낼 필요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정부를 대신해] 그 장소에 올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Posted by 때때로